“뭐라구요? 아, 죄송합니다.”
“김연을 닮아가네.”
이곳은 청장실. 나는 책상에 앉아있는 건혁과 대화중이었다.
뭔가 굉장히 거슬리는 말이 끼어있던 것 같은데. 그래도 울컥, 하는 것을 애써 참는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김연반장을 찾으라고 하셨습니다만....... 위치도 아직 모릅니다.”
“위치는 내가 알아.”
“네? 아, 죄송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 놈 왼눈. 알지? 의안인거. 내가 혹시 몰라서 거기에 손을 써놨거든. 위치가 실시간으로 나한테 전송되지.”
“.......”
의안에 그런 걸 달아놓는 사람도 사람이지만, 그것이 달린 채 생활하는 김연은 도대체 어떤 인간이길래 이런 취급을 받는 걸까? 갑자기 김연이 조금은 불쌍해진다.
“저, 그렇다면 어째서 처음부터 그렇게 찾지 않으신 겁니까?”
말투가 조금 건방졌나? 하지만 사실인걸.
“놈이 나한테 말도 안하고 그렇게 사라졌다면, 분명 이유가 있을 거거든. 너희한테 말하지 않은 건 미안해. 하지만 일단은 놈이 사라진 것을 숨겨야 했어. 그렇지만 너희에게는 아마 늦던 빠르건 알려졌을테니 미리 말을 해놓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일종의 연막이지. 그날 밤늦게 까지 고생시킨건 미안하지만.......”
납득하기 힘든 이유. 그나저나 이 둘은 도대체 어떤 관계일까? 이유가 있을 테니 사라져도 찾지 않는다, 라는 말에선 신뢰가 느껴지지만, 애초에 그렇게 신뢰하는 관계라면 부하의 눈에 위치추적기 같은 건 달아놓지 않을텐데.
“아무튼, 내가 위치를 지속적으로 전송해 줄테니 PDA챙겨가. 그리고 복장은 사복으로 가도록해.”
평소의 온화함이 다소 퇴색된 건혁. 초췌하고 날카로워졌다. 하지만 어쩔 수 없겠지. 상황이 상황이니까.
“그리고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권총 한 자루 챙겨가고. 허가는 내가 알아서 내려줄테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그래 수고해줘. 아 그놈 신경이 조금 날카로워져있을 지도 모르니 조심하고,”
“......네. 그런데 하나만 더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뭔데?”
“왜 하필 제가 가는 겁니까? 아, 항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를 잡는 것이라면 저보다 더 능력있는......”
“하하하하.......”
갑자기 힘없이 웃는 건혁. 애써 온화함을 유지하는 것 같은 불안불안한 웃음이다.
“아, 미안. 잡는 것이 아냐. 설득이지.
“설득........이요?”
설득이 먹힐 인간이던가........
“자네에게 기대하는 것은 그거야. 놈이 일단 전담청으로 돌아오라고 말하는 것. 사실 김연이 사라진 이유는 대강 짐작은 하고 있어.”
“이유라면?”
“미안해. 이건 말하기 조금 곤란하거든. 기밀.......이라고 이해해줘도 될까?”
“아,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더욱더 제가 이 임무에 적절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자네라면 경계하지 않을 거야. 내가 가면 다짜고짜 폭탄을 터뜨릴지도 모르고.”
“네?”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경계하지 않는다고? 김연이 나를 그렇게 보고 있나? 젠장. 왜 이때 얼굴이 뜨거워지는 거야.
그나저나, 청장이 김연에게 뭔가 잘못이라도 한건가? 폭탄?
“나나 다른 반장이 가면 아마 억지로 끌고 오려한다고 생각하겠지. 그 놈 성질머리라면 폭탄보다 더한 짓으로 맞이할 지도 몰라. 하지만 자네가 간다면, 설마 체포하려고 보낸 거라곤 생각 안할 걸? 자네 혼자라면 말야.”
“아.......그렇군요.”
상위랭크 각성자들은 다들 이렇게 무신경하게 말하는 걸까? 물론 내가 김연과 붙으면 상대도 되지 않을 걸 잘 알긴 한다. 그리고 어떤 머저리도 AEG랭커를 체포하려고 B랭크 나부랭이를 보낼거라 생각하진 않는 다는 것도.
