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수채화1
준결 쿠키를 가지러 카운터로 걸어간다. 야옹거리면서 우유를 맛있게 먹는 고양이 작은 혀를 낼름낼름 우유를 먹는 모습이 귀여워서, 고양이를 계속 보는 서하, 하람(여자)에게 말을 건넨다
“아유 귀여워 고양이 이름이 뭐에요?” “냥냥이에요”
“냥냥이? 냥냥아” 서하가 불러도 한번 흘긋 볼뿐 반응이 없는 고양이
“우리 냥냥이가 낯을 많이 가려요” 고양이를 쓰다듬는다.
“고양이들이 많이 그렇다던데, 키운지 오래 되셨어요?” “글쎄요?” “네?” “언제부터 키웠는지 생각이 안나서요” “어떻게?” “사고가 나서 기억이 가물 가물한데, 가물 가물한 기억 속에도, 냥냥이는 계속 있었거든요” “언제 사고가 났어요?” “쫌 됐어요 한 일년됐나 사고 이후에 부분 기억 상실이에요” “네에” 서하는 괜히 미안해져서 얼른 화제를 돌린다.
“오피스텔 어때요?” “혼자 살기에는 적당한거 같아요”
“혼자 살아도 되는거에요? 누가 옆에 있는게 도움이 될텐데” “부모님 두분다 핀란드에 계세요” “아..같이 가시지 그러셨어요?”
“같이 가자고 하셨는데, 왠지 여기 있어야할 것 같아서 그냥 여기 있겠다고 했어요” “왜요? 무슨 기억 나는거라도 있어요?”
“아니 딱히 그런건 아닌데 그냥 왠지 있어야될 것 같은 기분 왠지 그런 느낌”
“네에” “옆집 사니까, 자주 놀러 오세요” “네..낮에 주로 집에 계시나봐요” “외삼촌 당구장 잠깐 봐드리는거 외에는, 거의 집에 있어요”
“네, 놀러갈께요” 준결 쿠키를 두 봉지 들고 와서는, 한 봉지는 하람에게 건네준다. “드세요 어제 시루떡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고마워요”
다정하게 서하에게 쿠키를 주는 준결을 유심히 바라보는 하람
서하 생긋 웃으며 받아서는 준결에게 먼저 쿠키를 주면서 “너도 먹어” “땡큐~~” 하람,“두 분 참 사이가 좋으세요 사귀는 사이 정말 아니에요?” “에이 아니에요” 서하는 손사레를 친다.
“얘는 그냥 동생(강조한다)이에요” “정말 잘 어울리는데, 그냥 딱 봐도 애인같은데” 준결, 하람에게 자신을 동생이라 딱 자르는 단호한 서하가 섭섭해진다. “어허 그런 말씀 마세요 누나랑 사귀는 동생은 없습니다” 섭섭해하면서 정색한다 “그래요? 두분 애인 아니면, 가끔 놀러갈께요”
“그건 왜? 애인이여도 놀러오시는건 상관없는데” “에이 애인이면, 제가 눈치없이 좋은 시간 방해하면 안되잖아요” 하람 배시시 웃는다. 하람의 웃음이 의미하는 바를 눈치채고는 서하, 당황하면서 “애인 아니니까 눈치 보시지 말고 언제든 놀러오세요” “그럴께요”
두 사람과 헤어진 하람, 당구장 카운터에 앉아있다. 심심한듯 제 손을 핥으며 놀던 고양이는 하람과 함께 카운터에 앉아있다가, 문이 열리고 하람의 외삼촌이 들어오자, 한달음에 기다렸다는듯 뛰어간다.
“아이구 우리 냥냥이 심심했구나” 고양이를 쓰다듬는다.
“손님 좀 있었어?” “아니 별로 없었어”
“밥은 먹었어? 냥냥이도 밥 줬구?” “어...먹었어” “들어가봐”
“나...냥냥이 언제부터 키운거야?” “몰라 너 지방에 있을때부터 키웠던거 아니야?” “그랬었나?” “니 엄마가 그러던데 너 고양이 키우고 있었다구”
“나는 왜 그때가 전혀 생각이 안나지?” “쫌만 기달려봐 곧 생각날거야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말구 냥냥이 데리고 들어가봐” “네 삼촌” 하람은 고양이를 품에 안고 나간다.
