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영과 영포의 접전이 시작될 무렵, 유방은 낙양에 입성하고 있었다. 함양과 낙양은 함곡관을 넘으면 지척의 거리, 유방은 역상과 왕릉을 보내어 낙양을 취하게 하였다. 역상은 역이기의 동생으로 유방이 진나라를 멸하기 위해 진군을 시작했을 때 형인 역이기와 함께 유방의 휘하로 들어갔다. 병법에 나름대로 식견을 갖추고 있었고 수준급의 용맹까지 갖춘 장수였다.
왕릉은 한때 유방이 형님으로 모셨을 정도로 위풍이 훌륭한 장수였다. 거기다 소문난 효자였기에 그가 살던 고을에서 왕릉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거기에 의협심도 뛰어났으니 그를 따르는 무리는 수천에 달하였다. 그러던 그는 유방이 삼진을 취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한의 휘하로 들어갔는데 바로 그 해에 자신의 병사들만을 거느리고 장한의 군사를 수 차례나 격파하였다. 유방은 그 둘에게 공을 세울 기회를 한번 더 주었으며 그들은 유방의 기대에 훌륭하게 보답하며 공을 세웠다.
한신은 폐구성 포위와 옹땅의 여러 주요 요충지를 시찰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낙양을 향해 출발하였다. 그는 3천의 군사들과 함께 움직이고 있었는데 낙양 인근에서 적의 기습을 받았다. 한신이 후방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옹의 패잔병이 하나로 뭉쳐 한신의 부대를 기습한 것이다. 5천 정도 되는 규모의 적들이 갑자기 기습을 하자 한신은 급히 방패병들을 앞세워 적들의 공격을 막아 버텼다.
"대장군! 역상이 왔습니다!!"
한신이 습격을 받았다는 보고를 받은 유방은 즉시 역상을 보내어 지원케 하였다. 그는 5천 군사를 이끌고 바람처럼 달려와 적군의 후미를 후려쳤다. 그러자 한신 역시 공세로 전환, 적을 협공하여 무너뜨렸다. 그러나 이 싸움에서 한신이 적의 칼에 등이 베이는 부상을 당했다.
"대장군, 위험합니다!!!"
"크윽!!"
다행히 칼은 갑옷에 막혀 깊게 들어가지 못했고 역상은 즉시 달려가 그녀를 구하였다. 깊은 부상은 아니었지만 무시할 수는 없었기에 그는 한신의 갑옷을 벗겨 응급처치를 하고자 하였다.
"괜찮습니다. 그냥 두십시오. 낙양에 가서 치료 받으면 됩니다."
"안됩니다. 대장군은 나라의 삼군을 지휘하는 분, 작은 상처도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그는 한신의 갑옷 끈을 풀었다. 그런데 사색이 되며 한사코 이를 말리는 한신, 그 행동이 너무도 이상하였다. 부상을 당했으면 응급처치를 하는 것은 당연하거늘 도대체 왜 말린단 말인가?
모두가 의심한다는 것을 눈치챈 한신은 결국 역상의 말에 따르기로 하였지만 조건을 달았다. 때문에 역상만이 한신과 함께 인근의 수풀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서 그녀는 갑옷을 벗었다.
"......!!"
"놀라셨습니까?"
남장을 하고 있었지만 칼이 그녀의 등을 베자 가슴을 감싸고 있던 천들이 끊어져 땅에 떨어져 있었다. 때문에 누구라도 한눈에 한신이 여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된 상황, 역상은 놀라 어안이 벙벙해지며 무언가 말을 하려고 하였지만 한신이 그보다 먼저 입을 열었다.
"비밀은 꼭 감춰 주십시오. 장군을 믿기에 장군만을 대려온 것입니다."
"아..... 예! 알겠습니다."
"그럼......"
역상은 한신이 부상당한 부위에 물을 끼얹어 피를 닦아낸 후, 비상용으로 갖고 다니는 약초를 그 위에 얹어 가슴까지 모두 붕대로 감았다. 그리고 한신은 다시 갑옷을 갖춰 입고 군으로 복귀, 낙양으로 들어갔다. 한신이 들어오자 유방은 신발도 제대로 신지 않고 뛰쳐나가 열렬하게 그녀를 환영하였다. 오늘의 한나라가 있게 해준 가장 큰 공신인 한신, 유방은 낙양에 성대한 연회를 배풀어 삼군을 위로하고 백성을 위로하였으며 한신의 공을 추켜 주었다.
