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궁도 다크 엘프의 성처럼 넓었다. 다른 마을에 있는 대부분의 것들이 있었는데 천유강이 원하는 것은 다크 엘프 성의 업그레이드 상점 같은 특수 건물이다.
다크 엘프 성처럼 이곳의 화폐 단위도 플레다. 지금까지 벌어놓은 플레는 모두 업그레이드하는 데 쓰여서 가진 것이 없다.
무림 계열 마을답게 중원의 무기들과 일반적인 스킬북을 팔았다. 지저 세계의 물품이라서 지상의 것들보다 성능이 월등히 좋았지만 지금 천유강의 수하들이 쓸 무기나 스킬은 아니었다.
“아~ 당군명이 있었네.”
당군명은 무림계 직업과 종족이라서 이곳에서 그녀가 쓸 만한 물건을 얻을지도 모른다.
“나중에 데려와야겠네.”
숙식을 제공하는 대가로 목숨이 걸린 위험한 일에 계속 투입하고 있다. 본인도 불평하는 일은 없지만 여기서 쓸모 있는 물건을 얻으면 당군명에게 주는 것이 좋은 생각 같았다.
그리고 예상대로 이곳에 특수 상점도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상점이 아니었다.
[한음동(寒陰洞]
그것은 거대한 동굴이었는데 멀리서도 느낄 만큼 소름 끼치는 한기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천유강은 그곳이 궁금해서 지나가던 주민에게 물어보았다.
“저곳은 뭐 하는 곳인가요?”
“아~ 저곳이요? 저곳은 고대부터 있어 온 신비한 동굴이오. 저곳을 통과하면 강력한 무기나 무공을 얻을 수 있다고 전해지지. 단, 끔찍한 고대의 존재들이 지키고 있어서 통과하기 쉽지 않을 것이오.”
“저긴 아무나 들어갈 수 있습니까?”
“물론이지. 힘이 있는 자라면 누구라도 도전할 수 있소. 하지만 평범한 사람이 들어가면 지독한 냉기에 그대로 얼음 동상이 돼 버리고 말 거요.”
클리어하면 보상을 주는 일종의 시련의 탑 같은 장소인 것 같았다. 마을 안에 던전이 있는 셈이다.
문제는 나오는 아이템도 무림 계열 아이템일 것이 분명하니 최소한 지금으로서는 별 쓸모가 없어 보였다.
“업그레이드 상점이 좋았던 거네.”
조금 아쉽지만 빙궁과 외교적인 진전이 있었던 것으로 만족했다. 오늘은 이곳에서 더 볼일이 남아 있지 않아서 천유강도 성으로 복귀했다.
***
며칠이 지나 2학기의 중간고사도 거의 끝나갔다.
시험 말기에 예고한 대로 무과의 학생들 간의 대련이 진행되었는데 초반부터 흥미로운 대진이 펼쳐졌다.
초반을 뜨겁게 달군 것은 역시 배대강과 혈교의 광우의 대련이었다.
“혈사장!”
“단목참!”
두 손이 시뻘겋게 변한 광우와 거대한 할버드를 휘두르는 배대강이 부딪칠 때마다 고막을 터트릴 것 같은 거대한 폭발 소리가 터져 나왔다.
구경하는 이들이 모두 귀에 기막을 둘러 보호해야 할 정도니 평범한 사람은 구경조차 하기 힘들었다.
“대강이와 엇비슷할 정도면 광우도 실력이 꽤 늘었네.”
“오빠의 실력이 준 것도 있지 아무래도 무기를 바꾸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겠지만.”
둘의 대련을 구경하고 있던 천유강과 배연아는 객관적인 잣대로 실력을 판가름하고 있었다.
광우는 예전보다 더 흉포한 기운을 휘두르고 있었고 배대강도 그에 전혀 밀리지 않는 기운을 휘두르고 있었다.
광우의 파괴력은 예전보다 더 향상된 상태였는데 그 거대한 기운을 제어하는 기술도 한층 더 발전했다. 모르긴 몰라도 혈사장 특유의 음습한 기운도 더 파괴적으로 변했을 거다.
그에 비해 배대강은 무기를 바꾸고 전부터 갈고 닦은 초식들을 전부 갈아엎어야 했는데 덕분에 초식의 정교함과 끈끈한 연계가 전보다 떨어졌다.
하지만 지금 배대강이 접목시키고 있는 것은 그 여포의 초식과 그 전왕의 기술이다.
저것이 완성되는 날, 배대강은 날개를 얻을 거다.
쾅!!!!!
쾅!!!!!
“그만! 그만!!!!”
싸움이 계속되어도 승부가 날 생각을 하지 않으니 심판이 둘을 떨어뜨려 놓았다. 이렇게 치열한 승부가 계속되면 둘 중 하나가 죽을 수도 있다.
생사를 가르는 싸움이 아닌 대련일 뿐이니 심판의 제지는 타당했다.
“쳇!”
무승부로 끝난 대련이었지만 배대강의 표정은 밝는 반면에 광우의 표정은 좋지 못했는데 광우도 배대강이 무기를 바꾸어서 예전 실력이 안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배대강은 이 대련에서 훌륭한 실전 경험을 얻어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불완전한 초식으로 광우와 비겼다는 것은 그에게도 희소식이었다.
