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부모님 두 분 다 고등학교만 졸업하셨어. 그래서 그런지 공부에 미련 같은 게 많이 남아있으셨지. 두 살 터울 언니가 한 명 있는데 부모님은 우리 자매 모두 교사가 되길 원하셨어.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남들에게 나중에 선생 시킬 거라고 말하고 다니셨지. 하지만 언니는 예전부터 자기주장이 확실했어. 교사가 아닌 다른 길을 걷고 싶다고 했지. 부모님은 심하게 반대하셨어. 여자는 교사가 최고의 직업이라고, 방학도 있고 월급도 많고 사회에서 지위도 높다는 게 그 이유였지. 뜻을 굽히고 싶지 않았던 언니는 날마다 속상해 울었어. 그 모습이 안쓰러워서 내가 부모님께 말씀드렸어. 내가 교사 될 테니까 언니는 원하는 길 가도록 해달라고, 언니는 자유롭게 해달라고 말이야. 지금 생각해보면 지나친 오지랖이었어. 내가 그런 말을 하지 않았어도 부모님은 결국 설득을 포기하셨을 거고, 언니는 마음대로 살 수 있었을 텐데……. 어쨌든 언니는 대학교도 사범대가 아닌 신문방송학과를 지원했고 합격했어. 사실 나도 교사가 하고 싶지 않았어. 다른 꿈이 있었거든. 빵 냄새에 혼이 뺏겼고 동아리활동을 제과제빵부에 들면서 만드는 재미에도 푹 빠지게 되었지. 교사가 되어야하니까 마음을 다잡으려고 노력해봤어. 그런데 제과점 앞에만 서면 그냥 지나갈 수가 없더라고. 케이크와 빵이 훤히 보이는 창문 앞에서 그 황홀한 예술작품들을 한 참을 보고 서있는 거야. 그러다가 집에 돌아와서 참고서를 펴면 가슴이 답답해졌지. 가면 갈수록 빵을 만들고 싶어졌어. 내가 만든 빵과 케이크를 사람들이 행복하게 먹어준다면 그걸로 만족할 것 같았지. 평생 그 일을 하고 싶었어. 고소하고 달콤한 향기에 둘러싸여서 하루를 보내길 원했어. 어쩌면 갈 수 없는 길인 걸 알고 있으니까 더 간절했던 건지도 몰라. 그렇게 방황하다보니 대학을 결정해야할 시기가 왔고 갑갑한 마음에 담임선생님께 말하니까 그냥 부모님 뜻을 따라 교사를 하라고 하시더라. 요새 제과점은 유명 체인점이 아니면 다 망한다고, 장래성이 없대. 난 그냥 그 일이 좋은 건데 다들 현실을 생각하더라.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하다는 판단은 도대체 어디서 생기는 거지? 물론, 돈이 없으면 불편하겠지만 불행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내가 잘못 생각한 건가? 돈, 돈 그딴 거에 얽매이는 어른들에게 오기가 났어. 그래, 그러면 내가 사범대에 떡하니 들어가 주지. 그것도 최고의 대학에 말이야. 그래서 명문대 국어교육과에 지원했어. 물론 난 어느 과든 상관이 없었어. 그저 부모님이 원하시는 교사만 되면 되니까. 어차피 나에게는 다 똑같이 적성에 맞지 않으니까 그냥 임용고사에서 인원을 많이 뽑는 과를 지원한 거야. 하지만 수능이 다가올수록 나는 불안해져갔어. 별것도 아닌 일에 짜증이 났고 화를 냈어. 시험이 코앞이었는데도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어. 결국 시험을 망치고 말았지. 좌절감이 나를 짓눌러서 고통스러웠어. 가족도 친구들도 볼 자신이 없었어. 이제는 다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지. 내 꿈을 떳떳하게 말할 용기조차 없던 난 아마 죽을 용기는 있었나봐.”
다은의 마지막 말에 종혁이 예민하게 반응했다.
