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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연재 > 무협물
벽력왕
작가 : 강호풍
작품등록일 : 2016.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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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빠른 천궁과 번개의 힘'을 얻은 차가운 사내 무영.
천하제일 미녀이며 강호의 십대후기지수이기도 한 왈가닥 빙령.
그들이 펼치는 호쾌한 강호진출기가 시작된다

 
19 화
작성일 : 16-07-20 14:04     조회 : 592     추천 : 0     분량 : 6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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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第八章 수난환교(受難幻敎)

 

 - 중요한 건 내가 누구인지가 아니야. 너희는 이제 죽었단 거지.

 

 

 

 1

 

 무영은 산을 타고 달리다가 문득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은 동정호가 멀리 보였다.

 “살모사……. 운이 좋구나.”

 환교를 찾는 것이 예상보다 쉽지 않을 것임을 직감한 무영은 악양으로 향했었다.

 빙령과 대두가 있을 강서성의 만검궁으로 가는 길 중간에 악양이 위치한 까닭도 있었지만, 문득 사월회와 불곰파와의 전쟁 결과가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추측이 틀리지 않다면, 분명 살모사는 사월회의 회주 자리를 꿰차고 불곰을 밀어냈을 것이다.

 비록 원치 않게 원수사이가 되어버린 살모사였다.

 하지만 의리나 충성심 그리고 수하에게 아량이 있는 통 큰 인물이 살모사였다. 의심으로 똘똘 뭉쳐진 초은곽과는 비교도 안 되는 인물.

 어쩌면 그는 환교의 위치를 알거나, 위치를 알고 있는 사람을 주선해줄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가 무림인은 아니었지만 악양의 개방도나 하오문도들과 어느 정도 친분이 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전 회주의 복수를 위해 날 찾지 말길 바란다. 어쨌거나 네 덕분에 내가 부모의 원수를 빨리 갚을 수 있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뒷골목에서 지냈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다가 대두와 함께 많은 악전고투를 거쳤던 생각이 떠오르자 입가에 절로 미소가 맺혔다.

 “대두……. 잘 있겠지? 후후후.”

 갑자기 그리움이 사무쳤다.

 놈은 사실상 친동생이나 다름없는 녀석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기억은 빙령의 입술까지 이어졌다.

 오로지 수련만 생각하기 위해 억지로 눌렀던 기억들.

 무영의 입가에 맺힌 미소가 점차 얼굴 전체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아까 청연이란 여인의 나신을 잠시 보아서 그런 것인지, 더더욱 빙령이 보고 싶어졌다.

 

 * * *

 

 “아아함!”

 왠지 음산한 기운이 눈빛에서 엿보이는 반백의 초로인. 그는 문서들을 정리하다가 하품을 크게 해댔다.

 커다란 책상 위에는 수백 장의 서찰과 양피지가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들어오는 입구의 미닫이문을 제외하고는 사방이 온통 책장으로 가득했고, 그 곳에는 수많은 서찰들이 빽빽이 꽂혀 있었다.

 초로인은 기지개를 한껏 켜고는 입맛을 다시며 한숨을 쉬었다.

 뒤쪽에 유일하게 있는 창에서 나른한 햇살이 창호지를 뚫고 들어와 책상 위를 비췄다.

 “젠장, 이 화창한 봄날에 서류에 파묻혀 있으려니 좀이 쑤셔 죽겠군. 뭔 놈의 일이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건지. 쩝.”

 점심 식사를 끝낸 지 이 각 정도 지난 시간이라 그런지 유달리 잠이 더 몰려왔다.

 초로인은 매년 봄, 다른 이들보다 더 심한 춘곤증(春困症)에 시달리는 체질이었다.

 초로인은 눈을 비비며 억지로 다시 일을 시작했다. 자신이 지금하고 있는 일은 삼 년이 지난 서류 중 쓸모가 없어진 것을 폐기하는 일이었다.

