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퍽!
타격음이 일자, 머리가 큰 사내가 허공으로 떠올랐다가 땅으로 떨어졌다.
“크윽.”
발에 얻어맞고 나가떨어진 이는 대두였다. 대두는 입가에 피를 흘리면서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이리 와.”
발길질을 한 사내가 조롱기가 섞여 있는 음성을 내뱉었다. 대두는 흐르는 피를 소매로 훔치면서 일어섰다.
비틀비틀.
대두의 신형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이 흔들렸다.
만검궁 정문을 열고 들어서면 나오는 연무장.
그 곳에서 많은 만검궁도들이 숨을 죽이고 두 사내를 쳐다보고 있었다. 한 명은 궁주의 직전제자로 옥면공자라 불리는 이였고, 다른 이는 대두였다.
아침 식사를 끝낸 후의 오전 수련 시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옥면공자는 식후에 운동을 하고 있었다. 대두를 두들겨 패는 일.
휘이익. 퍼억.
흔들리는 시선으로 옥면공자의 앞에 선 대두에게 옥면공자의 발이 뻗어 들어갔다. 대두는 다시 신음을 흘리며 뒤로 나동그라져야 했다.
“후후후, 난 말이지. 네가 정말 이해가 안 돼. 왜 도망가지 않지? 혹시 너 변태 아니야? 맞는 것을 즐기는 변태 말이야. 하하하하. 맞아 그런 것이 분명하군.”
얼굴에 기름기가 줄줄 흐르는 듯, 반짝반짝 윤이 나는 옥면공자는 천천히 쓰러져 있는 대두에게 걸어오며 크게 웃었다.
커다란 눈매가 서늘해 보였으나 왠지 색기가 흐르는 것 같은 눈빛을 가진 그는 얇은 입술을 열며 말을 이었다.
“이봐. 머리통 큰, 대갈 장군. 내가 분명히 말했지. 떠나서 이 근처에 얼씬도 안 하겠다고 하면 그냥 보내주겠다고.”
옥면공자는 대두 앞에 앉아서, 쓰러져있는 대두의 고개를 자신의 손으로 들어 올렸다. 대두는 고통스러운 얼굴이었지만 피식 웃었다.
“히히히, 아무리 그러셔도…… 전 안갑니다. 공자님. 전 여기서 안 나가요.”
“그래, 알아. 네 놈이 안 간다는 것을 이젠 충분히 알겠어. 지난 삼 년간 그렇게 매타작을 당하면서도 도망가지 않는 걸 보면 말이야.”
“히히히.”
대두가 피로 붉게 물든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옥면공자는 대두의 턱에서 손을 떼며 잔인하게 따라 웃었다.
“크크크, 넌 변태야. 맞는 것을 즐기는 변태. 그렇지?”
퍼억.
옥면공자의 주먹이 대두의 얼굴을 강타했다. 그러자 대두의 코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리며 고개를 뒤로 젖혔다.
퍼억. 퍽.
어느새 일어선 옥면공자의 발이 잇달아 대두의 옆구리를 찍고 나왔다. 대두는 낮은 신음을 지르며 옆으로 데굴데굴 굴렀다.
연무장에 모인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어느새 수련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고 거의 삼 년간 매일 아침에 있는 일이었다.
언제나처럼 대두는 곧 기절할 것이고, 그럼 오전의 수련이 시작되는 것이다.
물론 처음엔 말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옥면공자는 듣지 않았다. 오히려 대신 맞겠냐는 서슬 퍼런 위협에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사람들은 몰래 대두를 찾아가 도망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두 역시 듣지 않았다.
한 명의 잔인함과 한 명의 고집에 만검궁도들은 백기를 든 상태였다. 그러다가 시간이 흐르니 이젠 익숙한 일과가 되어 버렸다.
잘못된 것임을 처음엔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 장기화되다 보니 모두가 무뎌져 버린 것이다.
빠각.
옥면공자의 주먹이 대두의 뺨을 가격했다.
