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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난세, 그리고 약속
작가 : 어둠속의빛
작품등록일 : 2017.10.30

"그때의 약속, 그런 말 따위 잊어버린지 오래입니다. 지금 나와 당신은 적, 나의 주인을 위해 나는 당신을 칠 것입니다."
어지러운 천하, 혼돈 속에서 맺어진 약속. 서초 제일의 명장과 한나라의 대장군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 난세, 그리고 약속 》4회. 용궁으로 가는 꿈
작성일 : 17-11-03 16:42     조회 : 308     추천 : 0     분량 : 4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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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우로부터 의제를 반드시 죽이라는 명령이 떨어진 상황, 영포는 강력하게 반발하였지만 한신은 일단 항우의 사자를 내실로 들여보냈다. 그가 눈 앞에서 사라지자 한신은 영포에게 물을 떠다주며 크게 심호흡을 하게 하여 흥분한 그를 진정시키려고 하였다. 하지만 너무 흥분한 그로써는 고작 물 한잔 마시는 것으로 진정되지 않았으니......

 

  "이건 말도 안되오. 나는..... 나는 할 수 없소. 패왕께서 이러실 수는 없소이다!!"

 

  흉흉한 기운을 사방으로 흩뿌리는 영포, 그렇잖아도 번쩍이는 그의 두 눈이 더욱 매섭게 빛났다. 이대로 그냥 있다간 정말로 항우가 있는 팽성으로 달려갈 기세. 그러자 한신은 가만히 그에게 다가가 손을 잡으며 낮은 목소리지만 분명하고 또렷하게 말했다.

 

  "대왕, 일단은 진정하십시오. 패왕께서 의제를 죽이겠다 결정하셨으면 의제의 목숨은 그걸로 끝난 것입니다."

  "한신,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이오!"

  "대왕께서도 아시지 않습니까? 패왕이 어디 일을 추진함에 빈틈이 있으셨습니까?"

  "......!!"

 

  그랬다. 항우는 자신의 적을 칠 때에는 마치 먹이를 기다리는 맹수처럼 납작 업드려 때를 기다리다가 때가 되었다 싶으면 한번에 튀어 올라 상대의 목을 틀어쥐었다. 지난날 거록에서의 대전투에서 왕리의 20만 대군을 박살낼 때에도 마찬가지, 그는 천천히 북상하며 틈을 보고 있다가 진나라 군대에게 틈이 생기자 단숨에 대군을 이끌고 황하를 도하, 9차례의 격전을 모두 승리로 이끄는 대승을 거두었다. 그런 항우가 의제를 죽이는 일에 하나의 변수라도 생기게 할리가 있는가?

 

  "아마 대왕 말고도 누군가에게 사람을 보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형산왕 오예라던가 혹은 우리 구강땅의 누군가에게 사람을 보내어 의제를 죽이라 하였겠지요."

  "그.... 그런."

  "대왕께서 반발하신다 하여도 이미 늦었습니다. 의제는 침현에 이르지도 못하고 죽을 것입니다."

 

  한신의 말 그대로였다. 항우의 사자는 이미 영포를 제외하고도 3명에게 더 달려갔다. 하나는 구강 근처에 위치한 형산땅의 오예에게, 하나는 임강왕 공오에게, 마지막 하나는 구강성을 수비하는 영포의 부장에게 향하였다. 그들에게 내려진 명령 역시 의제를 척살하라는 명령, 아무도 모르게 은밀히 의제를 죽이라는 명이 의제가 내려갈 길목 곳곳에 내려지고 있었다. 영포가 이에 반발을 한다 하여도 의제가 살아날 가능성은 만에 하나라도 없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의제의 초라한 천도행렬은 한걸음 한걸음 침현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폐하, 날씨가 춥습니다. 오늘은 이 근처에서 쉬었다가 내일 다시 출발하시지요."