분명 김연도 그다지 경계하진 않겠지.
하지만 기분이 더럽긴 더럽네. 뺨도 빠르게 식은 것 같고.
“아, 자넬 평가절하하는 것이 아냐. 그냥 놈의 시건방진 성향을 봐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 뿐. 김연도 그렇게 막나가진 않을테니 자넬 다짜고짜 공격할 리도 없을 테고.”
막나가는 인간이 아니라면 병원을 부수고 달아나진 않았겠죠. 혹은 처음 만난 신입에게 총을 겨누거나 하지도 않았을 거고 대련 중에 암기를 꺼내 공격하진 않을 거다. 물론, 입 밖에 낼 말은 아니지만.
“일단, 알겠습니다.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그래, 부탁해. 조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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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과 니콜 카나, 로날드 테일러를 태운 리무진이 서울 시내를 지나 나아간다. 지금 그들은 청와대로 가고 있었다.
“그렇기에 한국정부의 입장은, 현재로선 보류입니다. 정치적인 부담도 큰데다가 군 내부 파벌들이 전부 위탁계약에 동의하는 것은.......”
말을 이어가던 대통령의 시선이 창밖을 향했다.
그리고 짜증과 혐오 섞인 시선으로 바깥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그런 그를 보던 니콜 카나가 여유 있는 태도로 대통령이 보는 곳을 향해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이건 뭡니까? 각하.”
“아무래도....... 일정이 새어나갔나보군요.”
차량의 밖의 거리에 사람들이 몰려있었다. 이상한 꼴이었다. 곳곳에 태극기가 펄럭인다. 그리고 드문드문, 얼티밋 원의 깃발이 보인다. 흔히 말하는 ‘애국 청년’들의 시위인 것 같았다.
황금색 바탕위에 그려진 검은 사자. 대놓고 힘과 권위를 내세우는 깃발.
“한국을 지켜주세요!!!”
“안보계약 체결하라!!!”
“무능한 대통령 척결하라!!!”
“나라는 지킬 수 있는 자들이 지키게 해라!!
“빨갱이당 물러나라!!”
“이 나라가 누구거냐!! 빨갱이들 거냐!!!”
광신도들. 전세계에 퍼져있는 니콜 카나의 광신도들이다.
2위인 이건혁조차 넘볼 수 없는 힘, 그리고 세계의 절반을 안정시킨 절대적인 지배자. 그를 숭배하는 이들은 바로 이 점에 이끌리고 있었다.
“......”
“죄송합니다.”
김상우 대통령은 얼굴이 일그러진다.
도대체, 어디서 새어나간 걸까? 분명히 이 방문에 관해선 공개하지 않았을 터, 아니, 완전한 극비는 아니다. 최소한 경호 병력과 수방사, 국정원은 이미 확실하게 전달 받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 중 하나인 건가?
그렇다면 배후는 확실하다. 누군가, 안보를 팔아넘기기 원하는 누군가가 준비한 쇼일 것이다.
“하하. 어디든 극단주의자는 있는 법입니다만....... 저렇게 히스테리컬한 모습은 보기 힘든데 말이지요. 그저 무엇하나가 바뀌면 세상이 전부 달라질 것이라고 믿는 자들은.......언제봐도 가엾군요.”
니콜 카나가 냉소하며 말했다. 안정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에 기대는 저들이 절대자의 눈에는 같잖은 하소연으로 보이기라도 하는 것일까.
“.......”
얼굴이 달아오른다. 저들이 자발적으로 일어난 것인지 아닌지는 지금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설령 니콜 카나가 지금 당장은 계약을 강행할 생각이 없다고 해도 이런 꼴을 보았으니, 시작부터 기선을 제압당한 셈이다.
“빨리 가도록하지.”
대통령은 떨리는 목소리로 명령을 내린다. 그들이 숭배하는 니콜카나가 타서일까? 차량을 막아선다던가 하는 극단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착잡한 기분의 대통령은 생각에 잠겨있다.
처음부터 니콜카나가 다른 후폭풍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한국에 안보위탁계약 체결을 강요하는 것은 식은죽 먹기다.
