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띄엄띄엄 차가 달리는 도로에 승합차 한 대가 차선을 마구 변경하며 질주했다. 운전자들은 야단스럽게 경적을 울림으로써 자동차로 보낼 수 있는 야유를 퍼부어댔다.
“거참, 먼저 좀 갑시다! 우린 지금 목숨이 위태위태하다고!”
운전자들이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오므로가 혼잣말을 했다. 목소리는 퍽 진지했지만, 표정은 지금 상황이 너무나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주영은 간신히 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면서, 하울릿보다 이상한 돌덩어리 때문에 목숨이 더 위태로운 것 같다고 중얼거렸다. 반면, 마토는 오두방정을 떨며 비명을 질렀다.
“워, 워! 부딪치겠어! 으악!! 부딪친다! 진짜 부딪쳐! 부딪친다고!”
승합차가 용수철처럼 튕겨 나가며 차선을 바꾸었다. 승합차의 후미와 옆 차량의 앞 범퍼가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깜짝 놀란 운전자의 분노 어린 경적 소리는 금세 뒤로 멀어져갔다.
“어때? 기가 막히지? 자동차를 타는 게 아니라 놀이기구를 타는 것처럼 짜릿하지?”
오므로는 어깨너머로 뒷좌석을 바라보며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그 와중에도 차의 속도는 줄어들지 않았다.
“이 몸이 바로 골덴 종족 중에서는 최초로 실루엔노틀 레이스 2회 연속 우승에 빛나는, 몽덴 오므로라 이거야!”
“오므로……. 이봐, 오므로! 앞에, 앞에! 앞에 좀 봐!!”
보조석에 앉아있는 리온이 호들갑스럽게 오므로의 어깨를 때렸다. 그의 목소리가 공포에 짓눌려 서서히 커졌다. 승합차는 어느새 원래 길을 크게 이탈해 반대편 차선으로 넘어가 있었다. 빨간색 후미등이 보여야 할 자리에 새하얀 전조등 빛이 뿜어져 나왔다.
리온은 두 팔로 얼굴을 감싸며 비명을 질렀다. 정면에서 달려오는 차와 부딪치기 직전에 오므로는 핸들을 꺾어 원래 차선으로 돌아왔다. 그 뒤로도 수시로 차선을 변경하고, 때때로 신호등을 무시하며 운전했다.
주영은 안전벨트가 단단히 고정되었는지 확인한 뒤 생명줄이라고 여기며 꽉 움켜잡았다. 승합차는 복잡한 번화가를 잠깐 벗어나고 있었다.
“리온, 도대체 이 차는 어디서 난 거에요?”
현우는 의심쩍은 눈길로 차량 내부를 둘려보았다. 이종족들이 차를 훔쳤을 거라고 생각하고 던진 질문이었다.
“이거 오므로 차야. 저 녀석 운전을 워낙 좋아해서 이번에 하나 장만했거든. 물론 운전 실력이 이렇게 거친 줄 알았으면 절대 핸들을 맡기지 않았을 텐데.”
그 말이 꽤 거슬렸는지 오므로는 아예 운전석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도 차의 속도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무슨 그런 섭섭한 소리를 하는 거야? 실루엔노틀 레이스에서 2회 연속 우승한 나의 이 드라이브 스킬이 없었다면, 너흰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
“지금 죽어가고 있으니까 앞에 좀 봐, 이 자식아!”
오므로는 호탕하게 웃으면서 여유 있게 핸들을 돌렸다.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무사히 도망친 것 같아 현우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현우야, 도대체 저들이 뭐라는 거야? 그리고 지금 이 차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거야?”
하지만 주영은 여전히 불안했다.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도 없을뿐더러 지금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설명하자면 조금 복잡한해. 일단은 무사히 도망친 것 같아.”
“그……. 맹수들로부터?”
“그래.”
그때 승용차의 천장에서 묵직한 충격이 전해졌다. 서로를 마주보던 현우와 주영의 시선이 위로 향했다. 천장은 어떤 무거운 것에 눌린 것처럼 살짝 찌그러져 있었다. 이윽고 무게 중심을 잃은 승합차가 길게 미끄러졌고, 타이어가 마찰되는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꺄아아악!”
“크윽!”
