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미로 7
서하 입원실에 앉아있다. 준결 입원실 침대에 누워있다. 서하의 손에 꼭 쥐고 있는 태엽 시계가 반짝인다. 태엽 시계의 태엽에 나있는 작은 홈이 눈에 들어온다 오래되어 보이는 홈이다. 잠들어있는 준결에게 먹일 오렌지 쥬스를 사러 병원 매점으로 내려온 서하, 범학을 만난다. 범학 장미꽃을 한아름 안고서 서하를 본다
“우와..장미꽃이네...나 주는거에요?” “작가님 드릴 꽃 아닙니다”
“에이..좋다 말았네...범학씨는 퇴원하는거에요?”
“퇴원이랄 것도 없어요 타박상 치료만 하면 되는걸 어머님이 우기셔서 하루 입원해 있었더니, 근질 근질 답답해서 못 있겠어요” “통원치료 하려구요?” “네” “아버지는 어떠세요? 달라지셨어요? 범학씨 얘기 들어주세요?”
“모르겠어요 달라지셨는지 그대로이신지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차츰 차츰 범학씨 얘기에 귀기울이실거에요” “네, 준결 형은, 아직?” “네” 한숨을 내쉰다. 범학 안쓰러운 눈빛으로 서하를 본다.
입원실에서 준결, 팔에 깁스를 하고 앉아서 창밖을 바라본다.
누군가 들어와서 준결 곁에 선다. 준결 돌아본다. 범학이 한아름의 장미를 들고 서있다. “왠 꽃이에요?” “쾌유를 기원하는 꽃이에요”
다짜고짜 장미를 안긴다. 준결 얼떨결에 장미를 받는다.
“이런거 처음 받아보는데...처음 받아보는 장미다발이 남자일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 짓궃은 웃음을 보인다. “범학씨 저는..크크크큭”
“준결 형은, 아, 형이라고 불러도 괜찮겠죠?” “형? 좋지요 범학씨” “범학아 이렇게 편하게 불러주세요” “범학아” 기분좋은 웃음, “준결형, 고마웠어요 형덕분에...소중한걸 지킬 수 있었어요” “다행이네 범학아 소중한건...천천히 지켜가는거야...급하지 않게..천천히...”
“고마워요 형,” 준결이 들고 있는 붉은 장미다발을 보면서 “붉은 장미를 보면, 그 사람이 생각나요 붉은 장미처럼 열정적인 그 여자가 생각나요” “붉은 장미의 꽃말을 알아?” “열정, 기쁨, 아름다움, 욕망”
“그래 바로 그거야 욕망..적당한 욕망은 살아야겠다는 삶의 의지를 불러일으키거든..범학아 살아있어야 누릴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떠올려보면서..다시는 삶을 놓지말아” “네..절대로 앞으로 절대로 그런 일 없을거에요 아버지와 앞으로도 계속 부딪히겠지만, 그래도 넘지 못할 산은 없으니까요 계속 넘어봐야죠” “잘 생각했어 바로 그런 자세가 필요하거든 짜식~” “형..도..알죠?” “응? 아..하...그..렇지...” 민망한 웃음, “버스 시간이 다 돼서 가봐야겠어요” “그래..아..잠깐만..” 주섬 주섬 엠피쓰리를 꺼내서 범학에게 준다. 범학 받으면서 “뭐에요? 형?” “심심하지 않게 들으면서 가, 그중에 black rose 내가 참 좋아하는 곡인데, 범학씨한테 권해주고 싶어 한번 들어봐” “블랙로즈? 당신은 영원히 나의 것..” 아까의 준결처럼 짓궂은 웃음을 보이면서 “형...이러시면...곤란한데...요...하하하하” 호탕한 웃음소리
“뭐..라구? 이런..” 역시 호탕하게 웃는다. 범학 활짝 웃으면서 씩씩하게 걸어나간다. 예전의 범학과 달리 활기차다. 준결 범학의 뒷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병실 가득히 흐르는 노래..The Product G&B - black rose
병원을 나오자마자, 희망원으로 향한 범학, 원장 수녀님에게 인사한다. 원장 수녀님 잘 돌아왔다는 듯 말없는 미소로 범학을 맞아준다. 아이들도 범학을 반갑게 맞이한다. 아이들 뒤에 눈물을 글썽이면서 서있는 우영, 우영을 마주보는 범학의 눈에도 어느새 눈물이 고여있다.
서하는 준결을 부축하고, 검진 센터 입구에 서있다.
“너는 이 팔을 하구, 무슨 검진을 받겠다구 그래” “누나..나 때문에 받는거 아니야 내가 받아야 누나도 받을거 아니야 넘어진 김에 쉬어가랬다구, 요참에 우리 검진 받으면서 건강이나 체크해놓자” “아..나는 됐는데...” “어허..얼른 와..가서 검진 예약해야지 두 사람 검진센터 쪽으로 걸어간다.
