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의 이야기 **
어제저녁 촬영이 끝나고 우리 모두 모여 우리가 어떻게 같은 시간대에 한자리에 모이게 되었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이 없는 대화를 오늘 새벽까지 이어왔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을 가진 사람은 없다. 정말 수백 년 동안 내가 빌어 온 순간인데, 우리가 모두 모이면 기적같은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았는데, 아무 일도 변화도 없다. 사실 우리에게 기적 같은 무슨 변화가 일어났어야 했다면 우리가 처음 한 팀으로 결성된 그 순간 일어났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거지. 왜? 왜! 이런 생각들로 무거운 머리와 마음으로 잠을 설친 나는 고열로 아침에 병원으로 왔다.
어제 우리가 모두 솔직하게 털어놓은 진실들은 나를 허무함으로 무너져 내리게 만들었다.
네오형과 나란히 단둘이 병실에 누워 포도당 주사를 맞고 있다. 그렇게 누워 형은 나에게 자신의 살아온 수백 년의 이야기를 아주 덤덤하게 해준다. 그리고 부탁한다. 기회가 있을 때, 그 기회의 순간이 당장 오늘이 되더라도 우리 모두를 제자리로 돌려 달라고 말한다. 모든 것은 제자리에 있을 때 빛난다는 형의 말에 나는 깊은 공감을 이룬다. 제자리에 있지 못해서 겪은 아픔을 내가 알기 때문이다. 나도 나의 이야기를 덤덤하게 형에게 한다.
죽음을 앞둔 나의 마지막 유언은 항상 나의 주검 가까이 오지 말라는 것이었다. 내 영혼이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친구들에게, 지인들에게 흘러 들어가는 것을 막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누가 죽어가는 사랑하는 사람을 혼자 내버려 둔단 말인가. 나는 항상 내가 알고 있는 누군가의 몸 안에서 눈을 떴다. 그래서 아무와도 소통하지 않는 고립된 삶을 살아 본 적도 있다. 그러나 결론은 마찬가지였다. 그런 몇 번의 삶과 죽음을 겪은 후 나는 달라져야겠다고 생각했고,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몇백 년의 지식을 사용했다. 돈을 모아 가난한 이를 돕고, 의사가 되어 아픈 이를 도왔다.
네오형은 지난 기억이 희미해지고 대부분은 지워지고 있다고 했지만, 나에게 걸린 또 다른 저주는 모든 것을 기억한다는 것이다. 나는 내가 거쳐온 모든 이의 삶을 기억한다.
“그러니까 약속해줘. 기회가 오면 우리를 제자리로 돌려놓겠다고.”
네오형의 말에 나는 ‘어떻게’는 모르지만 그렇게 하겠노라 형에게 약속했다. 그런 나에게 형은 다시 한번 부탁을 했다. 자신의 영혼을 제자리로 돌려 달라고.
감기약 때문인지 깜빡 잠이 들어버린 모양이었다. 그래도 잠을 좀 자서 그런지 몸이 내 의지대로 움직여 지는 게 느껴진다. 매니저 형의 목소리와 네오형의 목소리가 들린다. 나를 더 자게 내버려 두고 자신들만 다음 촬영지로 향할 계획인 듯하다.
큰소리로 “나 일어났어. 같이 가” 하고 외친다.
== 14화. 촬영 둘째 날, 07:00AM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