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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
기억의 문
작가 : 최윤정
작품등록일 : 2017.6.24

<기억의 문>은 왼손에 무속의 몸주신을 봉인한 정신과 의사가 환자의 숨겨진 기억을 왼손 그림으로 그려내는 치유의 이야기와, 수몰지구로 지정되어 고향을 잃고 서울에 정착한 이들의 실종과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는 두 가지 이야기가 중첩되는 구조로 이루어졌다.

 
1. 멈춰버린 시계 - 3
작성일 : 17-06-24 22:41     조회 : 308     추천 : 0     분량 : 2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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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니까 그 문 뒤에 무엇이 있을지는 전혀 짐작이 안된다는 거지?”

 

 선배는 얇은 금 조각을 섬세하게 올린 참치 조각을 참기름장에 찍어 오물거리며 물었다.

 

 “두려운 것이 있다는 거 빼고는 짐작이 잘 안가요. 그 지하실이 어릴 때 살던 관서동 산꼭대기 집에 있던 거거든요. 연탄광 한 켠에 김장김치며 고구마 같은 거 저장해두었던.”

 

 수희는 고구마 튀김을 베어먹었다.

 

 “어머니 죽음과 관련되지 않았을까? 어머님이 돌아가신 것이 일곱 살 즈음이라며? 너 그 때 기억이 거의 안 난다고 했잖아. 보통 그런 중요한 일들은 의식에 강하게 새겨지게 마련인데 기억을 못한다는 건 거기에 네가 두려워하는 무슨 일이 얽혀 있다는 거잖아.”

 

 엄마.

 

 삼키던 고구마 튀김 조각이 목에 걸려 수희는 급히 물을 들이켰다. 그러다가 사레에 들리고 말았다. 얼굴이 벌개져 한참을 컥컥거리는 수희를 보던 재형 선배가 등을 가볍게 쳐주었다.

 

 “온 몸으로 거부하는구나. 도대체 그 때 관서동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 이야기만 나오면 니 몸이 이러냐? 아이구 참.”

 

 수희는 화가 나서 선배의 손을 탁 쳐냈다.

 

 “그렇게 사연 많은 사람 취급 좀 하지 마요. 어렵게 자랐어도 의대 나와 이렇게 의사 되었잖아. 뭐 흙수저는 눈물 겨운 사연은 줄줄이 달고 있어야 한다는 거야, 뭐야.”

 

 사케 한 모금을 호르륵 삼키며 선배는 놀리듯 말했다.

 

 “발끈하긴. 너 그거 콤플렉스야, 콤플렉스. 방점은 흙수저가 아니라 어릴 적 봉인한 기억에 있는 건데 흙수저에 발끈하는 거.”

 

 “부인이야, 부인. 부인 방어기제라고. 생각해 봐요. 일곱 살 짜리에게 엄마를 잃는다는 건 온 우주를 잃는 거잖아. 그러니까 내가 엄마를 잃었다는 사실을 아예 부인하는 방어기제를 쓰다 보니 그 때 기억도 같이 부인하는 거지. 뭐 그렇게 사연 많은 사람을 만들어서 이상한 사람 만들고.....”

 

 말하다 보니 눈물이 났다. 주책이다, 아 주책. 서른이 되어도 엄마 없다고 징징대다니...... 수희는 맥주 한 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엄마가 있어도 없느니만 못하기도 해. 어린 시절 제대로 된 양육을 못 받아서 망가진 환자들 많이 보잖아. 내가 결혼을 안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선배가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별안간 일식집의 반 평도 안되는 방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두 사람은 각자의 생의 무게에 눌린 채 참치 조각을 먹는 데 집중했다. 엄마가 없어서 삶의 한 자락을 잃어버린 사람과, 엄마가 있어서 끝없이 괴롭기만 했던 사람이 마주 앉아 달리 무엇을 하겠는가.

 

 “꿈에 가끔 등장해서 널 구원해준다는 남자애를 찾아보지 그래?”