 

  뼛속까지 시려오는 차디찬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침현으로 내려가던 그들은 더 견디지 못하고 인근의 마을로 향했다. 명색이 황제의 천도 행렬인데 너무도 초라한 장면, 신하들은 솟구치는 눈물을 삼키며 의제가 머물만한 집을 찾아 그를 그쪽으로 인도하였다. 거기는 그 마을 촌장의 집이었고 그는 의제의 일행을 따뜻하게 맞이하였다.

 

  "어서오십시오, 황제 폐하. 폐하의 용안을 뵙게 되니 미천한 노신의 영광이옵니다."

  "이렇게 짐을 환영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만 신세를 지리다."

  "신세라니, 당치도 않사옵니다. 오히려 노신의 집이 초라하여 폐하를 제대로 모시지 못할까 염려되옵니다."

 

  그는 방을 따뜻하게 데우고는 의제를 위해 밥을 지어왔다. 간단한 밑반찬 몇가지와 따뜻한 물 한잔이 전부인 상, 황제의 수라상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초라하였지만 의제는 그것으로도 감사하였다.

 

  "죄송합니다. 폐하께서 행차하시었는데 먹을 것이라곤......"

  "아닙니다. 오히려 팽성에서 먹던 수라보다 달고 맛있을 것 같군요. 잘먹겠소이다."

 

  백성들의 자그마한 정성에도 깊이 감사하는 의제, 그를 따르는 신하들은 그런 어린 소년을 보며 눈시울을 붉히거나 혹은 은은하게 미소를 지었다. 항량에 의해 어린 나이에 왕이 되었을 때에는 어리버리하였던 소년, 하지만 그는 자라면서 누구보다 군왕의 자질, 즉 성군의 자질을 갖추었다. 이 모습을 보라, 천하에 과연 그 누가 의제와 같은 성심을 가졌겠는가? 천하에 그 누가 의제처럼 백성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 뜻을 미처 펼쳐보이기도 전에 항우에 의해 쫒겨나는 신세가 된 의제, 너무도 어린 나이에 날개가 꺾인 황제를 보며 신하들은 비통함을 감출 수 없었다. 의제야말로 혼란스러운 정국 후에 찾아온 시기의 백성들을 어루만져줄 성군이거늘.......

 

  신하들 또한 마을의 백성들이 마련해 준 저녁식사를 끝내고 거기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다.

  그런데 그날 밤, 의제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그는 신하들과 함께 마을을 떠나 강을 건너고 있었다.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일행, 그런데 돌연 물속에서 수많은 흉폭한 도적들이 솟구치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신하들과 호위병들을 모조리 죽여 강에 던졌고 배 밑창을 뚫어 가라앉게 만들었다. 그리고 물속으로 돌아가기 직전, 그들의 칼이 의제의 목을 향해 날아왔다.

 

  "으아아아악!!!"

 

  소스라치게 놀란 그는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났다.

 

  "폐하!!"

 

  놀란 그의 위사들이 방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그러자 의제는 퍼득 정신을 차리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그들을 애써 돌려보냈다. 의제가 악몽을 꾸었다는 것을 짐작한 신하들은 걱정스러운 듯, 계속 옆에 있었지만 끝내 그는 그들에게 꿈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았다. 그리하여 다음날, 그들은 눈물로 마을 백성들과 작별하고 다시 침현으로의 발걸음을 계속하였다.

  그 무렵, 영포는 지속적인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다. 패왕 항우의 사자가 계속 쪼아대고 형산과 임강에서도 사자가 달려와 속히 패왕의 명을 시행하자며 압박아닌 압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구강성의 장수는 벌써 출동 준비를 끝내고 언제 떠나면 되겠느냐는 보고를 보냈다.

 

  "어찌.... 어찌 이 사람들은 이리도 쉽게 결정을 내릴 수 있단 말인가. 천자를 죽이는 일이다, 어찌 이다지도 쉽게!!"

  "다 패왕의 힘 때문입니다. 패왕의 명에 거역하는 것은 곧 그에게 대적하는 것, 현재 패왕은 아무도 대적할 수 없는 무적의 존재이니 당연한 것이지요."

