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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기억의 문
작가 : 최윤정
작품등록일 : 2017.6.24

<기억의 문>은 왼손에 무속의 몸주신을 봉인한 정신과 의사가 환자의 숨겨진 기억을 왼손 그림으로 그려내는 치유의 이야기와, 수몰지구로 지정되어 고향을 잃고 서울에 정착한 이들의 실종과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는 두 가지 이야기가 중첩되는 구조로 이루어졌다.

 
봄날, 바닷가 - 2
작성일 : 17-06-26 17:14     조회 : 292     추천 : 0     분량 : 6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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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수희는 오른손으로 만년필을 들어 진료 챠트에 dissociative disorder 라고 썼다.

 

 “혜인이는 언제부터 동생의 꿈 속에 있었어?”

 

 “물에 빠졌을 때부터요.”

 

 “신 주경씨가 자꾸 불안하고 우울하고 죄책감이 드는 것이 너 때문이야?”

 

 순간 신 주경 환자가 눈을 반짝 떴다. 환자는 수희를 보고 씩 웃으며 심술에 가득 찬 어린 아이의 목소리로 놀리듯 말했다.

 

 “나 때문이지. 내가 맨날 속삭이거든. 너는 나쁜 년이라고. 죽어야 하는 년이라고.”

 

 “신 주경씨가 왜 나빠? 엄마한테도 정말 효도하는 착한 딸인데.”

 

 “착한 딸?”

 

 웃기는 소리는 집어치우라는 듯 어린 아이의 얼굴을 한 환자가 깔깔 웃었다. 잔인한 웃음. 어린아이의 맹목적인 증오가 담긴 웃음.

 

 악의를 잔뜩 머금은 웃음 소리에 자극을 받았는지 수희의 왼손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왼손은 빨간 색연필을 집으려 책상을 가로질렀다.

 

 수희는 오른손으로 바퀴벌레를 짓이기듯 왼손을 내리눌렀다. 제발..... 진료 시간이란 말이다. 그것도 환자 내면의 다른 인격이 나온. 의사까지 다른 인격이 나와서 난리굿판을 벌어야겠나. 확 마취제를 주사해 버릴까 보다. 수희는 오른손으로 서랍을 열어 리도카인 병을 꺼냈다.

 

 “주경이가 죽었으면 울 엄마가 울 일도 없었어. 나를 밀었으면서 내 엄마까지 차지하고!!!!”

 

 어린아이가 수희를 보면서 억울하다는 듯 호소했다. 다음 순간 신 주경 환자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의자가 뒤로 튕겨나갔다.

 

 “아냐! 내가 민 게 아냐. 언니가 밀었잖아. 민 건 언니야.”

 

 순식간에 신 주경으로 돌아온 환자가 분노에 차 외쳤다.

 수희는 만지작거리던 리도카인 병을 책상 한 구석에 던지며 일어섰다.

 

 “신 주경씨, 숨을 내 쉬세요. 후우~ 길게”

 

 수희는 신 주경 환자에게 다가섰다. 하지만 평소의 차분하고 공손하고 주눅 든 태도는 신 주경 환자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다.

 

 “이거 뭐에요? 뭘 불러낸 거에요? 당신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우울증 치료하러 왔는데 나를 미치게 만들 작정이에요?”

 

 빙고!

 수희는 살풋 웃음 지었다.

 

 무기력한 내면을 깨우는 것. 죄책감으로 움츠러들어 굳어버린 내면의 감정을 깨워 쏟아내게 하는 것. 치료의 첫걸음이다.

 

 “주경씨, 7세 이전의 어린 아이들은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잘못해서, 내가 나쁜 아이라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하는 거죠. 언니의 죽음 후 새엄마의 슬픔을 보면서 어린 주경씨는 그 일이 마치 자기 탓인양 느꼈을 겁니다. 그런 주경씨의 죄책감이 언니로 나타나는 혜인이란 인격을 만들어 낸 것이죠.”

 

 “내가 왜 죄책감을 느껴요? 민 건 언니라구요, 내가 아니고.”