이미 북미 연방, 남미의 국가들이 그런 식으로 얼티밋 원 군단의 깃발아래 들어가 이빨과 발톱이 모조리 빠져버렸다. 얼티밋 원은 그 이후 총 한발 쏘지 않고 세계의 절반을 손에 넣었다.
그 행위에 반발할 만한 다른 G5는 너무 멀었고, 자신들의 일에 몰두하느라 구경만 하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를 따라하기 시작했다.
그러할진대, 이미 이래서야 상대방에게 자신감을 더해주는 꼴이다.
“......”
“너무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저런 이성을 잃은 군중의 목소리에 정책을 결정할 만큼, 저희가 어리석진 않죠.”
니콜카나는 그렇게 말하고 창밖을 바라본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빙긋 미소 짓는다. 저들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인가.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정말로 이자를 믿어도 되는 걸까? 의심할 만한 근거는 아직까진 없다. 그러나 그간의 이자들의 행적의 문제인 것일까, 다른 G5의 동향이 걱정인 것일까, 아니면 오랜 정치생활의 감인 것일까, 김상우는 불안감에 위가 쓰려오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
직접 보는 것은 5년만이다.
“.......”
“......척결하라!!”
“애국 동지들이여 일어나라!!!”
혼잡한 인파, 폭도들의 한가운데에서 아이신은 미소지었다.
니콜 카나. 엉덩이 무거우신 세계의 정점께서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세계가 움직이고 아이신의 세계도 움직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아이신은 미소 지을 수 있었다.
“우선은, 그래....... 오랜만에 얼굴 한번 보자고. 이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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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의 경계 부근의 한 야산. 나는 그곳을 오르고 있다. 목적은 당연히 김연을 찾아내는 것, 건혁으로부터 부지런히 김연의 실시간 위치가 전송되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수시로 확인하며 산을 오르고 있었다.
“......”
그러나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기도 하다.
그도 그럴게, 김연은 전혀 움직이지 않고 있다. 아마 이대로만 쭉 간다면 금방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래, 쭉 갈수 있다면 말이지.
“이 미친 인간......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벌써 5개, 오늘 마주친 함정의 개수이다. 함정이라고 해도 허방다리나 갑자기 튀어나오는 통나무 같은 귀여운 것이 아니다.
부비트랩, 지뢰, 와이어 트랩 등등, 하나같이 흉악한 것들이 늘어서 있다. 덕분에 별로 멀지 않은 거리임에도 아직까지 김연에게 닿지 못하고 있다.
철컥.
지뢰를 해체한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누가 밟을지도 모르니 전담청 대원으로서 당연한 행동이지만 짜증이 난다. 도대체 이 인간은 왜 이딴 짓을 하고 있는 걸까.
갑자기 사라지더니 이젠 온갖 함정을 설치해두고 짱박혀있는 인간을 이해할 수 있다면 전인류가 서로를 이해하고 영원한 평화를 이루는 것도 가능할지도 모른다.
이런 쓸데 없는 생각까지 하는 걸 보니 나도 어지간히 몰려있구나.
“난 폭탄 해제하려고 온게 아니라고! 미친 김연!”
그렇다. 일단은 임무다. 김연을 설득해서 데려오는 임무. 지금의 전담청에겐 꼭 필요한 사람이니까.
그러나, 지금 나는 그것보단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다.
정말, 김연이 언노운의 일원인 것인지.
정말, 김연이 오빠를 그렇게 만든 이들과 함께였던 건지.
그런 다른 생각은 하면 안되는 거였다.
철컥.
어?
정말로, 생각하기도 싫지만, 방금의 철컥, 하는 소리,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발목 근처에서 느껴진 이질감으로 미루어볼 때, 결론은 하나다.
“아. 시X.”
X됬다.
이 미친 개자식. 내가 왜 저 덩치만 크고 하는 짓은 애와 다를 게 없는 철없는 인간 때문에 이런 꼴을 당해야하는가.
내가 생각한 그것이 맞다면, 길게 생각할 여유가 없다.
일단 내가 밟은 건, 영화에서 흔히 보는 밟았다가 발을 떼면 터지는 그런 귀여운 물건이 아니다. 애초에 그런 지뢰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방금 내가 건드린 것은 인계 철선, 그리고 그곳에 연결되어 신관이 작동된 물건은....... 도약지뢰다.