오므로의 표정이 처음으로 딱딱하게 굳어졌다. 전복될 것처럼 크게 기울던 차체가 그의 현란한 핸들링으로 간신히 제자리로 돌아왔다. 주변에 지나가던 자동차나 가드레일이 있었으면 꼼짝없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모두 고개를 들어서 위를 올려다봤다.
“뭐, 뭐야?”
마토는 기괴하게 찌그러진 천장을 보면서 불안하게 말했다.
“쳇, 올라탔나 보군.”
오므로가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올라탔다니 뭐가…….”
현우는 불현듯 불길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의 생각을 확인이라도 시키려는 듯 승용차의 천장에서 발톱으로 칠판을 긁는 쇳소리가 들려왔다. 사람, 이종족 할 것 없이 모두 눈살을 찌푸렸다. 그 중에서도 특히 모라이엠이 오만상을 찡그리며 매우 고통스러워했다.
별안간 천장에서 둔탁한 타격이 전해졌고, 그 소리는 한 번에서 끝나지 않고 연거푸 이어졌다. 쇠로 된 천장이 그로테스크하게 찌그러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날카로운 발톱이 차량을 뚫고 나왔다.
“꺄아아악!”
송곳 같은 주영의 비명소리에 현우는 더 놀랐다.
“이런, 빌어먹을! 뽑은 지 일주일도 안 된 내 애마에 상처를 내다니!”
오므로는 천장을 향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핸들을 쥐고 있는 그의 손이 분노로 부들부들 떨렸다.
맨 뒷좌석에 앉아있던 데비히츠가 가뿐한 동작으로 현우와 주영이 있는 자리까지 튀어나왔다. 그녀는 천장을 노려보며 인상을 팍 썼다. 그녀의 모습이 버건디 코트를 입은 금발머리 외국 여자에서 검은색 로브를 입은 해골로 변했다. 동시에 모든 이종족들의 모습도 원래대로 돌아갔다.
데비히츠는 로브 속에서 뼈칼을 뽑아들고는 하늘을 향해 찔러 넣었다. 하울릿도 발톱을 이용해 몇 번이나 찍어내려야 겨우 뚫렸던 차량의 천장이 단번에 꿰뚫렸다. 운전을 하느라고 뒤쪽 상황을 모르던 오므로는 섬뜩한 소리에 백미러를 확인했다.
“으아악!! 내 차에 뭐하는 거야!”
“달리 방법이 없잖아!”
데비히츠가 고함을 질렀다.
“아냐, 잠깐 기다려봐. 분명 방법이 있어. 천장 뚫지 마! 내가 분명 말했어, 천장 뚫지 말라고! 에……. 그 버튼이……. 어디 있더라.”
오므로는 한쪽 손으로 핸들을 붙잡은 채, 다른 한쪽 손으로는 선루프를 여는 버튼을 찾아 헤맸다. 데비히츠는 그의 말을 못 들은 척 하며 천장을 향해 끊임없이 칼을 쑤셔 넣었다.
쇠붙이가 꿰뚫리는 소리가 날 때마다 오므로는 애절한 신음을 내면서 아무 버튼이나 마구 누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손은 벙어리장갑처럼 뭉툭하게 생겨서 뜬금없이 오디오 버튼이며, 난방 버튼이며, 네비게이션 버튼 따위를 눌러댔다. ‘네비게이션을 시작합니다. 300m 전방에 좌회전입니다.’라는 멘트와 시끄러운 외국 힙합 노래와 뜨거운 바람이 동시에 흘러나왔다.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차량 위에 올라탄 하울릿은 이쪽저쪽으로 돌아다니며 뼈칼을 피했다. 약이 바짝 오른 데비히츠는 엄청난 속도로 칼을 찔러 올리며 천장을 벌집으로 만들고 있었다.
“오므로! 앞에 코너!”
리온이 다급하게 외쳤다. 기어 변속 언저리에 있던 오므로의 시선이 정면을 향했다. 급격히 차가 코너를 돌았다.
찰나의 순간, 데비히츠는 숭숭 뚫려 있는 구멍 사이로 하울릿이 나가떨어지지 않으려고 버티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옆으로 몸이 기울어지면서도 칼을 있는 힘껏 위로 찔러 넣었다. 그러자 맹수 비명소리가 구멍 사이로 새어 들어왔다.
“좋았어!”
“커헉!”