그런데 그날, 남쪽 전선은 유방의 기쁨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발생하고 있었다.
"장군!! 장군!! 정신 차리시오, 장군!!"
병사들이 들것에 관영을 싣고 급히 남정으로 달려왔다. 그는 의식 없이 처참한 몰골이 되어 거의 죽어가기 직전이었다. 온몸은 상처 투성이었으며 특히 배에 커다란 창상이 나 있는 관영, 그를 이꼴로 만든 이는 바로 영포였다.
"승상! 송구합니다. 관 장군께서 사력을 다해 놈과 싸웠지만 결국..... 크흑!!"
"이.... 이럴수가. 전 지역에 비상을 내리고 수비에 전념토록하라. 어떤 일이 있어도 나가 싸워선 안된다. 알겠는가?! 무조건 버티기만 하라고 해!!"
"아... 알겠습니다!"
관영이 당했다. 3만의 군사를 이끌고 영포와 싸우기 위해 자청해서 내려온 그는 결국 대패하였다.
한군은 몇차례 구강 군이 지키는 요충지를 힘차게 들이쳤다. 관영은 그 선두에서 맹렬하게 싸웠는데 영포는 굳게 지키기만 할 뿐, 맞서 싸우지 않았다. 그러기를 하루, 이틀, 사흘. 한군은 사흘 동안 하루도 빼먹지 않고 사력을 다해 구강 군을 공격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강 군을 몰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사흘 째 되던 날, 영포는 군사를 일으켜 반격에 나섰다. 그러자 관영은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나와 맞섰는데 시간이 얼마 지나자 사방에서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놀란 관영이 주변을 둘러보자 구릉지에서 구강의 깃발을 든 병사들이 사방에서 한군을 에워싸는 것이 아닌가?
"적습이다. 후군이 놈들을 막으라. 전위대를 공격을 계속하라!"
관영은 급히 후방의 군사 1만을 갈라 달려오는 적들을 막게 하였다. 하지만 궁노수들이 구릉 위에서 일제히 한군의 을 향해 화살을 쏘자 그들은 맥없이 픽픽 쓰러졌다. 방패로 막아 보아도 수천에 달하는 병사들이 퍼붓는 화살은 거의 소나기와도 같았다. 한군은 이 화살 세례를 막을 수 없었다.
"돌격하라. 나를 따르라. 적장의 목을 칠 것이다."
"대왕의 뒤를 따라라! 전군 돌격!!"
한군의 기세가 꺾이자 영포는 즉시 말을 달려 적진을 향해 돌격하였다. 1만 구강 군은 칼처럼 날카로운 진형을 갖추어 한군의 진을 돌파하였다. 그러자 화살이 뚝 끊기고 사방에서 구강 군이 밀물처럼 한군을 덮쳤다.
"큭! 퇴로를 뚫어라! 나를 따르라! 남정으로 퇴각한다!!"
관영은 화살 3대를 등판에 꽂고 퇴로를 뚫기 위해 좌충우돌하였다. 하지만 그 모습이 영포의 시야에 들어왔고 그는 말머리를 관영에게로 향하여 일직선으로 달려갔다.
"네 이놈, 관영! 영포가 여기있다. 어딜 달아나려고 하느냐!"
푸른 빛의 먹을 뜬 영포의 얼굴이 흉흉한 기운을 흩뿌렸다. 그 기세에 한군은 질려 부들부들 떨었으나 관영은 앞으로 나오며 창을 들이밀었다.
"영포야! 네놈이 스스로 나오다니. 하늘에 감사드린다. 내 오늘, 네놈의 목을 베어 대왕의 천하에 위협을 가하는 놈들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가르쳐 줄 것이다!"
"하! 주제도 모르는 놈. 각오해라!!"
대장끼리의 일기토가 시작되었다. 관영의 창이 영포의 가슴팍을 향해 수차례나 내질러졌지만 영포는 그 모든 공격들을 전부 쳐내었다. 수차례의 예리한 공격이 전부 무의미하게 되자 그는 분노하여 일점을 찌르는 방식이 아닌, 힘으로 적을 찍어 누르려고 하였다. 하지만 힘에서 조차 관영은 영포보다 몇 수 아래, 그의 공격은 전부 막혔다.
