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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일월오봉도 (日月五峯圖)
작가 : 별넷은꿈
작품등록일 : 2017.10.6

왕은 자신이 그리고 있는 그림에 살아있는 소나무의 영혼을 넣어 호위무사로 삼고 싶어 한다. 이 어명을 받은 박수 무당은 하늘의 기운을 건드려 소나무에 영혼을 불어넣고, 그 벌로 오백년이 훌쩍 넘는 세월 동안 죽지 못하고 살아, 현재 유명 남자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되어 있다. 형제애로 뭉친 여섯 명의 멤버들은 2박 3일 촬영 중 그들 서로간의 비밀을 알게 되고, 박수 무당은 영생을 끝낼 단서를 찾아 나선다.

 
21화. 오늘 [완결]
작성일 : 17-10-06 17:03     조회 : 257     추천 : 0     분량 : 6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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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효기 뭐해?”

 

 댄형과 케니형이 나의 작업실로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사 들고 찾아 왔다. 여름날 오후에 웬일로 두 분이 연락도 없이 오셨을까 싶다. 언제봐도 반가운 형들의 얼굴에 미소와 장난기가 가득한 게 뭔가 나를 놀려주러 왔다는 걸 직감한다.

 

 “무슨 일인데 꿍꿍이를 숨기고 선물부터 들이미실까? 내 팬픽이 너무 감동적이었나?”

 

 “재미없게 뭘 그렇게 빨리 눈치채고 그래!” 댄형의 말이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이 벌써 구 년이 넘어간다. 데뷔전부터 숙소에서 한솥밥 먹은 시간이 있는데, 이 정도는 알아봐 줘야 되는 거 아냐, 라고 말하며 형들과 같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려고 연습실 한쪽 벽에 붙어 있는 테이블로 향한다.

 

 “내 팬픽 어땠어? 다 읽었어?” 나의 질문에 둘이 눈빛을 교환하더니 케니형이 입을 뗀다.

 

 “재미있게 다 읽었어. 정말 그런 일이 있었는지, 우리 모두 기억이 하나도 없는데…, 네가 촬영해 놓은 동영상 없었으면 우리 모두 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했을 건데…그런데 너!”

 

 웬일로 케니형이 말을 하다 끊고 뜸을 들인다.

 

 “뭐야?”

 

 나의 재촉에 댄형과 또 눈빛을 교환하더니

 

 “너 하나 놓친 게 있어!”

 

 “그래서, 우리가 보여주러 왔어!” 댄형이 케니형의 말을 받으며 케니형의 핸드폰을 내민다. 핸드폰 속, 내 얼굴이 찍힌 동영상을 눌러 보라며 재촉한다. 내가 댄 형에게서 핸드폰을 받아들자, 댄형과 케니형은 뭐가 재미있는지 둘이 바라보며 킥킥거리고 있다.

 

 내 얼굴의 옆모습이 찍혀있고, 배경으로 댄형, 나비형의 얼굴이 보인다. 장소는 숙소 거실인 것 같아 보인다.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나, 형들에게 할 이야기가 있어…”라고 말하는 나의 모습이 보인다. 나는 무슨 대역 죄인마냥 축 처진 어깨에 얼굴을 바닥으로 향한 체, 이야기를 계속한다.

 

 

 

 나, 형들에게 어제 하지 못한 이야기가 있어… 어제는 너무 놀라고 어이없고 무서워서 이야기할 기회를 놓쳤어. 한번 기회를 놓치니까, 언제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몰라서…

 

 더이상 아무 말 안 하고 거짓말 하는 거 못하겠어.

 

 나, 그때, 빈 형에게 소나무 영혼을 모아오라고 말한 왕이 맞아. 하지만 정말 나도 우리가 어떻게 여기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는지 몰라. 어떻게 모두를 제자리로 돌려보낼 수 있는지도 몰라. 빈형이 소나무의 영혼을 다 깨운 사실도 모르고 있었는데, 어제 그 사실을 알았어. 너무 무서웠어. 내가 무슨 짓을 해서 그동안 벌을 받았는지, 어제서야 겨우 그 이유를 알았어. 정말이야!

 

 “너 그게 무슨 말이야?” 촬영하느라 화면에 잡히지 않은 케니형의 목소리가 들린다. 댄형이 그런 나를 거실 소파에 앉히는 모습이 보인다. 나비형이 다정하게 내 어깨를 잡아주며 자세히 이야기해 보라는 말을 한다.