냥냥이를 옆자리에 태우고 운전석에 앉는 하람, “냥냥아 우리 어디 갈까? 심심한데 서점갈까?” 대답없는 고양이, “서점 싫어? 그럼 어디 가지? 아, 노트 떨어졌는데 팬시점에나 들렀다 가자” “야옹”
냥냥이가 하람의 손등을 작은 혀로 핥는다 “간지러워 냥냥아”
팬시점까지 가는 도중에 고양이는 잠이 들고, 잠이든 고양이를 그대로 두고
하람은 잠시 다녀올 요량으로 바깥으로 나간다.
팬시점 안에서 펜을 고르고 있는 서하, 계산하러 가다가, 안으로 들어오는 하람과 마주친다. “어? 여기서 또 보네요” 서하, 반가워한다.
“그러네 다 샀어요?” “네, 냥냥이는요?” “아..차에 있어요” “먼저 가볼께요 그럼.." "혹시 오피스텔 가는거에요?” “네..그런데요?”
“태워줄께요 잠깐 기다릴래요? 노트만 사면 되는데..” “그럴까요? 그럼 신세 좀 질께요” 하람은 대충 고른 노트를 들고 카운터로 간다. 서하는 하람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 “나갈까요?” “네”
오피스텔 주차장 앞 주차하는 하람의 차에서 내리는 서하와 하람,
준결, 마침 오피스텔에서 나오다가 나란히 걸어오는 두 사람을 본다.
“어? 어떻게 같이 와?” “팬시점에서 만났어 너 어디 나가?”
“아..마트 좀 갔다오려구” “같이 가자”
하람을 보면서 “먼저 들어가세요” “같이 가요 나도 살거 있는데”
“그러실래요? 차 따로 타고 갈 필요없이 같이 타고 가요”
“그러세요 타세요” 뒷좌석을 열어준다.
하람 준결이 열어준 뒷좌석에 탄다.
준결, 운전석에 앉고, 서하 준결 옆자리에 탄다 출발하는 준결의 차,
쉴새없이 종알거리는 하람, 생각보다 수다쟁이다.
‘귀여운 아가씨네’ 서하의 빙긋 웃음에 준결도 따라 웃어보인다.
하람, 고개를 갸웃하며 두 사람을 번갈아 본다.
‘두 사람 왜 웃음이 닮았지? 웃을때 보니까 똑같다’
마트 주차장에 주차하고 먼저 들어가는 두 여자들 뒤를 쫄래 쫄래 따라가는 준결, 서하는 쇼핑카트를 준결에게 맡기고 하람과 앞장서서 걷는다.
쇼핑카트를 끌고 있는 준결, "이거 살까? 이거는?" 준결에게 의견을 물어보면서 고르고 있는 서하, 두 사람의 뒤에서 쇼핑카트를 밀면서, 흐뭇하게 보는 하람
‘영락없는 신혼부부 필인데~ 잘 어울리는데..왜 안 사귀지?’
하람을 돌아보는 서하와 준결 멈춰선다.
“다 고르셨어요?” 하람의 쇼핑카트를 본다.
라면, 과자, 물, 간단한 식료품들 몇 개가 들어있다.
“아직이요 살게 하나 더 있어요” “뭐에요?”
“아..” 당황하면서 “혼자 사올께요” “괜찮아요 같이 가요 어느 쪽이에요?” 하람 살짝 얼굴이 붉어진다 “여성용품이에요” 준결 얼굴을 붉히면서 “죄..송..다녀오세요” 서하, 준결의 붉어진 얼굴을 보면서 장난스럽게 “남성분은 여기 계세요 여성 동지들끼리 얼른 갔다올게”
“누....나....도..여자야 부끄러워 좀 해봐 이제 나는 남자로 안보인다
이거야” “너는 동..생..이잖아 헤헤”
서하는 혀를 쏘옥 내밀고 하람의 카트를 끌고 재빨리 사라진다.