그러자 멱살을 잡혀 일어섰던 대두의 고개가 홱 돌아가며 피 분수를 쏟아냈다.
“크어어억.”
비명과 함께 축 늘어지는 대두.
옥면공자는 혼절한 그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눈자위가 노랗게 변해가며 짙은 살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지독한 놈.”
기절한 대두의 멱살을 놓자, 대두의 몸이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그러자 옥면공자의 뒤편에 있던 총관이 한숨을 쉬며 다가왔다.
“대공자님, 방으로 옮기겠습니다.”
“아직 끝난 게 아니야. 내 오늘은 반드시 이놈의 대답을 들어야겠어. 물을 가져와서 이놈한테 끼얹어. 당장!”
총관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대공자님, 이 아이는 지금 기절했습니다!”
“내 말 안 들리나? 총관 자리에서 오래 있더니 상황 판단력이 무뎌진 모양이군.”
총관의 뺨이 경련을 일으키며 부들부들 떨렸다. 그러나 곧 힘없이 고개를 숙이며 대꾸했다.
“예.”
결국 총관은 속으로 한숨을 쉬며 뒤로 물러섰다. 물러서는 그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옥면공자는,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 있는 대두를 노려보며 이를 박박 갈며 소리를 질렀다.
“놈, 너같이 천한 것이 사매에게 착 달라붙어 있을 때부터 이미 죽은 목숨이었다. 그런데 살려주겠다는 데도 감히 이곳을 나가지 않아? 이 빌어먹을 놈! 분수를 알아야지.”
그의 고함에서 분기가 펄펄 날렸다.
사매이자 소궁주인 빙령이 폐관수련에 들어간 지 두어 달이 지난 즈음부터 옥면공자의 대두를 향한 구타는 시작됐다.
소검후 빙령은 자신의 것이었다.
그녀 곁에는 어떤 사내도 있어선 안 된다. 그러데 어디서 근본도 없는 건달 놈이 생명의 은인이라며 빙령의 관심을 받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옥면공자에겐 질투와 고통의 시간이었다.
그도 알았다.
빙령과 대두의 관계가 연인 같은 사이가 아니란 것을.
그러나 빙령이 대두에게 관심을 쏟는 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죽이고 싶은 심정을 하루에도 몇 번씩 억눌러야 했던 것이다.
옥면공자는 빙령이 수련에 들어간 한 달 후부터, 시도 때도 없이 대두를 두들겨 팼다. 그렇게 하면 도망갈 줄 알았다.
그럼 몰래 뒤따라가서 죽이면 끝이었다.
빙령도 모르고, 아무도 모르게.
나중에 빙령이 물으면, 수련이 고달파서 도망가 버렸다고 말하면 간단한 것이었다.
그런데 대두란 이놈은 도망가지 않았다.
그렇게 두들겨 패는 데도, 도망가기는커녕 만검궁의 건물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자 옥면공자도 오기가 발동했다. 밤에 몰래 죽이고 시체를 없앤 다음, 도망갔다고 하면 간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죽인다면 자신이 지는 것이란 괜한 오기가 생긴 것이다.
대두의 눈빛.
바보같이 웃고 있었지만 놈은 감히 자신과 승부를 하고 있었다.
“건방진 놈! 내가 너 같이 천한 것한테 질 것이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빙령이 수련을 끝내기까지 앞으로 최소한 이 년이 남았다. 그때까지 네가 이곳을 도망가지 않는다면 내 스스로 목숨을 끊으리라.”
옥면공자의 눈빛이 더욱 잔인해져 가고 있었다.
쫘아악.
궁도 서넛이 바가지에 담긴 물을 대두의 얼굴에 쏟아 부었다. 그러자 잠시 꿈틀거리던 대두가 천천히 고개를 흔들며 눈을 떴다.
“히히히…….”
나지막한 웃음소리. 대두는 힘없이 웃었다.
눈앞이 뿌옇고 가슴이 너무 아팠다.
