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아이덴티티 1
홍대 클럽 인디 밴드 “time" 의 공연을 보고 있는 유찬, 앵콜곡으로 “나른한 봄날 오후”를 열창하는 효화, 종혁, 성식, 민형, 인경, 중연, 신준, 밴드 사람들 서로를 보는 눈빛이 정답다. 유찬 홀로 앉아서 맥주를 마시며 공연을 보고 있다 한쪽 테이블에서 유난히 크게 박수를 치면서 열광하고 있는 두 남녀가 있다. 유찬 그들을 유심히 본다. 바로, 서하와 준결이다.
공연이 끝나고 환호에 감격스러워하면서 무대를 내려가는 밴드 사람들을 뿌듯하게 바라보던 서하, 준결에게 어깨를 으쓱해보인다. 그런 서하를 다정하게 바라보던 준결, 서하의 어깨를 두드려준다. 유찬 두 사람을 응시하는 강렬한 눈빛, 생각을 읽을 수 없는 눈빛이다. 누군가의 시선을 느끼고 돌아보는 서하,
조명때문인지 잘 보이지 않지만, 서른이 채 안되어보이는 한 남자가 서하와 준결을 한참 보다가, 서하의 시선이 닿아있음을 알게 되자, 다급하게 일어나서 자리를 뜬다. 서하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일어나서 나가는 남자를 본다.
준결 의아한 표정으로 서하를 본다. 서하 별일 아니라는 듯 준결에게 웃어보인다.
준결 서하의 맥주병에 혼자 건배하면서 쭈욱 들이킨다. 서하 신경쓰이는듯 자꾸 문쪽을 보면서 아까 그 남자를 찾아보지만, 어느새 나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서하 준결의 맥주병에 같이 건배하면서 시원하게 들이킨다.
새벽 무렵의 밤거리는 상쾌하다. 서하, 양팔을 쭈욱 뻗으면서 새벽 공기를 들이킨다. “아 좋다” 준결, 택시를 잡아보려 애쓰면서 “차 갖고 올걸 그랬나?” “차 가져왔음 맥주도 못 마셨잖아” “택시가 안 잡히네” “새벽 공기도 시원하니 좋은데, 우리 쫌만 걸을까?” “그럴래?” 두 사람, 다정하게 걷기 시작한다 갑자기 반짝 빛을 내는 태엽시계 서하의 가방이 한순간 반짝인다. “어? 방금 누나 가방이 반짝였어” “어? 내 가방이?” 서하 가방을 열어서 살펴보지만, 반짝이는 물건은 없다 “뭐야? 없는데? 잘못 본거야” “그럴 리가 없는데, 분명 반짝였는데 혹시 태엽시계 갖고 왔어?” “태엽..시계? 갖고 왔는데 왜?”
“좀 꺼내봐” 서하 가방에서 태엽시계를 꺼내서 준결에게 준다 준결 태엽시계를 요리조리 돌려보면서 살펴본다.
“왜 그래? 태엽 시계가 왜?” “이 시계 좀 이상하지 않아?” “그 시계 원래 이상하잖아” “아니 그런거 말구 이쪽면은 유광인데, 이쪽면은 무광이야” 시계의 앞면을 보여주면서 “보통 앞쪽이 유광이고, 뒷면이 무광이지 않나?”
“글쎄, 무광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무광이 앞쪽인 경우도 있지”
“우리 일반적으로 생각해보자구 라이터를 보면 말이야 유광 라이터는 반짝이면서 보기가 좋아, 반면에 무광 라이터는 투박해보이지만, 잔기스가 나도 잘 안 보이고, 무엇보다 손에 잡을 때 미끄럽지 않아서 좋거든 시계의 앞면은 쓰임이 많아, 쓰임이 많아서 기스가 날 경우도 많지, 앞면이 무광이라면, 이런걸 보완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반면에 시계의 뒷면은 별다른 쓰임이 없지,
쓰임이 없어서 무광이든 유광이든 별 상관이 없어 보통 앞면에 신경써서 무광으로 만들었다면 뒷면은 앞면처럼 무광으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 아닐까?