기종은 모르겠지만, 땅에 묻혀있다가 일단 작동하면 1.5M정도 뛰어올라 폭발, 내부에 있던 파편들을 사방에 흩뿌려 소대 정도를 몰살시킬 목적으로 만든 물건이다.
어떻게 아냐고?
지금 내 눈앞에서 땅을 뚫고 튀어나오려 하고 있거든.
도약지뢰가.
시X.
가속, 4배.
인간이 위기상황에 처하면 한계를 돌파한다지?
그거 정말이었구나.
순식간에 기력을 순환시키고 다리근육에 극한으로 힘을 준다.
그리고 있는 힘껏 뒤로 뛰었다.
파악!!!
그렇게 몸을 던지다시피해서 지뢰로부터 멀리 떨어져, 옆에 있는 나무 뒤로 숨었다.
여기까지가 2초 조금 안되게 걸렸다.
콰아아앙!!!!!!!!
“.......”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인적이 올 리가 없는 산속에 숨어 있던 김연이었다. 그리고 또 만약의 경우를 위해 여기저기 지뢰나 부비트랩을 묻어놓았던 김연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는, 조금 전 자신의 ‘전’ 부하가 이 산을 기어 올라오는 것을 감시카메라를 통해 포착했고, 자신이 설치한 함정을 엉망으로 만들려는 것을 말리기 위해 내려온 참이었다.
“.......내가 도울 필요는 없었군.”
그것이 겨우 목숨을 건진 부하를 본 김연의 감상이었다.
그리고 그는 수풀에서 엉금엉금 기어나오는 홍세연을 바라보았다.
“.......”
잠시, 나갈까, 하고 고민했던 김연이었으나 마음을 고쳐먹고 뒤돌아 걸어간다.
자신의 은신처를 향해 걸어가는 김연은, 문득 이제와 새삼스럽게 부하걱정을 했던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조했다.
“나도 어지간히 외롭고 쓸쓸했나보군. 저런 멍청이 마중이나 나오고 말야.”
자신의 중얼거림에, 김연은 짐짓 얼굴이 굳어진다. 그리고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
아직 흙먼지가 다 가라앉지 않은 곳, 그의 전 부하 홍세연은 그곳을 비틀거리며 헤쳐나가고 있었다.
“.......제기랄.”
외로움은 이제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다.
“아니었나보군.”
그러나 그 중얼거림대로, 사실 생각해보면 그의 생애에서 혼자 있던 시간은 의외로 길지 않았다.
“......시X.”
갑자기 언젠가 들었던 ‘저주’, 혹은 구원의 한마디가 떠오른다.
‘네가 속죄하고 싶다면 넌 영원히 혼자여야 해. 누구에게도 마음 주지 말고, 누구에게도 마음 받지 말고. 불공평하지 않아? 그토록 피를 뿌리고 모두를 버려온 네가, 사람으로 사는 건.’
“알아.......안다고 개 같은.......”
‘넌 증오 받으며, 증오하며 살아라. 누구에게도 용서 받지 말고, 용서받고 싶다고 생각조차 하지마라.’
단지 상상만으로도 짜증이 나는 목소리. 그러나 한때는 자신의 곁에 언제나 한결같이 머물던 누군가의 목소리였을 터.
‘괴물이 되어라. 세계의 적이 되는거다. 그리고 네놈의 원수는 너 자신이 되는 거야. 그렇게 살다보면 죽는 순간쯤에는 조금쯤 편해질지도 모르지.’
저주의 말이 떠오른다. 그러나 그것은 그 자신에게 내리는 한줄기 빛과 같은, 구원이 되는 말이었다.
‘살아라. 모든 위협을 피해서 살아라. 마지막의 마지막, 네 육체가 늙고 늙어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는 그 순간까지 살아라. 죽어서 도망친다는 생각은 하지마라. 부탁이다. 제발 살아 움직이는 그 한순간 한순간 네가 고통스럽길 빈다.’
“충분히 그렇게 살려고 했는데 말이지. 미안하게 말야.”
그러나 자신은 실패했다. 마땅히 받아야할 처벌, 저주를 피해버리고 말았다.
“......”
‘대답해봐. 네가 쫓던 그것은, 네가 잃어버린 다른 것과 비교해서 얼마의 가치가 있지?“
“없더라고. 전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