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상가는 문을 닫고 주점과 객잔만이 간간이 불을 밝힌 밤이었다.
밤은 또 밤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아웃!”
“헉헉헉!”
괴상한 신음에 낙천은 어두운 골목길로 저절로 눈이 갔다.
두 인영이 한데 엉켜 열심히 방아를 찍고 있었다.
“시……!”
욕설을 퍼부으려 했던 낙천은 최대한 발소리를 죽이고 슬쩍슬쩍 골목으로 다가갔다.
그런 낙천 뒤로 두 인영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낙천이 돌아봤다. 눈을 번들거리고 있는 곽홍과 백사웅이 바짝 붙어 손가락으로 입을 가리고 있었다.
히쭉 웃어 보인 낙천이 다시 살금살금 발을 옮겼다.
“이러면 안 되는데……! 저게 사람이 할 짓이야. 개돼지도 아니고……”
뜨악!
갑자기 나타난 막청지의 말에 낙천을 비롯한 곽홍과 백사웅이 두 눈을 부릅뜨며 바라봤다.
큰소리에 골목 안쪽에서 방아를 찍던 두 인영이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엄마야!”
“우씨!”
옷을 추스르고 얼굴을 가린 채 도망가는 여인을 보고 사내는 인상을 팍 찡그리며 뛰쳐나왔다.
하지만 사내는 낙천을 비롯한 두 명과 그 뒤의 덩치 큰 막청지를 보자 슬그머니 고개를 내리고 재빠르게 도망친 여인의 뒤를 쫓았다.
낙천과 곽홍, 백사홍이 흥을 깬 막청지를 동시에 쏘아봤다.
“그러면 안 돼!”
막청지의 말에 곽홍은 헛기침을 토해냈고 백사홍은 입술을 삐죽거렸다.
따악!
하지만 낙천은 막청지의 등판을 후려쳤다.
“어우우우우!”
얼마나 아픈지 막청지가 몸이 비비 꼬며 괴성을 질렀다.
“어린 놈의 새끼!”
낙천은 그 한마디만 하고 어슬렁어슬렁 걸어갔다.
먼저 앞장서서 걸어가는 낙천을 셋이 쫓아가는 모양새가 되었다. 곽홍이 입을 열었다.
“내 알아보니 일향루(一香樓)가 그리 좋다고 하더군. 이리로 쭉 가다 보면 나오는 곳이네.”
곽홍이 은근슬쩍 말을 낮추었다.
낙천은 자신부터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고 반말을 하니 상관하지 않았다.
막청지는 그가 만임조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편이라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백사웅만 기분 나쁘다는 듯이 슬쩍 째려봤다. 곽홍이 “뭐?”하는 표정으로 뻔뻔하게 구니 마음대로 하라는 듯이 고개를 팩 돌려버렸다.
“말만 잘하면 수인장 소속은 술값이 공짜라고 들었네.”
곽홍의 말이 끝나자마자 남은 세 사람의 발걸음이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엄청 빨라졌다.
점점 거리의 불빛이 밝아졌다.
주로 밤에 깨어나는 주점과 홍등가가 밀집된 곳이라 밤이 깊어가는데도 거리는 불야성을 이루었다.
술을 마실 생각에 어딘지 만임조 일원들은 들떠 보였다.
낙천 역시 나쁘지 않은 기분으로 거리의 이모저모를 살피고 있었다.
“야오옹!”
어딘가 익숙한 소리에 낙천은 고개를 들었다. 생선을 훔쳐 자신을 귀찮게 했던 고양이 녀석이 지붕을 타고 내달리는 것이 보였다.
“지길! 조그만 녀석이 발도 넓다. 이곳까지 오다니.”
“뭐, 누구 아는 사람이라도 있나?”
곽홍은 낙천에게 지대한 관심이 있는 것처럼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시시.”
낙천은 짧은 대답에 모두가 깜짝 놀란 눈으로 주변을 다시 둘러봤다.
“이름을 들어보니 여인이잖나? 대체 그 짧은 시간 동안 언제 또 여인을 알게 되었나?”
묻는 곽홍뿐 아니라 막청지도 흥미롭다는 얼굴로 낙천을 바라봤다. 백사웅은 묻기까지 했다.
“예뻐?”