“이놈. 오늘부터는 기절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다. 끝은 네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정하는 거다! 어디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끝까지 해보자.”
옥면공자가 다시 정신을 차리는 대두를 보며 차갑게 말했다. 그의 잔인한 말에, 이미 익숙할 대로 익숙해진 만검궁도들도 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돌렸다. 화가 났지만 힘이 없었다.
그러나 정작 대두는 귀가 멍멍해서 잘 들리지가 않았다. 그의 뿌연 시야위로 하나의 영상이 맺혔다. 그것은 그가 가장 그리워하는 이의 얼굴이었다. 비록 환상이었지만.
“형? 형님이야? 형님 온 거야? 히히히. 형님 온 거지?”
“……?”
옥면공자는 대두의 느닷없는 말에 얼굴을 찡그렸다. 형님이라니? 이놈이 정말 실성한 것인가?
“형님, 이제 온 거요? 히히히, 나 떠나면…… 형님이 나 찾는 거 힘들까봐…….”
퍼억.
혼자 중얼거리던 대두의 아랫배에 옥면공자의 발끝이 쑤셔 박혔다.
“이제는 미친 척까지 하는 구나. 크크크. 기절하는 척하는 것이 안 통하니 별의별 지랄을 다 떠는군.”
옥면공자는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음산하게 웃었다.
그러나 대두는 고통도 못 느끼는지, 잠시 몸에 경련을 일으키다가 허공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형님, 여기 나가요. 선녀님 데리고 우리 나가요. 형님처럼 나도 독종인데…… 너무 힘들어요. 형님. 히히히. 아니에요. 전 괜찮아요. 형님도 지옥에서 지내야 한다고 그랬잖아요. 저도 당연히 그래야죠. 형님 고생하고 있을 거 생각하면 오히려 저는 편한 것 같아서 미안했어요. 히히히. 히히히히…….”
“허, 아주 생지랄을 하는구나. 네 놈이 날 조롱하고 있음이야. 감히 천하디 천한 것이! 내가 누구인 줄 알고! 너 같은 것이 감히 나에게 장난질을 쳐?”
옥면공자는 혈압이 치솟았다. 그의 이마와 목에서 혈관이 툭툭 불거져 나왔다.
그때, 차마 더 이상은 못 보겠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던 총관의 눈이 커졌다.
만검궁의 담벼락 너머로 말을 타고 있는 한 사내가 자신들을 보고 있었다. 분명한 것은 저 흑의 사내는 만검궁도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총관은 기가 막혔다.
물끄러미 자신들을 보는 저자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있는 사람이 전혀 없다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말조차 못하는 그의 눈이 더욱 커져갔다. 흑의 사내의 손이 위로 올라갔다. 그의 손에는 일 척정도의 길이로 보이는 묵빛 몽둥이가 들려있었다.
그 몽둥이는 허공을 가르더니 담벼락 위의 기와를 찍어 내렸다.
콰아앙.
거대한 폭음이 터졌다. 그 폭음에 연무장 내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
담벼락의 상단 일부가 무너져 내리며 뿌연 흙먼지를 일으키고 있었다.
콰앙, 콰앙.
두 번의 폭음이 더 일고 천천히 먼지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따가닥, 따가닥…….
무너진 담으로 말을 탄 사내가 들어서고 있었다.
“저, 저건 뭐야?”
옥면공자는 기가 막힌 지 먼지를 뚫고 들어오는 사내를 향해 중얼거렸다.
따가닥, 따가닥…….
흑의 사내는 굳은 얼굴로 말을 몰았다. 말발굽 소리가 연무장의 벽돌 위에서 울렸다.
“대두…….”
흑의인이 말을 멈추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사람들은 그 음성에서 무서운 분노를 느꼈다.
거대한 분노를 억지로 참는다면 저러한 목소리가 나올까?
그 음성이 주는 공포감에 만검궁도들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혀, 형님? 무영 형님?”
