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사람들이 매일 들락날락거리는 글로벌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 Y튜브.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만의 채널을 개설하고 동영상을 올리면, 검색을 통하여 사람들이 영상을 클릭했다.
이들은 동영상 뷰어 화면 아래 '좋아요' 버튼을 누르거나 '구독' 버튼을 눌렀다. 이를 통해 게시자는 인기도와 부를 축적하고, 시청자는 일상의 지루함과 피곤함을 털어낼 탈출구를 찾게 되었다. 이른바 일거양득의 결과였다.
그리고 올 해 스물다섯 살을 맞이한 나, 김유주. 일년 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백조 생활을 만끽하다가 Y튜브 사이트에서 한 영상을 보고 영감을 얻었다. 그후 실명을 걸고 Y튜브 채널을 개설했고, 음식을 먹는 방송이라는 뜻을 지닌 먹방을 시작했다. 그리고 쾌거를 이룩했다. 일 년이 채 안 되어 사백만이 넘는 구독자를 거느리게 된 것이다.
"여러분~유주는 구독, 구독 좋아! 추천, 추천 좋아! Hi, guys! Thank you for watching and if you like the video please subscribe and don't forget to leave your comment below."
겨우 입에 밥칠을 했던 초반과 다르다. 시청자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고 범위는 상상이상으로 넓어졌다. 나는 이에 힘입어 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자 가장 보편적인 외국어인 영어 공부에 매진했다. 또한 다양한 국적을 지닌 사람들이 영상을 보러 왔기 때문에 자막과 번역 작업에도 인력과 비용을 투자했다. 그 결과, 내 Y튜브 채널은 각종 SNS와 해외 블로그에 소개가 되었다.
-오늘 트렌드 TV를 빛내줄 특별 게스트, 먹방 BJ 유주 님을 소개합니다!
명성이 높아지자 수입도 눈에 띠게 커졌다. 여러 잡지사, 방송사 등에서 섭외 및 인터뷰 요청이 들어왔다. 나는 가장 돈을 많이 주는 곳과 일을 했고 통장 잔고 수치가 올라가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그랬더니 어느새, 시설이 노후한 작은 원룸은 고급 원룸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그것도 강남의 역삼역 근방에 있는 월세 120만원 수준으로!
"오늘은 지난 영상 댓글 중 가장 요청이 많았던 맹구네 설렁탕과 샥샥 버거와 프라이 그리고 엉클 컵밥을 먹어볼게요. 원래 몇 가지 더 준비하려고 했는데 제가 약속이 있어서 방송을 평소보다 오래 할 수가 없거든요. 혹 분량이 적어졌다고 아쉬우신 분들이 계시다면 양해를 부탁드리면서 방송, 시작할게요! 아잉!"
애교와 귀여운 모습을 보이고, 솔직하게 때로는 과한 리액션을 취하는 것은 생존전략이다. 왜냐하면 남녀 시청자의 호감을 끌어올리는 데 최고의 수단이기 때문이었다. 이를 위해 나는 필사적으로 몸매를 가꿨다. 배 터지게 먹고 나면 먹은 만큼 운동했다. 그 뿐인가? 매일 반신욕을 했다. 주기적으로 스킨 케어샵을 방문하여 피부 관리와 마사지도 병행했다.
처음에는 방송 BJ를 진지하게 할 생각이 없었다. 스스로에게 휴식을 주고자 기분 전환 겸 가볍게 시작했던 일이었다. 그런데 누가 알았겠는가. 인터넷 방송 BJ가 직업이 될 줄 말이다. 그저 일반인에 비하여 위장 크기가 넓고 크며 식욕이 왕성하다는 특징을 이용하여 용돈이나 벌려고 했던 계획이 완전 틀어졌으니.
"이제 와서 고백하는데 전 샥샥 버거 머리 털 나고 처음 먹어봐요. 아, 진짜! 채팅 창 반응 좀 봐! 다들 왜 그래요! L데리아, M도널드, B거킹 말고 가본 곳 없는 사람 있을 수도 있지! 그나저나 대박! 이거 보여요?"