데비히츠의 몸이 옆으로 쓰러져 현우를 덮쳤다. 그의 얼굴이 잘 반죽된 밀가루처럼 창문에 부딪쳐 짓뭉개졌다.
“저, 저리 비켜...!”
“이런, 미안”
데비히츠는 싱긋 웃으면서 일어났다. 그녀가 천장을 아예 부셔버릴 작정으로 다시 뼈칼을 들어 올릴 때, 오므로가 어떤 버튼을 눌렀다. 선루프가 위잉 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천천히 열렸다.
데비히츠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선루프가 열리는 것을 바라보았다. 차에 대해 전혀 몰랐던 그녀는 그게 창문인지도 몰랐다.
“…….”
백미러를 통해 둘의 시선이 마주쳤다. 오므로는 험악하게 으르렁거렸고, 데비히츠는 어깨를 으쓱였다.
“미안, 몰랐어.”
“이익!!”
그때 또다시 육중한 충격이 전해졌다. 이번에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두세 번 충격이 이어졌다. 하울릿들이 끊임없이 올라타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에 따라 차의 속도가 현격히 줄어들면서 좌우로 미끄러졌다.
“모라이엠!”
무슨 깊은 생각에 빠졌는지 모라이엠은 처음에 오므로의 말을 듣질 못했다. 그래서 오므로는 큰 소리로 한 번 더 외쳐야 했다.
“왜?”
현우는 모라이엠을 만나고 처음으로 그녀의 육성을 들었다. 생김새에 어울리는 여린 여자 아이 목소리였다.
“위에 놈들 좀 처리해봐! 마법으로!”
“내가 왜?”
하지만 모라이엠의 말투는 너무 딱딱해서 도저히 소녀 같지 않았다.
천장에 올라탄 하울릿들은 쉴 새 없이 발톱을 휘둘러 천장을 찢었다. 오므로는 백미러 너머로 모라이엠을 쳐다보며 소리쳤다.
“오냐, 그럼 여기서 다 같이 죽을까? 아니면 내가 올라갈 테니 네가 운전할래?”
모라이엠은 말이 없었다. 이곳에서 다 같이 죽는 것도 싫고, 스스로 운전할 자신도 없었는지 차분히 말했다.
“보이지도 않는데 어떻게 마법을 써?”
“창문으로 올라가면 되잖아!”
그녀는 고개를 들어 선루프를 힐끗 쳐다보았다.
“너무 높아.”
“이런, 젠장! 데비히츠! 네가 저 꼬맹이 좀 올려줘!”
키가 작은 오므로가 모라이엠을 보고 꼬맹이라고 하자 마토는 하마터면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모라이엠은 여전히 별로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안전벨트를 풀었다. 그러곤 좁은 복도를 총총히 걸어 나왔다.
데비히츠는 칼을 바닥에 내려두고서 양손으로 모라이엠의 허리를 잡고 창문 위로 들어올렸다.
* * *
모라이엠의 아담한 머리가 창문 위로 빼꼼 튀어나왔다. 바람에 녹색 단발머리가 힘없이 나풀거렸다.
“크르르르!!”
천장을 가라앉힐 기세로 발톱을 휘두르던 하울릿 세 마리는 모라이엠과 시선이 마주치자 동작을 멈추었다. 모라이엠은 몸을 꼼지락거리는가 싶더니, 창문 위로 손을 들었다. 고사리 같이 작은 손에 지휘봉처럼 생긴 나무지팡이가 쥐어져 있었다.
하울릿들은 고양이처럼 자세를 낮추며 잔뜩 긴장했다. 연녹색 피부의 소녀가 중얼거리면서 지팡이를 휘두르려던 그때, 차가 급커브를 틀었다. 모라이엠의 몸이 크게 휘청거렸다. 그 와중에 나무지팡이에서 끝에서 나온 물줄기는 아주 얇고 가늘었으며, 그 모양새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소멸되었다.
“아.”
소녀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하울릿들을 바라보며 말을 덧붙였다.
“더럽게 집중 안 되네.”
“크르르!!!”
하울릿들이 포효하며 달려들었다. 모라이엠의 머리는 미끄러지듯 차량 안으로 쏙 들어가졌다.
* * *
“으아아악! 이거 뭐야!”
운전을 하고 있는 오므로의 눈앞에 하울릿의 무시무시한 발톱이 왔다 갔다 했다. 하울릿들은 간발의 차이로 모라이엠을 놓친 것에 매우 안타까워하며 창문 안으로 발을 집어넣고 있었다.
