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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초은곽은 힘이 급격하게 빠져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흐릿한 시선이 그의 상태가 얼마나 엄중한지 보여주고 있었다.
세 번의 칼질.
그것으로 인해 초은곽은 극심한 고통을 느끼고 있었다.
무영의 뒷골목 생활은 겨우 오 년뿐이었다. 하지만 상대방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방법을 익히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급소는 피했다.
그러나 회주는 절대 반항할 수 없을 것이다. 온몸의 힘이 서서히 빠져나가는 고통에 미칠 것 같을 테니까.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으니까 엄살떨지 마라. 10년 전, 태을리(太乙里)라는 곳에서 네가 한 행동을 잊지는 않았겠지?”
초은곽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태을리라면……?
“서, 설마…… 그때 그 애송이 유생?”
“후후후, 그래. 아직 기억하고 있군. 다행이야. 혹시나 벌써 잊은 건 아닐까 걱정됐거든. 네 호색 기질 때문에 한 가정이 무참하게 파괴됐지. 너야 장난으로 돌을 던졌지만……, 결국 우리 부모님은 그 고통을 이기지 못하시고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자살하셨고, 아버지는 힘이 없음을 한탄하시다가 화병으로 뒤따라 돌아가셨지.”
“으으……. 그, 그건.”
퍼억.
“끄억!”
초은곽의 옆구리에 무영의 주먹이 박혀 들었고 초은곽은 비명을 지르며 축 늘어졌다.
쓰러지고 싶었다.
하지만 멱살을 잡은 무영의 손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사월회 인물들이 욕설을 뱉으며 무영을 덮치려했지만 어느새 비수는 초은곽의 목 앞으로 다시 위치해 있었다.
“거기까지야. 거기서 단 한 발자국이라도 나오는 놈이 있으면, 그 순간 이 늙은이는 죽는다.”
“절대독종! 네 놈이 미치지 않고서야 감히!”
“자자, 어떤 놈이 회주를 죽이는 데 공을 세우고 싶은가? 너야? 아니면 너야?”
무영이 가장 앞쪽까지 근접한 두 사내를 향해 턱짓을 하자, 둘은 화들짝 놀라며 뒤로 물러섰다.
칠월(七月).
한창 뜨거운 여름밤이다.
그러나 무영의 말은 절로 소름이 돋아날 정도로 차가웠다. 지부장들과 수하들은 사색이 된 채 몸을 부르르 떨며 움직이지 못했다.
“절대독종!”
살모사가 짙은 살기로 노랗게 변한 눈자위를 치켜뜨며 외쳤다.
“후후후, 살모사 형님. 아니, 이젠 살모사라고 해야겠지. 그나마 네 인간성이 제일 낫더군. 그래봤자 오십 보 백 보겠지만.”
“네, 네 놈이 은혜를 원수로 갚다니. 우리가 널 얼마나 귀여워 해 줬는데……. 특히나 내가 널 얼마나 아꼈는데!”
살모사는 옆구리와 배를 움켜쥐고 헉헉거리고 있는 회주를 일별했다가 무영을 노려보았다.
“쓰레기들.”
“뭐?”
“너희들 같은 쓰레기들 때문에 세상이 더러운 거야. 개자식들아. 날 귀엽게 봐줬어? 날 아꼈어? 미친 자식들. 내가 너희 대신 목숨 걸고 싸우니까 그랬겠지.”
“이, 이 자식이!”
살모사가 화를 참지 못하고 한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그 순간 무영의 발이 초은곽의 발등을 찍었다.
“끄아아아악.”
악양루의 후원에 떠나갈 듯한 비명소리가 허공을 울려댔다. 살모사는 화들짝 놀라며 냉큼 뒤로 물러섰다.
“이번만 봐 준거야. 다음에도 내 경고를 무시하면……, 그때 이 늙은이의 목숨은 없어.”
“절대독종! 여기서 그만두면…… 편하게 죽여주마. 너도 알고 있겠지. 여기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내 경고를 무시하면, 널 세상에서 가장 참혹하게 죽여주겠어.”
살모사는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만약 여기서 회주가 죽으면 사월회는 혼돈 상태로 빠져들 것이다.
사월회는 아직 정식 후계자가 없었기에 지부장들 간의 권력다툼이 일어날 것은 불을 보듯 빤한 일.
