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성연은 당황해 입만 벌리고 말을 잇지 못했다.
‘이 보라색으로 휘감은 아줌마가 뭐라는 거야?’
“아가씨, 우리 집은 방을 내 놓은 적이 없어요. 내가 주인이라니까.”
“그치만 계약서는..”
“그 사람은 내 동생인데 저번에도 그러더니 또 사기쳤나보네. 내가 주인이라고 순이순. 걔는 순양순이고. 암튼 저 짐 들일 방 없으니까 알아서 해요. 경찰서에 신고 꼭 하고”
“아줌마! 그럼 전 어쩌라구요!”
“본의 아니게 미안하게 됐어요. ”
성연은 돌아서는 순여사의 치맛단을 붙잡았다.
“미안하다고만 하시면 전 길바닥에 나앉으라고 하시는 거예요?”
“미치겠네...일단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없으니까 경찰 불러요. 그리고 짐은 저기 주차장 처마 밑에 일단 뒀다 가져가고.”
성연은 황망함에 장롱이며 침대가 실린 트럭을 보았다. 가구점 아저씨도 당황해 말을 못하고 성연과 순여사만 번갈아 보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른 채 보고 있으려니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졌다.
“아이구, 아가씨! 가구 이거 어떻게 해요?”
가구점 아저씨가 성연을 향해 소리치자 순여사가 다가와 말했다.
“아직 들이지 않은 거니 반품 처리 해줘요. 이 아가씨 당장 갈 데도 없다고 하잖아.”
“에이 우리도 가구 나갔다 들어가면 기스 나고 그런데...”
“딱하게 됐는데 사정 좀 봐 줘요.”
“그려, 그럽시다. 이거 원.”
가구점 아저씨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알았다고 하며 트럭에 올라탔다.
“아가씨 내 핸드폰 알지? 거기로 계좌 보내줘요. 내가 환불처리 해줄게. ”
가구점 트럭이 방향을 돌려 돌아갔다. 성연은 가구점 트럭이 모퉁이를 돌아서 사라지도록 바라보았다. 비가 내려 몸이 젖어갔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서 있었다.
“이거 써요.”
건물 1층의 죽 전문점에서 나온 정준이 성연에게 우산을 건냈다. 성연이 우산을 펼 생각도 않고 보기만 하자 우산을 펴서 성연의 손에 쥐어주고는 들어갔다. 우산을 손에 든 성연은 굳은 얼굴로 주차장 구석에 놓인 트렁크가방을 끌고 나왔다.
“엄마, 동생 버리고 나왔다고 벌 받나보다...가구 환불해도 70만원인데...어디로 가냐고...”
성연은 트렁크가방을 끌고 가려다 질척이는 비를 보며 다시 주차장 구석에 숨겨놓듯 두고 나왔다. 일단 경찰서에 신고를 해야 했다. 보증금 2천만 원을 들고서 튀었을 테니 잡기는 힘들 듯했다. 하지만 이 건물의 주인 동생이라니 언젠가는 나타나겠지. 잡아야했다. 엄마의 합의금을 내주고 남은 전 재산인데, 이렇게 빼앗길 수는 없었다. 결연한 얼굴의 성연은 경찰서로 향했다.
***
“갔다. 근데 트렁크가방은 놓고 갔어.”
정준은 계산대에서 장부를 정리하며 바깥의 성연을 힐끗 거렸다.
“근데 엄마 진짜 왜 자꾸 사기치고 다니는 거야. 신경 쓰이게.”
행주로 테이블을 청소하던 석준이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 이번에는 인도로 간다던데.”
“석준아, 너 또 저번처럼 니가 대신 돈 갚아주고 그러는 거 아니지? 그러면 죽는다.”
“...”
“이 시키 너 또!”
“나도 돈 없어...”
“너도 자꾸 엄마 뒤치다꺼리하면 인생 종 치는 거야. 나봐 독립적으로 살아야지. 엄마는 이모도 포기했잖아. 그리고 엄마가 그렇게 된 데는 니 탓이 크다고 본다.”
석준은 정준의 말이 못마땅한지 미간을 찌푸린 채 행주로 테이블을 닦기 시작했다. 테이블들은 깨끗해져 갔지만 속은 답답해져 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양순의 행동은 이해 할 수가 없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살아야지 사기를 치다니, 정준 형의 말대로 믿는 구석이 있으니 자꾸 사고를 치는 거겠지. 석준은 자신에게 돈을 해 달라고 했을 때 주지 않아서 사기를 쳤나하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미치겠네...”
엄마 양순은 어제 인도로 떠났다. 한번 떠나면 일 년은 족히 연락이 없이 돌아오지 않았다. 석준은 답답함에 행주를 던져두고 사이다를 하나 꺼내 옥상으로 올라갔다. 비는 어느새 그쳐 달이 휘엉청 떠 있었다. 사이다 병을 따자 탄산이 뽀글뽀글 올라왔다. 석준은 옥상의 벽에 기대 앉아 사이다를 마시고 하늘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리저리 긁어도 천만 원 정도인데 나머지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때 끼익하고 옥상문의 열렸다. 어두운지 핸드폰 라이트를 킨 성연이 조심조심 옥상으로 들어왔다. 석준은 성연을 보고 손으로 입을 막았다.
‘뭐야, 여기는 왜 온 거야? ’
석준은 그늘이 진 벽으로 몸을 밀착 시켜 쭈그리고 앉았다. 사이다를 마신 여파로 트름이 밀려왔지만 애써 참아내며 어둠에 몸을 숨겼다.
