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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추이기담집
작가 : 이은성
작품등록일 : 2022.2.3

추이꾼에 대해 알고 계시오?
조선팔도 방방곡곡을 떠돌며 기이한 것들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이들을 이르지.
세상에는 사람 이외에도 많은 삶이 사는 법이고, 우리 눈에는 뵈지 않는 삶이 역동하며 제 이야기를 하는 법이라오.

조선 중기를 배경으로 한 옴니버스 형식의 기담 모음집입니다.

rio_siena@naver.com

 
연가귀 : 텅 빈 둥지
작성일 : 22-02-17 16:04     조회 : 229     추천 : 0     분량 : 7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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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우에게.

 오랜만에 서문으로 인사를 보내네. 잘 지내고 있나. 나는 무탈하게 잘 지내고 있네. 물론 자네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는 이야기일 터이지만 말일세.

 자네에게 이리 서신을 보내는 것은 연유가 있어서일세. 다름이 아니라 이 마을에 있는 어느 집 하나에서 자꾸만 기묘한 일이 생긴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그것이 영 사람의 일은 아닌 것 같아서 말일세.

 식솔들이 차례로 앓아눕고, 멀쩡하던 이가 온 몸을 다쳐 생계도 끊기게 생긴 지경이네. 측은지심으로 이러는 것은 아니고, 다만 자네가 무언가를 알지 않을까 싶어 이리 서신을 보내네. 혹 자네가 모르는 것이라도 자네의 기록에 도움이 되질 않겠나. 그러니, 자네가 이 서신을 받고 혹 흥미가 동하거든 이리로 와 주시게.

 자네가 이리 오는 날을 기다리겠네.

 

 

 

 연가귀燕家鬼

 : 텅 빈 둥지

 

 

 

 

 서신을 받고 도착한 것은 그다지 달갑지만은 않은 장소였다. 마치 아주 처음으로 돌아가기라도 한 것 마냥, 모든 일이 시작하는 바로 그 장소로 돌아왔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제는 다 잊은 줄만 알았던 아주 처음의 일이 떠올랐다.

 “어째 완전 똥 씹은 표정일세, 자네.”

 “자네가 못생겨서 그러네.”

 “이 자식이.”

 “뭐, 이 자식아.”

 안내를 자처한 것은 화공이었다. 그 지긋지긋한 면상을 또 마주하자니 나그네는 괜히 빈정이 상했다. 틱틱대는 말투가 입 밖으로 튀어나왔으나 화공 또한 그리 만만한 성정은 아닌지라 도통 져주는 법이 없었다. 그것만이 나그네에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변한 것 없는 풍경 가운데서도 똑같이 변하지 않은 것인데, 그 유난히 변하지 않은 단 하나가 나그네에게 위안을 주는 것이었다.

 “……뭐, 아무튼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했네.”

 화공은 픽 웃으며 나그네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 미소에 나그네도 그만 웃어버렸다. 이 곳은 나그네가 추이꾼이 되기로 결심한 곳이었다. 때문에 더는 돌아오고 싶지 않은 곳이기도 했다. 아픈 추억과 기억들이 켜켜이 쌓여 묵은 채로 먼지를 덮고 딱지가 되어 앉아 있는 곳이었다.

 “여기까지 불러낸 놈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곱게 말해줘도 지랄이야.”

 나그네는 낄낄대며 웃었다. 그래도 자네 아니면 내가 또 언제 여기 와 보겠나. 다 자네가 부르니까 오는 것이지. 그리 말하자 화공은 가만히 미소를 지었다. 화공은 나그네가 가진 흉의 깊이를 알고 있는 것처럼 굴었다. 나그네는 퍽이나 화공을 의지하는 것처럼 보였고, 화공은 나그네에게 퍽이나 도타운 벗으로 보였다.

 “다 되었으니 안내나 하시게. 그 이상한 일이 무엇인지도 소상히 설명해야 할 것일세.”

 “거 성격 급하기는. 알았네. 놓치지 말고 잘 따라와야 할 걸세.”