“죽을 용기? 그런 게 있을 리가 있냐.”
그의 목소리에는 차디찬 냉기가 흐르고 있었다.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하는 그의 모습이 모두를 당황하게 했다.
“어떤 사람들은 죽을 용기로 살라고 쉽게 말하는데, 그건 완전히 잘못 생각한 거야. 십층 높이의 건물 옥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발을 내딛어 본적이 있을까, 그 사람들? 차디찬 바람이 부는 다리 위에 서서 자신이 물속에 잠기는 모습을 상상해본 적이나 있을까? 아니면 자기 손으로 자신의 목을 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이나 해봤을까? 그게 얼마나 겁이 나는 일인지 알기나 하려나, 정말. 거기까지 간 사람들은 용기고 뭐고 아무것도 없어.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는 생각에 너무 외로울 뿐인 거야. 온 몸에 슬픔과 절망이 가득차서 더는 지탱하고 서있을 수 없는 거라고. 그만 편해지고 싶어서, 모든 짐을 내려놓고 싶어서 자살이라는 끔찍한 길을 선택하는 거란 말이야. 부모 때문에, 가족 때문에, 남겨질 사람들 때문에 우리가 살아야한다면 그건 너무 억울하지. 나를 위해 살라는 말이 아니잖아, 우리보고 남을 위해 살라는 거잖아. 그런 모순은 생각도 하지 않고, 떠나는 사람보고만 이기적이다고 하는 건 너무 일방적인 논리 아니야? 그렇지 않냐?”
그의 말은 설화의 가슴을 콕콕 찔렀다. 설화가 바로 자살하는 사람을 한심하다고 비난했었기 때문이다. 남의 일이라고, 겪어보지 않았다고 해서 함부로 생각하고 말하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진 설화는 고개를 들고 그들을 마주볼 자신이 없었다.
“오빠, 왜 그렇게 흥분하는 거야? 진정해.”
종혁의 옆에 앉아있던 세희는 그의 씩씩거리는 모습에 놀라며 말했다.
“나도 한번 죽기직전까지 갔던 적이 있었어. 여기 오기 전에 말이야. 의대 기숙사 화장실에서 샤워기에 목을 맸었어. 다른 기숙사생에게 발견돼서 살긴 했는데 그 때 주변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모두 똑같은 말을 하더라. ‘죽을 용기가 있으면 그 용기로 살 생각을 해라’ 라고. 좀 웃기지 않아? 죽고 싶은 사람에게 살라니, 말이 맞지 않잖아. 난 정말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무렇게나 말하는 인간들, 아주 경멸해.”
종혁의 표정에서 그가 진지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말에 설화는 기가 죽었다.
순서가 돌아와 설화는 모두 자신을 쳐다보는 걸 깨달았지만 어찌 할 도리가 없었다.
“설화야. 네 차례야.”
지윤이가 아직도 울어서 눈이 부은 채, 애써 웃어 보이며 말했다. 설화는 아무것도 할 말이 없었다. 그들처럼 자살을 시도했던 게 아니라 물에 빠질 뻔한 것을 유 원장이 구해줘서, 아주 우연히 이곳에 오게 되었다고 말하면 그들이 어떤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볼지 겁이 났던 것이다. 설화의 어두운 표정을 읽은 다은이가 해명을 하려 입을 열었다.
“저기, 설화는 아직 말할 준비가 되지 않았대. 여기 온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잖아. 우리가 좀 이해를 해주자고. 응?”
다은의 말에 다들 이해한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설화는 그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솔직히 자신의 비밀을 말해준 사람들에 대한 배신이라고 생각했다.
“아니, 말할게. 다은아, 난 괜찮아.”
“설화야…….”
설화는 다은에게 살짝 미소를 지어보이고 어렵게 말을 시작했다.
“사실, 저는 자살한 게 아니에요. 이곳에 오게 된 것도 우연이었어요. 그리고 전부터 유 원장님과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올 수 있었던 거예요.”
