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시아의 백옥 같은 맨발이 우거진 숲의 넓은 수풀의 터를 사뿐히 즈려밟는다.
솨아아――.
나무와 나무 사이로 시원하게 부는 풀내음 가득한 바람에 그녀의 보드랍고 깃털처럼 가벼운 흰색의 시폰 원피스가 펄럭였다.
작고 푸른 새가 그녀의 손가락 끝에 앉아 인사를 나누듯 짹짹거린다.
사라락――.
한 번 더 불어오는 향긋한 바람에 흩날리는 찬란하고 윤기 가득한 은발.
머리칼을 귀 뒤로 쓸어 넘기다가 문득 무언가를 발견한 듯 눈을 깜빡이는 그녀였다.
“――인간? 어떻게 내 둥지에…….”
엘리시아가 바라보는 시선 끝에는 검은색 머리카락이 흐트러진 채 풀숲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는 한 청년이 있었다.
“생명이 위독해…….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그녀가 티 없이 깨끗한 다리의 뽀얀 피부를 드러내고 앉아서 청년의 머리를 자신의 허벅지 위에 올려 받쳤다.
그러고 나서는 에메랄드빛 오오라가 어려있는 손―그녀의 마법―으로 그의 이마에 난 상처를 보듬어주려는 찰나――
“으음…….”
엘리시아의 치유마법이 아직 닿지 않았음에도 거짓말같이 그의 이마에 흐르고 있던 피가 사라졌고, 찌푸리고 있던 그의 표정도 평화를 되찾았다.
“상처가…… 저절로 나았어? 어째서 인간에게 이런 능력이…….”
그녀가 놀라 커진 토끼 같은 눈으로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상처를 다시 한번 살핀다.
하지만 그의 편안해진 얼굴을 보더니 깊은 고민보다는 마음을 놓는 쪽을 선택한다.
“행복해보여…….”
다소곳하게 말한 그녀가 그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며 생각한다.
―아기 같은 얼굴, 마치 작은 강아지가 눈을 감고 있는 것처럼 순수하고 포근한 눈매와 눈썹, 적당한 높이의 코와 촉촉한 입술.
“후훗, 멍멍이 같아.”
그녀의 앵두같이 도톰하고 산호처럼 은은한 분홍빛이 도는 진한 복숭아색 입술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못 말리는 개구쟁이를 보는 듯이 눈썹이 팔(八) 자를 그리고, 흐뭇하게 뜬 눈의 은하수 같은 자색 눈동자가 맑게 반짝인다.
저도 모르게 그의 머리카락에 손이 가는 엘리시아. 청년의 검은색 머리칼을 쓸어 넘겨주며 그의 얼굴을 한참 바라본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엘리시아가 이곳에 둥지를 트고 약 수십 년간 보았던 이 근방의 인간들은 대부분 여성이나 아이들, 그것도 아니면 노인이었다.
청소년이나 중년의 남성까진 이따금씩 보이지만, 인간들 사이에서는 오랜 전쟁이 지속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처럼 젊고 건장한 남자는 좀처럼 본 적 없는 일이었다.
“으, 으음, 아이고 머리야…….”
청년은 신음을 내고는 자신의 이마에 손을 갖다 대며 천천히 눈을 떴다.
눈을 뜬 청년의 시야에는 숲의 나뭇가지 사이로 드러나는 창궁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여인의 얼굴이 있었다.
“어…….”
그는 놀란 듯이 입을 작게 벌려 고요한 탄성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이내 그녀의 머리에 달린 흰색의 ‘뿔’을 보고나서 안도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달싹였다.
“계속 찾아 헤맸었는데, 제대로 찾아온 거 맞구나…….”
“네, 네? 그게 무슨……, 그보다 이 손―”
청년이 손을 갖다 댄 이마에는 엘리시아의 따뜻하고 포근한 손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손이 그녀의 손을 포개어 얹은 것을 눈치 챘지만 오히려 그 손을 더욱 꼬옥 쥐었고,
―감격에 벅찬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다, 당신, 왜 이렇게 제 손을 꽉, 아니, 그보다― 당신은 대체 누구죠?”
엘리시아는 자신의 손을 꽉 잡은 채 놓아주지 않는 청년의 행동에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그리고 부끄러운 듯이 잘 익은 사과처럼 붉게 물든 그녀의 뺨.
“……저는 ‘발데르’라고 합니다. 찬희(燦犧)의 드래곤이여.”
자신의 이름을 발데르라고 말한 청년은 그녀의 손을 그대로 당겼다.
“……!”
황홀하게 떨어지는 은색의 머리카락과 함께 엘리시아는 발데르에게서 나는 애틋한 향기에 가까워졌다.
그녀의 달콤한 향이 나는 산호색 입술이 그의 입술과 맞닿는다.
뜨겁게 벅차오르는 사랑을 담아 볼을 타고 흐르는 그의 애절한 감정에 그녀는 거부할 생각조차 들지 못했다.
입술과 입술 사이에 한껏 달아오른 그의 따스한 숨결이 머무른다.
“보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