“하하! 어떠냐!”
배대강이 의기양양하게 돌아오자 천유강과 배연아도 웃으며 그를 반겼다. 배대강이 방천화극을 얻고 끊임없이 노력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수고했다. 조금만 더 갈고 닦으면 예전 실력이 나올 거 같아.”
“맞아, 오빠. 진짜 고생했어.”
“아직 많이 모자라다. 하지만 중간 평가는 흡족한 편이네.”
배대강은 자신의 무기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마음 같아서는 방천화극을 각인시켜 가지고 다니고 싶지만 레전드 등급을 각인시키는 것은 어마어마한 포인트가 필요했다. 현재 천유강도 불가능할 정도다.
“난 먼저 들어간다. 뭔가 잡힐 거 같아서.”
평소 같으면 웃으면서 남은 대련들을 구경하겠지만 배대강은 미련을 가지지 않고 숙소로 돌아갔다. 아직 감각이 남아있을 때 수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배대강이 돌아가고 배연아도 성공적으로 대련은 마쳤다.
상대는 검을 휘두르는 무인이었는데 배연아는 상대가 파고들 틈을 주지 않고 원거리에서 승부를 냈다.
그리고 마지막은 천유강의 차례였다. 천유강의 상대는 얼마 전 노천카페에서 만났던 평우룡이다. 하지만 지금 걸어 나오는 상대는 전혀 예상 밖의 인물이었다.
“에~ 원래 상대가 평우룡 학생이었는데 부상 때문에 조금 조정이 있었습니다. 상대는.......”
대련을 주관하는 심판마저도 이번에는 긴장이 되는 듯이 눈치를 보며 말했다.
“단리소운입니다.”
“우와!!!!!!”
상대가 발표되자마자 큰 소란이 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대련은 천부경의 천유강과 신교의 소교주인 단리소운의 대결이다.
이보다 더 큰 화젯거리가 있을 리 없다.
“두 학생 모두 나와 주세요.”
천유강과 단리소운이 특별하게 만들어진 경기장 안으로 들어갔다.
최첨단 기술과 마법진이 보호하는 경기장이다. 배대강과 광우의 싸움에서도 멀쩡했던 경기장이다. 이곳을 힘으로 부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단리소운은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으로 천유강에게 말했다.
“생각보다 빨리 만났네.”
“그러게.”
겉보기에는 평화로운 인사였지만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자들은 숨도 못 쉴 정도로 긴장하며 보고 있었다.
2학년에서, 아니 어쩌면 전 학교에서 가장 강하다고 평가받는 둘이다.
이 둘의 대결은 단순한 시험을 뛰어넘어 역사적, 정치적, 군사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었다.
대결의 결과는 내일 아침 신문 1면에 실릴 가치가 있다.
그것을 알고 있기에 많은 이들이 긴장하며 지켜보고 있는 거다.
“누가 이길까?”
“뚜껑은 열어봐야 알지. 우리가 입 아프게 떠들어봤자 아무 의미가 없어. 그냥 보기나 하자.”
그 사이에 천유강은 단리소운의 기세를 느끼고 있었다.
‘더 강해졌네.’
처음 만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사이에 기운이 몰라볼 정도로 달라졌다.
천유강은 알지 못했지만 그건 단리소운의 치열한 수련의 결과 때문이었는데 노력하지 않는 천재가 노력하면 얼마나 더 강해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듯했다.
물론 천유강도 그동안 놀고 있지 않았다. 천유강이 놀라는 만큼 단리소운도 속으로 놀라고 있는 중이다.
“그럼, 시작!”
사람들의 예상과는 달리 시작부터 치열한 싸움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저 둘은 마치 산책하는 것처럼 여유롭게 서로에게 다가갔다.
서로의 숨결도 느낄 만큼 가까워졌을 때 단리소운이 먼저 입을 열었다.
“말은 필요 없지?”
“그렇다.”
“미안하지만 내가 가진 선대의 업이 있어서. 우리 영감탱이 한을 좀 풀어야 하거든.”
천유강의 사부이자 외조부인 염제가 당대 일월신교주를 이긴 것은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일이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피할 수 없는 은원이다.
“나도 너의 사정은 딱하게 생각한다. 한 번만 딱 눈 감으면 귀찮은 일은 없겠지만 그러다가는 염라대왕보다 무서운 분이 쫓아올 거라서 양보는 못하겠다.”
“흐! 제법 농담도 하고 말이야. 역시 정보들은 쓸모가 없어.”
올해 초만 해도 허언이나 농담 따위는 전혀 할 줄 모르던 천유강이다. 물론 아직 상대를 웃긴 적은 없지만 이것만으로 천유강이 많이 변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럼 내가 흑돌인 것 같으니 먼저 가지.”
쿵!!!
단리소운이 한 걸음 내딛자 거대한 압력이 천유강의 전신을 내리눌렀다. 다시 발동된 천마군림보이다.
시전자 주변에 엄청난 압력을 주는 중압진이 만들어진 것이다.