“크헉! 뭐, 뭐야? 이건? 카학! 모라이엠! 처리, 못한, 큭! 못한, 크헉! 거야?”
허공을 휘젓던 발톱이 오므로의 머리를 좌우로 후려치자 말이 뚝뚝 끊겼다. 돌머리여서 별 타격은 없었지만 마치 장난감 취급을 받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 발톱 좀 어떻게 해봐!”
조수석에 앉아 있는 리온은 오므로의 외침에도 어떻게 해볼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 그는 자신도 발톱에 맞을 까봐 몸을 최대한 의자에 붙인 채 비명을 질렀다.
“안 되겠다, 모라이엠 나랑 자리 바꾸자.”
데비히츠는 모라이엠의 몸을 들어 뒷좌석에 조심스레 내려놓은 다음, 뼈칼을 들고서 앞으로 갔다. 그녀는 먼저 오므로의 머리를 긁고 있는 맹수의 발톱을 처리하기로 결심했다.
“자, 잠깐!”
아주 좁은 공간임에도 데비히츠는 정확히 하울릿의 발만 베었다. 진득한 보랏빛 피가 사방으로 튀었고, 오므로의 머리 위에도 후두둑 쏟아졌다. 놀란 하울릿이 울부짖으며 발을 뺐다. 오므로는 보고도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입을 쩍 벌렸다. 곁눈질로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보랏빛 피를 보더니 참아왔던 사자후를 터뜨렸다.
“오, 마이, 갓!”
오므로는 선글라스를 벗어 던지고 핸들을 놓은 채 머리에 묻은 피를 닦아내기 시작했다. 주인 잃은 승합차는 빠른 속도로 차선을 이탈했다.
“젠장, 녀석들의 피를 뒤집어쓰다니! 앞으로 한 달은 재수가 없을 거야. 이런, 입에도 들어갔어, 퉤퉤!!”
그는 마치 오물을 뒤집어쓰기라도 한 듯 불쾌해했다. 목숨에 위협을 느낀 리온은 재빨리 핸들을 붙잡았다.
“크르르르!!!”
다른 하울릿이 창문으로 발을 집어넣으려고 했지만 데비히츠가 창문을 향해 검을 잽싸게 찔러 넣었다. 잠시 녀석들이 주춤하는 사이, 그녀는 선루프의 양쪽 가장자리를 붙잡고 단숨에 천장 위로 올라갔다.
* * *
해골이 날렵한 동작으로 차량 위에 모습을 드러내자 하울릿들이 흠칫하며 뒤로 물러났다. 데비히츠는 잽싸게 허리춤에 메어져 있던 칼을 뽑아 들었다.
하울릿 두 마리가 일시에 달려들었다. 데비히츠는 빠르게 달리는 승합차의 천장이라는 악조건에서 맹수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뼈칼과 발톱이 부딪치면서 작은 불똥이 튀겼고, 청명한 쇳소리는 밤공기를 타고 울려 퍼졌다. 그들의 입에서 흘러나온 허연 입김이 안개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크르륵!!”
차가 왼쪽으로 급격하게 쏠렸다. 신호가 노란불로 바뀌자 운전자가 엑셀을 밟으며 그대로 좌회전을 들어간 것이다. 하울릿들은 발톱을 날카롭게 세우고 천장에 꼭 붙어 있었지만 데비히치는 미끄러지는 와중에도 끝까지 검을 휘둘렀다. 그 결과 기어코 하울릿 한 녀석을 베어버렸다.
육중한 하울릿의 몸이 차량 위를 굴렀고, 데비히츠도 균형을 잃고서 똑같은 방향으로 미끄러졌다. 그녀는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떨어지기 직전에 차량 끝 부분을 잡고 버텼고, 뼈칼에 목숨이 끊어진 하울릿은 그대로 차량에서 나가 떨어졌다.
“크윽!”
빨리 올라가야 했다. 코너만 돌면 남은 하울릿 두 마리가 달려올 것이 뻔했다. 데비히츠는 턱뼈가 부서지도록 이를 악물고 힘을 주었다. 그러나 방금 전의 무리한 공격으로 관절이 뒤틀어졌는지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대롱대롱 매달려서 버티는 것이 고작이었다.