앞면과 뒷면의 일체감을 주려고 말이야 근데 시계의 뒷면을 따로 유광으로 만든 이유는 뭘까? 별다른 쓰임이 없는데도 유광으로 반짝이게 해놓은 이유가 뭘까? 반짝이면 보기 좋으니까, 보기 좋으라구? 아니면?”
“다른 용도로 쓰이라구” “딩동댕~바로 그거야 누나 시계의 뒷면이 혹시 반짝이는 용도가 아닐까? 아까 누나 가방이 잠깐 반짝였던 바로 그거 시계의 뒷면이 반짝인거 아닐까? 근데, 시계의 뒷면이 갑자기 왜 반짝였지? 단순하게 불빛에 반사되어서 그런걸까?” “아니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아 우리 앞으로 그 이유도 찾아보자 시계의 뒷면이 갑자기 반짝이는 이유, 시계의 앞뒷면을 무광과 유광으로 나눠놓은 이유, 왜 앞면을 무광으로 뒷면을 유광으로 만들었는지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면 시계의 사용법을 더 확실하게 알 수 있게 되겠지”
“그거거든 역시 누나야” “별 말씀을요” “아 슬슬 졸린다 그만 택시 잡을까?” 서하, 하품을 하면서 “그래 나도 졸려” 서하와 준결 휙휙 지나가는 택시를 잡으려고 애쓰지만, 비어있는 택시가 보이지 않는다.
택시 한 대가 다가와서 세워줄 것처럼 하지만, 준결이 목적지를 얘기하자, 이미 타고 있던 손님(유찬)이 고개를 젓는다 택시 기사 미안한 표정으로 그대로 지나쳐간다. 서하도 아쉬워하면서 택시를 본다 갑자기 반짝이는 태엽 시계, 서하와 준결 택시를 보느라 반짝이는걸 알지 못한다.
다음날 작업실 낮부터 준결은 온다간다 말도 없이 나가서는 감감 무소식이다. 한참 원고를 쓰다가 시계를 보는 서하, 점심 시간이 훨씬 지나있다. ‘배고프다 라면이나 끓여먹을까? 귀찮다 빵이나 먹어야겠어, 준결이 있었으면 귀찮아도 라면 끓여먹었겠지? 나도 참, 어느새 익숙해져버렸네’ 식탁 위에 아무렇게나 널부러져있는 빵을 하나 베어물면서 ‘어디 가서 연락도 없지? 뭐 하고 다니는지 연락은 해줘야하는거 아냐? 기다리는 사람도 생각해줘야지 허걱, 뭐야? 나? 왜 기다려? 왜 이러니 단서하 안돼 정신 차리자 단서하’ 양손으로 자신의 뺨을 가볍게 두드리면서 마음을 다잡는 서하, 갑자기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깜짝 놀란다. ‘준결이네? 젠장 마음 다잡을 틈을 안주는구만’ “여보세요” 짧은 통화가 끝나고 서하 입은 옷 그대로 태엽 시계를 챙겨서 뛰어나간다. ‘드디어 태엽 시계의 미스테리가 풀리는건가? 두근거리는데’ 콧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서둘러 운전한다.
낡은 건물에 낡은 간판, “건물도 골동품이야” 들어가려는데 바깥을 보는 주인장과 눈이 마주친다. ‘특이한 사람이네 처음 보는 사람을 빤히 보네’ 준결도 뒤돌아본다. ‘준결아’ 안으로 들어가는 서하, 서하가 가게 안으로 들어간 후 주인장이 열어놓았던 가게 문을 닫는다. 바깥에서 볼때는 닫혀있는것처럼 보이는 골동품 가게, 기웃 기웃 대는 유찬, ‘가게 문이 닫혔나?’ 조심스럽게 열어보는 유찬, 열리는 문, ‘열려있네?’안으로 들어간다.
