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 모피를 망토 형식으로 뒤집어 쓴 아리트메틱이 괴한의 목을 왼손으로 잡고 괴한의 몸을 들어올렸다. 괴한은 공중에서 발버둥을 치며 양손으로 아리트메틱의 왼손을 풀려고 했다.
“글리치인지 뭔가 하는 놈 때문에 지금 계집애하고 마술사를 못 잡았다는 얘기를 믿으라는 거냐?”
“무…뭘…모르는…놈…이구마….”
아리트메틱이 눈을 가늘게 뜨며 괴한을 바라보다가 왼손을 놓았다. 바닥에 떨어진 괴한은 주저앉은 채로 연신 기침을 했다.
“지금이라도 다시 가서 데리고 오면 거래는 유효한 걸로 치겠다.”
“콜록! 무리야. 대성당에 들어가 버렸거든.”
아리트메틱이 왼손으로 괴한의 멱살을 잡았다.
“대성당에 들어갔으니 데리고 오지 못 한다고?”
아리트메틱이 괴한에게 오른 주먹을 보여줬다.
“신이 가까울 것 같아, 내 주먹이 가까울 것 같아?”
“대…대성당 안엔 수호기사가 있다고!”
“수호기사?”
아리트메틱은 괴한을 코앞으로 끌어당겼다.
“그건 또 뭐 하는 놈이야?”
“기…기사단이 파견한 년이야. 장난 아니라고! 오른팔 밖에 없는 여자이긴 하지만, 혼자서 장정 열 명은 아무렇지도 않게 쓰러트리는 여자야!”
아리트메틱은 괴한을 땅바닥에 내팽개쳤다.
“망할! 기껏 고용을 했더니 쓸모가 전혀 없군!”
“글리치가 도와주고 있다는 얘긴 하나도 안 했잖아!”
“글리치라는 새끼가 도대체 무슨 녀석이기에 그 놈 때문에 데려오지 못 했다고 하는 거냐!?”
“이러니깐 곰팡이 놈들은….”
괴한이 고개를 떨구고 중얼거렸다. 아리트메틱은 괴한의 복부를 왼발로 걷어찼다. 괴한은 배를 드러내 보이며 바닥에 드러누웠다. 아리트메틱은 괴한의 명치를 왼발로 밞아 눌렀다. 오른팔을 뒤로 뻗었다.
“애쉬!”
애쉬는 자루가 긴 도끼를 입에 문 채 아리트메틱에게 다가왔다. 아리트메틱은 애쉬의 입에 물려있는 도끼를 오른손에 쥐었다.
“유능하지도 않아, 겁도 많아, 게다가 나…아니, 우리 종족을 모욕하기까지….”
“미안해! 살려줘! 내가 잘못했어!”
아리트메틱이 괴한의 목에 도끼 날을 댔다.
“묻는 말에나 대답을 잘해. 글리치라는 새낀 도대체 누구야?”
“다…답해주면 살려줄 거야?”
“답이나 해!”
아리트메틱이 소리를 내질렀다. 괴한의 몸이 움찔거렸다.
“그…글리치는 예전에 유명했었던 강도단의 리더였어.”
“강도단? 리더? 고작 그런 놈 때문에….”
“고작 그런 놈이 아니야! 그 녀석은 자기를 포함해서 단 네 명 만으로 황제의 황궁에 침입해서 여황의 목걸이를 훔쳤다고! 머리가 좋을뿐더러 실력도 좋은 괴물이야! 모르는 것도 없다고! 지금은 강도 짓에서 손을 뗀 것 같지만.”
“그럼 지금은 뭘 하고 있지?”
“그…그냥 브로커 짓이나 하고 다니는 것 같아. 원하는 정보를 알려주고, 의뢰도 주고 뭐 그런 것들.”
아리트메틱이 도끼를 들어 올렸다. 도끼 날이 괴한의 목에서 멀어졌다.
“대…대답을 잘 했으니, 살려주는 거지?”
아리트메틱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내가 언제 살려준다고 했나?”
“무…”
괴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도끼 날이 괴한의 목을 갈랐다. 아리트메틱은 도끼를 들어 올린 뒤 손등에 있던 곰 모피의 발 부분에 도끼 날을 긁어 피를 닦기 시작했다.
“뭔데?”
아리트메틱이 피를 닦으며 곁눈질로 뒤를 바라봤다. 아리트메틱의 뒤에는 오크가 늑대에서 내리고 있었다.
“대장. 두건 놈들. 쫓긴다.”
“도시에서?”
오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리트메틱이 한숨을 쉬었다.