떨어지는 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한 찰나, 데비히츠는 차량 안에 백색의 랑이 나타난 게 보였다. 창문에 짙게 선팅이 되어서 일반 사람들에게는 안 보이겠지만 듄 종족인 그녀에게는 똑똑히 보였다.
* * *
데비히츠가 차량 위로 올라가자마자, 주영이 고함을 질렀다.
“옆에서도 따라와요!”
모두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흑표범들이 도로로 뛰어들었다. 녀석들은 곧바로 뛰어들지 않고 승합차와 비슷한 속도로 달렸다. 타이밍을 재는 듯했다. 난데없는 흑표범의 난입으로 도로는 금세 아비규환이 되었다.
“젠장, 저것들이 술을 처마셨나! 갑자기 왜 저래?”
다시 운전대를 잡은 오므로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그는 이제 때때로가 아닌 모든 신호등을 무시하며 운전했다. 리온은 사이드미러 너머로 따라오는 하울릿들을 보면서 외쳤다.
“모라이엠! 마법 좀 사용해봐! 하울릿들이 차량에 바싹 붙었어!”
“...차가 너무 흔들려.”
모라이엠의 대답은 항상 한 박자 느렸다. 결국 오므로가 폭발했다.
“자랑이다, 인마! 쫓기는 상황에서 무슨 고속버스 우등석 같은 안락함을 기대하고 있네! 앙? 네가 와서 운전해 봐! 이 정도만 해도…….”
“그럼, 신령은 부를 수 있지?”
리온은 오므로의 말을 가로막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신령은 금방 부를 수 있잖아. 그치?”
모라이엠은 작개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위쪽에서 괴기한 소리가 연달아 들려와 차량 안에 긴장감이 맴돌았다.
모라이엠의 주위에 바람이 불고, 곧 푸른색 빛이 넘실거렸다. 현우와 주영, 마토는 얼굴에 기대하는 눈길로 소녀를 지켜보았다. 잠시 후, 소녀는 방금 막 잠에서 일어난 듯이 졸린 눈으로 말했다.
“지금은 귀찮아서 싫대.”
“젠장, 그 영감탱이가 노망이 났나! 만날 바다 위에서 술 마실 때부터 알아봤다니까.”
오므로는 짜증을 내며 핸들을 쾅 내려찍다가 깜짝 놀랐다. 핸들이 기괴한 모양으로 찌그러져 있었다.
“다른 애들도 있잖아, 모라이엠!”
리온이 창밖의 흑표범들을 쳐다보며 간절하게 외쳤다. 이번에도 모라이엠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눈을 감았다. 그러곤 소중한 것을 감싸 쥐듯 두 손을 모았다.
소녀의 작은 손에서 새하얀 빛이 크게 번쩍이더니 손가락 틈 사이로 은은하게 빛이 새어나왔다. 모라이엠은 조심스럽게 손을 펼쳤다. 온몸에서 하얀 빛을 발산하고 있는 작은 생물체가 둥둥 떠 있었다. 그것은 언뜻 보기에는 작은 용 같기도 하고 언뜻 보면 나비 같기도 했다.
“와, 너무 예뻐…….”
주영은 넋을 잃고 하얀 빛을 바라보았다. 현우도 눈을 떼지 못했다. 그 생명체는 보는 이의 눈을 매혹하는 투명하면서 영롱한 빛을 뿜고 있었다.
“나비인가?”
마토가 턱을 쓰다듬으며 모라이엠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한 말이 맞는지 눈빛으로 물었지만 소녀는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그건 반딧불 랑이야. 모라이엠의 친구지! 됐어, 이제! 됐다고! 푸하하하!!”
백미러 너머로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는 오므로의 모습이 보였다. 반딧불 하나로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 듯한 웃음이었다.
모라이엠이 작게 소곤거렸다. 신기하게도 그동안 번역 이어폰 덕분에 모든 이종족들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던 현우도 이번만큼은 모라이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랑이라고 불린 반딧불은 키륵 하고 소리를 내면서 창문으로 다가갔다. 엄지보다 작은 이 생명체가 어떻게 하울릿들을 처리할 수 있는지 마토는 이해되지 않았다.
랑이 창문 앞에서 몸을 돌렸다. 반딧불의 몸을 둘러싸던 백색의 빛이 엉덩이에 모여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