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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라이트노벨
너와 함께
작가 : rororiri
작품등록일 : 2017.7.2

인간을 증오하는 드래곤 ‘엘리시아’와 아름다운 그녀에게 반한 인간 ‘이유하’는 누군가의 음모로 이세계에 떨어졌다. 차원이동의 부작용으로 하필 유하가 가장 꺼려하는 로리가 된 엘리시아. 곧 죽어도 싫어하던 둘이지만 점점 서로에 대한 감정은 싹트고……. 지구로 돌아가기 위한 유하와 엘리의 이세계 모험기.

 
아르시아 축제(1)
작성일 : 17-09-05 17:19     조회 : 498     추천 : 0     분량 : 5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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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찻잔에 차가 쪼르르 담기자, 은은한 차향이 유클리아의 집무실 이곳저곳으로 퍼져나갔다.

 ―색깔은 와인처럼 진한 자주색이지만 향으로 짐작하건데 홍차임이 분명하다.

 

 “어디, 정말일까……?”

 “유하 군, 그거――”

 

 나는 곧바로 찻잔을 입에 가져다대었다. 콧속을 타고 들어오는 향을 가까이에서 맡으니 더욱더 확신이 들었다.

 호로록.

 

 “앗뜨뜨뜨!”

 

 제법 조심스럽게 마셨는데도 불구하고 차는 무진장 뜨거웠다. 아니, 혀를 녹일 지경이었다. 마치 용암을 마시는 것처럼.

 

 “괘, 괜찮은 것이냐!”

 “정확히 끓는점에서만 우러나오는 차라 조금 더 기다리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그저 혀만 데었으면 나았을 텐데.

 ―예상을 웃도는 찻물의 온도에 깜짝 놀라 소중이(?) 쪽으로 흘리고 만 것이었다.

 

 “으아악!”

 

 불현듯 합성계의 마르지 않는 샘물이자 전설이 된 심모 씨가 떠올랐다.

 내가 고자라니?

 

 “바, 바보야! 움츠리지 말고 좀 가만히 있어 보거라!”

 “내가 고자라니! 이건 말도 안 된다구! 아우으헣헣!”

 “어휴, 정말!”

 

 짜악!

 ―아우윽. 간만에 맛보는 엘리의 손맛. 정확하게 내 팔뚝을 향한 엘리의 손바닥이 찰진 소리를 내었다.

 아팠지만, 확실히 그녀의 손맛에 진정되는 기분이었다.

 

 “치료해줄 테니까…….”

 

 부위가 부위다보니 그녀도 민망하다는 듯이 얼굴을 붉게 물들이면서 에메랄드빛 오오라가 어려 있는 손을 소중이 쪽으로 가까이 대었다.

 아, 물론 닿지는 않았다. 그저 엘리의 마법에 영향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에 있을 뿐인, 그저 그런 것일 뿐이다!

 

 “풋……! 호호호!”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자 물끄러미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유클리아가 폭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그, 그렇게 대놓고 웃으면 민망하다구요……!”

 “아하하! 미안해요, 비웃은 건 아니에요. 역시나 풋풋하구나 싶어서. 방금 전에 성숙해진 것 같다고 했는데 금방 또 소년 같은 모습이 보여서 흐뭇했어요. 물론 엘리시아 님도. 후훗.”

 

 유클리아가 웃음을 약간 진정시키고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확실히 지금 여기 셋 중에서 제일 어른스러운 모습이기는 했다.

 

 “흠, 흠……! 내가 너보다 연장자라는 것은 잊지 않았겠지, 유클리아?”

 

 나니까 이해하는 거지, 제 3자가 봤다면 아무리 엘리가 조금 성숙해졌다고 한들 유클리아에게 저렇게 말하는 모습을 이상하게 보았을 것이다.

 

 “그럼요. 그래도 제 눈에는 두 분 다 귀여워요.”

 “크, 크흠……!”

 

 물론 인간적인 면모에서 비롯된 ‘귀여움’이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유클리아 정도의 미인에게 저런 소리를 듣는다면 설레지 않을 수는 없겠…….