반면 여유가 넘치는 영포는 어렵지 않게 공격을 받아 넘기다가 어느 순간 반격을 시작, 창을 한번 내려쳤다. 관영은 힘을 다해 그의 공격을 받아내었지만 그 울림이 팔을 타고 뇌까지 전달되며 머리가 울리는 현상이 일어났고 시야가 흔들리게 되어 그는 한동안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큭.... 이.... 이놈이......"
"겨우 한번 가지고 벌써 정신을 차리지 못하느냐?"
"다.... 닥......"
"한번 더 간다. 받아 봐라."
영포는 한 손으로 창을 휘둘러 관영의 창을 후려쳤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그는 힘을 다해 영포의 공격을 막아내었으나 정신을 집중해도 막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황인데 시야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그 공격을 전부 막을 수 있을리가 없었다. 간신히 30여합을 끌었지만 그 30합 동안 그의 몸에는 크고 작은 상처가 늘어난 반면, 영포의 몸은 너무도 깨끗하였다.
"허.... 허억..... 허억......"
"너는 와서는 안될 길을 왔구나. 나를 막으려면 네놈이 아니라 유방이나 한신이 왔어야 했는데 말이야."
"닥쳐라, 이놈!!"
"그만 끝내자. 내 네놈의 고통을 줄여주마."
영포는 관영을 향해 내달렸다. 그러자 관영은 급히 창을 고쳐쥐고 횡으로 크게 휘둘렀다. 그러나 그 조차도 무위로 돌아갔다. 영포는 고개를 말안장과 밀착시키며 그 공격을 피함과 동시에 관영의 왼쪽으로 말을 몰며 왼손으로 창을 잡아 관영의 복부에 꽂아 넣었다.
"컥!!!"
창이 배에 꽂히자 관영은 몇걸음 앞으로 가다가 낙마하였다.
"장군!!!"
손에 땀을 쥐며 그 광경을 바라보던 한군은 일제히 경악을 하며 달려갔다. 영포가 그 목을 취하려던 찰나, 그들은 일제히 영포에게 덤벼들었다. 그러자 구강군 역시 한군에게 돌진, 치열한 혼전이 시작되었다. 그 틈에 한군은 관영을 구출하는데 성공, 그를 탈출시키기 위해 남아있는 전병력이 구강군을 향해 돌격하였다.
"장군을 어서 대피시켜라! 전군은 놈들을 막아라!! 장군을 구해야 한다!!"
한군의 부장급으로 보이는 장수는 대부분의 병력을 이끌고 구강군과 맞섰다. 그리고 일부 수천의 병사들이 퇴로를 확보하기 위해 필사의 탈출을 감행하자 영포는 선선히 그들에게 퇴로를 내 주었다. 의외로 쉽게 길이 열리자 대부분의 병사들이 그 길을 향해 달아났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영포가 바란 결말이었으니.
"지금이다. 놈들을 추격한다. 달아나는 놈들을 하나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알겠나?!"
"예 대왕!!"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 할 지라도 만일 적들이 힘을 다해 싸우면 아군도 적잖은 피해를 각오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달아날 길이 생긴다면 적들은 살 수 있다는 생각에 그쪽으로 달아나기 마련. 그렇게 되면 전투는 일방적이게 된다.
"돌격!! 놈들을 쓸어버려라!!"
"한놈도 살려보내지 마라!! 전군 놈들을 추격하라!!"
구강군은 전열이 붕괴된 한군을 무자비하게 살육하였다. 대열을 흐뜨러뜨리고 달아나기 바쁜 한군은 피를 튀기며 달려온 구강군에 의해 몰살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 말았다. 관영이 이끌고 온 3만 한군 중 살아서 남정으로 퇴각한 이는 불과 5천, 나머지 2만 5천은 전부가 죽거나 혹은 달아났다. 그야말로 완벽한 영포의 승리였다.
기세를 탄 그는 파촉을 휩쓸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남정을 제외한 거의 전 지역이 구강군의 말발굽에 짓밟혔고 이에 영포는 북쪽에 군을 집결, 남정을 노리는 형세를 갖추었다.
"이제 무대가 마련 되었습니다. 어서 오시오. 내가 기다리고 있지 않습니까? 내가, 이 영포가, 이 영포의 창이.....
그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