 

 “우리 무의식과 잠재의식은 그렇게 이성적으로 작동하지 않아요. 머리로는, 의식으로는 언니가 나를 밀어서 같이 빠졌고, 그래서 그 일은 내 탓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마음 깊숙이, 주경씨의 무의식에선 내가 좀 더 착하게 굴었으면, 내가 좀 더 잘했으면 언니가 죽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는 거죠. 그런 것이 절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에요.”

 

 주경씨의 몸이 허물어지듯 의자 위로 쏟아졌다. 주경은 의자에 앉아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언니가 죽었는데도 새엄마는 울지 않으셨어요. 전남편 잡아먹고 새끼까지 잡아먹은 독한 년이라고 고모들이 막 쑥덕거려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으셨어요. 다만...... 이렇게...... 이렇게......”

 

 신 주경 환자가 오른손으로 쇄골 밑 심장을 주먹으로 쳤다. 터엉.... 텅......

 

 차마 말로 옮겨지지 않는 절망과 슬픔의 소리가 진료실을 가득 채웠다.

 

 “불도 안 켠 주방에 쪼그리고 앉아서, 새엄마는 가슴을 쳤어요. 부서져라...... 부서져라...... 부서져서 죽어버려라 하듯이......”

 

 수희는 가슴을 두드리고 있는 주경의 손을 부드럽게 잡았다.

 

 “위로할 수 없는 새엄마의 슬픔을 보면서 주경씨도 힘드셨을 거에요. 주경씨도 그 때 놀라고 슬픈 어린 아이었어요. 언니를 잃고 새엄마의 절망을 지켜보는 힘겨운 어린 아이, 위로받고 돌봄을 받아야 했던 어린 아이었어요. 그 죽음은 주경씨 탓이 아닙니다. 아니에요.”

 

 헉, 신 주경 환자의 입에서 울음 소리가 터져 나왔다. 컥컥, 짐승의 신음처럼 헐떡거리는 고통의 소리였다. 주경은 수희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빼내 얼굴을 감싼 채 오래 오래 울었다.

 

 수희는 20년이 지나고 나서야 제대로 입 밖으로 새어나오는 긴 울음소리를 들으며 주경의 어깨를 살포시 두드렸다.

 

 당신 탓이 아닙니다, 신 주경씨. 그건 사고였고 그 때 당신도 위로 받고 돌봄을 받아야 할 어린 아이었어요. 당신 탓이 아닙니다. 부디 죄책감을 털어버리시길.....

 끝없는 자책과 우울에서 벗어나 언니를 대신하는 삶이 아니라 신 주경씨, 자신의 삶을 살아나가시길......

 

 신 주경씨의 울음이 잦아들면서, 수희는 책상에 돌아가 챠트에 치료 내용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의붓 언니의 죽음 후 자책감으로 혜인이란 하위 인격을 만들어 낸 환자. 만성적인 우울 기전은 언니 죽음에 따른 자책감에서 비롯. 언니 인격으로 쪼개진 인격을 통합하는 치료 필요.

 

 사락사락 만년필 소리가 멈출 때 즈음, 주경씨의 울음소리도 멈췄다. 수희는 챠트에서 고개를 들어 지금쯤 깊게 각인된 죄책감을 털어내고 한결 후련해져 있을 환자를 바라보았다.

 

 환자도 눈물이 채 마르지 않은 눈으로 수희를 바라보았다. 눈물에 젖은 눈동자가 한층 까맣게 반짝거렸다.

 

 “정말로 얘가 밀었단 말이야. 민 건 내가 아니라 신 주경, 얘라니까!”

 

 분해서 어쩔 줄 몰라하는 어린 아이의 얼굴이 수희를 보며 호소하고 있었다.

 

 수희는 환자 등 뒤로 교묘하게 감춰져 있는 시계를 슬쩍 보았다. 상담 종료까지 5분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오래된 심리 문제일수록 서두르면 오히려 반동이 커서 극심한 우울이나 자해로까지 악화될 수 있다. 오늘은 스스로를 죽은 언니 혜인이라 일컫는 하위 인격을 확인하는 선에서 상담 세션을 종료하기로 했다.