 

 “흥!”

 

 이런. 설마 나도 모르게 헤벌쭉 웃고 있었나.

 엘리가 자존심 상한다는 듯이 콧방귀를 뀌며 마주친 내 시선을 획하고 피했다.

 

 “자, 자. 각설하고 이제 이야기를 해보죠.”

 “그래 맞아, 지난번 알아봐달라고 한 것은 어떻게 되었지?”

 

 엘리가 머리 위로 느낌표를 띄우며 유클리아에게 물었다.

 ―알아봐달라고 한 것?

 

 “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방법은 못 찾았어요.”

 

 그녀가 슬슬 차를 조금씩 목구멍으로 넘긴 다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장 쪽으로 가더니 두꺼운 책 한 권을 꺼내어 와서 다시 소파에 앉았다.

 유클리아가 응접테이블에 내려놓고 펼친 책은 딱 봐도 엄청나게 오래된 서적이라고 느껴질 만큼 종이가 갈변해있었다.

 

 “아버님께서 쓰신 일기예요. 거의 10년에 한 번 정도 쓰셨으니 일기라고 하기에는 조금 무리려나요. 하하…….”

 

 거의 전공서적 정도 되는 엄청난 두께에 10년에 한 페이지씩 작성했다고 치면, 대체 몇 천 년이나 된 걸까?

 모르긴 몰라도 최소 단군할아버지 정도 나이는 됐을 법한 서적임이 분명했다. 보존이 저렇게 잘 될 수 있던 건 마법 덕분이겠지만.

 

 “생전에도 일기를 쓰고 계신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다지 언급은 안하셔서 볼 생각은 못하고 있었는데, 엘리시아 님과 이전에 잠시 얘기를 나누면서 문득 생각이 나서 읽어보았죠. 아버님께서 이 세계에 마법을 전파하셨으니 뭔가 아시지 않을까 하고요.”

 “카르트는 주로 불 계통에 능한 녀석이었는데, 제법 연구를 많이 한 모양이더구나.”

 “예. 제가 어렸을 때에도 늘 마법연구에만 몰두하셨죠. 하지만 다른 연구 서적과 마찬가지로 이 일기에도 결국 차원이동마법에 대한 원리는 적혀있지 않았어요. 그저 ‘차원이동에 대한 단서를 찾고자 했으나 실패했다.’는 내용밖에는…….”

 “으으음…….”

 

 유클리아의 결론에 대한 보충설명에 엘리가 턱을 괴고 숙연한 신음소리를 길게 끌었다.

 그러다 문득 엘리가 자신과 유클리아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던 나를 슥 보더니, 인상을 좋게 피고 그녀에게 말한다.

 

 “뭐, 시간은 많으니까 천천히 단서를 찾아봐도 되겠지.”

 “아, 엘리, 그건――”

 

 그녀가 한 말은 예전에 내가 그녀에게 했었던 말이다. 어떻게든 빨리 지구로 돌아가려는 그녀를 나무라면서.

 ―엘리는 내가 했던 말을 기억하고서…….

 

 “응?”

 

 싱그러운 포도 같은 생기 넘치는 보랏빛 눈으로 나를 쳐다보는 엘리. 그런 그녀가 고개를 갸웃하며 중간에 끊어진 내 말에 대한 궁금증을 표현한다.

 그 모습을 보고 심장에서 찌릿한 감정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아, 아아, 아냐……! 암것도.”

 

 내가 말을 더듬으면서 얼버무리자, 그녀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엘리는 유클리아를 향해 다시 고개를 돌려서 그 윤기 나는 아름다운 입술을 떼었다.

 

 “이 정도로 애써 준 것만으로도 고맙구나.”

 “하하……, 뭘요. 하지만 엘리시아 님, 아직 얘기가 남았어요.”

 “아직?”

 

 마치 대화를 마치려는 듯한 엉거주춤한 자세였던 엘리가 다시 소파에 앉았다.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된 엘리를 보고는 유클리아가 입을 열었다.

 

 “‘운티네스’라는 인물을 찾으면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요.”

 “운티네스?”

