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는 뭐 저딴 놈이 다 있나 싶었다.
얼마나 부아가 치미는지 뒤통수라도 한 번 쳐봤으면 좋겠다 싶었다. 마침 담벼락에 떨어진 기와 조각을 본 사내는 그걸 집어 들었다.
“꼬르륵!”
아이의 배에서 나는 소리에 낙천은 뒤를 돌아봤다. 기와를 던지려고 있는 힘껏 팔을 올린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사내의 코에서 콧물이 찔끔 나왔다.
어이가 없어 사내의 벌거벗은 몸을 훑어보던 낙천은 사내의 가랑이를 보고는 움찔하며 한 발자국 물러섰다.
놀란 마음을 추스른 낙천은 사내에게 느긋하게 다가갔다.
겁에 질린 사내는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다가 벽에 등을 부딪쳐 들고 있던 기와도 떨어트렸다.
사내에게 다가가던 낙천이 갑자기 몸을 틀어 여전히 양손을 들고 있는 아이에게 다가갔다.
“뭐라도 사 먹어라!”
들고 있던 전낭을 던져 주었다.
‘이 시방새야. 니가 한 번 그 돈으로 뭐라도 사 먹어 봐라. 코찔찔이 사탕 하나 못 사 먹겠다.’
아이는 내심 중얼거리며 어이없는 표정으로 낙천을 바라봤다.
낙천은 흐뭇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꼬르륵!”
이번엔 자신의 배에서 신호가 들려 왔다. 잠시 머뭇거린다 싶더니 낙천은 아이의 손에서 슬그머니 전낭을 빼앗아 들었다.
“어차피 저놈 배만 채울 텐데 이 돈이 너한테 무슨 도움이 되겠냐?”
말을 내뱉은 낙천은 제가 생각해도 민망했는지 사내에게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이 시벌……음아!”
욕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제 처지에 잠시 구시렁거린 낙천은 눈을 부라리며 사내에게 말을 이었다.
“한 번만 더 이딴 짓거리를 저 애새끼한테 시켜라? 아니, 왜 니가 할 일을 어린 새끼한테 시키고 지랄이냐고 지랄이?”
말을 할수록 예전에 탈혼귀조에게 시달린 것이 기억나 낙천은 흥분했다.
“알았냐, 새꺄?”
“……”
사내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낙천은 귀찮다는 듯이 골목길을 걸어나갔다.
갑자기 부아가 치민 낙천은 빠르게 되돌아가서 사내의 가랑이 사이를 발로 찍어버렸다.
퍼억!
“크아아아악!”
아이에 대한 부아가 아니라 왠지 사내가 가진 것에 대한 분풀이 같았다.
시원한 얼굴로 하늘을 올려다보던 낙천은 무언가 생각난 듯 다시 뒤를 돌아봤다.
이번엔 왜 또 하는 표정으로 사내와 아이가 파랗게 질려 버렸다.
그런 사내와 아이의 두 눈에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았다.
“……너희들 친구 필요 없냐? 날 위해서 죽을 수 있는 친구면 더 좋고.”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던 사내의 얼굴엔 결국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정말 왜 이런데요? 흑흑……! 다시는 소매치기 안 할게요.”
“……싫음. 말고!”
골목을 빠져나온 낙천은 배에서 연신 들리는 꼬르륵 소리에 제 홀쭉한 전낭을 바라봤다.
“에잇! 진짜 거지도 이런 상거지가 따로 없네!”
중얼거린 낙천은 저잣거리를 헤매다가 벽보가 걸린 상가 건물을 무심코 지나쳤다.
그중 한 문구가 눈에 확 들어온 낙천은 가던 발걸음을 돌려 벽지를 향해 들러붙었다.
[수인장(秀人莊) 인원 모집!]
낙천의 눈에 들어온 문구는 여러 문구 중에 딱 하나밖에 없었다.
“적은 노동, 빵빵한 급료”
✻ ✻ ✻ ✻ ✻ ✻ ✻
수인장은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빼어난 사람들이 모인 문파라는 뜻이었다.
그 이름 때문인지 30명을 뽑는데 수백 명은 족히 모인 듯했다.
그 삼십 명 속에 낙천은 단지 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합격했다.
뭔가 무림맹(武林盟)의 대림주(大林州) 지부 산하 소속치고는 허술한 듯했지만, 낙천은 합격했으니 상관없다고 여겼다.
일주일이 순식간에 흘러갔다.
일이 단순해서인지 낙천의 적응력이 빨라서인지 수년간 해온 일처럼 무료해진 일과를 보내고 있었다.
통통통!
경쾌한 칼질 소리가 났다.
안에선 요리하고 열린 창밖으론 긴 탁자 하나와 의자 네 개만 놓인 아주 간소하고도 협소한 가게였다.
낙천은 의자 가장자리, 그러니까 국수를 말고 있는 주인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 있었다.
가게를 지나칠 때부터 났던 얼큰하고 고소한 국물 냄새가 더욱 진하게 낙천의 코를 자극했다.
국수를 말고 있는 주인을 바라보다가 낙천은 공복을 참지 못하고 젓가락부터 챙겨 들었다.
누군가가 옆에 앉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그저 젓가락을 손에 쥔 채 바삐 움직이는 주인을 애타게 바라봤다.