“누구...안계시죠...”
성연은 핸드폰 불빛에 의지해 들어오며 모기 목소리처럼 들리지도 않게 중얼거렸다.
“아무도 안계세요...안계시겠지요..?”
‘남의 집 옥상이지만 옥상 바깥에 걸린 거니까 괜찮아...’
경찰서에 신고를 했지만 별다른 소득 없이 돌아와 주차장에서 트렁크가방을 끌고 나오던 중 옥상 담 바깥에 전선에 끼여 있는 오만 원을 본 것이었다.
‘오만 원이 어디야...’
옥상에 누군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을 못한 성연은 벽을 향해 다가갔다. 성연이 향한 벽의 바깥쪽으로 오만 원 한 장이 전선에 끼여 아슬아슬 펄럭거렸다. 성연은 옥상 담 바깥으로 최대한 몸을 빼며 손을 뻗었다. 석준은 놀라 벌떡 일어났다.
“뭐하는 짓 이예요!”
석준은 번개같이 몸을 날려 성연의 뒷덜미를 잡아채 끌어냈다. 성연은 닿을 듯했던 오만 원이 펄럭거리며 떨어지는 모습에 탄식을 내질렀다.
“아...안돼!”
성연의 뒷덜미를 잡아끌어 내던 석준은 성연이 기를 쓰고 담을 향해 버둥거리자 있는 힘껏 성연을 잡아끌었다.
“내 돈!”
성연의 외마디 비명과 함께 둘은 반동으로 뒤로 굴렀다. 성연이 중심을 아예 잃고 뒤로 자빠지자 석준이 성연을 감싸 안으며 넘어진 것이다. 그 바람에 성연은 석준의 품에 안겨있는 모양새가 되었다. 석준의 위에서 가슴에 얼굴을 묻고 있던 성연은 점점 더 크게 들리는 석준의 심장소리에 가슴에서 고개를 살짝 들었다.
‘이거 어떻게 일어나야 하는 거야..’
성연이 고민이 무색하게 석준이 성연을 확 밀쳐냈다.
“엄마야!”
뒤이어 들리는 쨍그랑 깨지는 소리가 들리고 잠시 정적이 흘렀다. 성연은 중심을 잡으려고 자신이 휘두른 팔에 떨어져버린 화분을 보았다. 난이었다. 석준도 당황한 듯 다가왔다.
“그게 얼마짜린 줄 알고!”
두 사람의 뒤에서 벼락같은 순여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모...”
“이모?”
성연은 석준의 이모라는 말에 둘을 번갈아 보았다.
“아가씨..저 화분 어쩔 거야...”
“죄..죄송해요...”
“죄송하다고 끝날 일이 아냐...저게 천만 원짜리야.”
“천만 원이요! 아니 무슨 화분이 천만 원...”
성연은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 순여사를 빤히 보았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지금 저 화분 값을 나보고 달라는 건가?
“아니, 저 화분은 제가 깰 라고 그런 게 아니라 이 사람이 절 끌어당겼다가 막 패대기를 쳐가지고!”
“맞아요 이모, 제가 밀어서...”
“그렇다니까요!”
성연은 최선을 다해 순여사에게 석준 때문이라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방금 다 봤는데, 우리 석준이는 아가씨 구하려고 한 거잖아요. 사람이 그럼 못 써.”
“와...진짜 미치겠네. 절 왜 구해요!”
“그럼 이유를 좀 설명해 볼래요? 왜 이 밤에 남의 집 옥상에 와 담에 매달렸는지.”
“아니 전 그냥 전선에 돈이...그게 돈 오만 원이 껴 있어가지고.”
석준은 그런 성연을 보다 순여사에게 다가갔다.
“이모 내가 천만 원은 어떻게 구해볼게요. 이 아가씨 용서해 주세요. 오죽하면 얼마나 절박했으면 그런 선택을 했겠어요...다 우리 엄마 때문인데...”
성연은 석준의 말에 기가 막혀 아니라는 뜻으로 팔을 휘둘렀다.
“그게 아니라요.”
“아가씨, 그래도 내 화분 깬 거는 물어줘야겠어.”
성연은 순여사의 얼굴을 보다 고개를 푹 숙였다. 보아하니 이대로 가면 저 말도 안 되는 화분 값을 물어줘야 할 것 같았다.
“들어보니까 저한테 사기 친 그 아줌마 아들이고 언니분이신데...너무 하신거 아니예요? 제가 오죽하면 그랬겠어요...”
성연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저 이제 갈 데도 없고...돈도 없고...백수에....살 길이 막막하네요....그런데 화분...이 천만 원이라니요...”
“이모...제가 화분 값도 갚을게요...”
“니가 왜 갚아. 사기를 당해도 저 아가씨가 당한 거고 화분을 깨도 저 아가씨가 깬 건데!”
성연은 순여사의 매몰찬 말에 화가 치밀었다. 왜 이렇게 되는 일이 없는 거야!
“여사님! 정말 너무 하시네요!”
성연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제가! 뭘 하면 될까요?! 뭐든 시켜만 주세요...일당 칠만 원...아..아니 오만 원.”
성연의 말에 벙찐 석진은 잡고 있던 순여사의 팔을 놓았고, 순여사는 동네가 떠나가게 웃기 시작했다.
“이 아가씨 맹랑하네. 오만 원 일당이라, 할 일이야 많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