더더군다나 아직 불곰파를 완전히 쓸어버린 것도 아니었다. 불곰은 잠적해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참혹하게 죽여준다고? 이봐. 난 이미 십 년 전에 죽었어. 크크큭, 그리고 한 가지 말할 게 있는데, 난 무영이야. 고무영. 절대독종이 아니라.”
무영은 비아냥거리는 듯한 어투로 대꾸를 하고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는 초은곽의 멱살을 더욱 옥죄었다.
“제, 제발…… 원하는 건…… 뭐든지 들어 주겠어.”
초은곽의 얼굴은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마치 몸에 있는 피가 모두 사라진 것처럼.
“그래? 정말?”
“정말이다. 정말. 살려만 준다면 뭐든지 다 들어준다.”
초은곽은 있는 힘을 쥐어짜내 외쳤다. 그러자 무영이 씩 웃으며 대꾸했다.
“널 보는 거…… 정말 힘들더군. 쥐새끼처럼 꼭꼭 숨어서는.”
“무, 무영! 제발…….”
“너와 단 둘이 있게 되는 이 순간을 내가 얼마나 꿈꿔 왔는지 넌 모를 거야. 크크큭. 크하하하.”
“무영! 아니 무영 님! 제, 제발…….”
“내가 가지고 싶은 건, 네 목숨이야.”
퍽!
애원을 하던 초은곽의 배에 박혀 들어오는 무영의 왼 주먹.
초은곽은 머릿속이 텅 비워지는 것 같았다. 칼에 찔린 상처에 박혀 들어오는 무영의 주먹은 쇠망치 같았다.
어마어마한 고통에 입만 떡 벌릴 뿐 신음소리마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넌 쓰레기야. 말해 봐.”
“네에…… 네에. 하아아, 하아…… 무영 님. 저, 저는 쓰레기입니다.”
“더 크게!”
“저는…… 쓰레기입니다!”
초은곽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살고 싶을 뿐이었다. 본능적으로 나오는 외침에 사월회의 인물들은 입술을 깨물며 무영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러나 무영은 피식 웃을 뿐이었다.
“넌 그때, 네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던 소년을 죽여야 했어. 그게 네 실수였지. 후후후, 나 같으면…… 절대 남기지 않아. 후환거리는.”
“네에……. 자, 잘못했습니다.”
초은곽의 입과 코에서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 지조차 모를 정도로 그는 극심한 혼돈을 겪고 있었다.
“널 만나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준 몰랐어. 신비스러울 정도로 흔적을 보이지 않는 네 놈에게 경외심까지 들더군. 그래서 다짐했지. 그냥 칼로 쉽게 죽이지는 않겠다고. 쓰레기에게 칼은 과분하지.”
무영은 입가에 냉소를 머문 채 말을 이어나갔다.
“무엇보다 네 실수는…… 나를 건드렸다는 거야. 그깟 십 년쯤이야 아무 것도 아니지. 후후후.”
“무영 님…… 제발.”
초은곽에게서 절규가 터져 나왔다.
그도 뒷골목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었다. 지금 무영의 눈에서 일렁이는 살기를 모를 리 만무했다.
악양루의 후원은 숨 막히는 살기로 폭발 일보 직전이었다. 무영의 살기와 사월회 조직원들의 살기로.
퍽!
퍽퍽퍽퍽…….
갑자기 무영의 주먹이 신들린 듯이 움직였다. 그 주먹은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초은곽의 배를 연타했다.
열 번, 스무 번, 서른 번…….
그것은 순식간이었다.
한 번 터지기 시작한 그의 주먹은 멈추지 않았다. 처음에 비명을 토해내던 초은곽의 몸이 어느 순간부터 축 늘어졌다.
멱살을 단단하게 잡힌 지라 피하지도 못하고 얻어맞는 초은곽의 몸에서 피가 사방으로 튀었고, 무영의 몸도 그 피로 인해 점점 붉어져 갔다.
“그만하지…….”
살모사는 낮게, 마치 늑대가 으르렁거리듯이 말했다.
그러나 무영의 주먹이 멈추지 않자, 빽 소리를 질렀다.
“그만하라고! 이 새끼야!”
총 몇 번이나 주먹질을 해댔을까? 최소한 칠팔십 번은 되지 않았을까?
