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밤 백화성궁의 숙소.
"당신이 성국을 지켜주신 은인이시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부족하지만 대신관이란 직책을 맡고 있는 하벤이라 합니다."
"아. 저는 앙그나타입니다. 몸이 이래서 일어나지 못하는 점. 양해부탁드립니다."
"아무렴 이 나라를 지켜주시다가 그렇게 된건데 이해못할게 어디 있겠습니까?"
늦은 시간. 나타의 방에 하벤 대신관이 방문했다.
"그런데 이 늦은 시간에 오신 이유가?"
"아, 별건 아니고... 여기, 내일 있을 관례식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 분투한 영웅들이 참가해서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일종의 연설을 하는 행사가 있씁니다. 영웅분들이 적은 것도 아니고 다른 행사도 해야해서 대표로 다섯명만 하기로 했는데 앙그나타님이 그 대표 중 한명이 되었답니다."
나타는 하벤 대신관이 건내준 종이를 받아서 확인했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런 뜻깊고 의미있는 자리에 참석하게된... 내일 이 내용대로 말하라는 건가요?"
옷 속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안보이도록 숨어있는 아글라시얀의 도움으로 글을 읽은 나타가 이걸 건내준 하벤 대신관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것대로 하면 분명 사람들이 감동하겠지요. 하지만 꼭 그것대로 하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짧은 말이라도 좋으니 내일 사람들 앞에서 귀한 말씀을 해주실 수 없으시겠습니까?"
"어째서 절 콕 찝어서 부탁하시는건가요."
"당신이 이 나라의 나쁜점과 좋은점을 다 겪어보신 분이기 때문이지요. 백화성궁 감옥에도 갇혀보셨고 탈옥하고 다른곳에 숨기도 했지요. 하지만 이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때 당신은 좋지 못한 경험을 당했음에도 이 나라를 지켜주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을 대표해서 이 나라의 미래를 구해준 당신의 말을 듣고싶을 뿐입니다."
"그런 이유라면 제가 사양하기 힘드네요. 내일 참석하도록 할게요. 대신 할 말이 생각안나면 이 종이대로 말해도 상관없지요?"
"물론입니다."
... 어제의 일을 잠시 회상했던 나타가 입을 열었다.
"우선 제 소개를 다시 하겠습니다. 전 여기서 멀리 떨어진 숲인 로체페 숲에서 온 앙그나타라고 합니다."
나타의 말을 들은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이봐... 로체페 숲이라면 분명..."
"숲의 현자님이 있는 곳이었지?"
"설마 현자님 본인이신건가?"
순식간에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지며 광장이 시끄러워졌다.
'오빠가 로체페 숲에서 왔다고?'
"제가 가장 처음으로 방문한 나라가 바로 성국이었습니다. 온 마을이 행복하고 웃음으로 가득한 시기에 방문했었어요. 바로 성국에서 축제가 벌어지는 시기였습니다. 저는 축제를 즐기면서 축제를 진행하는 여러분들을 지켜봤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지낼까? 마왕이 이 세상을 침공하고 사라진지 10년밖에 안 지났는데 괜찮을까... 그렇게 생각하면서요. 그런데 놀랍게도 제가 본 사람들은 전쟁의 고통이나 슬픔으로 고생하는 얼굴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지난날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더 밝고 활기차게 생활하면서 밝은 내일을 기대하는 얼굴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웅성거리는걸 멈추고 나타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저는 축제가 끝나고 갑작스럽게 악당들이 등장해 수도를 침공했을때 필사적으로 달려들었던 병사분들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무조건 막겠다. 지키겠다는 각오를 담은 얼굴들이었지요. 그 얼굴들을 보며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아, 이 나라 사람들은 발전하고 있구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구나! 자신들의 손으로... 힘으로, 노력으로!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구나! 라는걸 말이지요."
"그래서 저도 전투에 가담했습니다. 당신들은 자신들이 믿는 신이 가족들을 지켜줄거라 믿으며 여러분들의 행복을 방해하려는 악과 싸울때! 저는 그런 당신들의 올바른 행위와 당신들의 미래를 믿으며 싸웠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거신병을 쓰러뜨릴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로 저는 한쪽 팔과 두 눈을 잃었고 두 다리도 조금 다쳐서 이렇게 앉아있는 신세가 되었지요."
'오빠... 왜 일부러 크게 부풀려서 말하세요...'
나타의 상태를 알고있었던 라피아가 속으로 한숨을 쉬며 생각했다. 이 오빠는 잘 말하다가 이상한 말을 한다니까... 물론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나타의 숭고한 희생에 감탄하고 고마움의 눈물을 흘렸다.
