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암.
진명은 늘어지게 하품했다. 잠복 선지도 벌써 5시간 째. 시간은 자정을 넘겨 2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밤새는 거야 일도 아니지만, 며칠 동안 연달아 하는 짓은 아무리 해도 힘들다. 진명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열고 닫히는 라이터 소리가 경쾌하다.
문이 열리며 도한이 차에 탔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에 손을 보니 검은 봉지 한 가득 음료수와 주전부리를 사왔다.
“많이도 사왔다.”
“겸사겸사. 비축분도 떨어져 가고 해서.”
도한은 봉지에서 과자 하나를 꺼냈다. 가운데 크림이 들어간 과자. 봉지까지 뜯은 뒤, 하나를 집어 먹으며 진명에게도 권한다.
“괜찮아.”
담배를 까딱이며 거절한다. 하긴. 도한은 과자를 가운데 내려놓으며 생각했다. 진명은 담배 필 때는 잘 먹지 않았다. 담배의 텁텁함과 씁쓸함 때문에 맛이 이상해진다 했었나? 암튼. 도한은 과자를 하나 더 집어 입에 넣었다. 그리고 몸을 일으켜 글로브박스에 뜯은 과자와 음료수 하나를 남기고 사온 것들을 모두 넣고 닫았다. 비어진 봉지는 기어에 잘 묶고, 도한은 음료수 뚜껑을 열었다.
진명은 열어둔 창밖으로 손을 뻗어 담뱃재를 털어내고, 다시 한 모금 빨아들였다. 고개를 돌려 창밖으로 연기를 뱉었다.
“그보다 오는 거 맞아?”
“맞아.”
맞을 거야... 그리 말하는 도한의 목소리에 힘이 없다. 진명은 한숨을 푹 쉬었다. 허연 담배연기가 뭉쳤다가 퍼진다. 그때, 도한이 몸을 낮추며 급한 손길로 진명의 팔을 친다. 왜 그러냐며 도한을 쳐다보니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킨다. 따라 시선을 옮긴 진명은 텅 빈 골목을 걸어오고 있는 남자 둘을 발견한다. 덩달아 몸을 낮춘 진명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며 껐다.
그들이 보는 길가엔 얼굴까진 자세히 보이지 않지만, 두 남자가 같은 방향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한 건물 앞에 멈춰 서더니 앞서 걷던 덩치 큰 남자가 주변을 살피며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그 남자를 뒤따라 좀 왜소한 체구의 남자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가볼...”
움직여 볼까 싶어 옆을 보는데 옆자리가 비어있다. 도한은 서둘러 앞을 봤다. 언제 나간건지 진명이 벌써 저 만치 걸어가고 있다. 하여간 성질 급하다니까. 도한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차에서 내렸다.
사용 안한지 오래 돼 보이는 건물은 2층 구조였다. 1층엔 식당이 있고, 위엔 가정집으로 보이는 구조. 진명은 남자가 들어갔던 대로 1층 식당 문을 열었다. 다행이 문은 잠기지 않은 상태였다. 달빛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곳이라 내부는 깜깜해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진명은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기를 기다렸다. 찰나의 시간이 지나고,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건물 내부를 보여준다. 진명은 최대한 소리를 죽이며 조심조심 안으로 들어갔다.
“......”
주방 한쪽에 있는 문을 열자 뒷마당이 나온다. 진명은 보초가 있을 까 싶어 주변을 살폈다. 다행이 조용한 게 아무도 없다. 조심스레 뒷마당으로 나와 2층을 쳐다봤다. 커튼 쳐진 창에서 형광등 빛이 새어나온다.
진명은 따라 나온 도한에게 2층을 가리켰다. 도한은 2층을 올려다보곤 고개를 끄덕인다. 야외계단을 조심스레 밟자 삐그덕 소리가 난다. 주변을 유심히 보니 관리가 안 돼 여기저기 녹이 슬어 있다. 진명은 혀를 찼다. 다행스러운 건 뛰어내리지 않고는 달리 도망칠 곳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최대한 소리가 안 나게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의 끝엔 문이 바로 연결돼 있었다. 진명은 몸을 낮추며 문 앞으로 갔다. 안에서 말소리가 들려온다. 진명은 총을 꺼내려다 도한의 제지에 다시 총을 넣었다.
“자, 잠깐! 잠깐만요!”
그때, 겁에 질린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뒷말은 잘 들리지 않았지만, 장기매매현장이 맞다 면 겁에 질려서 시작하려는 걸 멈췄거나, 사실을 확인받는 다거나 뭐 그런 것일 거다. 어쨌든 곧 시작한다는 사실은 변함없었기에 진명은 도한에게 곧 들어간다는 신호를 보낸 뒤. 문고리를 조심스레 돌렸다. 이번에도 문은 잠기지 않았다.
‘하나, 둘...’
셋! 구호에 맞추어 손잡이를 돌려 문을 열었다. 철제 난간에 부딪혀 쾅 소리를 낸다. 진명과 도한은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거기까지.”