하람, 준결에게 당황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얼른 서하를 따라간다. 여성 용품 코너, 서하는 이것 저것 신상품 구경하느라 바쁘다.
한참을 구경하던 서하 “다 고르셨어요? 골라드릴까요?” 하람, 멍하니 멈춰서있다. “왜 그러세요?” “이상해요 익숙한 기분이 들어요” “어떤?” “누가 골라주는거..이런거 너무 익숙한 기분이 들어요” “네? 혹시?” “그런가봐요” “계속 기억을 떠올려봐요 골라주는 사람이 여자에요?” “아니요 희미한데 여자손이 아니에요 남자 손이에요” “남자라 남자..친구인가? 혹시 남자친구 있으셨어요?”
“남자..친구?” 울컥한 듯.. “있..있었던거 같아요” 갑자기 가슴을 움켜쥔다 서하 깜짝 놀라면서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아니요” 고개를 젓는다 “갑자기 여기가” 가슴을 두드리면서 “여기가 꽉 막힌 것처럼, 미어졌어요” “맘이 시린거에요 남친이 있었나봐요” “그...런건가? 이제 괜찮아졌어요” “뭐 더 생각나는거 없어요?” 하람 고개를 저으면서 “이제 없어요” “갈까요? 그만? 준결이도 기다릴텐데” “네” “집에 가서도 잘 생각해봐요 잃어버린 기억이 남자친구와 관련된 기억일지도 모르잖아요” “네...” 하람 어쩐지 힘이 없는 목소리다. “괜찮아요 기운내요 오늘처럼 하나씩 하나씩 떠올려가다보면, 곧 기억날거에요” “고..고마워요” 코너를 돌아서 준결이 기다리고 있는 식료품 코너로 간다.
작업실에 도착하니 벌써 저녁, 서하는 쇼핑해온 물건을 냉장고에 넣는다.
배가 고픈 준결은 서둘러 라면을 끓이고 있다. “파김치 먹을래?” 파김치통을 들어보이면서 서하가 묻는다 “먹을래” 파김치를 꺼내서 그릇에 담는다. “다 됐다” 준결은 맛있게 끓여진 라면을 테이블에 놓는다
“누나 앉아”준결, 수저와 그릇을 가져와서 서하에게 수저와 그릇을 건넨다. “땡큐~~우와~맛있겠다~하준결표 특제 라면~으음..스멜 굿~잘 먹겠습니다” 준결의 노고를 치하하듯 라면을 그릇에 가득 덜어서 맛있게 먹는다. 서하의 먹는 모습을 뿌듯하게 바라보는 준결의 흐뭇한 웃음
“어서 먹어 담아줄까?” 준결의 그릇에 라면을 담아주는 서하,
준결, 국물부터 한모금 쭈욱 마신다. “시원하다”
서하 코끝에 송글 송글 맺혀있는 땀을 닦으며 맛있게 먹다가 갑자기 생각난듯,“아까 옆집 아가씨 있잖아” “어..왜?” “아까 생각난거 있었어 기억 상실이 남자친구와 연관된 기억인것같아” “남..자..친..구?”
“응 남자친구가 있었나봐” “그래? 지금은 어딨지?” “글쎄..정확하게 떠오른 기억이 아니라서 오늘은 남자친구가 있었다는것까지 기억해냈어”
“그래도 오늘 진전 이 있었네” “얼른 기억 되찾으면 좋을텐데 이쁜 아가씨인데 안타까워” “근데 누나 언니라고 불러야되는거 아니야?”
“언니? 나랑 비슷한 또래 같던데?” “서른넷이래” “어떻게 알았어?” “아까 경비 아저씨가 오셔서 그러더라 아참, 아까 경비아저씨가 옆집에 택배온거 전해달랬는데 깜빡 했네” “택배?” 준결 한켠에 아무렇게나 놓아둔 택배 박스를 가져온다 “여기” 서하 택배 박스를 받아든다.