“무능한 새끼들. 두 번 다신 인간 놈들을 고용하지 않을 거다.”
“대장. 어떻게?”
아리트메틱은 피를 다 닦고 오크를 향해 몸을 돌렸다.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녀석들을 계속 쫓아야지.”
“어떻게?”
“…그, 이놈이 말한 글리치라는 새낀 어디 있냐?”
아리트메틱이 도끼 자루로 괴한의 몸을 툭툭 건드렸다.
“글리치. 대성당.”
“그 놈도 대성당에 있냐?”
오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새끼가 대성당에서 나오면 바로 붙잡는다. 다른 건 몰라도 우릴 방해하는 놈이면 조져야지. 그리고 계집년하고 마술사놈이 루오프에서 뭘 하는지 알아내야겠고.”
“그 놈들? 알아야 해? 왜?”
“그래야 그 놈들의 행동을 예측해서 따라잡을 수 있으니깐. 그러니깐 네 목을 쳐버리기 전에 빨랑 가서 얘들한테 알려!”
오크는 옆에 있던 늑대를 타고 사라졌다. 아리트메틱은 애쉬를 지나치며 애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먹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
애쉬는 괴한의 몸을 향해 다가갔다.
“용사가 마왕을 봉인하고…”
“용사의 동료가 마왕을 봉인한 거예요.”
“무튼 간에! 마왕이 봉인됐고, 봉인한 수정의 마력을….”
“제가 마력을 불어넣어 보충하는 거죠.”
워르덴이 깍지를 끼고 뒤통수에 깍지를 낀 양손을 댔다.
“썅 되게 복잡하네.”
“한꺼번에 말하려고 하다 보니 복잡해진 거예요. 정리하니깐 꽤 간단해지지 않았나요?”
“어쨌든 미로를 통과하고 괴물을 돌파한 다음에 수정에 마력을 불어넣고 돌아오면 되는 거지?”
“예. 이 대화만 다섯 번 정도 반복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네가 얘기를 복잡하게 해서 그래.”
“전 최대한 얘기를 정리한 것 같은데요.”
워르덴과 베라가 얘기를 하는 모습을 글리치가 바라보고 있었다. 마리아가 글리치의 옆에 다가왔다.
“뭐 신경 쓰이는 거라도 있어?”
“있기야 있지.”
“뭔데?”
“확실하진 않아.”
글리치와 마리아에게 율리아가 접근했다.
“글리치씨? 마리아씨?”
글리치와 마리아가 율리아를 바라봤다.
“내 종자들이 자택까지 호위할거야.”
“언제 출발하지?”
율리아가 베라와 워르덴을 바라봤다.
“저 두 명이 출발하는 대로.”
“그거 고맙군. 마리아, 난 기사님하고 얘기할 게 있어서 그런데 자리 좀 비켜줄 수 있나?”
“왜?”
“그냥 얘기 좀 하는 것뿐이야.”
“난 딱히 상관없는데?”
“내가 상관 있어.”
마리아는 글리치를 바라보다가 워르덴과 베라에게 다가갔다.
“그래서,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합니까? 강도양반.”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뭐가?”
글리치가 곁눈질로 베라를 바라보자 율리아도 베라를 쳐다봤다.
“저 마술사?”
“아르티옴군 자체는 이상하지 않아.”
글리치가 눈길을 거두고 율리아를 바라봤다.
“그가 혼자인 게 이상하지.”
“혼자?”
“마왕이 봉인 되어 있는 수정의 유통기한을 늘리는 중요한 일을 수행하고 있는 사람한테 수행원을 단 한 명도 붙이지 않는다고? 충분히 이상하지 않나?”
“그냥 수행원을 붙이는 걸 까먹은 거 아냐?”
“그냥? 하! 우연이라고 말할 셈인가? 미안하지만 난 우연을 믿지 않는 사람이네.”
글리치는 몸을 왼쪽으로, 율리아는 오른쪽으로 돌려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내가 알기론 마술사들이 알고 있는 마술들 중에선 공간이동이라는 마술도 있는 것 같더군.”
“공간이동?”
“그래. 쓰는 데 많은 준비가 필요하긴 하지만, 일단 준비가 되면 상당히 유용한 마술이지.”
글리치가 걸음을 멈추고 율리아를 향해 몸을 돌렸다. 율리아도 걸음을 멈추고 글리치를 바라봤다.
“왜 공간이동을 쓰지 않는 거지?”
율리아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오른손으로 입과 턱을 감쌌다.
“…단장님한테 수호기사에 대해서 물어본 적이 있어.”