 그러더니 화공은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앞서나가는 것이었다.

 

 

 

 

 

 도착한 곳은 야트막한 초가집이었다. 나그네는 기실 으리으리한 기와집 보다도 이런 소담한 초가집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더욱 꺼림칙했다. 왜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보통 이물들의 일은 외려 아래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더욱 흔히 일어나곤 하였다. 나그네는 그 집을 보자마자 알았다. 아, 무언가 일이 있을 법도 하구나. 어찌 그런 생각이 들었는고 하니, 마당에 들어섰을 적부터 등줄기가 서늘해지며 소름이 돋는 탓이었다. 공기에서는 온통 퀴퀴한 곰팡내가 났으며 대문 안에는 사람의 기척이라고는 느껴지지를 않았다.

 집 안의 허공이 온통 죽어있었다. 발을 뗄 적마다 잔뜩 뒤엉킨 거미줄 안을 걷는 것처럼 얼굴이며 팔다리에 무언가 보이지 않는 막이 줄줄 가져다 얽히는 것 같았다. 나그네는 언젠가 이런 일에 대하여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그게 언제였더라. 어렴풋한 기억은 도통 선명해지는 법이 없었다. 그러나 분명히 낯설지는 않은 감각이었다. 나그네는 이런 감각을 알고 있었다. 이전에는 겪어보지 못했대도. 어쩌면 아주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자네도 느껴져?”

 화공에게 물었다. 화공은 그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그네를 바라볼 뿐이었다. 에라이. 내가 자네에게 뭘 기대해. 화공은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그렇다면 필시 다른 이들에게도 이 집에서 느껴지는 기묘하게 뒤틀린 공기가 닿지는 않을 것이다. 마당에서부터 집 전체에 음험한 기운이 낮게 깔려있었다. 마치 진즉 버려진 폐가에 들어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뉘, 뉘십니까.”

 가늘게 떨려오는 목소리의 근원은 방 안이었다. 화공은 너스레를 떨며 웃었다.

 “잘 지내셨어요? 저예요.”

 “이런, 이런……. 자네가 왔는데 앉아만 있고 말이야.”

 “괜찮습니다. 오늘은 벗을 데려왔어요.”

 “그 추이꾼이라던?”

 그러더니 사랑방 문이 덜컥 열렸다. 나그네는 마른 침을 삼켰다. 거기에는 온통 파리가 날리는 산 송장같은 이가 앉아있었다. 빼짝 마른 팔다리에 본디는 어떤 얼굴이었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해골같은 머리, 심지어 한 쪽 다리는 무릎 아래로 잘려나가 보이지 않았다. 흡사 아귀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나그네는 무언가 불안감을 느꼈다. 그러거나 말거나 화공은 너무나도 태연했다. 대화하는 모양을 보자니 이 집에 한두 번 들낙거린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나그네가 조심스레 입을 떼었다. 고개를 숙여 꾸벅, 인사를 하자니 그 해골같은 양반이 씨익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마치 거미처럼 소름끼치는 웃음이었다.

 “그래, 어서 오시게. 추이꾼이라고?”

 “예, 그렇습니다.”

 내 어릴 적엔 추이꾼이 정말로 존재하는 줄을 알았지. 허나 나이를 먹어가면서 추이꾼같은 건 그냥 허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는데, 다시금 이렇게 추이꾼을 마주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 뭐야. 힘빠진 목소리로 웅얼웅얼 말하는 음성에 나그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예.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요.

 “내가 도울 것이 있다면 언제든 말하게. 얼마나 전해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 자네가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라도 상소하게 고하고 준비할 수 있도록 할 테니 말일세.”

 “그리 해주신다면 제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인사치레로 하는 말에 그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금방이라도 고개가 뚝 떨어져버릴 것 같은 몰골이라 정말로 긍정의 의미로 그런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말라비틀어진 금어초와 같은 면상은 혼 빠진 눈동자가 움푹 패여 정말로 사람이라기보다는 귀鬼의 형상에 가까웠다. 저런 상태의 사람을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나그네는 그저 예의상으로 인사를 하였다.

