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계에는 세 개의 탑이 존재한다. 현자의 탑, 마법의 탑, 고대의 탑. 이 중 가장 친숙한 마법의 탑은 마나의 탑이라고도 불리며, 흔히 마탑이라고 지칭된다.
세 탑들은 대륙 곳곳에 흩어져 있다. 현자의 탑은 서대륙의 세피어닉 제국에, 마법의 탑은 동대륙과 북대륙의 경계에, 고대의 탑은 남대륙의 모크니 제국에 각각 자리 잡았다.
현자의 탑은 칭호에 걸맞게 총명한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이다. 이곳에 속한 자는 일반적으로 현자라고 불렸는데, 현재 현자는 겨우 여덟 명뿐이었다. 그들은 언어나 수학처럼 특정 분야에 두각을 보이기도, 혹은 모든 방면에서 두루 능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현자의 탑에는 시험을 보고 들어가는가? 오, 현자의 탑에 입성하는 공식적 방법은 없었다. 다른 탑과 달리 시험도 면접도 부재했기 때문이다. 그저 어떤 현자가 마음에 든 사람을 발견해 데려오고, 그에게 기회를 주어 현자로 키웠다. 몇몇은 현자의 시스템을 일컬어 ‘지네들 멋대로’라며 비난하기도 하지만, 현자의 촉은 틀린 적이 없어서 누구든 세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고귀하다는 황족도 천하다는 노예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현자의 탑은 간혹 세간에서 예언의 탑이라고 통하기도 했다.
이런 독특한 방식으로, 현자의 탑에는 유달리 다양한 신분이 모였다. 속계의 신분제는 현자의 탑에서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현자의 탑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상당했다. 여타 소설의 소재로도 인기가 많았다.
다음으로 마법의 탑은 마법에 뛰어난 자질을 보이는 사람들을 장소이다. 그러나 마법사라고 모두 마법의 탑에 소속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까다로운 면접과 심사, 엄격한 마법 시험을 전부 통과해야만 했다. 그렇기에 마탑의 마법사들은 굉장히 긍지가 높았고, 그만큼 마법에 대한 열정이 뜨거웠다.
마법의 탑에는 돈 많은 집 자제들이 대다수였다. 딱히 신분에 제약을 두거나 차별하지는 않지만, 뛰어난 마법 능력을 지니고 시험에 합격하기만 하면 되지만, 애당초 마법이란 학문이 학습 과정에서 넉넉한 재력을 요했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고대의 탑은 옛 시대의 역사, 언어, 문화 등을 연구하고 탐구하는 장소이다. 고대의 탑 소속 학자들은 통상 고고학자로 지칭된다. 이들은 주로 온 시대의 역사를 고구하고, 유물을 발굴하고, 이를 토대로 고대어를 연구했다.
고대의 탑에는 최고난도 시험에 합격하거나 다른 고고학자의 눈에 들어 입성할 수 있었다. 후자의 경우가 압도적으로 잦았다.
지식 탐미의 보배이자 유구한 진보의 절정. 현자의 탑, 마법의 탑, 고대의 탑은 자체로 상징이고 표상이었다. 사람들이 흔히 떠받들어 신화화하는 이유였다.
그러나 위대한 학자들도 여느 사람과 다름없는 ‘인간’이었으니. 탑에 소속되는 순간 섬겨지다시피 되어 바깥과 꾸밈없이 섞이지 못하고, 탑의 특성상 소수로 구성되다 보니 그들에게 탑은 곧 집이었다. 그들은 같은 탑에 속한 사람들을 진심으로 가족이라 여기며 함께 울고 웃었다. 고로 누구라도 우리 가족 건드리면 가만두지 않았다. 탑 내부의 끈끈한 애정과 단합력은 유명했다.
아무튼, 탑 소속 학자들은 세계적으로 존경과 부러움을 받았다. 어디서든 러브콜이 끊이질 않았고, 한 나라의 수뇌라 할지언정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그만큼 대단한 곳이었다. 그런 엄청난 데를, 지니어스 사람들은 무려 제집처럼 들락날락했다. 그들에게는 탑 소속이 숨 쉬는 것과 같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현 지니어스 백작━알버트 지니어스━도 현자의 탑에, 지니어스 영작━엔토니 지니어스━도 마법의 탑에 등록되어 있었다.
명명에 충실하게 천재들이 나는 가문이다 보니, 지니어스 가에서 출산 소식이라도 들려오면 모든 탑이 그들을 주시했다. 엔토니도 화려한 방폭발 전적을 쌓으며 주목받다가, 알버트의 갖은 방해에도 불구하고 다섯 세에 마탑에 귀속되었다.
지니어스 백작저는 남대륙 모크니 제국에, 반면 마법의 탑은 바다 너머 동대륙과 북대륙의 경계에 위치하지만, 지니어스 본가에 설치된 마법진 덕에 엔토니는 수월하게 드나들 수 있었다. 해당 마법진은 마법의 탑뿐만 아니라 현자의 탑이나 고대의 탑과도 연결되는데, 마법에 가히 월등한 기량을 뽐내던 지니어스 3대 백작이 제작했다고 기록된다. 이동마법진의 설치는 곧 훌륭한 인재의 영입으로 이어졌기에 흔치 않게 세 탑들이 힘을 모았다고.
