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이 시작되자마자 이비에타가 본 것은 자신의 목을 향해 무시무시한 속도로 돌진해 오는 거대한 검이었다. 예상보다 더 빠르고 날래게, 거대한 검을 가진 남자가 자신을 향하여 돌진해 오고 있었다.
칼베르크의 방침상 시험에서 선공과 후공이 미리 정해지지 않는다. 이는 비단 칼베르크 뿐만 아니라 작금의 기사단들이 모두 그러한 방침을 따르고 있는 형편이었다. 실제로 사람이나 망령과 싸울 때 어느 상대가 선공 후공을 정해 주겠는가? 기사로써 싸우는 일을 스포츠로 만드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이유로 요즘 기사단들은 비단 시험뿐만 아니라 기사들 간의 정식 결투에 이르기까지 선공과 후공 개념을 정립해 두지 않고 있었다.
그런 만큼 기사들 사이에서는 ‘먼저 공격하는 쪽이 장땡’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선공을 잡는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판세가 진행되었다. 누가 먼저 공격할지 정해져 있지 않는 상황, 신경전을 할 틈도 없이 먼저 상대에게 검을 찔러 넣는 자가 승리를 거머쥐는 게 현재 판도가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아니, 검이든 아니든 모든 무기가 그러했다.
발뭉 또한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애초에 그가 시험을 치렀을 때 발뭉은 자신의 무시무시한 괴력으로 상대 견습 기사의 얼굴에 강펀치를 날려 장외로 날려 시험을 종료시켜 버렸다. 이번 또한 선공을 잡아 빨리 끝내 버릴 요량이었다.
이 소녀가 어마어마하게 노력을 해 온 존재라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봐 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발뭉은 정식 기사가 되어 어머니께 드릴 약을 구해야만 했다. 이 싸움에서 이기면, 4년 동안 죽도록 노력했음에도 될 수 없었던 정식 기사로의 길이 뚫릴 지도 모른다.
선공을 먼저 잡은 자신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 - 이번 한 방으로 빠르게 끝내 버리리라.
그러나 발뭉이 기대했던 바와는 다르게, 이비에타는 너무나도 쉽게 그의 공격을 흘려보냈다. 녹슬어 빠져 날이란 게 과연 살아있기는 한 건지 의문이 드는 바로 그 검을 들어, 발뭉의 거대한 검을 툭 하고 쳐내 버린 것이었다. 얼마나 순식간에, 쉽게 쳐낸 것인지 검에 슬은 녹이 긁혀 떨어지는 기분 나쁜 소리만이 시험장 내에 울려 퍼졌을 뿐 그 외엔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았다.
발뭉의 검이 목을 제대로 노린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이비에타를 죽일 생각 따위는 하지도 않았으니까. 다만 발뭉은 알고 있다. 누구든지 자신의 목으로 거대한 검이 쇄도한다면 아주 잠시만이라도 사고회로가 정지하기 마련이라는 것을. 검의 방향이 목에서 아주 살짝 빗겨 나가도록 설정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갑작스레 달려드는 검의 일격에 놀라 잠시 움찔하게 된다. 그렇게 해서 번 몇 분의 일 초도 안 되는 시간은 발뭉의 검이 완전히 목 언저리를 헤집고 지나가기에 충분한 시간을 제공한다.
그렇게 해서 검을 제대로 휘두를 새도 없이 목 옆 부분을 상대방의 검에 침탈당한 자는 전의를 잃고 바로 항복을 선언하곤 했다. 이런 식으로 선공을 날리면 그의 특기인 찍어 누르는 검법을 쓸 필요도 없이 시합을 순식간에 종료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이비에타는 발뭉의 검을 순식간에 흘려내 버렸다. 이 말인즉슨, 발뭉의 일격에 전혀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선공을 날린 그보다도 더 빠르게 움직였다는 말이 된다. 마치 그의 움직임을 예측이라도 하고 있었다는 것처럼.
더욱 놀라운 것은 이비에타가 그의 괴력이 실린 검을 가볍게 튕겨 내기까지 했다는 점이었다. 발뭉은 거의 발사하는 수준으로 그의 검을 내리꽂았다. 그런 거대한 검으로 그 정도의 속도를 내려면 아무리 괴력을 가진 그라 해도 상당한 수준의 힘을 실어야 했다.