풀려있던 대두의 눈에서 갑자기 빛이 일렁였다.
“너인지 알면서도…… 너라고 생각 못했다. 네가 이런 대접을 받고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서도 생각 못했기에.”
“형님!”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났을까?
대두가 벌떡 일어섰다. 무영은 슬픈 눈으로 그를 보며 말에서 내려섰다.
“형니임!”
대두가 무영을 향해서 뛰었다.
뎅뎅뎅뎅뎅…….
비상을 알리는 타종 소리가 만검궁에 퍼져나갔다.
만검궁 스무여 개의 건물 중, 중앙에 위치한 5층짜리 전각.
장내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그곳의 5층에 창문 하나가 열려있었다.
지난 삼 년 내내 침묵을 지키던 창.
53세의 나이에 불과하나 강호의 여고수 중 최고수라 불리는 만검궁주 검후(劒后) 이화영의 거처였다.
“빙령이 데리고 온 아이와 관련 있는 자군.”
검후 이화영은 연무장에 들어서는 무영을 뚫어지게 보며 중얼거렸다. 비록 상당히 먼 거리였지만, 느낄 수 있었다.
강한 자라는 것을.
그녀의 뺨은 홀쭉하게 들어가 매우 수척했고, 눈은 퀭한 것이 무슨 병이라도 걸린 사람 같았다. 무엇보다 눈빛엔 생기가 없었다.
마치 삶의 의욕을 모두 잃은, 폐인에게서나 볼 수 있는 눈이었다.
“궁주님…….”
창밖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검후의 뒤에서 한 노인이 안타까운 어조로 말을 건넸다. 그는 검후의 수석호법이자, 어린 시절엔 검후의 사부이기도 했던 인물이었다.
지난 삼 년간, 궁주가 유일하게 가끔 만나며 이런 저런 보고를 받은 인물이기도 했다.
“사부. 저 아이의 나이는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는군요. 그런데 상당히 강해 보입니다. 현 강호에서 저만한 나이에 저 정도의 성취를 이룬 자가 있었던가요?”
이화영의 착 가라앉은 목소리에 수석호법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곧 천천히 궁주의 옆으로 다가가 창밖을 보았다.
“음……, 가까이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천하 십대 후기지수 중에는 저런 인물이 없는 것으로 압니다.”
피식.
수석호법의 대꾸에 검후 이화영이 실소를 흘렸다. 그 모습에 수석호법의 눈이 동그래졌다.
비록 옅은 웃음이기는 했지만, 삼 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궁주님?”
“사부. 저 아이의 경지는 이미 후기지수 중 최고라는 열 명을 넘어섰어요. 뭐, 아직 정확한 실력을 드러내 보인 적이 없는 무당파와 진주언가의 두 아이는 빼야겠지만……, 저 아이보다 더 강할 수는 없다고 생각되네요.”
검후는 말을 하다가 문득 빙령이 생각났다. 빙령이 수련을 마치고 출도하면 십대 후기지수 중 선두로 우뚝 설 것이다.
하지만 아직 이 년이 더 남았다. 수련을 정상적으로 마친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닐 것이었다. 빙령 스스로의 문제이건, 외부의 문제이건 간에…….
오 년은 긴 세월이었고,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날 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검후 이화영의 평가에 수석호법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다시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강해 보이긴 했다.
그러나 그 정도인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수석호법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검후가 말을 계속했다.
“본궁 역사상, 최악의 날이 될 수도 있겠어요.”
“그, 그 정도입니까?”
수석호법의 턱밑으로 내려선 수염이 떨렸다. 그만큼 놀라고 있다는 반증이었다.
“저 아이를 막으려면 제가 나서야 될 것 같아요. 그러나…… 그러면 최악의 날이 아니라 본문의 마지막 날이 되겠죠? 내가 밖으로 나서면…….”
잠시 밝아졌던 검후의 얼굴이 다시 흐려지고 있었다. 그 모습에 수석호법의 얼굴에 안타까움이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