“그런가?”
“어. 길어봤자 이틀이면 끝나는 일이라고 들었지. 뭐, 결과적으론 한달 씩이나 걸렸지만 말이지.”
“게다가 아르티옴군의 실력은 나쁘진 않지만 적어도 푸른 숲을 정공법으로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은 아냐.”
“뭘 말하고 싶은 거야?”
“의도적으로 누가 실패하길 바라는 거 같지 않나?”
“설마, 마술협회에 사람들이 눈치를 못 챌 리가….”
“마술협회 전체가 그걸 바라는 걸 수도 있지. 아니면, 마음을 굳게 먹은 상급자가 감춘 걸지도.”
“그건…아니,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군.”
“짐작 가는 바라도 있나?”
“아뇨. 그냥 옛날 일이 떠오른 것뿐이야.”
율리아는 워르덴을 바라봤다. 워르덴은 의자에 앉아 검과 방어구들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상급자가 작정하고 일을 감추면, 일이 실행되기 전까진 그 누구도 모를 가능성이 크지.”
율리아는 글리치를 바라봤다.
“그래서 기사단이 개 같은 거고.”
“…자넨 기사단을 열렬히 신봉하는 사람인 게?”
“기사단이 아니라 기사를 신봉하는 거지. 썩은 내가 진동하는 기사단엔 관심 없어.”
“아무튼 의심스러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로군.”
“이 일에 관심이 많구만.”
“마왕의 봉인을 보강하는 계획인데 의심스러운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서 말이지. 좀처럼 마음을 놓을 수 없겠군.”
율리아는 글리치를 말없이 바라봤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 건가?”
“자기만 생각하는 사람 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세상의 평화에 관심을 쏟는 사람이구만.”
“그거야 당연하지.”
글리치는 눈길을 마리아를 향해 돌렸다.
“지금 이 세상이 개 같긴 하지만 마왕이 부활하면 이 세상은 더 개같이 변하겠지. 그러면 마리아하고 평화롭게 살 수 없을 테고.”
글리치는 눈길을 돌려 율리아를 바라봤다.
“옛날의 난 무법자였지. 사람들한테 피해도 많이 주는 그런 무법자 말이지. 그런 내가 이런 말 하는 게 이상하다고 느끼겠지만, 지금 내가 품고 있는 소망은 단 하나야. 마리아가 평화롭고 행복하게 사는 거. 그걸 위해서라도 이 일에 관심을 가지는 건 당연한 게 아니겠나?”
율리아는 허리에 오른손을 댔다.
“그렇게 말해도 잡혔을 땐 감옥에 보낼 거라고.”
“지금은 안 보내는 건가?”
“수행자를 데려왔잖아? 게다가 워르덴을 보살펴 준 것 같기도 하고.”
“이번 한 번만 봐주는 건가?”
“그런 셈이지.”
“평생 봐줬으면 좋겠군.”
“그건 안 돼, 이 양반아.”
“흥. 융통성이 없구만.”
“기사한테 융통성을 바라다니, 인생 헛사셨네.”
글리치가 피식 웃었다.
“재미있는 기사로군. 내가 15년만 젊었다면 자네를 데리고 다녔겠군.”
“그쪽 취향이었어?”
“무슨 말이지?”
“15년 전의 나는 여덟 살 이거든.”
“…생각 했던 것보다 젊군.”
“몇 살이라고 생각했는데?”
“적어도 34세는 될 줄 알았네.”
“내가 그렇게 노안인가?”
“수련에만 몰두하지 말고 외모도 좀 꾸미는 게 어떤가?”
글리치는 멍하니 있는 율리아를 내버려두고 워르덴과 마리아, 베라에게 다가갔다. 율리아는 가만히 서서 글리치를 바라보다가 따라갔다.
“언제 출발할 건가?”
“우리가 빨리 갔으면 좋겠어?”
“그래야 나하고 마리아가 집에 갈 수 있어서 말이지.”
“헹! 천년만년 여기에 살 게 해줄까?”
“저희 곧 갈 겁니다, 워르덴씨.”
“나도 알아. 장난 좀 쳐본 거라고.”
워르덴은 의자에서 일어서서 방어구를 하나하나씩 착용하기 시작했다. 베라는 의자에 앉아 가만히 바라봤다.
“소환술로 착용하면 되지 않나요?”
“아깝잖아, 마력이.”
“잠깐, 워르덴양, 아르티옴군.”
워르덴과 베라가 글리치를 바라봤다.
“왜 그래?”
“왜 그러세요?”