 

 내 영혼은 창덕궁 돈화문 앞에 돌덩어리 안에 갇혀 있었어. 창덕궁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모든 사람이 밟고 지나가는 돌덩이 안에 내 영혼이 있었어. 그 안에서 수백 년 동안 나는 내가 태어난 궁이 불타는 것을 수차례 지켜봐야 했고, 나라가 주권을 잃어 힘없이 죽어가는 걸 지켜봐야 했고, 그런 살인마들이 나를 밟고 가는 걸 참고 견뎌야 했어. 하루에도 수십 수백의 사람들이 나를 밟고 지나가는걸 수백 년 동안 겪어야 했어.

 

 

 

 동영상 속의 나는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다. 화면 속 나비형의 놀란 얼굴이 우리가 장난으로 촬영하는 게 아닌 걸 알 수 있다. 나는 이런 기억이 없는데! 동영상의 일시 정지 버튼을 누르고 케니형과 댄형을 본다.

 

 “이게 언제야? 왜 난 기억이 없지?”

 

 “벌써 다 본 거야? 너 거실 소파에서 한참을 우는데…”케니형의 놀리는 말에 댄형이 설명을 끼얹어 준다.

 

 “그 2박 3일 촬영 때, 둘째 날 아침이야. 네오랑 빈이 열 펄펄 끓어서 병원에 보내고, 네가 마음의 충격 받았었나 봐. 둘이 병원 가는 거 보고 숙소에 들어와서는 우리 붙잡고 할 이야기 있다고 하면서 시작한 거야. 케니는 이번에는 내가 동영상 찍어야지 하면서 장난처럼 촬영한 건데, 이게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네!”

 

 형들에게 왜 흰 한복 입은 선비와 소나무에 대한 기억이 없느냐고, 내가 찍은 동영상 있다고, 기다려 보라고 다그치던 내 모습이 생각난다. 그러면 나도 잃어버린 기억이 있다는 건가? 내가 진짜 이 모든 일이 일어나게 만든 왕이었나? 난 그냥 엔형이 시킨 왕 역할만 충실히 했을 뿐인데!

 

 다시 재생 버튼을 누른다.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려다 목이 메 몇 번의 깊은숨을 들이쉬는 내 모습이 보인다. 케니형이 그런 나를 위해 티슈 한 상자를 집어 오느라 이리저리 흔들거리며 숙소 거실을 핸드폰으로 휙 하니 찍은 모습이 보이고, 그사이 나비형은 나를 위해 물 한 컵을 들고 온 것이 보인다. 댄형은 여전히 내 옆에서 나를 달래고 있다.

 

 형들의 다독거림에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는 내 모습이 보인다.

 

 

 왕이었을 때, 그림을 그리다 소나무 안에 영혼을 집어넣으면 나의 몸을 지켜줄 듬직한 보호막이 되어 줄 것이라 생각했어. 그래서 영혼을 움직일 수 있다는 박수무당을 찾아 데려오라 하고, 그에게 소나무 영혼을 모아오라고 명했어. 하지만 나는 갑자기 죽어버렸고, 박수 무당에게 명한 일 따위는 잊어버렸었어. 그런데, 영혼은 죽지 못하고 돌덩이 안에 갇혀 있게 되었어, 처음엔 내가 어느 돌덩이 안에 갇혀 있는지 조차도 모른체였어, 몇백 년을 지나면서 내가 왜 어디에 있는지 깨닫게 되었어. 그러고 이십 년 전 어느 날 갑자기 내가 돌덩이 안에서 풀려났어. 눈을 떴는데, 갓 태어난 효기의 몸 안이었어. 한참 자라서 엄마에게 창덕궁에 가신 적이 있느냐고 물어봤더니, 이십 년 전 나 낳기 전 구정연휴에 서울 올라갈 일이 있으셨었는데, 관광 삼아 창덕궁에 잠깐 들른 적이 있다고 하셨어. 하지만, 왜 갑자기 몇백 년 만에 내가 돌덩이 안에서 풀려나서 영혼이 이동했는지 정말 모르겠어. 어떻게 해야 형들의 고통을 덜어 줄 수 있을지 모르겠어!

 

 펑펑 울음을 터트리는 내 모습이 보이고, 케니형도 촬영을 멈춘 듯 여기서 동영상이 멈춘다.

 

 

 멍해진 얼굴로 형들을 바라본다.