그리고 오늘은 정기 방송일. 나는 시청자 수를 유심히 살피며 포장을 뜯었다. 다음에는 버거를 들어올려 시청자들에게 내부가 잘 보이도록 각도를 잡아 카메라를 향해 비췄다. 살살 흔들며 장난을 치기도 했다.
"절대 과장 아니고요! 다들 홈 서비스나 매장에 찾아가서 주문하면 거짓말 안 하고 진짜 맨날 야채랑 소스랑 토핑이 뒤섞여서 막 옆으로 삐죽 튀어나오거나 국물 떨어져서 옷도 더러워지고 그러잖아요. 근데 이건 제품 광고 사진이나 실물이랑 차이가 없어, 차이가!"
일반 햄버거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사용하는 패티와 남다른 퀄리티와 두께, 그리고 큼지막한 토핑. 깔끔하게 들어간 양배추 한 장과 좌르르 흐르는 윤기. 순간 샥샥 버거는 영롱하다 못해 신성한 유물처럼 보였다. 금색 후광이 찬란하게 반짝였다.
'진짜 맛있겠다.'
나는 방송용 표정을 짓는 것도 잊었다. 처음 시식하는 샥샥 버거의 위대함에 깊이 감복했다. 이에 잽싸게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리고 뜯겨나간 패티 위로 먹음직스럽게 흐르는 육즙에 감탄사를 외쳤다. 프라이와 음료까지 천천히 음미한 후에는 최종 감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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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며 배가 부른 척 쓰다듬었다. 그러자 채팅창의 바가 더욱 빠른 속도로 올라가며 여러 메시지가 쏟아졌다. 그 중 몇 가지가 눈에 띠었는데 예의가 없고 음란한 말은 현기증을 일으켰다.
[TalkTalk 매니저가 "김종배"님을 강퇴 및 재입장 불가 처리하였습니다]
다행히 채팅 관리 매니저가 빠르게 움직였다. 나는 시스템 메시지를 보며 안심하고 생각했던 대사를 읊었다.
"아, 버거를 너무 천천히 먹었나봐요. 설렁탕이 좀 식었네. 그래도 괜찮아요! 저에게는 휴대용 가스렌지가 있으니까요! 금방 데워서 먹으면 그만이죠! 짜잔!"
모 업체에서 협찬을 받은 휴대용 가스렌지를 선보였다. 나는 잘 보이는 위치에 냄비를 놓고 활짝 웃으며 팝송을 재생했다. 다음에는 리듬을 타는 듯 춤을 추며 테이블 밑에 준비해 둔 냄비를 꺼냈다. 그 후 설렁탕 포장 용기를 들어올려 비닐을 뜯고 내용물을 냄비 안에 넣어 숟가락으로 살살 저었다.
"우리~잠시 데우는 동안 QnA 시간 가져볼까요?"
탕이 끓을 때까지 수다를 떨었다. 잠시 후 설렁탕이 보글보글 기포를 터트리기 시작하자 음악을 재생 정지했다. 그리고 젓가락을 들고 테이블과 냄비를 번갈아 두드리며 영화 P치 퍼펙트에 나왔던 노래를 불렀다. 다음에는 호응이 절정에 달할 즈음, 자연스럽게 수저로 당면을 건져냈다. 뒤이어 막 먹을 것처럼 굴다가 국물이 너무 뜨겁다는 것을 핑계로 컵밥을 먼저 흡입했다. 사실 컵밥이 메인 디쉬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마지막 요리로 남기지 않고자 잔머리를 굴린 것이었다.
"와, 진짜 배부르다. 조금 더 들어갈 수 있을 거 같기는 한데 나가면 또 먹어야 해서 오늘은 여기까지 할게요. 그나저나 저, 완전 싹싹 긁어먹었어요! 이래서 BJ 슈비 님이 저보고 나중에는 포장 용기도 먹는 거 아니냐고 하셨나봐요~"
호탕하게 웃었다. 나는 한 톨도 남김없이 비워진 그릇과 포장 용기, 냄비 안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주었다. 다음에는 지친 것처럼 행동하며 뒤로 벌러덩 나자빠졌다. 그 후 때 맞춰 전화를 준 친구의 도움으로 시청자들에게 종료 멘트를 뱉었다. 마지막으로 손키스를 날리며 작별 인사했다.