 “예. 아버님의 일기에도 언급되어있는 인물이자, 저와 함께 이 세계에서 ‘대현자’ 칭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죠.

 

 그러고 보니, WQT 당시에 시험 진행자가 유클리아를 소개할 때 그랬었지. ‘현존하는 두 명의 대현자 중 한 명’이라고.

 가만, 그녀의 아버지의 일기에도 적혀있다고 한다면…….

 

 “설마 운티네스라는 작자도 드래곤이라는 말이냐?”

 “예. 그렇지 않고서야 설명이 안 됩니다. 일기에 적혀있는 날짜는 제가 태어나기도 전인데, 아무리 강한 마력을 지닌 인간이라도 그 정도로 오래 살지는 못하니까요.”

 

 이 세계, 그러니까, 아르타니아라고 불리는 이곳에는 드래곤이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유클리아도 그렇고 그녀의 아버지 카르트도 그렇고, 알려져 있지 않다뿐이지 얼마든지 드래곤이 존재할 가능성은 충분해졌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흔한 일은 아닌 것 같지만…….

 그리고 엘리와 유클리아가 따로 얘기는 해주지 않았지만 엘리의 벗이자 의동생이라는 카르트가 몇 천 년 전부터 아르타니아에 존재했다면 차원이동은 단순히 공간을 초월할 뿐만 아니라 시간을 왜곡시킬 수도 있는 게 분명하다.

 앞서 언급한 드래곤의 존재가 비교적 흔한 일이 아닌 것으로 미루어보아 차원이동을 해도 타임패러독스는 일어나지는 않는 것 같다. 동세계간 시간이동이 아니라 이세계로이기 때문인 건가.

 애초에 다른 차원의 세계가 아니라 다른 행성이라면 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선 다른 차원이라고 보는 게…….

 어쨌거나 어렵고 복잡하다.

 하지만 일단 주목할 만한 점은 드래곤이 많을수록 마법에 대한 지식이 방대해질 것이고 차원이동마법에 대한 단서는 늘어난다는 것.

 문제는――

 

 “그 운티네스라는 사람이 호의적일까……?”

 

 ―처음 만났을 때의 엘리만 떠올려도 드래곤이 전부 유클리아처럼 호의적이라곤 생각할 수 없다.

 내가 알고 있는 상식에 의하면 사실 엘리마저도 호전적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지. 안 그러면 대한민국이 멸망했을 테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만나보는 수밖에 없겠지. 너무 걱정 마. ……마, 말거라. 내가 있으니깐.”

 “엘리…….”

 

 엘리가 있다면 듬직하다. 그리고 엘리 역시 내가 그렇게 느낄 정도로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얘기했다.

 그래도…….

 

 “헌데, 카르트 녀석은 어떻게 그자가 차원이동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한 거지? 직접 만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약 2500년 쯤 전에 적힌 아버님의 일기를 보면―”

 

 유클리아가 촤르륵 서적을 넘겨서 어느 한 페이지에 도달했다.

 

 「오늘은 미세하지만 범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 그것은 1차 성전 당시에 느꼈던 어떠한 기운과 같았다. 그때 당시 나는 태어난 지 200년도 안 된 헤츨링이었지만, 또렷하게 기억한다.」

 「몇 년에 수소문한 결과 그자의 이름은 운티네스라고 한다. 모르는 이름……. 하지만 그 느낌은 틀림이 없다. 누군가 나의 기억을 날조한 게 아니라면 확실하다. 물론 그런 자가 있을 리 없지. 만약 그 기운이 내가 생각하는 그자가, 아니, 그 사람이 맞다면―」

 

 “‘―차원이동에 대한 단서가 될 것이다.’ 라고 적혀있네요. 아무래도 직접 만난 건 못 하신 것 같지만…….”

 

 내용을 주르륵 읽어 내려간 유클리아가 마지막 문장과 함께 책을 덮었다.

 

 “1차 성전이라고?”

 “1차 성전에 대해서 아시나요?”