골동품 가게 바깥으로 나가는 서하와 준결, 두 사람을 보는 유찬, 주인장, 유찬을 보면서 “어떻게 오셨습니까?” 유찬, 고개를 돌리면서 “연갑을 하나 찾고 있습니다” “연갑이라 여기 여러 종류가 있기는 한데..찾는 물건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한번 보시죠” 주인장 연갑이 놓여있는 쪽으로 유찬을 안내한다 유찬, 연갑을 살펴보면서 “아까 두 분은 뭘 찾으셨는지?”
“아까? 아하 두 젊은이요 그냥 지나가다 들른 분들이죠 여기는 그런 분들이 많이 오십니다 지나가다 호기심에 한번씩 들르는 분들” “그래요?” “이 연갑은 어떻습니까?” 투박한 낡은 연갑을 보여준다. “찾는게 없으시면 이 연갑도 괜찮습니다” 유찬, 연갑을 살펴보면서 “이것도 괜찮겠네요 찾는건 아닌데” “더 보시겠어요?” “아니요 이걸로 하죠” “그러세요” 주인장 투박한 연갑을 들고 가서 포장한다. 유찬 다른 골동품을 휘휘 둘러본다. 주인장 연갑을 포장하면서, 간간히 유찬을 본다. 유찬 낡은 전축 앞에 멈춰서서 유심히 본다. 주인장은 유찬을 유심히 살펴본다.
골동품 가게 근처 라면집에서 후루룩 거리면서 맛있게 라면을 먹고 있는 서하와 준결, 서하는 계속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아까부터 계속 그 노래 흥얼거리네? 그 노래 좋아? 어제 내가 들려준 노래?” “괜찮네 너는 이런 노래를 어디서 아는거야?” “누나 내 직업이 음악 치료사잖아 노래를 많이 아는건 당연한거야” “암튼, 고맙다 고마워 덕분에 좋은 노래 듣고 있어”
“별말씀을 언제든 말만 해 아, 저번에 들려준 숨결 그 노래는 어땠어?”
“그 노래도 잘 듣고 있는 노래야” “잘 듣고 있다니까 좋네 어서 먹어”
“여기 라면 맛있다 요런 집을 너만 알고 있었단말이야”
“나도 잊고 있었어 최근에 요근처 많이 오니까, 생각이 난거야”
서하, 주방 아주머니를 보면서 “여기 주인이 저기 저 분이야? 오래 하신 분인가?” “아닌데, 젊은 부부가 했었는데” “젊은 부부가?” “어 나도 직접 본건 아닌데, 젊은 부부가 한다고 들었어” “그래? 그럼 주인이 바뀐건가? 너 어제 어땠어?” “어제 뭐?” “요며칠 계속 늦었잖아” “누나, 나, 독립할까봐” “독립? 갑자기 왜?” “나도 나이가 있잖아 독립할때도 됐지”
“그렇기야하지만, 너 독립하면 엄마 혼자서 적적하시잖아” “그렇다고 언제까지 엄마랑 같이 살 수는 없고 엄마도 이제 좋은 분 만나셔야지” “너 결심한거야? 독립하기로?” “결심하고 말고 할게 뭐있어 나오면 나오는거야” “너 나오면 니 맘대로 쭉쭉 달릴텐데 작업실에나 제대로 나오려나” “나와야지”
“밥은 어떻게 먹고 다니고?” “뭔 걱정이야? 누나랑 같이 먹으면 되지 누나 밥 먹을 때 한 그릇만 더 차려주면 되겠구만” “뭐야? 내가 니 파출부야? 내가 왜?” “다 차린 밥상에 밥공기 하나 더 올려주는게 뭐가 그리 어렵다구” “아예 우리 집에 들어와서 산다 그러시지 왜?” 준결, 박수를 치면서 “오호~그거 참 좋은 생각이다 누나내가 여태 그리 좋은 생각을 왜 못했지? 이참에 그냥 같이 살까 우리” “노~올~고 있네~하준결 봐주니까 이제는 방방 날라다니시네 됐거든..요..” “됐네 됐어 나도 싫다구 다 늙은 누나 구제해줄랬더니 내 희생정신을 못마땅해하고 나도 됐거든...요..”