그런데 이 소녀는 그의 검을 놀라울 정도로 쉽게 튕겨내 버렸다. 찰나의 순간에 그의 검을 튕겨낼 정도의 악력을 발산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반응속도와 그에 맞는 괴력이 맞물려 무시무시한 시너지를 내고 있다고 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이비에타는 발뭉의 혼란스러운 심경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시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을 따름이었다. 마치 자신이 발뭉의 검을 흘려보낸 적도, 튕겨낸 적도 없다는 것처럼 말이다. 거기다 조금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이 모든 과정이 단 몇 초도 흐르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발뭉이 깨닫는 것은 몇 초만으로도 충분했다.
이 소녀는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도 더한 괴물이다.
“언제까지 서 있으실 건가요? 이 시험, 빨리 끝내죠.”
이비에타가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발뭉에게 툭 하고 말을 건넨다.
“아, 그러죠. 라르힐리덴 영애.”
그 소리를 듣고 발뭉도 다시 자세를 가다듬는다. 보고 있던 다른 기사들이야 “뭐야 지금 튕겨낸 거야?”, “그럴 리가 없지 멍청아, 발뭉 멍청한 놈 저걸 빗나가냐” 하며 상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보였지만 말이다.
발뭉은 검을 두 손으로 바로 쥐고 진심으로 싸우겠다는 태세에 돌입한다. 더 이상 상대의 안전을 챙겨 준답시고 검을 휘둘러 봤자 씨알도 안 먹힐 것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리라.
그런 발뭉의 앞에서 이비에타는 검을 한 손으로 쥐고 그저 앞만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다. 하지만 그 모습은 무방비하다기보다는 ‘공격할 테면 공격해 봐라, 모두 다 쳐 내줄 테니.’라고 온 몸으로 전하고 있는 듯이 느껴진다.
‘그래, 제대로 한 번 붙어 보자고!’
발뭉은 거대한 검을 자신의 머리 중앙 높이까지 들어 올린다. 들어 올린 검의 칼날 끝이 바라보고 있는 곳은 바로 이비에타의 머리다.
그리고 이비에타가 검 끝의 위치를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 그의 거대한 검이 이비에타의 머리를 향해 돌진해 왔다.
그러나 아까와는 다르다. 아까의 검격이 오로지 찌르기 위해서였다면, 이번 검격은 가로로 베는 형태이다. 시험장의 바닥과 수평을 이루게 거대한 대검이 휘둘러진다. 이비에타의 머리가 위치한 바로 그 높이에서.
그의 검은 완벽하게 바닥과 대칭을 이루며 휘둘러져 감히 쳐 내거나 흘리는 것이 불가능하다. 위로 쳐 내기에는 아래로 상체를 숙인 후 검 끝을 위로 향하게 하고 그 이후에서야 쳐 내는 결과에까지 도달할 수 있는데 이 일련의 과정이 그의 검이 휘둘러지는 찰나의 시간 동안 이루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이비에타의 반응속도가 말도 안 될 정도로 빠르다고는 하나 이 정도까지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렇다고 횡으로 가르고 들어오는 대검을 그대로 쳐냈다가는 저 정도로 녹슬고 약한 검이라면 부러질 것이며, 어쨌든 그런 방어 또한 상체를 숙이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즉 이 일격을 맞이하게 되는 자라면 누구든지 검을 섣불리 휘둘러 방어하기보다는 일단 상체를 숙여 피하고 나서 그 큰 움직임을 보이느라 무방비해진 몸을 공격하려 들 것이 뻔하다. 저런 무거운 검으로 크게 베는 일격을 날리면 누구든지 몸이 무게중심이 이동한 쪽으로 기울기 마련이고, 그 사이에는 완전히 무방비해지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니까 말이다.
이비에타 역시 횡으로 들어오는 검의 궤적을 피하는 쪽을 택했다. 그 찰나의 순간에 재빠르게. 다만 상체를 숙이지 않고 무릎을 굽혀 검을 피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은 발뭉이 의도한 대로였다.
보통의 기사가 거대한 검을 횡으로 휘두르면 무게중심이 쏠리면서 몸의 균형이 검이 휘둘러진 쪽으로 쏠리게 된다. 예를 들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검을 휘둘렀다면 몸이 오른쪽으로 쏠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발뭉은 통상적인 기사들과 달랐다. 그는 보통의 기사들보다도 더욱 장대한 힘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런 주제에 스피드 또한 뒤지지 않는 자다. 그런 그에게 통상적인 설명이 통할 리가 없었다.