  "......"

  "이제 대왕께서도 결정 하셔야 합니다. 더 늑장을 부리다간 서초의 대군이 구강을 짓밟을 수도 있으니 속히 용단을 내리시옵소서. 황제를 구할지 아니면 구강의 백성들을 구할지."

 

  그녀의 말대로이다. 벌써 7일을 끌었다. 그 동안 팽성으로 달려가는 파발도 수차례나 보았다. 그 말은 즉 영포 자신이 머뭇거리는 것이 패왕에게 그대로 전달되고 있다는 뜻, 그런데도 그에게서 독촉이 한번도 없는 것을 보면 항우가 영포를 지켜보고 있다는 뜻이겠지.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 의제를 죽일 수 있단 말인가. 몇번이나 그는 고개를 흔들었지만 그로부터 10초도 지나지 않아 바로 한숨이 다시 나왔다. 죽이지 않는다면 구강땅의 백성과 병사들이 전부 막강한 항우의 서초군에게 짓밟히게 된다. 아무리 영포가 날래고 용맹스러우며 전투에 능하다 하여도 항우와 비교를 한다면, 그리고 구강의 군사들이 정병이다 하여도 항우의 서초군과 비교를 한다면......

 

  "내가.... 내가 뭘 어쩌란 말입니까......."

  "대왕......."

  "패왕은 어찌 모른단 말입니까!! 의제를 죽인다면 그것은 곧 패왕 스스로가 자신의 무덤을 파는 꼴입니다. 패왕의 윗사람이 누구입니까, 의제 아닙니까? 그런 의제를 죽이다니. 제후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또한 패왕도 의제를 죽였으니 패왕에게 들고 일어나는 제후들 또한 적지 않을 터, 지금 패왕의 이 행위는 두고두고 큰 굴레가 되어 영원히 따라 다닐 것입니다. 어찌 하여 패왕의 곁에는 이같은 만행을 말리는 이가 단 한명도 없단 말입니까!!"

 

  마치 졀규하는 듯한 영포의 외침, 궁을 뒤흔들 정도로 목소리가 컸지만 곧 사라졌다. 그의 절규는 그렇게 허공에 흩어지고 남은 것은 쓰러질듯 위태로운 그의 몸뚱아리 뿐, 그는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알고 있다. 너무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가고 싶지 않은 길, 아니 가서는 안되는 길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그마치 7일이나 시간을 끌었던 것이다. 혹시라도 패왕이 자신의 잘못을 깨닿고 명령을 철회하지 않을까, 정말 혹시라도 다른 이가 패왕을 설득하는데 성공하여 이 명령이 철회되지 않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기미는 눈꼽 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설득한다고 설득 당할 사람입니까......"

  "아아.... 아아아악!!!"

 

  그는 괴로움에 몸부림 치더니 한참 후헤야 비로소 크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 무겁게 가라 앉은 목소리로 명을 내렸다.

 

  "밖에 있느냐."

  "예 대왕!"

 

  곧 시종 한명이 달려들어왔다. 영포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에게 명을 내렸다.

 

  "장수들을 불러라. 많이는 필요 없고 부장 셋이면 된다."

  "알겠습니다, 대왕."

 

  그의 명령에 따라 부장 셋이 대전으로 들어왔다. 곧이어 갑옷을 갖춰 입고 시퍼런 철극을 움켜쥔 영포가 대전으로 들어오자 그들은 바로 무릎을 꿇고 포권을 취하였다. 그는 잠깐 그들을 내려다 보고는 명을 하달하였다.

 

  "병사들을 모아라. 장강으로 가 형산왕, 임강왕과 합류한다."

  "알겠습니다, 대왕! 삼가 명을 받드옵니다!"

 

  가려뽑은 정병 5백명이 모이자 영포는 구강성 태수에게 출동명령을 내린 후, 자신 역시 병사들을 이끌고 형산, 임강왕이 기다리고 있는 장강변으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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