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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난세, 그리고 약속
작가 : 어둠속의빛
작품등록일 : 2017.10.30

"그때의 약속, 그런 말 따위 잊어버린지 오래입니다. 지금 나와 당신은 적, 나의 주인을 위해 나는 당신을 칠 것입니다."
어지러운 천하, 혼돈 속에서 맺어진 약속. 서초 제일의 명장과 한나라의 대장군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 난세, 그리고 약속 》17. 사람의 마음
작성일 : 17-11-28 19:40     조회 : 317     추천 : 0     분량 : 4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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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왕 신이 남하를 하여 구강을 위협한다는 보고에 영포는 군을 물리지 않을 수 없다. 그녀는 출정하기 전, 한(韓)나라에 사자를 보내어 자신을 도와줄 것을 요청하였는데 한왕 신은 그녀의 부탁을 흔쾌히 받아들여 때를 기다렸다가 군을 이끌고 남하한 것이다. 그러나 영포가 돌아온다는 보고에 그는 다시 군을 물려 한(韓)나라로 돌아갔고 한신은 구강군이 물러간 파촉을 다시 수복, 남정에 입성하였다.

 

  “고맙소, 대장군. 대장군이 아니었다면 이곳 남정도 어찌될지 장담할 수 없었소이다.”

  “대장군께 감사드립니다. 대장군 덕분에 소장도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승상 소하와 초전에 패한 번쾌는 한신을 맞이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녀는 미소로 그들의 손을 잡아주며 답했다.

 

  “아닙니다. 저 흉맹한 구강군의 공격을 끝까지 버텨주시어 오히려 제가 감사합니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이후, 그녀는 낙양의 유방에게 영포를 격퇴하는데 성공하였다는 보고와 함께 민심 수습 겸 수비 강화를 위해 며칠 더 머물겠다는 전갈을 보냈다. 그러자 유방은 흔쾌히 그녀의 부탁을 들어주며 구호물자까지 보내주었다.

 

  그녀는 파촉의 주요 요충지를 둘러보며 군사를 증강시켰고 특히 옛 초땅과 경계를 마주하고 있는 백제성의 수비전략을 대거 수정하였다. 당초 전략은 성으로 들어가 버텼다가 지원군이 도착하면 그들과 함께 총반격을 가해 적을 물리친다는 것이었지만 이 전략은 영포에 의해 완전히 무너졌다. 때문에 그녀는 전략을 수정하기 위해 1만의 군사를 더하여 백제성 후방에 수비진 10여개를 설치하였다. 유사시 성이 떨어지면 뒤로 물러나 이들과 합세하여 재차 수비를 한다는 전략이었다.

 

  그녀의 지시에 따라 파촉의 수비진은 점점 강화되었다. 이틀 후, 역상은 그녀의 명에 따라 여러 요충지를 다시 돌아보고 돌아왔다. 마침 그녀는 대장군부의 관청에 위치한 자신의 방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대장군, 역상입니다. 명하신 대로 파촉의 수비진을 둘러보고 돌아왔습니다.”

  “들어오시어요.”

 

  그녀는 역상을 안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적당히 취기가 올랐는지 그녀의 뺨은 홍조를 띄고 있었으며 눈은 살짝 흐릿해져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본 그는 순간적으로 설렜지만 내색하지 않기 위해 눈을 피하며 다시 보고를 올렸다.

 

  “대장군의 말씀대로 각 요충지의 대장들이 군사배치를 바꿨습니다. 특히 백제는 가히 철옹성이라 불려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두 번 다시 영포 따위에게 뚫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앉아서 한잔 받으시지요.”

 

  그녀는 그에게 술잔에 술을 따라 주었다. 그는 술잔을 받아 마시려는데 그녀의 표정을 스치듯 보게 되었다. 어딘지 서글프고 시린 듯 한 그녀의 표정. 원망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단념하는 것과 같은 모습. 그는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십니까?”