그들은 모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예상했던 반응이지만 설화는 조금 긴장되었다.
“저는 꿈이 없었어요. 항상 그냥 적당히 살았죠. 물 흘러가듯이 될 대로 되라는 생각으로 살았던 거예요.”
“바보 같았구나.”
자신을 불쌍하게 보는 지윤의 눈빛에 설화는 허무함이 느껴졌다.
“맞아요. 저는 정말 바보였어요. 여기에 와서야 깨달았어요. 제가 얼마나 편한 인생을 살았었는지 말이에요. 저는 여러분처럼 괴로운 경험이 있지도, 꿈을 꾸면서 설렜던 적도 없어요. 다만 현실에 안주할 뿐이었죠. 저도 그때의 제가 후회스러워요.”
설화의 말이 계속 될수록 그들은 진지하게 그녀의 말을 경청했고 표정은 부드러워졌다. 그 모습이 마치 자신을 이해한다는 것처럼 느껴져 설화는 용기가 났다.
“여러분이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오늘 얘기를 들으면서 꿈 없이 살았던 제 자신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어요. 세상에 태어난 이상 나 자신을 최고로 생각하고 또 그렇게 만들어야 된다는 걸 이제야 안 거죠. 더 이상은 예전처럼 무의미한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아요. 저도 꿈을 꾸고 행복해지고 싶어요. 그래서 나중에 죽는 날이 오면 내가 참 잘 살았구나 하는 보람을 느끼면서 세상을 떠나고 싶어요.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공부가 다가 아닌 것처럼 제 삶에서도 돈이나 명성이 전부가 아닐 테니까, 앞으로 정말 노력할 거예요. 진정한 꿈을 찾을 수 있도록 정말 열심히, 즐기면서 살 거예요. 제가 이렇게 변하게 된 건 전부 여러분 덕분이에요. 솔직하게 아픈 상처를 얘기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설화는 고개를 깊숙이 숙이며 자신의 마음을 표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다들 쑥스럽지만 흐뭇해하는 듯 보였다.
“우리가 그렇게나 도움이 됐다니 뿌듯한데?”
세희는 장난스럽게 말하며 설화의 등을 토닥였다.
“앞으로 잘 해나가라고, 동지!”
“넌 잘 해나갈 수 있을 거야. 우린 널 믿어.”
“누나, 꿈을 꼭 찾길 바라.”
“언니, 언니도 진심을 얘기해줘서 고마워요.”
“나도 기도할게, 누나가 꿈을 좇아 갈 수 있도록.”
“설화 누나, 힘내!”
“용기 있어서 보기 좋다.”
모두들 설화에게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다은은 말없이 설화의 손을 잡아주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녀가 전하고픈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암.”
해인이의 하품소리를 기점으로 파티는 끝났고, 다들 잠을 자러갔다.
방으로 돌아온 다은과 설화는 침대에 누워 일찍 잠을 청했다. 하루 종일 이것저것 만드느라 힘들었는지 다은이는 코를 골며 곯아떨어졌고, 설화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유 마리아 원장과의 일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유 원장은 설화까지 포함해서 열 명의 아이들을 떠나보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건 사랑이라기보다는 집착에 가깝다고 설화는 생각했다. 해인이를 보내주자고 했을 때 보인 그녀의 격한 태도와 싸늘한 눈빛이 그 증거였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은 이곳에 와서 자신들이 변했다고 했다. 그래서 여기에 있는 걸 만족한다고 했다. 하지만 정말 그들이 돌아가지 않는 것이 옳은 것일까? 그들 중에는 사망신고가 되어 있는 사람도 있었다. 가족들은 아직도 그들을 잃어서 괴로워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이 정말 행복할 수 있는 지 설화는 확신할 수 없었다. 중요한 것은 이대로 머물다가는 그들 모두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 게 될 거라는 거였다. 이곳에서 그들은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을 위한 일이 무엇인지 설화는 밤새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