 

 “더 찍은 거 없어? 이게 끝이야?”

 

 케니형과 댄형을 번갈아 바라보며 질문하는 나에게 댄형이 아이스크림을 한입 떠 입에 넣으며 딴청을 부린다.

 

 “이거 맛있다”

 

 “다른 것들도 보여줄까?”

 

 뭔가 자기들만 아는 엄청난 비밀을 나에게 말해줄지 말지 둘이 아주 신이 났다. 케니형이 뭔가 더 큰 비밀을 숨기고 있는 듯, 또 뜸을 들인다.

 

 “뭐야, 빨리빨리 꺼내 나봐!”

 

 재촉하는 나에게 케니형이 자신의 핸드폰 안에서 다른 동영상 하나를 더 찾아서 나에게 건넨다.

 “이건 내가 촬영할까?”라는 말과 함께 케니형의 목소리가 들린다. 화면이 마구 흔들리며 잔디밭 위의 돗자리와 피크닉이라도 온듯한 도시락과 음료수 병들이 보인다. 드디어, 다시 나와 나비형과 댄형의 얼굴이 보인다.

 

 

 

 “얼른 메이크업 다시 받으러 가.” 나를 잔디밭 위의 돗자리에서 밀어내는 나비형의 모습이 보인다. 셋만 남은 형들.

 

 “나중에 빈이 선유도에서 주술 외우고 나면 우리 다 같이 소나무 영혼이 떠난 척 연기하자. 그러면 효기도 죄책감을 벗고 좀 마음 편해져서 왕 역할을 제대로 빈에게 할 수 있을 거 같아.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빈이도 자기 자신을 믿고 주술을 외워서 자신이 원하는 걸 이룰 수 있을 거 같아.”

 

 댄형의 말에 나비형이 말을 보탠다.

 

 “나중에 내가 네오형에게 살짝 우리 계획을 이야기 할께.” 카메라 뒤편의 케니형의 목소리가 들린다.

 

 “와! 이거 재미있다. 하하하”

 

 

 

 동영상은 여기까지가 끝이다. 이게 뭐냐고 형들을 다시 다그친다.

 

 “케니가 추천했던 장소인 잠원 한강공원이야. 점심 먹으면서 우리끼리 오후 일정인 선유도에 가서 우리 안에 들어 있는 소나무 영혼들이 빈이의 주술 때문에 제자리로 돌아간 것 같이 하자고 연극 꾸미는 중이야.” 댄형의 설명이다.

 

 “그러면 이틀째 날 오후에 선유도 공원에서 빈형이 주술 외웠을 때 형들의 영혼이, 아니, 소나무 영혼들이 사라진 거 아니었어? 어떻게 그렇게 감쪽같이 연극들을 잘해? 그러면 지금도 형들이 소나무 영혼인 거야? 어떻게 몇 년 동안 나와 빈형을 속일 수가 있어? 내가 그렇게 소나무 영혼 이야기 할 때 모른 척 할 수가 있어?” 흥분한 나는 숨이 가빠온다.

 

 “어, 어. 진정해, 진정해” 케니형이 얼굴에 미소를 감추지 못하고 나를 달랜다.

 

 “우리 진짜 소나무 영혼에 대한 기억이 없어. 추리해 보건데 창덕궁에서 네가 ‘모두 제자리로 돌아가거라’ 했을 때 우리 모두 정말 제자리로 돌아갔나 봐.“

 

 다시 케니형이 동영상 하나를 더 찾아 보여준다.

 

 

 

 배경이 창덕궁 돈화문 앞이다. 죽이 척척 맞는 나와 빈형의 모습이다. 저 장면이 생각이 난다. 어렵게 창덕궁과 돈화문의 역사를 한 줄씩 빈형과 나누어 외우고 둘이서 다른 멤버들 앞에서 온갖 유식한 척은 다 했었다. 이 부분이 방송에 나갔었다.

 

 우리가 그러는 사이, 케니형은 핸드폰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멤버들을 모두 한 명씩 촬영했다. 모두들 카메라를 따라 이동을 하며 인정전에 다다른다. 케니형은 어느새 인정 문안으로 들어가서 자리 잡고 인정전 안으로 걸어 들어오고 있는 멤버들을 촬영하고 있다.