영원히 주먹질을 해댈 것 같던 무영의 어깨가 멈췄다.
“크크크큭, 회주! 겨우 이 정도에 간단 말인가? 이래서야 재미가 없잖아.”
멱살을 풀자 초은곽의 신형이 땅 밑으로 허물어졌다.
역겨운 피비린내가 사방으로 퍼져나갔으나 그 냄새로 고개를 돌리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잔인한 놈!”
중년의 한 지부장이 치를 떨며 말했다.
그러나 무영은 피로 물든 주먹을 소매로 닦으며 태연히 대꾸했다.
“잔인하다고? 뭐가 잔인하다는 거지? 심심풀이로 여색을 탐해서 한 가정을 파괴하는 놈이 잔인한 건가? 아니면 그런 인간을 패 죽이는 게 잔인한 건가?”
“네 시신을 개에게 던져주마!”
“크크크, 좋아! 갈 때 가더라도 쓰레기를 조금 더 치워주지. 그래야 세상이 조금은 정화가 될 테니까. 그럼 원수도 갚았겠다. 제대로 한 번 놀아보자고. 하하핫!”
무영은 허리를 뒤로 젖히며 광소를 터트렸다. 살모사는 숨을 거둔 회주를 보며 이를 악물었다.
최악이었다.
절대독종을 이 자리에 들이자고 동료 지부장들에게 말을 꺼낸 것은 자신이었다. 결코…… 그 책임을 면하지 못하리라. 지금도 문제지만 앞으로의 일이 암담해지는 살모사였다.
* * *
“거참! 무서운 놈이로다. 단 한 번의 기회를 위해 원수 밑에서 오 년을 기다리다니. 절대독종이라……. 허허, 놈과 딱 들어맞는 별명이로군. 평범했던 유생이 복수를 위해 십 년 동안 어떤 지옥을 거쳤을지, 안 봐도 눈에 선하군. 헐헐.”
누더기 옷에 맨발의 늙은 거지가 혀를 차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는 악양루 팔 층의 꼭대기 지붕 위에서 무영과 사월회 사이에 펼쳐지고 있는 모든 것을 술 마시며 구경하고 있었던 것이다.
양 볼에 검버섯이 듬성듬성 피어 있는 그는 개방의 태상장로 취개(醉丐)란 인물로, 술이라면 환장을 하고 남의 일에 간섭 잘하기로 유명한 기인이었다.
주책없고 가볍게 보일 수도 있었으나, 그가 펼치는 취팔선권(醉八仙拳)과 파옥권(破玉拳)은 강호의 일절로 불릴 만큼 강한 고수였다.
“흠……. 녀석. 성정이 너무 과격하지만 근골은 좋은 것 같은데……. 언행으로 보아 의지는 굳건할 것이 분명하고…….”
취개의 미간에 깊은 선이 생겨났다. 생각해보니 자신도 슬슬 제자를 찾아야 할 때였다.
하지만 무영의 나이가 벌써 스물을 넘어 보인다는 점과, 지금 보여준 잔인함 때문에 선뜻 내키지가 않았다.
개방의 정신은 의로움이다.
비록 환경에 의해 청년의 성품이 저리 잔인해진 것이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의(義)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어쩐다. 놈의 근골이나 근성은 마음에 드나, 성정이 교묘하고 악랄한 것 같으니…….”
취개는 들고 있던 호리병의 술을 들이켜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곧 피식 웃으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래도 안 하는 게 낫겠어. 잘못하다간 악마를 키울 수도…….”
혼자 중얼거리며 결론을 내리는 취개였다. 그 순간 취개의 눈이 커졌다.
자신의 귀를 파고들어 오는 낮은 목소리.
“클클클, 저 청년이 악마로 보이나? 하긴, 내가 봐도 참으로 독한 놈이지.”
취개의 몸에 일순간 소름이 쫘악 돋아났다.
누구인가?
뒤에서 들려오는 음성에 취개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소리가 나는 지점으로 보아 자신의 바로 뒤다. 그런데 어찌 그것을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강하다! 결코 나보다 하수가 아니야. 아니 훨씬 강한 진짜 고수다!’
경악스러우면서도 궁금해졌다.
강호의 마당발이라 불릴 정도로 숱한 인물들을 꿰차고 있는 그였다. 하지만 뒤에서 느껴지는 이 이질적인 느낌은 생전 처음 경험하는 것이다.