 

 수희는 단호한 목소리로 환자의 이름을 불렀다.

 

 “신 주경씨, 정신 차리세요. 신 주경씨, 대답하세요, 신 주경씨!”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주경씨가 고개를 숙였다.

 

 “제가..... 빙의된 것인가요?”

 

 잠시 침묵하던 환자는 고개도 들지 못한 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수희는 고개를 저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이 닥치면 우리 의식이 쪼개지면서 여러 하위 인격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런 인격들이 서로 다른 별개의 사람들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하기도 해요. 이게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들이 왜 생겨났는지 원인이 되는 심리적 사건을 인지해서, 그 사건이 남긴 감정의 파장을 충분히 인지하고 애도하여 해소하는 과정을 통해 긍정의 심리 에너지로 바꿔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주경씨의 주 인격에 통합되게 됩니다.”

 

 주경이 고개를 들어 수희를 바라보았다.

 

 “그래서 제가 늘 모든 일이 다 제탓인 것처럼 느낀 건가요? 사실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제 한편은 항의하고 싶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늘 다 네 탓이야, 네 잘못이야 속삭이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어요. 그래서....... 제 의견을 강하게 이야기하지 못하고 휘둘리고 있었나 싶어요.”

 

 “맞습니다. 죄책감과 불안함을 불러 일으켜서 지치게 만드는 심리적 기제가 어릴 적 언니 죽음이 자신의 탓으로 느끼는, 비난하는 내면의 조각이 만들어낸 심리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어린 시절의 사건의 파장을 확인했습니다. 다음 주 상담까지 오늘 최면 유도과정에서 했던 긴장을 푸는 훈련과 몸을 빛으로 채우는 훈련을 계속 하시기 바랍니다.”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신 주경 환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참 동안 두 손으로 양 눈을 비볐다. 마치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되었다는 듯.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 같아요. 제가 나쁜 사람인 걸 사람들이 알아챌까봐 늘 불안했는데 그게 제가 지어낸 목소리일 수 있다고 알게 되니 가벼워지네요.”

 

 수희는 가볍게 미소짓는 주경에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알게 되면 서서히 바꿔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의식과 망각에 밀어 넣어둔 심리적 원인들을 캐내야 하는 이유이지요. 그간 눌러두었던 감정들이 불쑥불쑥 올라와 힘들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심호흡을 하며 숨을 길게 내쉬고, 몸을 빛으로 채우는 훈련을 하세요. 또 그 때의 주경씨는 어린 아이였고, 그 사건은 주경씨의 탓이 아니었음을 주지해야 합니다.”

 

 주경씨는 한 번 더 눈가를 비비고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문으로 향하는 주경씨의 보폭이 들어올 때보다 한층 넓어지고 강해졌다.

 

 진료실의 문이 닫히는 것을 확인한 수희는 책상 밑에 두었던 그림을 꺼냈다. 초록 코트의 소녀가 빨간 코트 소녀의 손을 뿌리치는 그림. 다시 보니 뿌리치는 것이 아니라 잡기 이한 것도 같았다.

 

 당신은 누구였는가? 빨간 코트였는가 초록 코트였는가?

 의문을 곱씹으며 수희는 그림을 주경의 챠트와 함께 환자 상담 챠트 꽂이에 함께 넣었다.

 

 한편 지하 주차장의 주경은 차에 시동도 켜지 않은 채 한참을 운전석에 앉아 있는 참이었다. 머리 속이 맑아지는 느낌이 오히려 생경했다. 그러면서도 뭔가 불편했다. 무언가...... 맑아진 머리 속에 무언가가 떠오르려 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무엇인가가.

 

 

 주경은 눈 화장이 번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양눈을 비볐다. 그 때 전화기가 웅웅거렸다. 흐린 시야 사이로 발신인이 보였다. 엄마였다, 새엄마.

 

 늘 자신의 일상을 알아내야 직정이 풀리는, 친딸대신 나를 살린 새엄마.