 “음, 화곡리에서 근골 좋은 애들을 열 명 유괴했던 서류가 아직까지 남아있다니. 쯧쯧, 아무런 증거도 남기지 않아서 세상 누구도 모르는 일을……. 이건 또 뭐야? 조원관(朝元館)이란 조그만 무관의 문주와 아내를 암살한 것까지! 헐.”

 초로인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이 일을 맡게 된 것은 며칠 되지 않았다.

 전임자가 워낙 소심하고 게으른 탓에 이곳에 있는 서류들이 감당할 수 없이 불어났기 때문이었다.

 물론 전임자는 부교주의 진노를 받고 죽어야 했다.

 초로인은 계속해서 혀를 차며 가차 없이 서류를 찢어댔다. 전임자는 정말 죽어도 쌌다.

 왜 아무런 증거도 남기지 않은, 그것도 삼 년이나 지난 것들을 굳이 폐기하지 않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잉?”

 초로인의 눈에 황당함이 어렸다. 그 서류의 제목은 ‘소검후 빙령 납치 실패건’ 이었다.

 

 『 ……소검후 빙령을 납치하려다 실패한 사건으로 본교는 많은 손실을 입었다. 유령대의 무사들 이백과 혈사자 두 명을 잃은 것이다. 그러나 본교가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만검궁주 검후의 반발이 아니다. 그건 수하들의 과잉충성으로 우기면 그만이니까.

 정말 걱정스러운 것은, 그날 우리를 방해한 정체 모를 노인과 복수를 다짐한 한 청년이다.

 특히 본교가 주목해야 할 이는 고무영이란 청년이다. 그는 오 년 안에 본교에 찾아와 빚을 갚겠다고 했다. 비록 무공을 모르는 청년이나……. (이하 중략)』

 

 초로인은 가뜩이나 졸려 죽겠는데, 머리에 두통까지 생겨났다.

 무공도 모르는 놈이 본교를 찾아와 빚을 갚겠다 말한 것도 웃기거니와 이런 것을 여태까지 폐기하지 않았던 전임자가 더더욱 기가 막혔다.

 “쯧쯧쯧, 당신은 정말이지…… 죽어도 쌌구려. 에잉.”

 초로인은 서류를 박박 찢어 던져버리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무래도 머리의 두통이 점점 심해지는 것 같았다.

 한 시진 정도의 낮잠이 절실했다.

 얼마 전 새로 들인, 애랑이라는 첩이 지금 이 시간에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갑자기 아랫도리가 묵직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두통이 싹 가시는 것은 물론이고 머리가 청명해졌다. 그때,

 “원주님! 안에 계십니까?”

 밖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초로인의 밝았던 얼굴이 대번에 찡그려졌다.

 “뭐냐?”

 “침입자가 한 명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사소한 것까지 보고할 셈이냐?”

 화가 난 음성이었다.

 길을 잃은 사람들이 본교로 들어오는 입구인, 계곡 안으로 들어오는 일은 종종 있었기 때문이었다.

 “계곡을 뚫고 들어왔습니다.”

 “……!”

 그제야 초로인의 안색이 급변했다.

 환교로 들어오는 계곡은 무척이나 좁다.

 그리고 진법을 사용해 일 년 내내 짙은 안개가 시야를 막았고, 외부의 침입자가 있으면 수십 마리의 늑대들과 수백의 독사들을 계곡에 풀었다.

 길을 잃은 사람이라면 나 살려라 도망가야 할 테고, 무림인이라면 귀찮아서 나가는 게 정상.

 만약 계곡의 관문을 뚫고 들어오는 이가 있다면, 그건 본교 총타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아는 놈이었다.

 즉, 환교 총타에 용건이 있는 무림인.

 드르르륵.

 초로인은 문을 열고 나와서, 부복한 채 말하고 있는 선위무사를 보았다.

 “한 놈이라고 했지. 지금 어디까지 왔느냐? 또한 정체는 파악되었느냐?”