검진을 받고 있는 서하와 준결, 의자에 앉아서 다음 검진 대기중이다 “요런거는 결혼하기 전에 해야되는건데..나 왜 벌써 하고 있냐” “미리 미리 해두면 좋잖아 또 알아 우리 내일 당장 결혼할지”
“또..또..막 달린다...너는..너무 막 달려...” “나라도 빨리 달려야 거북이 누나가 조금더 빨리 따라오지” “수고가 많으십니다 토끼씨, 느림보 누나 둬서요” “뭘요 거북씨, 느려도 따라와주면 고마운거죠” 서하 준결에게 말갛게 웃어보인다. 준결 팔깁스를 내밀면서 “요기다 좀 써줘” 서하 옆에 있는 펜을 들고, 뭐라고 써야하나 잠깐 생각한다.
하준결 영광의 깁스~쉿! 요건 비밀인데, 아 글쎄 첫 깁스래요 부끄 부끄 쉿! “뭐야? 요 멘트는?” “첫 깁스 축하한다구 크큭” “색다르네 첫 깁스 축하를 다 받구”
“고마워 준결아” “뭘?” “그냥 그냥 고마워” “다행이야” “뭐가” “그냥 그냥 다행이라구” 서하와 준결 서로를 향해서 알 듯 모를 듯한 웃음을 보이면서 마주본다.
서로를 바라보는 따뜻한 눈빛에 평온한 두 사람의 마음이 느껴져서 보는 사람들까지 편안해진다.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알아? 누나 그거 모르지?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야 이렇게 마주 보고 웃을 수 있어서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모를거야’
‘바보야 나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너 못 구했으면, 나 날마다 태엽 시계만 돌리면서 그날에만 머물러 있었을거야 너 구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너 모르지? 하준결 이렇게 마주 보고 웃을 수 있는거 나 참 행복하다’
지금의 행복에 감사하면서 그날의 기억을 떠올려보는 서하의 눈빛이 다시 흐려진다. 서하의 기억 속 시간은 다시 준결과 범학이 다친 그날로 돌아가있다.
서하 준결의 팔을 꽉 잡는다. “아..아악..아파 누나..” 서하 어쩔 줄 몰라하면서 “미안..미안해...” “미안해요...” 범학의 얼굴 여기 저기 까져있는 상처, 걷어올린 다리가 멍들어서 시퍼렇다. “아아..내 팔을..내 팔을 왜 꺽은거야?” “미안..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치다가 팔을 너무 세게..미안합니다” “다리는 괜찮아요?” 서하를 보면서 “구급차, 구급차 불러줘 누나” “구급차는 무슨, 차있는데까지 쪼끔만 걸어가자” “누나 나 환자야 범학씨도 그렇구”
“환자는 무슨, 둘다 비오는 날 몸싸움에 누가 보면, 취객들끼리 싸움난 줄 알겠어” 범학 고개를 푹 숙이면서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괜히..”
“아..그럴거 없어요 빨리들 좀 걸어요 빨리 병원가게 준결아 빨리 좀 걸어라” 구박하듯 재촉하면서도 준결의 아픈 팔이 걱정되어서 울상을 짓고 있는 서하다.
이제 태엽 시계는 두 사람의 비밀도 함께 담고 있다.
두 사람은 알지 못하겠지만, 골동품 가게에서 과거로 되돌아온 두 사람의 기억은 태엽 시계 안에 잠들어있다.
정지되어있던 두 사람에게 자신들이 다녀간 기억은 태엽 시계가 깨어나는 날, 그 순간이 되어서야, 두 사람도 알게 될까?
태엽 시계는 두 사람이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을 꺼내본다
박스 안에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담고 있는 서하와 준결,
고양이 모자를 쓴 서하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선물을 들고 오다가
태엽 시계를 본다
태엽 시계도 같이 들고 오는 서하를 보면서, “설마 태엽 시계도 선물하려구? 아서라 누나”
“태엽 시계는 요기다” 야옹이 모자를 쓰고 태엽 시계를 손목에 차고 있다
“시계 찬 고양이다” 장화신은 고양이 느낌으로 손목 시계를 보여준다
“와우~우리 야옹이 영특한걸 시계도 볼 줄 알아? 지금 몇시야 야옹아?”
서하 손목 시계를 들여다보면서 “아홉시네 어?” 손목시계를 벗어서 찬찬히 들여다본다 “왜?” 준결도 같이 들여다보면서 “어? 요기 언제 이랬지?” 태엽에 오래된 홈이 나있다 “오래된건데?” “응, 원래부터 이랬었나? 생각나?” “글쎄..홈을 살펴보면, 오래된 흔적인데, 모르겠어 내일 골동품 가게에 가보자” “내일?” “왜?” “내일은 약속 있어서 곤란한데” “약속?”