  “그래 보이십니까?”

  “답답한 것이 있으시면 말씀하십시오. 소장에게 문제가 있다면 즉시 고치겠습니다.”

  “장군이 아닙니다. 지난날의 인연 때문입니다. 어쩌면 당사자는 벌써 잊었을지도 모르는 그런 짧은 시간의 인연......”

 

  그녀는 픽 웃으며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천천히 탁자에 다시 내려놓았다.

 

  “짧은 시간의 인연 말씀이십니까?”

  “예. 아주 짧았지요.”

 

  영포와 한신. 진나라 명장 등의 공격에 한(韓)이 멸망하자 그들은 서로 탈출하였다. 하지만 진군이 그들을 찾아내면서 헤어졌고 초나라가 다시 세워지자 그들은 그곳에서 다시 재회하였다. 하지만 영포는 항우 휘하의 제일장으로 선봉에서 맹활약을 하였고 한신은 한낱 집극랑으로 대장을 호위하는 위사대에 있었다. 즉 서로 만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는 이야기.

  그 후, 영포가 구강왕이 되며 한신과 함께 구강으로 내려가며 그들은 다시 합쳐졌다. 하지만 그것도 불과 몇 개월, 한신이 구강을 떠나며 그들은 완전히 갈라졌다.

 

  영포는 절대 항우를 떠나지 않을 사람, 하지만 그대로 두면 항우와 함께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 명명백백한 상황이었다. 때문에 그녀는 그를 구하기 위해 그를 떠났다. 떠나면서 그녀는 짐작하였다. 만일 영포와 만나게 된다면 싸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는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하지만 마주친 영포가 살의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자 그녀의 가슴 한구석은 날카로운 비수로 깊숙이 쑤셔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그 눈은 기필코 그녀를 죽이고 말겠다는 눈. 이미 각오를 다진 그녀였지만 막상 마주하니 그녀의 온몸에 힘이 빠졌고 자칫 눈물까지 솟구칠 뻔하였다.

 

  “이미 각오했던 일인데..... 예상했던 일인데......”

  “.......”

  “역시 마주치니 힘드네요. 제가 저를 너무 높게 평가했나 봅니다.”

  “아닙니다. 사람이란 다 그런 것이지요. 생각은 잘됐지만 막상 생각처럼은 안되는 그런 것.”

  “우후후.... 그런가요?”

  “예. 아마 그럴 겁니다.”

  “고마워요, 역상. 그대와 대화를 나누면 조금 진정이 되는 느낌입니다.”

 

  그 후, 그녀는 내일을 위해 침대로 들어갔고 그는 그녀와 방을 나왔다. 어두운 밤, 하늘엔 밝은 달이 휘영청 걸려 있고 그는 그 달을 바라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거 아십니까? 대장군은 참.... 사람 마음 어렵게 만드는 재주가 있으십니다.’

 

 

 

  다음날, 한나라의 대군은 남정을 떠나 낙양으로 향하였다. 한신이 돌아온다는 말에 유방은 버선발로 뛰쳐나가 그녀를 환대를 하였는데 그 모습이 자못 우스꽝스러워 킥킥 거리며 웃는 이들도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정작 유방 자신은 개의치 않는 듯, 그녀의 손을 잡으며 크게 소리쳤다.

 

  “고맙소, 대장군! 과연 대장군은 짐의 보배로다. 저 흉맹한 영포를 물리친 그대를 과연 천하의 누가 따라갈 수 있으리오!”

  “대왕의 과찬, 감사합니다.”

  “자 갑시다. 과인이 그대들을 위해 연회를 준비하였소. 오늘은 과인과 함께 취하는 것이오.”

 

  성 안에는 유방의 말대로 초호화 연회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먹고 마시며 지금까지 거둔 성공을 축하하였다. 파촉의 벽지로 떠밀려 내려간지 불과 6개월, 내려갈 때에는 이제 늙어 죽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하였지만 불과 6개월 만에 낙양까지 이르는 그 모든 땅을 취한 것이다. 가히 패왕 항우의 서초와 비교하여도 절대 뒤처지지 않는 나라가 된 것이다.