"와, 돼지. 그게 어떻게 매일 다 들어가?"
캠 전원을 끈 후 방 밖으로 나오자 동생의 태클이 날아왔다. 나는 어깨를 들썩이며 불룩 나온 배를 두 손으로 잡고 흔들었다.
"난 원래 식탐의 축복을 받은 몸이야. 많은 음식을 먹고 뜯고 씹고 느끼라고 위가 출렁출렁 늘어졌을 뿐이라고."
"자랑이다."
동거 중인 룸메이트이자 채팅방 관리자인 친동생, 김유나. 재정적으로 여유가 생겨 금전적인 도움을 주겠다고 했음에도 거절한 자존심이 강한 아이. 스스로 학비를 벌겠다며 휴학을 하고 알바를 하다가 최근 부상을 당했다. 하필이면 손목을 다쳐 다른 일도 구할 수 없게 되었다.
유나는 그후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나을 때 까지 마냥 놀고 먹는 것이 싫다고 했다. 얹혀사는 기분이 드는 게 싫다며 집안일도 내 몫까지 본인이 했다. 빨래나 설거지 등 팔을 많이 쓰는 일은 제외하고 먼저 나섰다.
나는 그런 동생을 이해했지만 답답했다. 의지하지 않으려는 모습에 속상함도 느꼈다. 하나 부담을 주거나 강제로 내 뜻을 따르라고 할 수 없었다. 이에 대한 아쉬움은 종종 놀리는 것으로 해소했다.
나는 어느 날 부터 몸을 많이 쓰지 않으면서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을 구상했다. 더 이상 유나가 고통받는 것이 싫어서였다. 그러다가 잠시 채팅방 관리자를 맡겨보았다.
결과는 훌륭했다. 나는 유나의 능력을 높이 사 급료도 높게 책정하고 싶었다. 하나 한사코 반대해서 월 수입 사분의 일 수준을 매 월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나중에 유나가 매니저 일이 손에 익을 즈음 계속 맡아줬으면 하는 욕심이 생겼다. 그러나 사람의 인생은 자신이 직접 개척하는 것. 나 때문에 좌지우지되기를 바라지 않기에 몇 번이고 조르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야, 저번에 그 신상 흰 블라우스 어디에 뒀어?"
"띨띨아, 그거 내가 어제 옷장 안에 잘 다려서 옷걸이에 걸어뒀다고 했잖아!"
"아, 왜 성질이야!"
나와 유나는 일 할 때 제외하고 잘 다퉜다. 사이가 나쁜 게 절대 아닌데 늘 티격태격했다. 그나마 덜 날을 세우는 경우는 외출 준비할 때였다. 그 마저도 실랑이 아닌 실랑이를 벌였지만 워낙 일상이다. 그렇다 보니 이 정도는 애교였다. 서로 아무렇지 않게 넘어갔다.
"오늘 어디 거 쓸거야?"
"M샤 거랑 YI스프리. 저번 주에 산 L콤 거랑 C넬은 아껴서 쓰려고."
여자에게 있어 화장은 신의 한 수다. 우리 둘은 매의 눈으로 거울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화장품을 골랐다. 그리고, 전투에 임하는 자세로 얼굴 위에 마법의 붓질을 했다.
“오, 눈이 확실히 튀는데?”
“BJ 뷰티 님 눈 화장법 새로 올라온 거 따라했어.”
“잘 어울리네. 어? 너 뿌리 염색 해야겠다.”
놀러갈 때는 신이 난다. 나는 전신 거울 앞에서 최종 점검을 마치고 구두를 신었다. 동생이 뒤에서 뱃살이 퍼지는 게 보인다며 장난을 쳤다. 나는 유나의 옆구리를 찌른 후 눈을 마주보며 까르르 웃었다.
"근데 배 장난 아니게 나왔는데. 이따 영화보고 곱창 먹을 수 있겠어?"
"야, 영화 상영 시간이 두 시간 넘거든? 이동하는 시간도 있으니까 충분히 소화되고 남아."