낙천은 한쪽 눈썹을 치켜세우다가 한심하다는 얼굴로 답했다.
“그래, 예쁘다. 아주!”
“그만 들어가자고.”
그때, 곽홍이 한 기루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낙천과 백사웅, 막청지도 두 말없이 곽홍의 뒤를 쫓았다.
곽홍은 들어가자마자 입구에 선 사내에게 다가갔다. 사내는 기루의 분란을 해결하는 무인인 듯 덩치와 인상이 남달랐다.
곽홍이 사내의 귓가에 대고 작게 말했다.
“수인장에서 왔소.”
경계하던 사내가 곽홍의 말에 인상을 찡그리며 구시렁거렸다.
“정말 너무들 하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이리 찾아오면 내 입장이 뭐가 되나?”
원만하게 들어갈 줄 알았던 곽홍은 수인장에서 파견된 사내의 짜증에 얼른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이구! 미안하오. 안에 우리 말고 또 본 장의 누군가가 와 있나 보오. 내 눈치가 없는 사람도 아니고 같은 수인장 동료로서 오늘은 이만 물러나겠소이다.”
그리 말한 곽홍은 뒤를 돌아 낙천과 나머지 만임조에게 가자는 듯이 양손을 밖으로 흔들어댔다.
발끈한 백사웅이 뭐라고 한마디 하려는 순간, 곽홍이 참으라는 듯이 연방 눈을 껌벅였다.
그동안 사내는 눈치 빠른 곽홍이 제 불편한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 상당히 기꺼웠다.
더군다나 자신도 적지 않은 덩치를 가졌는데 자신의 정수리가 어깨에 닿을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큰 막청지까지 눈에 보였다.
덩치가 전부는 아니어도 그 위압감 때문에라도 대부분 지고 들어가는 것이 현실이었다. 자신이 일향루에서 일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덩치 때문이라는 것을 봐도 알 수 있었다.
아무튼, 그런 놈들만 있는 건 아니지만, 저 어마어마한 덩치만 믿고 겁박하듯 무조건 밀고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한번 좋게 보자 모든 것을 좋게 보게 된 사내는 봐줬다는 듯이 말했다.
“오늘만 들어가쇼. 대신 너무 비싼 건 시키지 말고.”
눈을 반짝인 곽홍이 사내를 돌아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정말 그래도 됐겠소? 내 그냥 가기도 사실 참 뭐한 것이 동료들에게 이곳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잔뜩 자랑을…….”
“참, 말 많네.”
곽홍의 말을 끊고 낙천이 먼저 불쑥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백사웅이 쫓았고 막청지는 쫓아가면서도 눈치를 보듯 입을 열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낙천의 행동에 사내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걸 본 곽홍이 말했다.
“동료들이 좀 철이 없어서 말이오.”
사내는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안에 금전장 무인들도 와있네. 알아서 조심들 하는 게 좋을 거야.”
멈칫하던 곽홍이 고맙다는 말을 중얼거리곤 먼저 들어간 동료들의 뒤를 쫓았다.
밖에서 본 것보다 안은 훨씬 넓었다.
그 넓은 공간에 빈자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은 삼삼오오 탁자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공간 정중앙엔 둥그런 무대를 두고 그 위에 악사들이 앉아 연주하는 것이 보였다. 연주 소리는 과하지 않은 크기로 장내의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
그리고 무대를 중심으로 백 평 정도의 공간이 천장도 없이 뚫려있었다.
위층에 올라간 사람들도 아래층의 음악을 즐길 수 있는 복층 구조였다.
주변을 둘러보던 낙천은 딱 하나 남은 빈자리를 찾아 그곳으로 만임조 조원들과 함께 걸어갔다.
“지길, 술 먹기 드럽게 힘드네.”
낙천이 중얼거리는데 옆에서 소리가 들려 왔다.
“어? 이게 누구야?”
낙천과 모두가 돌아봤다.
스무 명은 됨직한 사내들이 앉아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이 앉아 있는 자리는 만임조 인물들이 앉을 빈 탁자의 바로 옆이었다.
“누군데?”
“만임조 조원들.”
“아! 그 만임조!”
서로 주고받는 말투는 물론 낙천 일행들을 보는 눈빛에도 비웃음이 서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