어느덧 탁자는 낙천을 포함한 네 사람이 모두 채워져 더는 앉을 자리가 없었다.
주인은 이미 새로 온 이들의 국수까지 말아 한 번에 그릇을 죽 내려놓았다.
“후루룩! 후루룩!”
네 사람은 모두 공복이 심했는지 걸신들린 사람처럼 국수를 흡입했다.
주변의 시끄러운 소리가 국수를 흡입하는 소리에 밀려났다. 마치 이곳만 딴 세상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갑자기 가장 끝자리에 앉아 있던 사내가 국수를 입에 넣다 말고 젓가락을 슬며시 내려놓았다.
“험험!”
사내의 신호에 낙천을 뺀 가운데 두 명이 그를 바라봤다.
“흠흠! 어차피 우린 같은 조직에 속한 동료가 아니요? 이참에 통성명이나 합시다.”
뽑힌 30명 중 26명은 이미 수인장에 연줄이 있는 터라 세 각(閣)과 다섯 당(堂)이 알아서 각각 차출하듯 데려갔다.
문제는 남은 이 네 사람이었다. 어느 각이나 당에서도 이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연줄이 없는데 실력이나 심성도 알 수 없으니 그들 당주나 각주 입장에서는 괜히 데려갔다가 골치 아픈 일만 생길까 우려가 된 것이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단지 귀찮다는 것이었다.
결국, 네 사람만 속한 만임조(萬任組)가 생겨났다. 원래는 한 조에 적어도 15명은 채워져야 하는데 임시방편으로 네 명만이 우선 한 조로 배치된 것이다.
만임조, 이름 그대로 수많은 일을 해야 하는 조직이었다. 다른 조직이 원하는 일은 무조건 해야 하는 땜빵 식의 조라고 할 수 있었다.
이 만임조가 얼마나 주먹구구식으로 대충 만들어졌는지 일주일이 지나는 동안 조장도 없었고 서로 인사를 나눈 적도 없었다.
통성명을 하자고 한 사내는 40대로 보였다. 딴에는 자신이 제일 연장자로 보이니 먼저 나선 것이다.
“나는 고촌(古村)에서 온 곽홍이라고 하오. 외진 곳이지만 사람들 인심이 좋고 풍광도 나름 볼만한 곳이라오. 아, 물맛도 참 좋소. 아 그러고 보니 우리 동네 뒷산이 또……”
곽홍은 끝도 없이 자질구레한 것까지 구구절절 늘어놓았다. 원래 곽홍은 합격자 명단에 들 수 없는 사람이었다. 뒷돈을 대고 들어왔다는 공공연한 비밀이 수인장 내에 퍼져 있었다.
곽홍만이 자신만의 비밀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곽홍이 떠드는 동안 낙천은 제 그릇에 국수를 뚝딱 해치우고는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점점 불어 터지는 곽홍의 국수를 본 낙천이 못마땅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지길, 저 아까운 국수 다 부네.”
드디어 말을 마친 곽홍이 자리에 앉아 면이 약간 부른 국수를 먹으려고 젓가락을 들었다.
곽홍 옆으로는 그의 말을 얌전히 듣고 있느라 불어터진 국수를 입으로 가져가는 사내가 있었다.
키도 덩치도 남들 두 배만 한 사내는 어떻게 그 작은 의자에 앉아 있는지 신기할 지경이었다.
사내는 곽홍이 앉자 입으로 가져가던 국수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섰다.
곽홍도 사내가 일어서자 먹으려는 국수를 한 입도 먹지 못한 채 젓가락을 내려놨다.
“음……, 음……, 막청지라고 합니다. 우남촌에서 왔어요.”
종이 쪼가리 하나라도 보이면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 주위에 버린 사람을 찾는 듯이 안절부절못하다가 결국 자신이 쓰레기통에 버리는 사내였다.
“……저 역시 잘 부탁합니다.”
말하는 속도가 얼마나 굼뜬지 곽홍이 인사할 때와 별다를 것 없는 긴 시간이 흘렀다.
곽홍과 막청지는 드디어 국수를 먹기 시작했다.
퉁퉁 불은 국수였다.
불기 시작할 때부터 부지런히 먹어치운 세 번째 사내는 빈 그릇을 내려놓고 기분 좋은 한숨을 내쉬었다.
양옆을 살핀 사내는 귀찮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백사웅이오. 무죽촌에서 왔소.”
말을 툭 내던지는 사내는 마른 체형에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가 자신이 살던 무죽촌에서는 독사라고 불릴 만큼 독종이라고 것을 곽홍은 알고 있었다.
남들이 모르는, 그것도 남들이 굳이 알려고 들지 않는 작은 것까지 모두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곽홍이기에 백사웅에 대해서도 대충은 알고 있었다.
지금도 백사웅의 태도를 보곤 되도록 말을 짧게 한다는 정보까지 머릿속에 꽉꽉 구겨놓았다.
곽홍은 퉁퉁 불다 못해 세 배가 된 면발을 후르륵 집어삼켰다. 짧은 인사말이 참으로 다행으로 여겨졌다.
셋 모두가 국수도 다 먹었겠다 마지막 남은 낙천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국수를 가장 먼저 끝내버린 낙천은 하도 인사말이 길어지자 어느새 턱을 공개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