 “잘하고 있어?”라는 케니형의 말에

 “잘 속이고 있어!”라고 댄형이 답하고

 “응, 잘하고 있어”라고 네오형이 답하고,

 “아직 안 들킨 거 같아”라고 나비형이 답하는 모습이 찍혔다.

 그렇게 대화를 주고받는 형들 뒤로 나와 빈형이 인정문을 들어서는 것이 보인다.

 빈이 형과 나, 둘이서 셀카 찍는 모습이 찍혔다.

 

 케니형이 다시 핸드폰 카메라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현기증 난다고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곧 다시 나와 빈형이 보인다. 빈형이 나를 바라보고 있더니 휘청하니 옆으로 넘어지는 걸 내가 다급하게 두 손으로 붙잡아 형이 넘어지지 않도록 한다.

 “형!”

 “홍빈 형!”

 “형!”

 놀라고 다급한 나의 목소리가 들린다. 내 손에 들려있던 핸드폰이 바닥에 떨어져 부서지는 모습도 고스란히 찍혔다. 놀란 케니형이 우리 쪽으로 뛰어오는지, 동영상이 창덕궁 안의 돌바닥을 이리저리 흔들리며 찍혔고,

 “빈아!”를 외치는 케니형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동영상이 멈춘다.

 

 “생각해보니까 이 동영상 찍을 때, 빈이 주술이 풀릴 때 우리들 주술도 풀렸나 봐. 이 시점을 기준으로 우리들도 기억이 없어.” 케니형이 넔을 놓고 동영상을 다시 리플레이 하는 나를 보며 말한다.

 “그날 우리 모두 한자리인 창덕궁에 모였고, 빈이 주술을 부렸던 그 옛날의 선비 몸도 댄형이 흡수해서 궁 어딘가의 기둥으로 인정전에 있고, 우리가 이렇게 서로를 막 아껴서 그 영혼의 저주가 풀렸나 보네!”

 

 “우리 이제 아무도 알지 못하는 비밀을 효기에게 알려 줬으니, 우리 촬영 스케줄 하러 일어설까? 그리고 효기야, 전혀 미안해할 필요 없어. 우리 아직 다 같이 한 팀이잖아!” 댄형이 아직도 리플레이 버튼을 눌러 영상을 다시 보고 있는 나에게 이야기한다.

 

 “난 내가 찍은 이 동영상들이 도대체 뭘까 하고 지우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이제 뭔지 알아서 더 기뻐! 내가 제일 중요한 걸 찍었어. 빈이랑 나비랑 네오도 이 동영상 봤어. 그래서 이 기쁜 순간을 같이 하고 싶었는데, 유닛활동 뮤직비디오 촬영이 오늘이어서 같이 못 왔어. 너한테 고맙다고 인사 꼭 전하레! 그리고 빈이 오늘 드라마 촬영 때문에 못 왔는데, 숙소에서 너, 무릎 꿇고 기다리래. 팬픽 완전 감동적이어서 펑펑 울었다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제 다 알았으니 너 가만두지 않을 거래. 하지만 이번에 곡 나오면 같이 유닛 하면 용서해 준다고 꼭 전하라고 했어. 하하하!”

 

 내가 촬영 이틀째 저녁 호텔 수영장에서 빈형을 멀리한 것이 왕 역할을 잘 하지 못할까, 왕이 아닌 것이 들키면 어쩌나 하는 걱정 때문이 아니라, 빈형에 대한 죄책감으로 형을 피했다는 사실을, 케니형이 찍은 동영상을 보고 이제야 알았다. 내 팬픽이 완전 우습게 되어 버렸다.

 

 케니형도 나처럼 숨기고 있는 비밀 영상이 있으리라 생각지 못했다.

 

 내 책상 위, 액자에 넣어둔 일월오봉도 그림을 바라본다. 내가 그리려 했던 그림, 그 안에 서 있는 네 그루의 소나무. 내가 형들에게 보내는 이 글로 오백년 훌쩍 넘는 시간 동안 형들이 겪은 모든 것이 용서되지 않겠지만, 최소한 소나무가 그림 이름이 되지 못한 이유는 밝혀진 것 같다.

 

 우리들만의 비밀이 또 하나 더 생긴 것에 유쾌하게 웃으며 자신들의 일정때문에 내 작업실을 떠나는 형들을 보며, 다시 한번 우리가 같은 팀이어서 고맙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내 글에서 끼워 맞추지 못한 사건들을 이어주는 이야기를 솔직하게 해줘서 완전 사랑스럽다. 형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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