발뭉은 휘두르던 검을 상대가 피한 순간 온 힘을 다해 위로 들어올린다. 고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던 검이, 상대가 검을 피하려고 몸을 숙인 순간 거의 직각으로 위로 향한다. 그것도 매우 순식간에. 상대는 당연히 이런 식으로 검이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기에 발뭉의 검이 오른쪽으로 치우치며 균형을 잃은 순간 치려고 하지만, 발뭉의 몸은 균형을 잃지 않는다. 검이 직각으로 떠 있으니까.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 상대의 검을 향해 그의 육중한 검이 내리찍어진다.
결국 상대는 발뭉의 수직으로 꽂는 참격에 검을 부딪치게 되고, 그 순간 엄청난 격통과 함께 검을 놓치게 된다. 대체로 그렇게 무게까지 실린 참격을 받은 자는 검을 쥐고 있던 손가락이 모조리 부서지기 때문에 전투불능 상태가 된다. 안 부서지더라도 엄청난 진동 탓에 검을 놓치게 되므로 항복하게 되는 것은 정해진 수순으로 귀결된다.
발뭉은 이비에타가 자신의 의도대로 피하는 것을 보며 자신의 뜻대로 되었음을 기뻐한다. 손가락이 몇 개 부러지게 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러나 자신만만하게 계획을 실행하던 발뭉은 순간 뭐라 설명할 수 없는 한기를 느꼈다.
이비에타의 손에 쥐여 있던 검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방향이 반대가 되어 있었다. 검의 손잡이 대신 검의 날이 손에 쥐여졌고, 검의 손잡이가 위로 향해 있다. 그리고 그가 공격할 때만 해도 한 손으로 걸치듯이 검을 잡고 있었는데, 그가 검격을 날리고 확인했을 때는 두 손으로 단단히 검을 잡고 있었다.
녹이 잔뜩 슬은 데다가 날이 완전히 무뎌진 검이기에 이비에타의 손이 베이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도대체 왜? 왜 검을 거꾸로 쥐고 있단 말인가. 매우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의 공격을 피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지금까지 싸워 왔던 누구도, 심지어 타 기사단의 내로라하는 기사조차도 자신의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그는 다시 마음을 다잡고, 원래 하던 대로 검을 수직으로 들어올렸다.
그 순간 이비에타의 자세가 바뀌었다. 구부렸던 다리 중 오른쪽 다리로 땅을 박차고 뒤집은 검을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한도까지 뒤로 끌어당긴다.
끌어당겨진 검은 발뭉의 검이 수직으로 내리꽂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 엄청난 속도로 발뭉을 향해 휘둘러졌다. 그것도 그의 관자놀이 부분을 정확히 조준하여서.
발뭉은 그제야 이비에타가 왜 검을 거꾸로 들었는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왜 그런 녹슬고 무딘 검 따위를 선택해 놓고 자신만만해 했는지도.
이비에타는 녹슨 검을 검으로서가 아니라, 해머로서 상대를 가격하기 위해 거꾸로 들었던 것이다.
뭐, 이미 그런 것을 깨달아 봤자 너무 늦어버렸지만 말이다.
퍽! 소리와 함께 이비에타의 검 손잡이가 발뭉의 관자놀이를 가격했다. 어찌나 강하게 휘둘렀는지, 부딪친 관자놀이에서 검의 녹이 떨어져 나온다. 발뭉은 그대로 옆으로 쓰러져 시험장 바닥을 나뒹굴었으며 휘둘렀던 검 또한 이비에타의 바로 옆에 쾅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시험을 보던 모든 자들이 그 광경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그리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발뭉이 완벽히 패배했다는 믿을 수 없는 사실을 말이다.
눈앞에 펼쳐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경악한 칼베르크의 기사들. 그들은 아까까지만 해도 내지르던 음담패설이며 온갖 모욕적인 언사들을 모조리 입 안으로 빨아들인 것처럼 고요함만을 유지하고 있다. 완전히 압도당한 모양새다.
그리고 그런 기사들을 한 바퀴 휘 둘러본 이비에타가, 기사들을 향하여 외친다.
“고작 시험 봐주는 견습 기사가 이 정도 실력이라니... 제가 향간의 소문만 듣고 기사단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나 봅니다. 정말 기대되네요. 안 그런가요, 선배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