"비록 이런 몸이 되었지만 저는 느낄 수 있습니다. 큰 피해를 입고 상처를 받았지만 여러분들은 다시 일어설 거라는걸 말입니다. 당신들을 믿고 세상을 떠난 분들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을거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노력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부디 슬픔은 오늘 다 털어내시고 고마운 분들이 찾아준 '내일' 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조금 길었고 두서없이 말한 것 같지만 제 말을 끝까지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조금 길었던 말을 끝맺은 나타가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라피아의 도움으로 자리로 돌아갔다. 그가 고개를 숙이고 뒤돌때까지 사람들은 박수를 멈추지 않았다.
"오빠. 잘 하셨어요."
"하하... 그렇게 말해주니까 부끄럽잖아. 그래도 다른 사람들이 만족해주니까 기분이 좋다."
비록 나타 자신은 만족하지 못했지만 사람들은 환호했기에 나타는 좋게 생각했다. 물론... 가벼운 마음을 가졌었던 다른 네명의 대표는 속으로 괜히 장대하게 말한 나타를 원망하며 사전에 준비했던 말을 치우고 다른 말을 준비해야했다.
각 대표들의 발언이 끝나고 관례식은 사람들의 박수와 함께 끝이났다. 관례식을 마친 사람들 중 일부는 돌아가면서 마음의 짐을 조금 덜어낸 것 같이 홀가분한 표정을 지어 안내하던 사제들의 기분을 풀어주었다.
"이야. 너 정말 사람들 앞에서 한번도 말 안해본거 맞아?"
관례식이 끝나고 나타의 등을 두드린 제이로스가 수고했다고 말해주었다.
"확실히 처음 하는게 아닌 것 같았다네. 내용은 모르겠지만 사람들을 생각하는 진솔한 마음은 확실하게 전달되었으니 말이야."
콰이른까지 호응해주니 나타가 웃으며 감사하다고 답해주었다.
'시간이 너무 부족해서 대충 생각나는대로 말한건데 반응이 좋네...'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하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지만 말이다.
"다음은 혼천이네요. 벌써 마지막이예요."
라피아의 말대로 나타 일행이 참가할 수 있는건 혼천이 마지막이었다.
"혼천은 어떤걸까?"
"저도 잘 모르지만 듣기로는 아름답다고 했어요."
"그럼 기대해볼까? 가자."
아름답다는 기준이 서로 다른 네사람은 각자가 생각하는 아름다운걸 상상하며 백화성궁으로 갔다.
"어서오세요. 일찍들 오셨네요!"
혼천이 시작될 백화성궁에 도착하자 얀센 성자와 함께 있었던 아리아 성모가 그들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혼천이 너무 기대되서 일찍 와버렸네요."
"어머. 아직 준비중이었는데 그래도 구경하셔도 되니 들어와서 둘러보세요."
아리아 성모가 밝게 웃으며 나타 일행들을 들여보냈다.
그들이 들어가는거에 시선을 때지 못하는 아리아 성모를 향해 얀센 성자가 다가왔다.
"대체 누구를 좋아하기에 그렇게 바라보는겁니까?"
"조... 좋아하다뇨!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시는건가요? 그저 아는 분들이 혼천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기쁘게 생각한거예요."
얀센 성자의 뜬금없는 질문에 잠깐 당황한 아리아 성모였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말했다.
"흐음... 그렇게 말한다면 그런거겠지만..."
말을 흐리며 아리아 성모를 슬쩍 보던 얀센 성자는 딱히 더 말 할 생각은 없었는지 도중에 끊겼던 혼천에 대한 준비상황을 아리아 성모에게 설명했다.
한편 나타 일행은 혼천이 열릴 방을 둘러보며 감탄사를 내뱉고 있었다.
"이야..."
"야... 사방이 물이구만?"
"물 밖에 없네요."
"물이네요."
그들의 감상대로 혼천이 시작될 매우 넓은 방 안의 반을 물이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이 감탄하는 순간에도 1층에 있는 사제들은 계속해서 물을 붓고 있었다.
"여기는 층이 나누어져 있네요. 대체 뭘 할지 궁금해지는걸요."
"아름답다고 했으니 물이 확 튀면서 빛을 뿜어내는거 아닐까... 아니야... 생각해보니 그건 별로 아름답지 않아."
"하하. 그것도 콰이른씨 기준일 수 있죠. 여기 참석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그런걸 좋아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 저도 확답하기는 힘드네요."
그렇게 말하던 나타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대체 왜 물이 필요한거지? 왜? 그들의 궁금증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혼천이 시작되고나서야 풀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