“그 소환술 말일세. 사람도 옮길 수 있나?”
“사람? 난 해본 적이 없어서. 샌님, 가능하냐?”
“가능이야 하죠. 엄청 비효율적이라서 문제지만. 사람을 옮기는 거라면 공간이동 쪽이 나을 겁니다.”
“마술실력이 낮은 사람치곤 지식이 많군.”
“실력이 없다고 해서 책을 못 읽는 건 아니니깐요.”
“아무튼 가능한 건가?”
“가능이야 하죠.”
“그럼 됐네.”
워르덴과 베라는 서로를 바라봤다. 워르덴은 어깨를 으쓱거리고 방어구를 다시 착용하기 시작했다. 베라는 워르덴에게 투구를 넘겨줬다. 워르덴은 투구를 받았다.
“좋아. 출발 준비 완료. 넌 다 챙겼냐?”
“예.”
“잘 살펴보라고. 곰 인형 놓고 갈지 모르니깐.”
“곰 인형?”
율리아와 마리아가 베라를 쳐다봤다.“
“걱정 마세요. 잘 챙겨 뒀습니다.”
“뭐, 그럼 준비는 잘 된 거겠지?”
“예.”
“엉.”
율리아는 몸을 돌려 대성당의 중앙부분으로 걸어갔다. 동시에 율리아의 종자 두 명이 각각 왼쪽 대각선 끝의 기둥과 오른쪽 대각선 끝의 기둥 앞에 섰다. 세 명은 하반신 정도의 길이를 가진 검을 꺼내 들었다. 검신에는 여러개의 홈이 파져 있었다.
율리아가 종자 두 명을 번갈아 바라봤다. 종자 두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하자고.”
율리아의 말과 함께 종자 두 명은 기둥에 파여져 있는 홈에 검을 끼워 넣었다. 종자 두 명이 검을 끼워 넣자 율리아가 중앙 부분에 나 있던 홈에 검을 끼워 넣었다.
“하나, 둘, 셋!”
율리아의 말에 맞춰서 세 명은 동시에 검을 왼쪽으로 돌렸다. 대성당에서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율리아의 앞에 있던 바닥이 밑으로 살짝 가라앉았다. 바닥은 살짝 가라앉았다가 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바닥이 움직인 자리에는 계단과 문이 있었다.
계단은 성인 다섯 명이 나란히 서도 충분히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폭을 가지고 있었다. 문은 성인 남자 세 명의 키를 합친 높이 정도 되 보였다.
율리아는 바닥에 꽂힌 검을 놓고 계단 앞에 섰다. 워르덴과 베라를 향해 몸을 돌렸다.
“여기로 내려가면 돼.”
“감사합니…응?”
베라가 워르덴을 바라봤다. 워르덴은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있었다.
“왜 그래?”
워르덴은 율리아에게 다가갔다. 율리아의 양 어깨를 양손으로 잡았다.
“…다.”
“뭐?”
“개쩐다! 다시 한 번 할 수 있냐!?”
워르덴은 율리아의 몸을 앞뒤로 흔들기 시작했다.
“개쩔어! 개쩔다고! 한 번만 더 하자! 어? 한 번 더 한다고 이 건물이 닮는 건 아니잖아!”
“워르덴씨! 지금 장난 칠 시간 아닙니다!”
율리아는 양손을 들어 워르덴의 양 어깨를 잡았다.
“한 번 더 할까!?”
“그러자!”
“야! 검 다시 오른쪽으로 돌려!”
율리아가 종자들에게 외쳤다. 종자들은 검을 붙잡았다.
“유…율리아씨! 안 하셔도 됩니다!”
베라가 종자들에게 말했다. 종자들이 검을 놓았다.
“뭔 소리야!? 내 말 안 들을 거야!? 빨랑 돌려!”
“맞아! 빨리 돌려!”
종자들이 검을 붙잡았다.
“…뭐 하자는 거지, 대체.”
글리치가 팔짱을 끼고 중얼거렸다. 마리아가 낄낄 웃었다.
“옛날 같지 않아?”
“뭐가?”
“이 광경. 옛날 같은데.”
“아, 강도단 얘긴가?”
“응…그래서, 그 괴한 놈들 어떻게 할 거야? 묻을 거야?”
글리치가 한숨을 쉬었다.
“원랜 그러려고 했는데, 계획을 바꿨어.”
“바꿨어?”
“어. 잠시 알아볼 게 생겨가지고 말이지.”
글리치와 마리아는 날뛰는 워르덴과 율리아의 사이에서 어떻게든 둘을 제지하려는 베라를 바라보고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