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정말로 직접 방문하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낮고 거친 목소리가 청와대의 회의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방금 전, 대한민국의 소식을 들으니 이 늙은 머리로도 상황판단이 되더군요. 더 이상 상황은 좌시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대통령 김상우와 보좌관들이 모여 눈앞에 있는 홀로그램 영상을 보고 있었다.
“당신이 방문해 주신다면, 한국 정부로선 큰 힘이 될 것입니다만, 실례를 끼친 것이 아닐지....... 게다가 저희로선, 지금 당장 얼티밋 원과 협력체계를 꾸리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대통령 김상우는 영어로 눈앞의 홀로그램 영상과 대화 하고 있었다. 원래부터 언제나 공손한 태도의 대통령이었지만 오늘은 상대가 상대이니 만큼 그 목소리에 한층 더 조심스러움이 배어나오고 있었다.
“카나 총수님. 역시 당신이 움직이는 것은.......”
대통령은 역시 만류의 뜻을 내비치지만 홀로그램 속의 남자의 뜻은 굳건했다.
“각하. 이건 이미 정치 논리를 넘어선 문제입니다. 다른 G5가 무슨 행동을 하건, 그 이후에 그들로부터 무슨 비난을 듣건, 저는 언노운은 반드시 배제해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니콜 카나. 얼티밋 원의 수장. 북미연방이 해체되고 분열되어 혼란에 빠진 세계를 안정시킨 남자. 세계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절대 권력.
그리고, 세계 최강의 인간. 정치적 영향력 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전투능력만으로도 국제 정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초월자들 중에서도 정점에 있는 자.
지금 홀로그램 속의 남자가 바로 그였다.
“저희 역시 이번 사태에 대해서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PMO에서 관리하던 용병들이 이탈하여 테러를 벌인 것 역시 저희의 책임, 그리고 5년 전, 언노운을 잡지 못한 것도 저희 책임이니까요.”
“아닙니다. 이번 일로 얼티밋 원을 비난할 생각은.......”
“비난도 무엇도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습니다. 그저, 그 ‘언노운’은 현재 안정된 세계의 최대 위험요소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에 그치지 않고 G5간의 균형을 깨트릴지도 모르지요. 사실 저희 역시 균형에 위협이 될 것을 우려해서 되도록 개입하지 않으려 했습니다만, 상황이 좋지 않군요.”
“.......”
인류의 정점이 하는 말임에도 그 말은 너무나 정중하고, 차분했다. 그렇기에 오히려 위화감이 든다.
“혹시나 해서 묻겠습니다. 기분 나쁘게 듣지 말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무거운 얼굴의 김상우가 말했다.
“얼마든지요. 편히 말씀하시지요.”
“얼마 전부터 논의되어오던 안보위탁계약 말입니다.”
안보위탁계약이란 것은 얼티밋 원이 처음 시작한 일종의 ‘상품’으로, 다른 G5들도 적극적으로 모방하고 있는 계약이다.
쉽게 말하자면, 세계 최강의 민간군사기업 ‘얼티밋 원’이 적절한 보수를 받고 해당 국가의 군대를 대체해 주는 것이다.
경제 대공황 이후 대규모 군대를 유지할 능력이 없어진 국가들이 생겨나면서 자연스럽게 PMC(민간군사기업)의 고용이 늘어났고, 이 안보위탁계약은 그 것이 극에 달한 것이었다.
“허허...... 너무 직설적이시군요. 좋습니다. 항상 외교적 수사만을 늘어놓는 것 보단 이런 것도 좋지요.”
대통령의 심각한 태도와는 대조적으로, 니콜 카나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기분 좋게 대답한다.
“이번에 협력을 요청하게 되었지만, 이것을 안보위탁계약으로 발전시키기는 어렵습니다. 일단 상황도 그런 걸 논할 여유가 없구요.”
“이해합니다.”