 고개를 들어 사위를 살폈다. 이 집에서만 일어나는 이상한 일 하며, 이 집에서만 느껴지는 불쾌한 기운 하며, 이 집에서만 있는 것이니 원인 또한 이 집에 있을 터였다. 나그네는 천천히 걸음을 떼었다. 그리고 곧 발견할 수 있었다.. 나란히 놓여있는 신발 네 짝을. 이 집에는 다른 사람이 더 있었다. 저 백골과 같은 양반을 제하고도 두 사람이 더.

 

 

 

 

 

 언제부터였던가 명확히 기억이 나지를 않았다. 다만 확실한 것은 제비가 더 이상 돌아오지 않게 된 바로 그 해였던 것 같다. 텅 비어버린 제비집에서는 더 이상 어린 새의 울음이 들리지 않았고 허공을 스치는 제비의 날랜 날갯짓 소리도 들려오지 않게 된 해였다. 언제고 돌아올 것만 같던 것이 돌아오지 않게 된 뒤로 느끼는 허망함은 생각보다 큰 것이었다.

 그러나 또 생각하자면 고작 제비 몇 마리였다.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일상에 크게 지장이 가지는 않는 그런 존재였다. 제비 몇 마리는 그러했다. 매 해 돌아왔으니 이번에도 돌아오려니, 했지만 돌아오지 않아도 사무치게 그립지는 않은 존재였다. 딱 그만치의 감정. 딱 그만치의 거리감.

 그리고 이상한 일이 일어난 것은 제비가 돌아오지 않은 그 해의 어느 가을이었다.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나란히 앉은 세 사람의 식솔을 보았다. 아니, 앉았다기에는 그 누구도 제 몸을 온전히 가누지를 못하는 상태였다. 다만 나란히 놓인 세 사람을 나그네와 화공이 마주하고 앉았을 뿐이었다.

 “처음에는 아주 가벼운 일이었습니다.”

 딸애가 유독 자주 넘어지고 다치곤 했지요. 무릎을 다소곳이 꿇고 앉은 계집아이가 부끄럼도 없이 제 치마를 걷어 시퍼렇게 멍이 든 다리를 보였다. 온전한 살빛을 찾을 수가 없을 정도로 시퍼렇게, 또 시꺼멓게 멍이 들어 언뜻 보아선 썩어들어가는 다리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 검고 푸르고 누런 멍이 얼룩덜룩 번진 다리는 산 사람의 것이 아닌 것만 같았다. 아니, 산 사람의 것이라기엔 지나치게 참혹했다.

 그 뒤로는 일이 점점 커졌다. 쓰러지는 나무에 안사람이 깔려 다치고, 영문을 알 수 없는 병환이 돌아 온 식구가 앓아누웠다. 소소한 악재가 겹쳐 점점 일이 커졌고, 결국은 이 지경이 되었다. 온전한 심신으로 돌아다닐 수 있는 식솔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되었다.

 “……그러니까, 원인을 모른다는 말씀이지요.”

 “그렇네.”

 모르기는 개뿔. 이미 다 알고 있으면서. 나그네는 괜히 잇새에서 모난 소리가 뛰쳐나가려는 것을 간신히 눌러참았다. 그리고 눈동자를 굴려 화공을 보았다. 화공이 싱글싱글 웃는 낯으로 엉덩이를 떼었다.

 “허면 잠시 실례.”

 그러고는 나그네와 함께 마당으로 나서는 것이었다. 이럴 때면 참 쓸 데 없는 것 같다가도 쓸모 있는 벗이다. 눈치 하나는 아주 기가 막히니 부러 말을 꺼낼 필요가 없어 말이다. 나그네는 그리 생각하며 화공의 뒤를 따랐다.