“너 자꾸 나한테 늙었다 하는데 말이야 나 이제 서른이거든 아직 한참때라구” “그렇지 아직 하~~안~~참~때지” “하준결 너 고작 세 살 차이 같구 꽤나 어린척하신다” “고작 세 살차이? 먹은 밥그릇 수 한번 생각해봐 고작 세 살차인지 아..맞다..누나는 좀 많이 먹으니까 한 다섯 살 차이쯤 생각해야되나?“” “뭐어? 너? 으휴 졌다 졌어 라면이나 드셔~어여~”
“움하하하 누나도 많이 먹어” “구박할때는 언제고?” 밉지않게 눈을 흘긴다.
딸랑 소리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앳 되어보이는 스무살 남짓 아가씨 “어서 오세요” 알바생이 인사한다. “저기요 주인 아저씨 어디 가셨어요?” “아저씨 오늘 안 나오세요 무슨 일이신지?” “아니요 됐어요 내일은 나오시죠?”
“네 내일은 나오실거에요” “내일 다시 올께요” 예의바르게 꾸벅 인사를 하면서 나간다. 알바생 갸웃거리며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아저씨를 왜 찾지? 혹시?”
서하, 준결 갸웃거리는 알바생을 본다. “누나 다 먹었어?” “응 나갈까?” “그러자” 계산하고 나가면서 뒤돌아보는 서하 ‘아까 그 손님은 누구지?’ 운전중인 준결, 말없이 앉아있는 서하, “무슨 생각해?” “아무것도” “아까 그 손님 누굴까? 누나?” ‘어?’ “너 내 생각 읽었냐?” “누나도 그 손님 생각했어? 재밌네” “뭐가?”
“우리 같은 생각을 했잖아 서로에게 익숙해져간다는 말인데 누나도 나도 그렇게 개성이 없는 사람들이었나? 우리 서로 너무 빨리 익숙해지는거 아니야?” “너만큼 개성 넘치는 사람이 또 있을라고”
“그니까 한 개성 하는 나인데, 누나 왜 나한테 빨리 익숙해지냐? 내가 스폰지같아? 아주 쫙쫙 빨아들여?” “하준결 또 또 넘친다” “내가 쫌 그렇지?” “많이 그렇지”
“나도 알아 근데 원래 잘난걸 어떡해 얼굴, 몸, 머리, 넘치는 개성까지 어디 한군데 빠지는데가 없잖아 이런 내가 겸손하면 그게 더 웃기잖아 안그래?” “그래 너 자~알 났다” “고마워 알아줘서”
늦은 저녁 작업실, 서하 모니터 앞에 앉아서 소설 작업 중이다. 준결 태엽 시계를 요리조리 만져보고 있다. 갑자기 울리는 전화벨 소리 “따르릉 따르릉” 준결 무심하게 수화기를 든다. 태엽 시계를 만지작거리면서 “여보세요” “단서하씨 계십니까?” “계시기는 한데, 누구세요?”
“단서하씨께 자문을 구할 것이 있어서 실례를 무릅쓰고 전화를 드렸습니다 계시면 좀 바꿔주세요” “자문이라니요? 무슨?” “그건..서하씨께 직접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준결, 의아해하면서 “네..잠시만 기다리세요”
서하 무슨 일이냐는 듯 준결을 본다. 준결 모르겠다며 어깨를 으쓱해보이고,
서하에게 수화기를 건넨다. “여보세요 전화 바꿨습니다” “아..서하씨 되십니까?” “네..그런데요 누구세요?”
“저는 추리 소설을 습작하는 추리 소설가 지망생입니다 제가 요즘에 추리 소설을 한편 쓰고 있는데요 직접 한번 봐주셨으면 해서요”
서하, 표정이 풀리면서 “아,,네..추리 소설 쓰시는구나 읽어볼께요 메일로 보내주실 수 있을까요?” “메일로 말고, 직접 뵙고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직접..이요?” 당황스러워하면서 “글쎄..요..그냥 메일로 보여주시면 안될까요?”
“혼자 나오기 그러시면, 아까 전화 받은 분이랑 같이 나오셔도 됩니다 직접 뵙고 이것 저것 여쭤보면서 자문을 좀 구하고 싶어서요 시간 좀 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