"와, 역시 명불허전 소화력."
오늘은 불타는 금요일.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문을 잠갔다. 다음에는 유나와 팔짱을 끼고 엘리베이터 앞으로 이동했다. 화려한 네온 사인과 야경, 거리 공연에 취할 생각을 하니 신이 났다. 이에 제자리에서 춤을 추니 유나가 쪽팔린다고 했다.
“무뉘이 다췹눼다~”
“아, 하지마! 진짜 바보 같아. 쪽팔려.”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나는 계기판의 숫자가 내려가는 걸 보며 이어폰을 끼고 음악 감상 어플을 실행했다. 뒤이어 벽면에 배치된 거울을 들여다 보았다. 화장이 번지거나 얼굴에 묻은 게 있는지 살피기 위함이었다.
“어, 깜짝이야. 뭐야?”
“미쳤나봐. 고장난 거 아냐?”
엘리베이터가 이상하다. 평소와 다르게 유난히 내려가는 속도가 느림에 인상을 썼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문 앞에 섰다. 삐딱한 자세로 계기판을 노려봤다. 그러자, 몇 분 안 지나 전등에서 갑자기 파바바박 소리가 나며 스파클이 튀었다.
"뭐야, 진짜. 무서워…."
맞은편에 있던 유나가 내 뒤로 쪼르르 달려왔다. 그리고 조그맣게 욕설을 내뱉었다. 나는 동생에게 진정하라고 하며 침을 삼켰다. 무언가 찝찝함을 느끼며 경비원을 호출하고자 노란 벨 버튼을 눌렀다.
“아저씨? 여보세요? 아저씨이이이? 오빠아아아!!!”
다급해졌다. 벨 버튼 아래 작은 스피커에서는 치지지직 전파음만 들려왔다. 이에 애타게 경비원을 부르다가 화가 나서 아무렇게나 내뱉었다. 상황이 예기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자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
"……."
적막이 흘렀다. 나와 유나는 서로를 응시했다. 잠시 후 동시에 스마트폰을 크로스백에서 꺼냈다. 서로 미친듯이 폰의 전원을 껏다 키며 이것저것 눌러보았다. 그리고 좌절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신호가 잡히지 않았다. 4G도 연결이 원활하지 않아 구조 요청을 할 수도 없었다.
“일단 앉아. 바닥에 최대한 붙어있자.”
“어, 어쩌려고?”
이렇게 된 이상 생존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나는 유나에게 귓속말을 하듯 말을 건네며 바닥에 무릎을 데고 낮은 자세를 취했다.
“재수 없는 말인 거 아는데, 이런 경우에는 엘리베이터가 추…꺄아아아악!!!”
입술을 꽉 깨물었다가 최악의 경우를 설명하는 찰나였다. 엘리베이터가 난데없이 빠른 속도로 추락했다.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소프라노 뺨을 치게 비명을 질렀다. 유나는 온갖 쌍욕을 퍼부었다. 이게 다 나 때문이라고 울부짖으며 벌벌 떨더니 바닥에 웅크렸다.
"괜찮아, 괜찮아. 금방 멈출거야."
나는 한 손으로 엘리베이터 벽에 설치된 손잡이를 잡았다. 유나 위로 몸을 숙이며 엘리베이터가 어서 멈추기를 빌었다.
"어?"
"끝났나?"
쿵 소리를 이어 덜커덩 소리가 났다. 엘리베이터도 더 이상 내려가지 않았다. 이에 추락이 멈췄다고 믿고 유나를 먼저 내보내기로 했다. 나는 동생을 문 근처로 기어가게 한 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시 노란 벨 버튼을 눌렀다.
"아?"
"어, 언니!"
뒷골이 서늘해져 발아래를 쳐다봤다. 와그작 소리가 나며 내가 서있는 바닥을 중심으로 금이 갔다. 머지않아 발 아래가 휑 해졌다. 쇠 냄새를 실은 퀘퀘한 바람이 살갗을 때렸다.
"언니이이이이!!!"
유나가 경악하며 손을 뻗었으나 떨어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 동생의 필사적인 노력은 겨우 서로의 손가락 끝만 스치는 데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