 마당으로 나서자 다시금 숨막히는 공기가 밀려들어왔다. 목구멍까지 꽉꽉 차오르는 불쾌한 감각에 절로 미간이 좁아졌다. 잔뜩 인상을 찌푸리자 화공은 그 얼굴을 보고 또 못생겼다며 시답잖은 농담을 하기에 바빴다. 역시 쓸모 있다는 말은 없는 것으로 하자. 나그네는 한숨을 뱉었다.

 “왜, 또 뭐가 문젠가.”

 “지금까지 들어놓고도 모르는 걸 보니 자네 머리는 그저 목 위가 허전해서 중심이라도 맞춰놓으려 올려놓은 모양일세.”

 “불만 있으면 말로 해라.”

 “자네의 멍청함이 불만일세.”

 “이 친구가 오랜만에 주먹다짐이라도 하고 싶은 모양이야.”

 화공이 괜시리 들어보이는 주먹에 나그네는 손을 뻗어 그 주먹을 천천히 내렸다. 헛소리는 그만 하고. 짐짓 단호한 음성에 화공의 표정이 굳었다. 심상치만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얼추 짐작했던 모양이었다.

 “……뭔지 알겠나.”

 “거기까지 듣고 모르는 추이꾼이 외려 맹추일세.”

 “난 추이꾼이 아님세.”

 “추이꾼만큼 이물의 이야기를 잘 아는 화공이지.”

 화공은 미간을 쨍그리고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화공이 여느 추이꾼 못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화공은 추이꾼을 지기로 두었다는 이유 만으로 이물에 퍽 관심이 많았고, 또한 추이꾼을 지기로 둔 덕에 사내의 추이록을 제멋대로 헤집어대기 일쑤였으니 말이다. 그러니 그 말을 듣고는 자존심이 상해 도통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화공은 기억을 찬찬히 더듬어갔다. 그러니까 이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 것도 같았다. 언젠가, 추이꾼의 추이록에서 보았던…….

 “연가귀.”

 “그렇지.”

 나그네가 씩 웃었다.

 

 

 

 

 

 연가귀. 제비집에 사는 이물. 연가귀가 왜 제비집을 고르는 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현재 연가귀와 제비집의 가장 설득력 있는 상관관계는 이하와 같다.

 제비는 가택의 성주신과 같은 존재로 매 해마다 가정의 풍요와 안식을 돌보기 위해 제비집으로 돌아온다. 제비가 머무는 동안은 집안이 무탈하며 평화롭고, 제비가 모든 악귀를 쫓아내는 수호신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제비가 돌아오지 않는 해가 생기면 연가귀는 비어있는 제비집을 노리고 그 안에 똬리를 틀게 되는데, 만약 그 비어있는 제비집을 망가뜨리게 되면 똬리를 튼 연가귀가 제비집 밖으로 풀려나 가정에 해악을 몰고 온다는 것이다.

 연가귀를 다스리는 방법은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오로지 연가귀를 막는 방법만이 알려져 있는데, 빈 제비집을 망가뜨리지 않는 것이다. 빈 제비집을 오래 방치할 경우 어떤 일이 생기는 가에 대해서 또한 알려지지 않았다.

 

 

 

 

 

 “정말로 제비집을 망가뜨리지 않으셨습니까?”

 “정말이네.”

 “밖으로 나가 이 집을 한 바퀴 휘 돌아보고 왔습니다. 이 집의 어느 곳에서도 제비집은커녕 제비 깃털 하나 찾을 수 없었습니다. 허나 아씨의 말대로라면 분명 이 집에는 제비집이 있어야 하지요. 그럼 도대체 그 제비집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나그네의 눈이 매섭게도 빛났다.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노라, 하는 그 눈동자를 보자니 더는 발뺌을 하기도 어려웠다. 마지못해 고해하듯 목소리를 터뜨린 것은 개중 가장 멀쩡해 뵈는 딸애였다.

 “없애지 말라고 했는데!”