 

  “오늘의 성공은 대장군이 없었으면 불가능 하였을 것이오. 대장군을 만호후에 봉하겠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한군이 연회를 배풀고 있을 무렵, 제나라를 공격하고 있는 항우 역시 이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역시 유방이 앉아만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지만 설마하니 그 몇 개월만에 장한을 비롯한 옛 진의 명장들이 그렇게 허무하게 당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한 그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부! 소식 들으셨습니까?”

  “한왕 유방의 소식이라면 소신도 이미 들어 알고 있습니다. 그 장돌뱅이가 낙양까지 취하였다지요? 허허허......”

  “웃고만 있을 때가 아닙니다.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책이랄 것이 있겠습니까? 저들이 움직이기를 기다려야지요.”

 

  그 말에 항우는 순간 울컥하였지만 억지로 참아내었다. 범증은 서초의 모든 장수들이 존경하였고 심지어는 그의 숙부인 항량조차 존경하였던 인물이다. 아무리 항우가 천하의 패왕이라 하여도 그에게 함부로 대할 수는 없었다.

 

  “아부. 무슨 말씀이십니까? 유방이 만일 경계를 넘어오면 어찌하려고 그러십니까?”

  “노부가 바라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유방이 경계를 넘어오는 것 말입니다.”

  “예?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허허허. 여기를 보십시오.”

 

  범증은 웃으며 지형도에 말판을 올려놓았다. 현재 한군이 위치한 낙양과 서초의 국경은 매우 가까웠다. 마음만 먹으면 그날 안으로 경계를 넘어올 수도 있는 상황, 만일 유방이 정말 작정하고 경계를 넘어온다면 팽성까지 치고 들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범증은 그 모든 것들을 그냥 눈감고 지켜만 보기를 원하고 있다. 항우로써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것은 당연지사.

  하지만 그는 말판을 하나 더 올려놓았다.

 

  “아시겠습니까?”

  “이..... 이건.......”

 

  그는 말판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렇군요. 어리석은 이 우는 짐작조차 못했습니다.”

 

  그는 거꾸로 팽성을 포위하는 것을 나타내었다. 만일 유방이 경계를 넘어온다면 서초 깊숙이 팽성까지 끌어들여 안에서 가둬버린다는 것이었다. 남쪽엔 영포가 버티고 있고 북쪽엔 아직 건재한 항우의 본대가 있었다. 비록 제나라와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는 있지만 전영이 박살난 이후의 싸움은 사실상 잔당 소탕이나 다름없는 싸움이 되었다. 그것이 들불처럼 번져가 고생을 하고는 있지만 서초의 10만 대군은 여전히 건재하였다.

 

  “한군이 팽성까지 이른다면 우리는 가장 먼저 그들의 보급선을 차단할 것입니다. 그러면 놈들은 굶지 않을 수 없지요. 그 상태로 장기전으로 들어가 철저하게 굶겨 죽일 것입니다. 만일 저들이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온다면 패왕께선 즐겁게 사냥을 하시면 됩니다. 허허허.”

  “과연 아부요! 아부는 천하의 기재이십니다. 저 손무자나 강태공조차 아부껜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과찬이십니다, 패왕. 그럼 우선은 제나라를 완전히 평정하는데 주력하십시오. 유방은 그 다음입니다.”

  “알겠습니다. 용저와 종리매를 불러와라!”

 

  범증의 말을 들은 항우는 마음 놓고 제나라 전역을 유린하기 시작하였다. 철저하게 짓밟고 깨뜨리며 진격하는 서초군, 그들의 앞에 장애물은 없었다. 항우가 나아가면 길이 열렸고 군사들은 그 길을 따라 진격하였다. 제나라에 악몽이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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