*
어느 날, 어딘가 결연하게 엔토니가 물었다.
“아실리, 오빠랑 마탑에 가보지 않을래?”
“마법의 탑에?”
아실리가 읽던 연구서(『고대 역사의 발전 추이』)을 내려놓았다. 네 살 아실리는 천방지축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오빠와는 다르게 백작저 존속을 위협하지 않고 차분하게 책 읽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는 어른이였다.
“응! 저번에 갔을 때 허락받았어, 아실리라면 데려와도 된다고. 마탑은 우리 집과는 다른, 뭐랄까 또 다른 내 집이야. 가족 같은 동료들이지.” 아, 물론 나는 우리 아실리가 제일 좋아, 알지? 엔토니가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이듯 말했다. “그래서 너한테도 꼭 소개해주고 싶어. 분명 너도 마음에 쏙 들걸?”
음. 안 그래도 요 근래 세 탑에 대한 호기심이 부쩍 늘어, 그젠가 방문 의사를 넌지시 비쳤다가 알버트에게 단칼에 거절당했다. 그런데 원래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게 사람 심리라고, 단호한 알버트를 헤쳐서 탑에 달하는 방법을 모색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오빠, 부모님 허락은 받았어?”
“…….”
엔토니가 은근슬쩍 눈을 피하며 부자연스럽게 웃었다. 허락을 받았을 리가! 그는 처음부터 아실리와 둘이서 몰래 방문할 생각이었다. 부모님이 흔쾌히 들어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알버트는 엔토니가 마탑 마법사로 등록할 때도 끝까지 반대했고, 그가 속한 현자의 탑에서도 아실리를 환영할 게 뻔한데도 어떻게든 탑과의 연결을 차단하려 애썼다. 지니어스 가가 명성을 떨치고 혜택을 받는 배경에는 세 개의 탑이 굳건히 서 있었다. 어린 엔토니도 아는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지니어스와 탑들의 관계를 최소화하려는 아버지가 이해되지 않았다.
“허락, 안 받았구나?”
“응……. 하지만 아버지도, 어머니도 절대 허락해주시지 않을걸. 그런데 나는 네게 마탑을 꼭 보여주고 싶단 말이야. 마탑 마법사들도 너를 궁금해해.”
“나도 마탑이 궁금해. 오빠가 가족처럼 생각하는 사람들도 궁금하고. 그러면 어떻게 마법에 갈 생각인데?”
멀리 떨어진 마법의 탑에 가기 위해서는 마법진을 이용해야 했다. 그리고 각 탑과 연결된 마법진들은 가주 혹은 가주대리인의 승인을 받아야 사용할 수 있었다. 정확히는, 승인이 있어야 마법진이 모여 있는 방안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설득하는 엔토니를 보아하니, 승인 없이 갈 수 있는 묘안을 아는 게 분명했다.
“그건 다 방법이 있지. 내가 할 수 있어.”
“정말? 어떻게?”
나도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했는데. 진짜로? 아실리가 못 믿겠다는 듯 거듭 묻자 엔토니도 거듭 그렇다고 대답했다. 아실리, 눈빛이 불순해. 너무 대놓고 믿지 못하면 상처받아. 아실리가 멋쩍게 웃으며 사과했다.
“아실리, 오빠가 하루빨리 익히기 위해서 가장 노력한 마법이 뭔지 알아?”
“나야 모르지?”
……이럴 때는 뭐냐고 물어봐야지, 바보야! 엔토니가 아실리를 얕게 째렸다.
“바로 이동 마법이야. 그 마법을 익히자마자 몰래 마법진방과 내 방을 잇는 마법진을 침대 밑에 심어 놨지. 그래서 부모님 허락이 없어도 마법진방에 들어갈 수 있어. 들어만 가면 사실 마법진 사용은 문제없잖아?”
역시 지니어스 악동 엔토니다웠다. 미래의 일탈까지 고려해서 미리 장치를 둔 치밀함이 돋보였다. 획기적인 대안에 감탄하던 아실리가 불현듯 갸웃거렸다.
“그런데 그러면 굳이 마법진을 따로 설치하지 않고 이동 마법으로 마법진방에 들어가도 됐던 거 아니야?”
“이동 마법의 성공 확률이 2%야……. 삼백 번 중에 여섯 번밖에 성공 못했어…….”
그건 익힌 게 아니잖아……. 현명한 아실리는 뒷말을 적절히 삼키고 엔토니를 무한 칭찬했다. 성인도 성사시키기 힘들다는 이동 마법을 시전해서, 심지어 이동마법진까지 설치한 작업은 높이 평가할 일이었다. 엔토니의 나이가 여덟 세임을 감안하면 더 놀라웠다. 무엇보다 삼백 번이나 동일 마법에 매달린 집념이 대단했다.
하하, 아니야. 별 거 아니었어. 그렇게 어렵지 않았어. 엔토니가 손을 휘저으며 헤실헤실 웃었다. 그러다 아실리가 칭찬을 멈출라 하면 벌써 끝났냐는 듯 쳐다봤다. 마탑에 방문할 생각으로 평소보다 들떠 관대해졌기에, 아실리는 기꺼이 오빠가 바라는 대로 칭찬을 늘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