뒤를 돌아 정체를 확인하고 싶었다. 하지만 산전수전 다 겪은 경험과 그만의 본능이 그것을 거부했다.
“똑똑하군, 늙은 거지. 나는 내 모습을 남에게 보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 좀…… 못생겼거든. 내가 보면 그리 나쁜 것 같지도 않지만.”
“…….”
“어쨌든 저 녀석은 이 년 전에 내가 제자로 찜한 놈이야. 거지. 넌 오늘 두 번 죽을 뻔 했다. 저 녀석을 네가 원했거나, 뒤를 돌아봤다면…….”
취개는 느낄 수 있었다.
불청객의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것을.
“거지. 이젠 돌아가라. 그 자리도 내가 예전에 찍어둔 것이니까 어서 엉덩이를 떼고 돌아가라.”
억지다. 순 억지다. 그러나 취개는 현명했다. 그런 것을 따져 물을 만큼 어리석지 않았다.
“누구시오?”
취개는 천천히 일어서며 낮게 물었다. 그러나 뒤에 있는 인물에게서 돌아온 것은 실소였다.
“훗, 넌 알 자격이 없다.”
“나는…… 개방의 태상장로 취개요. 그래도 자격이 안 되오?”
“개방 방주라 해도 마찬가지.”
“……!”
취개의 호흡이 빨라졌다.
오만해도 너무 오만하다. 이렇게 광오한 자가 강호에 있었던가?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 이미 무신(武神)의 경지에 들어섰다는 여섯의 절대 고수, 즉 육천(六天)이라 불리는 이황(二皇), 이제(二帝), 이마(二魔)가 아니고서는 개방 방주를 향해 이리 무례한 말을 내뱉을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뒤에 있는 괴인이 육천 중 하나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가라고 했는데…… 계속 머뭇거리는 이유가 뭐지? 자네는 저 녀석에게 관심을 접었잖나? 왜 갑자기 미련이라도 생기는 건가?”
“저 아이를 제자로 삼을 거라면서……, 왜 도와주지 않는 거요?”
취개는 막 싸움이 시작된 후원을 보면서 물었다.
“죽으면…… 지 팔자지.”
“……?”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나을 거야. 내 제자가 되는 순간 지옥문이 열리는 거니까.”
취개는 어이가 없어졌다.
지금도 청년의 몸에는 상처가 하나둘씩 빠르게 늘고 있었다. 장담하건대, 반각을 넘기기 힘들 것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을 봐왔지만, 등 뒤에 있는 인물의 성격이 당최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분명 제자로 삼겠다고 했다. 그런데 죽거나 말거나 상관없다니…….
“후후후, 하지만 쉽게 죽을 놈이 아니지. 난 저놈을 이 년간이나 봐와서 잘 알지. 그건 그렇고, 늙은 거지! 이정도면 나도 자네한테 할 만큼 했어. 이젠…… 가라고. 슬슬 짜증나려고 하네. 내가 착하지 않았다면…… 자넨 벌써 뒈졌어.”
취개는 속에서 불끈 치미는 분기에 입술을 삐죽거렸지만 바로 다물었다.
숨 막힐 듯한 기운이 자신의 신형을 억눌렀다.
비록 살기는 아니었지만…… 더 이상 이곳에 있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가 쏟아내는 무형지기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결국 취개는 고개를 돌리지도 못하고 자리를 떠야했다. 개방의 태상장로가 단지 몇 마디 협박에 쫓겨난 것이다.
취개(醉丐).
그는 결코 협박에 굴복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혈기를 앞세워 득 볼 것도 없는데 목숨을 걸만큼 어리석지도 않았다.
취개가 떠난 기와 위로 불청객이 자리를 잡았다. 그는 일 척 길이의 묵빛 몽둥이를 손으로 빙빙 돌리면서 낮게 웃었다.
“클클클. 아주 마음에 들어. 하지만 네 놈은…… 보면 볼수록 너무 사악한 것 같아. 아아…… 결국 싸가지 없는 저 녀석이 제자가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맞는 건가? 빌어먹을! 왜 저놈보다 나은 녀석이 눈에 띄지 않는단 말인가? 젠장!”
휘리리릭.
일 척의 묵빛 몽둥이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처럼 스스로 노인의 팔 주변에서 빙빙 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