 “어떠한 사고로 한 드래곤의 자식이 죽은 게 계기가 돼서 벌어진 전쟁인데……, 나도 그 때는 카르트와 마찬가지로 어렸을 때라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많은 드래곤들이 영면하고 지구도 상당히 피폐해졌었지. 내 부모님도 그 때 영면하셨고.”

 “그렇군요……. 어쩌면 그 때 누군가가 차원이동을 사용했는데 우연히 이 아르타니아에 오게 된 것 아닐까요?”

 “글쎄. 카르트의 일기에도 적혀있지만 ‘운티네스’라는 이름은 나도 이름은 들어본 적 없어. 어렸을 때라곤 해도 만약 차원이동이나 되는 마법을 사용하는 게 가능한 자라면 내가 그 이름을 모를 리가 없을 터.”

 

 엘리는 확신에 차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유클리아는 뭐라고 말을 이어야할 지 모르겠는지, 그저 턱을 괴고 ‘으음’하며 신음을 낼 뿐이었다.

 

 “뭐, 여기에 앉아 있는다고 답이 나오진 않겠지. 결국 그자를 찾아서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유하, 이만 일어나자꾸나.”

 

 엘리가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응접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역시 직접 만나는 게 정답이겠네요. 후훗. ――아, 수소문으로 얻은 정보라 정확하지 않을 수 있지만 운티네스란 작자가 세브란티아에 있다는 얘기가 있었어요. 깜빡할 뻔 했네요.”

 “세브란티아라면 파르마란스 대륙과 툴피나 해협을 지나서야 있는 동쪽 대륙의 기사단 국가를 말씀하시는 거죠?”

 “제법 알고 계시네요?”

 

 당연하지! 늘 말하는 거지만 놀고먹는 사람이 아니라구, 나는.

 엘리가 치유소 일로 바쁜 와중에 이 세계에 대한 지식이나 정보를 수집하는 몫은 내 담당이었지!

 

 “내일 당장 출발하시는 건가요?”

 “일단 세브란티아로 가기로 정해진 거니까 가급적 빨리 출발하는 게 좋지 않을까, 엘리? 그 운티네스라는 사람이 언제 세브란티아를 떠날지도 모르니…….”

 “아, 응. 뭐, 네가 준비되는 대로 출발하면 될 것 같구나.”

 “――그렇다고 하네요.”

 

 솔직한 마음으로 말하자면 빨리 출발해도 좋고, 이런 저런 정보를 더 알아보다가 출발해도 나쁘진 않을 것 같긴 하지만.

 근데 유클리아가 이렇게 물어보는 이유는 단순히 아쉬워서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아, 다른 게 아니라, 내일 아르키메시아 전역에서 이루어지는 ‘아르시아 축제’가 있어서 그 축제를 즐기고 가는 건 어떨까 해서요. 후훗. 두 분한테도 좋은 추억이 될 것 같고…….”

 “에? 축제요? 내일이면……, 12월 25일인데.”

 

 가만, 12월 25일이면 지구에서는 크리스마스잖아? 전 세계적인 축제의 날인데! 우연인가, 이곳에서도 축제라니.

 

 “엘리시아 님하고 오붓하게 둘이서 축제를 즐기세요, 유하 군. 후훗.”

 “에, 에, 엘리랑요?! 오, 오붓?!”

 

 뜬금없이 민망한 말을 던진 유클리아. 그 얘기를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엘리에게 시선이 갔다. 그리고 그것은 나뿐만은 아니었는지, 그녀와 시선을 마주치고 말았다.

 

 “……아.”

 

 엘리가 문득 얼굴이 발개진 채로 시선을 회피했다.

 이전의 어린아이 같은 모습일지라도 이제는 반할지 모르는데, 하물며 새침한 소녀 같은 지금 그녀의 얼굴을 보니 나도 모르게 심장이 콩닥거린다.

 

 “에, 엘리, 그, 그게…….”

 

 가뜩이나 갑자기 분위기가 확 바뀐 집무실의 공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유클리아의 다음 말이 내 얼굴을 후끈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그날 남녀가 단 둘이서 불꽃놀이를 구경할 때 눈이 내리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전설도 있어요.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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