“어, 우영씨 만나기로 했어 이거 아이들 전해달라구” “아하..내일은 안되겠네 다음에 시간날 때 가보자” “그래 쓰는데 지장은 없겠지” “아마도” 서하와 준결 박스 안에 다시 선물을 담는다
서하 박스 옆에 태엽 시계를 내려놓는다
선물 담기에 열중하고 있는 두 사람 모르게 반짝이는 태엽 시계,
희망원으로 돌아온 범학은 아이들과 반가운 인사를 마친후 가만히 우영의 손을 이끈다 우영은 아무 말없이 범학이 이끄는대로 따른다
희망원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서로에게 기대어있는 범학과 우영, 범학은 우영에게 The Product G&B - Black Rose를 들려준다 우영의 따뜻한 웃음이 범학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그 시각 원무과에서 병원비를 계산하고 있는 서하에게 “서하씨 섭섭해서 어떡하죠?”친분있는 원무과 직원이 말을 건넨다 “가끔 올께요” “에이 오지마요 다쳐서 오면 안되잖아요” 서하 피식 웃는다 “언니는, 그냥 놀러올께요” “그래요 놀러와요 서하씨”
걸어오는 준결을 본다 준결 깁스 안 한 팔에는 가방을 들고 있다 “언니 잘 지내요” 가볍게 인사하고, 준결에게 달려간다 “이리줘” 가방을 들어주려한다 “됐어 이쪽 팔은 멀쩡한데, 내가 들면 돼” “들어준다니까, 그러네, 너 이런 기회 흔치않다 해준다 그럴 때 냉큼” “아이구 됐습니다 요런거는 안 해줘도 됩니다” 차키를 건네면서 “운전이나 좀 해줘” “알았어” 준결, 서하 나란히 나간다
서하, 병원 주차장에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서서, 준결을 본다 삐빅~ 겅쾌한 소리 열린다 “어서 타” 운전석에 앉아서, 무의식적으로 들고 있던 핸드백을 옆자리에 놓는다 준결 옆자리에 타려는데, 핸드백이 있다 “아잠깐만” 핸드백을 뒤에 놓는다 “타” “누나..지금..나..가방한테 밀린거야?” “가방한테도 질투하니?” “질투?” 피식 웃는다 “염려마 나 니가 더 좋아 ...가방보다는..니가 훨씬 좋아...” “가방보다? 후아..좋아해야해 말아야해 가방보다는 내가 훨씬 좋다는 서하 누나를...크크큭...” 서하 씨익 웃어보이며 “출발한다”
골동품 가게의 오후는 늘 그렇듯 한가하다
주인장, 창밖을 보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두 젊은이가 잘 해냈는지 모르겠네 쉽게 할 수 없고, 그렇다고, 또 쉽게 포기할 수도 없는 문제들이 두 사람을 또 다시 부를텐데...뭐..그래도 둘은 잘 하겠지, 젊고, 용기있고, 무엇보다 두 사람이 서로를 보는 눈빛에, 문제들에 대한 해답이 있으니까...믿음, 그 둘에게는 다른 사람한테서 흔하게 볼 수 없는 서로에 대한 “무한 믿음”이 있으니까...이쯤에서 태엽 시계 사용팁 하나 알려줘야 하나? 에이 그냥 두자 둘이서 알아서 잘 찾아가겠지 태엽 시계가 스스로 그 둘을 찾아낸것처럼...”
주인장 밖으로 나간다 “날씨 좋다 마실이나 다녀올까” 가게 문을 잠그고 “잠시 다녀옵니다” 팻말을 걸어놓는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면서 천천히 걸어가는 주인장, 어느새 인파 속으로 사라진다
사건도 해결했고 휴식차 근처 워터파크에 놀러온 서하와 준결,
서하 시원해보이는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계단을 내려온다
준결 적당하게 과하지 않은 수영복 차림으로 먼저 내려와서
기다리고 있다
준결 지나가는 비키니 입은 여성에게 저도 모르게 따라가는 시선,
남자의 본능을 준결이라고 어찌 말릴 수 있으리,
고개를 돌려서 비키니 입은 여성의 뒤태까지 감상중이다가
서하에게 딱 들킨다 ‘고개 꺽이겠다 그러다 하준결’
“쳐다보는걸로 되겠어? 아예 따라가지 그래?” “어? 내려왔어?”
서하의 수영복 차림을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누나도 시원하게 입어야지” “이정도면 시원하게 입은거거든~”
“션하려면 아까 저정도는 돼야지~” 아까 비키니 여성이 지나간 쪽을 가리키면서, 서하 준결을 툭 친다 “잘 한다~따라가라 따라가” 살짝 삐친 듯 보인다 “삐친거야?” 왠지 기분이 좋다 서하 툭툭 앞서서 걸어간다
준결 기분 좋은 얼굴로 쫒아가면서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와우~누나 뒤태 죽인다~역시 우월해~” 서하 기분이 살짝 풀리지만, 아닌척한다
“됐거든~” 준결 다가와서 서하의 허리에 팔을 두른다 서하 질겁하면서 “왜 이래?” 떨어지려한다 준결 더 세게 잡는다 “허어..가만히 좀 있어봐”
“빨랑 놔 안 놔?” 세게 잡으면서 “가만 좀 있으라니까” 지나가는 여자들 서하와 준결을 힐끔힐끔 본다 커플로 보이는 남녀 지나가다가 멈춰선다
커플녀 준결을 보다가 남자친구를 보면서 한숨을 내쉰다 “휴우..오징어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