2층엔 총 5명이 있었다. 수술대에 누워 있는 남자. 작업하려는 남자. 남자를 데려온 덩치. 보스로 보이는 담배피고 있는 남자와 구석에 있는 모자 쓴 남자까지.
진명은 방안을 쭉 훑어보았다. 첫 작업인지 주변은 깨끗했다.
“뭐야 네놈들.”
담배를 피던 남자가 험상 굳게 말한다.
진명은 주머니에서 신분증을 꺼내 내밀었다.
“경찰.”
그 한마디에 험악했던 표정을 더욱 굳힌다. 진명은 신분증을 다시 넣고, 소매를 걷었다.
“나 무지하게 피곤하거든? 그러니까 조용히 가자.”
“아이고 그러셨어요? 근데 어쩌지? 우린 조용히 갈 생각이 없는데.”
담배피던 남자가 비꼬는 말투로 일어선다. 꽁초를 대충 비벼 끄고, 그는 근처에 있던 칼 하나를 집었다. 그의 행동에 덩치와 작업하려던 남자도 각각 연장을 챙긴다. 하여간. 한 번 말하면 듣질 않는다니까. 진명은 한숨을 깊게 내뱉었다. 그게 신호가 되어 남자들이 일제히 달려든다. 진명과 도한은 그들이 휘두르는 연장을 피해 반격했다.
“쳇.”
유일하게 모자 쓴 남자만이 앞으로 달려가는 대신 뒤로 물러났다. 혹시나 해서 와본 현장에 형사가 올 줄이야. 남자는 곤란하게 됐다는 표정으로 도망칠 곳을 찾았다. 하지만 입구는 형사들이 막고 있었기에 남자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자신의 쪽에 있는 창문을 통해 뛰어내리는 것이었다.
“억.”
잘 버티던 한 놈이 결국 배를 잡고 쓰러진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어 남자는 창문을 열고 뛰어내렸다. 아윽... 발목이 살짝 삐긴 했으나 다행히 다치진 않았다.
“한 놈 도망간다!”
도한이 그 모습을 보고 소리쳤다. 제 앞에 있는 놈을 쓰러뜨리고, 진명은 한 발 빠르게 남자가 뛰어내린 곳으로 향했다. 저 멀리 도망치는 남자가 보인다. 진명은 망설임 없이 창을 통해 뛰어 내렸다. 가볍게 착지한 진명은 전력을 다해 남자를 쫓았다.
“야 이 새끼야!”
진명이 뛰어가는 남자를 향해 소리쳤다. 절뚝이며 뛰어가던 남자가 뒤를 돌아보더니 이를 악물고 있는 힘을 다해 뛴다. 24시로 하는 데 빼곤 대부분 문을 닫았거나 닫고 있다. 남자는 넓은 골목을 지나 좁은 샛길로 빠졌다. 진명도 그를 따라 샛길로 빠진다. 처음 쫓아갔을 때보다 거리가 상당히 줄었다.
샛길을 빠져 나오니 주택가가 나왔다. 진명은 모퉁이를 돌아 사라지는 남자를 따라 모퉁이를 돌았다. 그러자 더 좁은 골목이 나온다. 같은 동네인지 비교될 정도로 골목은 허름했다. 진명은 모퉁이로 바로바로 사라지는 남자를 놓치지 않기 위해 뛰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진명은 남자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자신 홀로 뛰고 있단 걸 깨달았다. 자리에 멈춰선 진명은 주변을 살폈다. 그런데 남자의 모습은커녕 발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
진명은 거칠어진 숨을 진정시키며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내뱉는 숨에 허연 연기가 공중에 뭉쳐진다. 라이터 뚜껑 열고 닫는 소리가 경쾌하게 난다. 그 소리에 다른 소리들이 묻힌다. 몸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가며 진명은 도한이 있는 곳에 도착하기 까지 그 소리를 멈추지 않았다.
-
9월 23일.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던 초침이 12를 지나감과 동시에 분침도 같이 움직인다. 시계는 5시를 가리키고, 이내 알람을 요란하게 울린다. 그 소리에 잠에서 깬 영식이 뒤척였다. 그리고 이불 속에서 손이 불쑥 튀어나와 알람을 끈다. 다시 조용해진 방. 영식은 몸을 덮고 있던 이불을 한쪽으로 치우고, 기지개를 켰다.
“억.”
순간 허리에 강한 통증이 느껴져 영식은 움직이지도 못하고, 가만히 통증을 속으로 삭혀낸다. 힘겹게 일어난 영식은 하품을 늘어지게 하며 욕실로 향했다.
집을 나와 영식은 열어놓은 앞섬을 잠갔다. 새벽의 공기는 찼다. 하. 하고 입김을 불면 하얀 입김이 나올 것 같았다. 영식은 어이없는 생각에 피식. 웃음을 흘리며 걸음을 서둘렀다.