“우선 이번 협력은 안보위탁계약의 계기가 아니라 언노운 퇴치에 한정된 협력이라고 선을 긋고, 그렇게 공표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기본적으로 기업을 운영하는 입장에선 계약성사만큼 기쁜 일은 없습니다만, 그 이전에 세계의 일원으로서의 책임감 역시 가지고 있습니다. 계약의 강요나 압박은 없을 것입니다.”
당신이 오는 것 자체가 계약에 대한 압박이 될 수도 있지, 그것이 대통령 김상우의 속마음이었다. 그러나 일단 대통령은 표면적으로나마 풀어진 표정으로 정중히 대답했다.
“이해해주셔서 다행입니다.”
“그럼, 내일 바로 방문하겠습니다. 아, 되도록 조용히 방문하고 싶은데, 괜찮겠지요?”
“물론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홀로그램이 사라졌다. 대통령은 들이쉬었던 숨을 내쉰다.
“수고 하셨습니다.”
“후우....... 정말 싫군. 초월자들과 대화하다보면 수명이 일분에 일년씩 줄어드는 기분이야.”
“건혁 청장이랑은 잘 대화하시지 않습니까.”
“그 친구와는 오래 봐왔으니까.......”
또다른 보좌관이 말을 걸었다.
“그런데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타스하가 니콜 카나의 방문을 좌시할리 없습니다.”
“그렇겠지....... 하지만 어차피 타스하는 믿을 수 없는 자들이지. 이대로 있다가 전담청이 털리던가, 타스하가 내려오기 전에 손을 써두는 것이 좋아. 아무리 아이신이 깡패라도 대놓고 얼티밋 원과 적대하진 못할테니.......”
“정치권과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야당은 쌍수를 벌려 환영하겠지. 군의 서자회도, 경찰도, 그렇게 얼티밋 원을 바라보던 자들이니.......”
그렇게 말하고 대통령은 무겁게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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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해. 네놈들의 전력, 은신처, 목적, 모조리 말해.”
“첫마디가 그거야? 좀 다른 질문을 가져오는 건 어때?”
전담청 부지 한구석, 수사팀이 마련된 별관의 지하에 있는 수감시설. 그곳에서 유일하게 사용되고 있는 감옥 앞에서 건혁은 특수 강화 유리를 사이에 두고 독방에서 양팔에 수갑형태의 각성자 구속구를 달고 있는 마리아와 대화하고 있었다.
“장난하러 온 거 아냐.”
“후후후....... 그 꼴을 보아하니 뭔가 일이 터졌나보네?”
“넌 알거 없어. 질문에나 대답해.”
“흠, 질문을 좀 더 명확히 해줄래?”
“좋아 우선, 놈들은 어디에 숨어있지?”
“대답한다곤 안했어.”
비죽, 하고 혀를 내밀며 비웃는 마리아. 건혁은 마치 펜으로 그린 듯이 이마에 혈관이 솟아올랐다.
“험하게 다루고 싶지 않지만 계속 이렇게 놀아날 여유도 없거든.”
“어쩔건데?”
“이거, 알고 있지?”
그렇게 말하며 건혁은 작은 전자칩 하나를 꺼냈다.
“알고 있다마다, 지금 내 뒷목에도 하나 박혀있는 걸.”
“기혈 억제기. 기혈이 억제되고 기로가 막힌 기분은 별로 좋지 않지? 전신의 혈관을 끈으로 묶은 기분이라고 하던데. 보통은 한 개가 맥시멈이지만, 두 개 정도 박아도 죽진 않지.”
“.......”
“아마 전신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 기분일거다. 한번 시험해 볼까?”
“많이 변했네 건혁. 예전엔 그런 험한 말 전혀 못하더니. 이엔한테 많이 배웠는 걸.”
“얼마나 배웠는지 보여줄까?”
“아하하하 귀엽네 귀여워. 정말로. 하긴 넌 언제나 그랬지. 항상 이엔 뒤를.......”
파지지지지직
순간, 수감동 전체에 스파크가 튄다. 모든 불이 꺼지고 어둠에 잠긴 수감실. 잠시 후, 무언가가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비상전력이 들어온다. 비상등의 창백한 빛이 다시 그들을 비추고 있었다.