“백하람 이름이 백하람이구나” “보낸 사람이 없네? 제주도 귤농장이라고 돼있는데” “제..주도?” “귤 주문한건가? 누나가 갖다주고 올래?” “그럴게” 일어나는 서하의 팔을 잡는 준결, “이거 먹고 가” 서하 다시 앉아서 라면을 먹는다. 준결 박스를 보면서 이상하다는 듯이 “근데 귤 박스치고는 너무 가벼워” 들어본다. “어? 그러네? 귤 주문한게 아닌가?” “귤 농장에서 귤 말고 올게 뭐지?” “글세 물어보면 알겠지 어서 먹자 으..뿔었어 뿔었어 뿔어서 우동되겠어” “하준결표 특제 우동 라면을 맛있게 드시라~뿔려서 드시면 더 맛있습니다 하하하하” 너스레를 떠는 준결이다.
라면을 다 먹은 서하, 준결에게 설거지를 부탁하고 택배를 들고 나간다. 하람의 집, 벨을 누른다. 문이 열리는 소리 들리고 하람이 고개를 쏘옥 내밀며 반가워한다. "서하씨" “택배 맡았던거 드릴려구요” 하람, 서하가 들고 있는 택배 박스를 본다 “어? 뭐지?” 하람 택배 박스를 받으면서,“ 차 한잔 마시고 갈래요?” “그럴께요” 서하 사양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간다.
테이블 위에 상자를 올려놓고 차를 끓이는 하람, 서하 자꾸만 택배 박스에 시선이 간다. 하람 차를 내온다. 서하, 향을 음미하면서 “무슨 차에요?” “이것 저것 약재 넣어서 끓인차” “네에..향이 좋아요”
하람 택배 상자를 보면서 “뭐지?” 열어본다. 서하도 궁금함을 못이긴듯 어깨너머로 같이 본다. 상자 안에는 책이 몇권 들어있다.
귤 재배하는 기술, 귤 농장 운영, 요리책, 작은 수첩 하나, 하람 궁금해하면서 수첩을 본다 별 내용이 없는 수첩을 계속 넘겨본다.
하람 수첩을 내려놓고 요리책을 본다 서하는 수첩에 관심이 가서, “저도 좀 봐도 될까요?” 하람 대수롭지않은 듯 “별거 없는데, 보세요” 서하 수첩을 살펴본다. 여자 필체로 귤 재배 방법이 적혀있고, 날짜, 날씨, 강수량, 뭐 별다른건 보이지 않는다. 계속 넘겨보다가 맨 뒷장에 있는, 남자 필체로 된 글씨가 눈에 띈다 4월 7일 여기 왔다 없어서 다행이다 이제 다 잘 됐다 수수께끼 같은 내용이다.
서하 하람에게 보여주면서 “이 글씨체 혹시 알아요?” 하람 고개를 젓는다. “잘 모르겠어요” “내용도 모르구요?” “네” “여자 글씨체는?” “글쎄요” “혹시 제주도에 계셨어요?” “네, 부모님이랑 같이 제주도에 살았었어요” “부모님이랑 같이요? 언제요?” “여기 온게 6개월 정도 됐으니까, 그전까지는 계속 거기서 살았어요” “부모님은 핀란드에 산다면서요?” “부모님은 동생한테” “동생이 거기 살아요?” “네, 유학가서 공부하다가, 만난 남자랑 결혼하고 정착했어요” “그럼 이건 부모님이 하시던 농장에서 보낸거?” “네” “아, 제가 밤늦게 실례가 많았네요 혹시나 하람씨 기억찾는데 도움이 되려나 해서 그만 가볼께요” “그래요 오늘은 생각나는게 없어요” “잘 자요” “네, 잘 자요 서하씨” 서하가 나가자, 하람 털썩 앉아서 수첩을 다시 살펴본다.
늦은 밤 작업실, 서하 메모 내용을 계속 생각 중이다. “준결아 귤 농장했었대 부모님이랑 같이 아까 그 박스에 수첩이 하나 있었는데, 여자 글씨체, 남자 글씨체 모두 잘 모르겠다는데, 기억 상실이면 글씨체도 생각 안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