 “이십 중반의 청년으로, 아직 정체가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잠시간 초로인의 얼굴에 나타났던 긴장감이 스르륵 풀려갔다.

 스물 중반의 애송이 하나라면 걱정할 이유가 없었다. 설사 강호 십대후기지수라 해도 말이다.

 “총관님과 부교주님께도 알릴까요?”

 선위무사의 질문에 초로인은 냅다 발을 내질렀다.

 퍽!

 “꽥!”

 퍽!

 “꽤액!”

 선위무사는 돼지처럼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동그라졌다. 초로인은 혀를 차며 수하를 쏘아보았다.

 “지금 장난 하냐? 그따위 사소한 일까지 그분들께 상달하다니. 앞장서라. 내가 처리할 터이니.”

 “예, 옛!”

 어느새 일어선 수하는 크게 대답을 하며 돌아섰다. 초로인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혀를 차며 하늘을 올려 보았다.

 맑았다. 너무 맑았다.

 “애랑이는 다음 기회에…….”

 초로인은 아쉬운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곧 발걸음을 옮기는 그의 눈에서 시뻘건 안광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자신의 유흥시간을 깨버린 그 애송이는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크크크.”

 그의 기분이 다시 좋아지기 시작했다.

 남녀간의 운우지정(雲雨之情)도 좋았지만, 누군가를 괴롭히는 고문도 꽤 쏠쏠한 재미를 갖고 있다는 것을 진즉부터 알고 있는 그였다.

 “머리카락을 한 번에 다섯 올씩 뽑아주마. 코를 깨물고, 귀를 잡아당기겠어. 크크크.”

 

 무영은 눈앞에 나타난 복면인들을 보고는 왈칵 반가움이 몰려드는 것을 느꼈다.

 바로 저 복면이었다.

 까만 복면.

 솔직히 이곳까지 오면서 짙은 안개와 굶주린 늑대 떼, 그리고 많은 독사들을 보면서 혹시 청연이라는 계집에게 속은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기왕지사 속았다면, 끝까지 가주마! 라는 생각으로 계곡을 지나서 계속 산을 오르다 보니 나타나는 복면인들.

 “넌 누구냐?”

 서른 남짓한 복면인들 중 하나가 무영의 앞으로 다가오며 물었다. 무영은 그를 보며 대꾸했다.

 “너희들 환교 맞나?”

 무영의 반문에 복면인들이 눈을 치켜뜨며 동료를 쳐다보았다. 선두의 복면인도 잠시 머뭇거리다가 차갑게 말했다.

 “네 말은…… 여기가 어딘지 알고 왔다는 건가? 간이 부은 놈이군.”

 “환교 맞구나.”

 무영은 흐뭇하게 웃었다.

 그리고 양 팔을 돌리며 어깨를 풀기 시작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무영의 도발적인 행동에 선두의 복면인이 검을 허리춤에서 꺼내기 시작했다.

 스르르릉.

 서늘한 검신이 봄날의 햇살을 반사하며 허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묻는다. 너는 누구냐?”

 그러나 무영은 여전히 태연했다.

 “중요한 건 내가 누구인지가 아니야. 너희는 이제 죽었단 거지.”

 “뭐?”

 “지금까지 날 건드린 자는 누구도 성치 못했어. 그건 앞으로도 그럴 거야.”

 “미친!”

 선두 복면인의 입에서 허탈함이 느껴지는 욕설이 튀어나왔다. 동시에 상단에 있던 그의 검첨이 파공성을 일으키며 밑으로 떨어졌다. 미친놈과 길게 말장난하는 건 시간 낭비일 뿐이다.

 쇄애애액.

 탁.

 “……!”

 복면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자신의 검신이 애송이의 양 손바닥 사이에 잡힌 것이다.

 도대체 저 손이 언제 올라온 것인가?

 “그럼……, 시작해 볼까?”

 무영이 씩 웃었다.