물론 이것만으로 천유강을 이길 수는 없겠지만 아무런 부담 없이 상대에게 큰 제약을 주는 기술은 과연 전설 속의 무공이라 불릴 만 했다.
하지만 가진 무공의 신비는 천유강도 뒤처지지 않는다.
무거운 중압진에 아무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듯이 천유강이 단리소운에게 돌진했다.
챙!!!!
“하핫! 이것이 천부경이군!”
어느새 허리춤에 있던 검을 꺼내 천유강의 일격을 막은 단리소운이 즐겁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이동속도는 천유강에 비할 수 없지만 공격속도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단리소운이다.
‘이게 키레이 하야토의 발도술도 이긴 단리소운의 속도군.’
처음에는 기억하지 못했지만 천유강은 예전에 단리소운을 본 적이 있었다.
바로 천유강이 우승했던 크러쉬 대회에 단리소운이 출전한 것인데, 단리소운은 무려 4강까지 올라서 에슐랑과 대결하기로 했었지만 반왕 쿠아칸이 반칙으로 떨어지자 그도 기권했었다.
사실 단리소운은 반왕 쿠아칸과 대결하고 싶어서 참가했다가 그가 없어지자 흥미를 잃고 기권한 것인데, 만약 그대로 경기를 진행했더라면 에슐랑을 이기고 천유강과 결승에서 만났을 것이다.
챙! 챙!
근거리에서 단리소운의 검과 천유강의 손톱이 부딪치기 시작했다. 스치기만 해도 치명타를 주는 공격이 난무하고 있었지만 둘의 표정은 전혀 변화하지 않았다.
천유강의 눈이 깊어졌을 때 단리소운이 여전히 웃으면서 말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놀아보지.”
검의 움직임이 한층 더 현묘하게 변했다. 본격적으로 천마신공을 운용하는 것이다.
천마신공은 무공의 고하를 논할 때 항상 수위에 놓이는 뛰어난 무학이다.
일월신교가 강해진 이유는 교주부터 일개 교인들까지 지위고하를 불문하고 모두 이 천마신공을 익히기 때문인데 특이하게도 천마신공은 미완성의 무학이다.
초반 부분만 있고 후반 부분은 의도적으로 남아 있지 않았는데 신기하게도 그 중간부터 내공을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무공이 만들어진다.
수공(手功), 화공(火功), 빙공(氷功), 검공(劍功) 등 다양한 무공이 천마신공에서 파생되고 세대를 걸쳐 발전해 나간다.
뇌인 상단전을 많이 활용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고 그래서 진짜로 미치거나 난폭한 무인들도 나타나 신교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주기도 하지만 그런 자들은 소수고 대부분은 멀쩡하다.
이 위대한 무공을 만든 이는 초대 일월신교주인 천마.
흔히 일월신교를 마교라고 부르긴 하지만 긴 신교의 역사에서도 스스로의 별호에 마(魔)를 붙인 이는 천마가 유일하다.
고금제일인을 논할 때 항상 처음에 불리는 이 무인의 무공이 일월신교를 지탱하고 있다.
그리고 당연히 단리소운의 무공은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하게 만들어졌다고 평가되는 교주의 무공이다.
절대 경시할 수도 방심할 수도 없다.
챙!!!
단리소운의 검이 현란하게 움직이자 팽팽하던 균형이 깨지고 점점 천유강이 밀리기 시작했다.
“어어~~ 뇌호가 밀린다!”
“역시 천마신공이라는 건가?”
공식적으로 천마신공이 나타난 것은 100년이 넘었다. 물론 염제가 당대 교주를 이겼지만 그것을 모르는 이들에게 천마신공과 천부경의 대결은 늘 좋은 안줏거리였다.
‘이것이 초식의 힘!’
천유강이 대응할 때마다 그 움직임을 예측해서 다음 공격이 물 흐르듯이 이어진다.
단리소운이 미래를 예측한 것이 아니다. 이 공격에 당하는 적들이 할 수 있는 선택지가 정해져 있기에 바로 움직일 수 있는 거다.
단리소운이 익히는 초식은 크게 나누면 100가 넘고 세분화하면 1,000개가 훌쩍 넘는다.
그 초식들을 체득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쉽게 대응할 수 있다.
챙!
남들이 보기에는 천유강이 전혀 빠져나갈 수 없을 것처럼 보였지만 아직 천유강에도 남은 수가 있었다.
파직!!!
위기에 순간 천유강에서 강한 뇌전이 나왔다.
“큭!!”
위협을 느낀 단리소운은 공세를 풀고 뒤로 급히 물러섰다. 저 뇌전에 그대로 노출되는 것은 아무리 단리소운이라도 위험하다.
천유강은 목을 풀면서 단리소운에게 말했다.
“나도 이제 본격적으로 해보지.”
“흐! 그래, 이래야 천부경이지.”
천부경의 가장 큰 무기는 자연기다.
큰 내공의 손실 없이 강력한 자연의 힘을 다루는 것은 적들이 치를 떨며 두려워할 만큼 강력하다.
중단전에서부터 나오는 고출력의 뇌전이 천유강을 뒤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