 

 “어디니? 오늘 일찍 온다고 하지 않았어?”

 

 새엄마의 목소리가 뱀처럼 몸에 착착 감겼다. 몸에 소름이 돋아나도록 다정한 목소리. 하지만 시선은 늘 주경을 넘어 다른 이를 찾고 있었지. 그게 얼마나 사람 미안하게 만드는지 당신은 모를 것이다.

 

 “감기는 좀 어떠세요? 엄마 좋아하시는 초밥 사가지고 들어가려는 참인데.”

 

 “초밥? 그럼 어전에 들러 사와. 초밥은 그 집 것이 두껍잖니. 아유, 입맛 없어 점심도 못 먹었어. 늬 아버지는 내가 이렇게 몸살이 나서 아프다는데도 늦으신단다. 그 양반은 어째 그리 맨날 바쁘시다니. 마누라가 아프다는데도 무신경하기가......”

 

 “엄마, 나 신호 받아서 출발해야 해요. 30분 정도 걸려요.”

 

 주경은 끝없이 이어질 엄마의 말을 평생 처음으로 자르고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헉 하며 놀라는 새엄마의 목소리가 끊긴 전화기 밖으로 새어나오는 듯했다.

 

 아마 새엄마는 아랫입술을 지긋하게 깨물겠지. 주경이 앞에 있었다면 그렇게 입술을 살짝 깨문 채로 눈에 벌써 눈물을 가득 채운 채 고개를 살살 저었을 것이다.

 

 ‘나쁜 기집애. 너는 나쁜 기집애야. 내가 너를 어떻게 살렸는데, 늬가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사람이라면 늬가 이럴 수는 없는 거다.’

 

 차라리 욕을 하거나 때리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사슴처럼 큰 눈망울로 상처받았다는 듯 울먹거리는 그 눈동자 앞에서 주경은 평생 숨도 제대로 못 쉬며 죽은 딸 몫까지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했다.

 

 당신이 혜인이란 인격을 만든 거야, 당신이. 당신의 그 빌어먹을 원망 가득한 눈동자가. ‘왜 네가 살았니, 내 딸은 어디가고 너 따위가 내 앞에 있는 거니’ 하고 평생을 주경 어깨 너머 친딸만 찾아온 그 눈동자가.

 

 감당 못할 정도로 치솟아오르는 분노의 감정에 운전대를 쥔 주경의 손이 부들부들 떨었다. 주경은 급하게 숨을 길게 내쉬며 ‘괜찮아, 괜찮아, 화를 내도 괜찮아’ 만트라처럼 주문을 외웠다.

 

 하지만 괜찮지 않았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쌓아두기만 했던 분노가 처음으로 의식으로 올라오면서 눈 앞을 가릴 정도로 격하게 요동쳤다. 주경은 전화기를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 봉지 옆에 팽개치고, 거칠게 차를 출발했다.

 

 거리는 퇴근하는 차들로 꽉 차 있었다. 좌회전 차선에서 신호를 기다리면서도 주경의 분노를 식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신호를 받고도 좌우 정면을 확인하고 출발하던 평소의 신중함 없이 주경은 급하게 악셀레이터를 밟았다. 빵~ 하는 클랙션 소리를 듣고서야 맞은편 직진 차선에서 까만 승용차가 달려오고 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당황한 주경의 오른발이 악셀레이터를 밟는 대신 브레이크를 밟았다. 차량이 멈춤과 동시에 차체 옆을 강타한 강한 충격이 주경의 차를 주욱 옆으로 밀어냈다.

 

 차창에 비친 머리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의식이 흐려지는 사이로 주경은 주경은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깔깔대는 언니의 목소리를. 그 어린 시절 ‘내 엄마야’하고 자신을 구박하던 그 목소리로 언니는 소리쳤다.

 

 “나쁜 기집애, 너도 나처럼 어둠 속에서 혼자 떨게 될거야!”

 

 운전대에 머리를 묻은 주경이 어린 아이의 목소리로 깔깔대며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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