 그 웃음에 복면인은 검을 비틀어 빼내 보려고 애를 쓰다가 흠칫 몸을 떨었다.

 태어나 저렇게 싸늘한 미소는 처음이었다.

 퍼억.

 어느새 애송이의 발 하나가 자신의 배에 박혀 들었다.

 어마어마한 충격이 배에서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이건 발이 아니라 숫제 쇠뭉치였다. 창자가 찢어질 듯한 고통에 비명이 터져 나왔다.

 “끄아아아아악!”

 비명이 사위를 쩌렁쩌렁 울렸다.

 

 * * *

 

 초로인이 환교의 정문을 나섰을 때, 경계를 서고 있던 복면인들은 모두 땅에 뒹굴며 신음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일방적으로 구타를 당하다 결국 총타 건물의 정문까지 쫓겨 왔고, 무영은 그제야 그들을 모두 눕혀버린 것이다.

 “내가 대낮에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초로인은 환교의 정보를 책임지고 있는 운풍원(雲風院)의 원장(院長)이었다. 마침 오늘이 환교의 경계를 책임지고 있는 당직인지라 이렇게 직접 보고를 받고 나오게 된 것이었다.

 운풍원장은 수하들에게서 머리를 산발한 괴인에게 시선을 옮겼다. 허리춤에 일 척 정도의 길이로 보이는 몽둥이 외에는 특별한 것이 보이지 않았다.

 옷을 입은 모양은 저잣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달이었고, 머리 모양은 딱 미친놈이거나 거지였다.

 무엇보다 그를 가장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는 것은 저 애송이가 허리춤에 있는 몽둥이마저 쓰지 않은 것 같다는 점이었다.

 적수공권(赤手空拳).

 그저 맨 주먹으로 바깥 호위를 책임지고 있는 외당의 무사들을 쓸어버렸단 말인가?

 “허, 미치겠군.”

 쓴 웃음이 절로 새어나왔다.

 자신의 손에서 조용히 처리하는 것은 사실상 물 건너 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입술을 꽉 깨물며 천천히 분을 삭여야 했다. 위에서 문책 받을 일을 생각하면 끔찍했다.

 더더군다나 지금은 교주가 부재중이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총타의 칠 할에 해당하는 최정예 인원들을 빼서 석 달간 어디를 다녀오겠다고 나간 지 어느새 두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원래 환교 총타엔 거주인원이 총 규모에 비해서 많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는 일 중에 중요한 것이 청부대상의 조속한 암살이었기에 환교도들은 천하 각지의 비밀 분타에 고르게 퍼져 있었다.

 그리고 총타에는 핵심적 인물들과 약간의 중간 간부 그리고 심부름과 경계를 하는 하위급 무사가 존재했다.

 그런 와중에 교주가 장로 등을 포함한 핵심 전력을 칠 할이나 빼갔으니…….

 현재의 환교 총타에선 부교주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중이었다. 원래의 운풍원장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교주의 재가도 없이 없애버릴 정도로.

 뭐, 원래 그 정도의 일은 부교주의 재량권으로도 충분하긴 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교주라면 사소한 실수엔 너그럽다.

 그러나 부교주는 달랐다. 조그마한 실수에도 눈에 쌍심지를 켜고 화를 내는 인간이었다.

 “넌 뭐냐?”

 운풍원주는 냉정함을 잃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낮게 물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지금이라도 수습을 해야 부교주의 그 개 같은 성질을 조금이나마 피할 수 있을 터였다.

 분명한 것은 저 애송이 괴인이 마냥 얕볼 놈은 아니란 점이었다. 원래 경계를 서는 놈들이 본교의 가장 약한 놈들이긴 했지만, 그래도 서른 명이었다.

 “고무영.”

 “고무영?”

 운풍원주는 무영의 말을 받으면서 이마에 주름살을 만들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고수 중에서 그런 이름은 없었다. 그런데 왠지 낯설지가 않은 이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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