“......후우....... 그래, 이런 첨단 장치를 쓸 필요도 없겠지.”
그렇게 말하며 건혁은 기혈 억제기를 코트의 안주머니에 넣었다.
“원시적이면서도 비교적 현대적인 방법을 써주지. 감전 당하면 인체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기억나지? 안 난다면 어서 떠올리는 것이 좋을 거야. 옛날을 떠올려보라고, 기억을 되짚으며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그나마 고통이 덜할지도 모르니.”
“후후....... 그건 무섭네.”
애써 미소지으면서도 마리아의 이마에 한줄기 식은 땀이 흐른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무시하고 건혁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답해 줄순 없는걸? 나도 모르거든.”
“네가 상황파악이 안된 모양이구나. 그 좋던 눈치는 다 어디갔을까?”
“정말이야. 너도 알잖아? 언노운이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지. 누구보다 잘 알텐데?”
“......”
“아무리 오래 머물러도 1박. 그것도 정신 나간 차림으로 돌아다니지 않고 환복하여 주변에 녹아든 채 이동. 평소엔 절대로 둘 이상이 반경 1km내에 함께 있지 않는다. 모든 연락은 알파를 거친다. 알파가 3시간 이상 연락이 되지 않으면 전원 현지에서 이탈.”
“.......”
“5년 새에 많이도 잊었네?”
“잊을 리가. 덕분에 옛날에 크게 엿먹었는데, 내가 그걸 잊을리 없잖아. 그딴 편집증환자 같은 네놈들의 방식을.”
“네놈들....... 하하핫. 아무튼 그래. 그러니까 나도 몰라. 원한다면 ‘알파’를 잡아야 할 걸?”
“알파라고 하면, 설마 빅터 그 개자식인가?”
“왜? 그 녀석이 알파라는 게 믿기지가 않아?”
“너, 그 자식이 뭘 했는 지 모르는 건가?”
이건혁은 목소리를 한층 더 낮추고 마리아를 노려보았다.
“뭘했는데?”
“........배신자는.......”
그때, 마리아가 웃음을 터트리며 이건혁의 말을 끊었다.
“아하하하....... 역시 그런 소리를 할 줄 알았어.”
“.......”
“미안한데. 우리를 버리고 떠났던 네 말을 내가 믿을 거라 생각한 건 아니겠지? 이 배신자야.”
이건혁은 잠시 눈을 감고 한숨을 쉬었다.
“그래. 이제와서 이런 말 해봐야 소용없겠지. 그렇다면, 너는 더 이상 필요없다는 소리네.”
꿈틀, 하고 마리아의 눈썹이 움직였다.
“필요? 아~ 그러시겠지. 5년 전부터 필요없으셨겠지.”
“......”
“변명이라도 할줄 알았는데. 역시 내 생각대론 가봐?”
“왜 아무 말 하지 않는지는 생각해 본적 없나?”
“왜 그딴 걸 생각해야하는데? 이유가 뭐건 간에 너희가 우릴 버린건 변하지 않아. 우리가 그......그토록 비참하게 죽어갈 때, 넌 어디에 있었지?”
“.......”
“말해!!!!!!!!! 넌 어디서 뭘하고 있었냐고!!!!!!!!”
“역시, 너에게 논리적인 추론 능력을 기대한게 바보였어.”
“뭐?”
“잘 생각해봐. 그날, 그 무렵, 너희가 없어지면 가장 기뻐했을 자들이 누군지 생각해보라고.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토록 비밀로 감춰져있던 우리가 어째서 갑자기 공격받았는지.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텐데? 우리를 알고 있던 유일한 존재. 그쪽을 먼저 생각해보는게......”
“아? 그거 말하는 거야? 뭐 대단한 비밀인가 했네. 그거야 뻔하지. 아하하하핫!”
차가운 웃음, 그러나 눈 만큼은 이글이글 불타는 듯이 건혁을 노려보는 마리아. 그녀를 보는 건혁의 눈빛은 싸늘함을 품고 있었다.
“그거야....... 얼티밋 원, 니콜카나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