 자신만은 지키려 노력했노라 항변하는 듯한 음성이었다. 허나 그것이 진실이면 어떻고 또 거짓이면 어떠랴. 이미 일은 돌이킬 수 없게 벌어져 버렸으니. 계속 해보시오. 그리 말하는 것처럼 나그네가 고갯짓했다.

 “아버지가 그걸 없애버렸어요. 저는 정말로 그러지 말라고 했었는데……. 긴 장대로 제비집을 푹, 찌르시더니 그대로…….”

 “허면 어르신께 묻겠습니다. 그것을 없앨 적에 무언가 이상한 것이 없었습니까.”

 식솔 가운데도 가장 건강치 않은 것이 바로 바깥어른이었다. 제비집을 해한 것도 그이라니 무언가 연관이 있을 터였다. 도통 제 몸조차 온전히 처신하지 못하는 이가 바짝 마른 입술을 열었다. 혀뿌리에 조갈이 이는 듯 버석대는 음석이 새어나왔다. 기억을 더듬어 읊조리는 듯이 아주 느린 어투였다. 나그네는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제비집을 푹 찔렀더니 무언가 물컹한 것이 툭 닿아 처음에는 몹시 놀랐네. 허나 이미 없애기로 결정한 것이라 그저 기분 탓이려니, 그리 넘겨짚었지. 제비 새끼가 그 둥지 안에 남아있을 일도 없으니 그저 기우라는 생각만을 하였네. 게서 거무튀튀한 연기 같은 것이 일렁이며 구멍난 틈바구니로 새어나오는 듯도 하였으나 그 또한 헛것을 보는 것이라 여겼네. 안사람과 딸애에게는 보이지 않는 것이었으니. 내게만 보이는 것이라면 내가 헛것을 보고 있다 여기는 편이 많는 것이겠지, 그리 생각하고는.”

 나그네는 헛기침을 뱉었다.

 “그것은 연가귀라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귀鬼이기 때문에 사람을 해치는 이물입니다. 건드리지 않는 것이 최선이고 그것만이 유일한 방도인 것을 건드리셨으니 안타깝게도 이 일은 그 어느 추이꾼이 오더라도 해결할 수 없는 일입니다.”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니. 추이꾼만 오게 되면 어떻게든 해결되리라 믿었건만.

 “애초에 믿는 것이 아니었어.”

 체념한 듯한 목소리가 허망하게 울려퍼졌다.

 “세상에는 어찌 할 도리가 없는 일이라는 것도 존재하는 법입니다.”

 화공은 그런 어르신을 달래려는 듯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운을 떼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거한 욕지거리와 허공을 휘두르는 지팡이였다.

 “추이꾼이라니! 협잡배 사기꾼 같은 놈!”

 “사건을 만든 것은 어르신인데 어찌 샅된 말로 어르신의 품위마저 깎아내리십니까.”

 “꺼져! 썩 꺼지란 말이야!”

 “그리 말씀 않으셔도 그럴 참이었습니다.”

 나그네는 나붓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망한 얼굴로 바깥 어른과 추이꾼만을 번갈아 보는 화공에게 말했다. 뭐 하나, 꺼지라는데. 그제야 화공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을 신고 마당으로 나오는 동안도 등 뒤에서는 벼락 맞을 놈들, 천벌 받을 놈들,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그네는 픽 웃었다. 저런 말은 너무 익숙해 아프지도 않았다.

 “진짜로 천벌 받을 놈이 누군데.”

 나그네의 잇새에서 참아왔던 날선 말이 튀어나왔다.

 

 

 

 

 

 “생이라는 것이 그래.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야 하는 법일세.”

 “영역을 지켜주지 않아 저리 되었다고?”

 “아무렴은. 자네가 불러 예까지 왔으나 얻은 것이라고는 질펀한 욕 한 사발 뿐이니 이를 어찌 책임질텐가.”

 “그거면 배가 불러 토하고도 남을 터인데.”

 “자네에겐 욕이 더 필요한 모양일세.”

 바깥의 공기는 지나치도록 청명했다. 뉘엿하게 저물어가는 노을 뒤편으로 두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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