 

 접시가 거의 비어갈 때 즈음 재형 선배가 지나가는 투로 툭 말을 던졌다. 수희의 젓가락이 공중에 그대로 정지했다. 재형 선배는 수희 손을 잡아 젓가락을 상에 내려놓게 하면서 말을 이었다.

 

 “그렇잖아? 지하실 문 앞에서 떨 때 너를 불러 지상으로 나오게 한다는 애가 너보다 세 살 많았다며? 그럼 네가 기억 못하는 일들도 많이 알고 있을 거 아냐? 그러면 너도 꽉 막힌 실마리를 풀 수 있을 거고......”

 

 수희는 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강혁 오빠는...... 찾을 수 없어. 찾아선 안 돼.”

 

 “왜? 찾았더니 너무 실망스러워서 더 이상 꿈 속에서 널 구해주지 않을까봐서? 야, 첫사랑이 기억 속에서나 아름답다고 해도 이 경우는 다르지 않아?”

 

 강혁 오빠는 찾을 수 없다. 오빠 아버지로 인해 아빠가 어떻게 사셨는데.....

 수희는 강렬한 그리움과 그만큼이나 강렬한 증오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고개를 저었다.

 

 “아 쫌, 선배님! 아니 정 재형 원장님. 거 남의 사생활을 너무 파헤치는 것도 실례입니다. 아무리 내가 후배이자 정신분석을 받는 동료 관계라고 해도.”

 

 재형 선배의 얼굴이 멍해졌다. 그러더니 피식 웃었다.

 

 “너 그렇게 머리 속에 완벽한 존재 하나 만들어 놓고 현실의 남자들 모두 거부하는 거, 그거 과도한 이상화야. 정상적인 성장과정에서 일곱 살이면 벗어났어야 할 원시적 방어기제인 이상화라고. 자라라 좀. 남자들 만나서 연애도 하고 섹스도 하고.”

 

 수희도 지지 않았다.

 

 “그러는 선배는 그럼 끝없이 요구만 했던 어머니에 질려서 모든 여자들을 평가절하 하는 과도한 나르시시즘적 방어기제를 사용하는 거고? 그래서 대충 연애하다가 잠만 자고 차버리는 거 아니십니까? 또 엄마같은 여자에게 휘둘릴까봐 두려워서.”

 

 어이 없다는 듯 서로를 응시하던 둘은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정신과 의사들이란......”

 

 고개를 절래절래 저으며 재형 선배가 맥주 병을 들어 수희의 유리잔을 가득 채웠다.

 

 “자 마시자. 제 머리 못 깍는 가련한 중들을 위하여.”

 

 수희와 재형은 단숨에 잔을 비웠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 거 같다고 수희는 얼핏 생각했다.

 라일락 꽃이 필 때마다 지하실의 문 앞에 서 떠는 꿈을 꾼다 해도, 이 정도면 견딜 수 있는, 그럭저럭 괜찮은 삶이라고 수희는 생각했다.

 

 월급 잘 나오겠다, 적당히 거리 지키며 삶의 시간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선배이자 동료인 정 원장도 있으니까.

 

 학자금 풀로 융자 받고 그래도 모자라는 교재비 벌기 위해서 타로 카페에서 점 봐주는 아르바이트도 하고, 여름이면 화상 상처가 덧나 장기 입원해야 하는 아버지 병원비도 대고.

 

 전투하듯 버티며 살아온 날들이 가고 그럭저럭 안정된 삶이 시작되었지 않나? 눅눅한 지하실의 검은 문 앞에 서는 것이 이젠 그리 두렵지 않았다. 누구나 가끔 꾸는 악몽같은 거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그러나 삶이 어디 그렇던가? 그럭저럭 유지되는 평화는 곧 깨어지기 마련이라는 걸, 수희의 왼손은 알고 있는 듯 탁자 밑에서 혼자 뱀처럼 꿈틀거리며 알아보기 힘든 그림을 그려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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