길어진 밤에 아직 세상은 환하지 않았다. 그래도 조금씩 푸르스름해 지는 것이 해가 뜨고 있단 걸 알려줬다.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정류소에 도착해 버스를 기다렸다.
잠시 후 버스가 정류장 앞에 서고, 영식은 버스에 올랐다. 이른 새벽의 버스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타고 있다. 영식은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다음 정류장에서 또 한 짐을 든 노인분이 탔다. 아직 빈자리가 있었기에 영식은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
한참을 달려 영식은 익숙한 풍경이 보이자 벨을 눌렀다. 삐-. 하고 울린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버스에서 내린 영식은 코를 훌쩍이며 걸음을 옮겼다. 여긴 지하철역도 근처에 있어서 그런지 유동인구가 많았다. 사람과 부딪히지 않게 걸으며 영식은 역 근처 조그만 포장마차 앞에 섰다. 토스트와 우유, 두유 등을 파는 집. 가격도 싸 아침을 먹지 못하고 나오는 이들에겐 한 줄기 희망이나 다름없는 곳이었다.
“토스트 하나하고, 우유 하나 주세요.”
영식은 주머니에서 꾸깃꾸깃한 돈을 꺼내 돈 통에 넣었다. 주문을 받은 할머니가 익숙한 손놀림으로 토스트를 만든다.
“오늘도 막일하러가는 거요?”
할머니가 토스트를 뒤집으며 물었다. 영식은 웃으며 답했다.
“네. 할머닌 많이 파셨어요?”
“총각이 첫 번째야. 요즘 뭐가 그리들 바쁜지 먹으러 잘 안 오네...”
“맛있으니까 금방 몰려 올 거예요.”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할머닌 완성한 토스트를 종이컵에 잘 구겨 넣고, 뜨거우니 조심하란 말과 함께 영식에게 건넸다. 영식은 일부러 과장되게 한 입 베어 물고 할머니에게 엄지를 내밀었다.
“역시 할머니 토스트가 짱이에요. 오래 건강하게 사셔야 해요.”
“하하하. 고맙구려. 총각도 막일 한다고 몸 험하게 쓰지 말어.”
“네. 그럼 또 봬요.”
영식은 꾸벅 인사를 하고, 포장마차를 나섰다. 막일을 하러 사무실로 향할 때는 항상 여기에 들려 토스트를 사먹었다. 맛도 좋고 양도 적당해 아침을 든든히 시작할 수 있어 좋았고, 간편하기에 시간을 뺏기지도 않아 좋았다.
얼마 안가 사무소에 도착한 영식은 남은 토스트를 한 입에 밀어 넣고, 우물거렸다. 계단을 오르며 남은 우유도 마저 마신 영식은 휴지로 입을 닦고, 문을 열었다. 근무하는 직원은 몇 명 안됐지만, 사무실은 꽤나 넓었다. 영식은 직원에게 다가갔다. 젊은 남자가 서류를 보다 영식을 발견하고 영업용 미소를 지었다.
“아, 어서 오세요. 일찍 오셨네요.”
“네. 오늘은 일이 좀 있나요?”
남자는 서류를 뒤적이다 뭔가 생각이 났는지 종이에 주소와 전화번호를 옮겨 적고, 건넨다.
“여기 연락해보세요.”
“감사합니다.”
영식은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이렇게 바로 일이 잡히다니... 영식은 어쩐지 일이 좋게 풀릴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전화를 하고, 오늘 부터 일하자는 답변을 받고, 영식은 서둘러 현장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그렇게 도착한 현장. 재건축 하는 곳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컸다. 영식은 소장에게 오늘 해야 할 작업에 대해 듣고, 작업복으로 갈아입었다. 시멘트 마감이 끝난 현장지만 아직 공사가 완전히 끝나려면 최소 한 달은 지나야 할 것 같았다. 영식은 작업도구를 가지고, 배당받은 곳으로 갔다.
2층을 지나 3층으로 올라간 영식은 방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들어갔다. 할일은 큰 게 아니었다. 이곳에 소속된 인부를 도와 바닥 마감 작업을 하면 됐다. 영식은 한쪽에 작업도구를 두고, 남은 도구를 가지러 발을 돌렸다. 그런데.
“어...?”
영식은 순간 눈을 의심했다. 지나가며 본 어떤 물체에 영식은 온몸에 털이 쭈뻣 서는 것 같았고, 등에선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아니겠지. 자신이 잘 못 본 것이겠지 치부하고 싶었지만, 머리와 다르게 심장은 계속 세차게 뛰었다.
손가락. 일부밖에 안 보이지만, 분명 사람의 손가락이었다. 영식의 다리가 제멋대로 그리로 향했다. 조금씩 가까워질수록 손가락에서 손이, 팔이, 그리고 사람이 보였다.
영식은 충격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설마 했지만, 진짜 사람일 줄이야 그것도 죽은 사람이라니. 영식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낼 수 있는 최대한으로 비명을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