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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추이기담집
작가 : 이은성
작품등록일 : 2022.2.3

추이꾼에 대해 알고 계시오?
조선팔도 방방곡곡을 떠돌며 기이한 것들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이들을 이르지.
세상에는 사람 이외에도 많은 삶이 사는 법이고, 우리 눈에는 뵈지 않는 삶이 역동하며 제 이야기를 하는 법이라오.

조선 중기를 배경으로 한 옴니버스 형식의 기담 모음집입니다.

rio_siena@naver.com

 
울음뱉기 : 노을 질 무렵
작성일 : 22-02-11 18:59     조회 : 230     추천 : 0     분량 : 1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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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음뱉기

 : 노을 질 무렵

 

 

 

 

 햇발이 지평선 끝에 닿을 무렵이면 태양이 식는 소리가 들려온다. 치익―. 금빛으로 농익어 넘실대며 추수를 기다리는 보리밭의 파도 위로 잔잔한 바람이 스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그네는 걸음을 멈추고 해가 기우는 산등성이를 보았다. 하늘이며 산이며 온통 얼룩덜룩 색을 칠해놓아 화려하기 짝이 없었음에도 스산하였다. 나그네는 그 일렁이는 색깔의 무리 속에 걸리는 한 사람의 그림자를 보았다.

 “허…….”

 그러나 그리 대수롭게 여길만한 일은 아니었다. 노을은 그만치 아름다웠고 그 풍경에 넋을 잃는 것은 누구라도 가능한 일이었다. 나그네는 잠시 그 언덕빼기 위에 혼자 선 그림자를 보다가 걸음을 옮겼다. 어디선가 밥 짓는 냄새가 났다. 해가 기울고 나면 걸음을 더 떼기는 힘들 터이니.

 

 

 

 

 

 “어찌 여관 하나, 손 하나 누일 빈 방 하나 없는 마을이 있을 수 있단 말이냐.”

 나그네는 거의 사정하듯 말했으나 댕기를 곱게 땋아내린 아이는 곤란한 듯 웃기만 하였다. 정 그리 사정이 안되시거든 화방에 들러보시는 것은 어떠셔요? 조심스레 묻는 목소리에 나그네는 미간을 쨍그렸다.

 “그래, 방이 없는 것이 어찌 네 탓이겠느냐. 고맙구나.”

 화방, 화방이라. 여관도 없고 주막도 없는 마을에 있다는 화방이 되려 괴이할 지경이었다. 이 쯤 되자면 오히려 이곳의 이물은 그 화방일런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그네는 터덜터덜 걸음을 떼었다. 고즈넉하고 조용한 시골길 한 켠에 화방은 무엇이 그리 당당한지 몸을 곧게 펴고 앉아 있었다.

 “실례하겠소이다.”

 나그네가 그리 말하며 화방 안에 들어선 순간이었다. 화방 안에서 종이를 고르던 이와 눈이 마주쳤다. 어디 눈이 마주쳤다 뿐이랴. 이크, 하며 돌아나가려는 나그네가 몸을 채 반도 틀기 전에 사내는 달려와 나그네의 어깨를 덥석 붙드는 것이었다.

 “이 친구가 어디서 쌩을 까.”

 “쌩을 까기는 무슨 또 쌩을 깐다고. 자네 어디서 이상한 말만 주워들어선 말뽄새가 더욱 총천연색으로 알록달록해졌구려.”

 “그러는 자네는 여즉 그 세 치 혀가 날름날름 잘 돌아가는 모양을 보니 어찌, 아직도 벼슬 생각은 없으신감?”

 “헛소리는. 자네는 예까지 무슨 일이신가.”

 사내는 나그네와 구면인 이였다. 그렇다고 추이꾼이느냐 하면 차림새가 번듯하고 멀끔한 것이 산이고 바다고 가릴 것 없이 방방곡곡을 헤집고 다니는 이라고 할만한 모습은 아니었다. 허나 말투를 듣자면 상스럽고 가볍기 짝이 없었고, 나그네는 대놓고 인상을 찡그리며 사내가 제 어깨를 붙든 손을 떼어내고 어깨를 툭툭 털어내었다.

 “나야 일개 화공이 예까지 무슨 일이겠어. 예서밖에 나지 않는 염료가 있다 하니 그것을 얻을 겸하여 종이를 좀 골라볼까 하였지. 자네는 여즉 그리 목적 없는 여정길을 헤매고 있나?”

 “아무렴은. 추이꾼에게 달리 무어가 있겠나. 마을에 온 지는 얼마나 되었어? 여기는 도통 묵을 곳이 마땅치를 않더군.”

 “나야 사흘 정도 되었지. 그래서 나는 이 화방 일을 도우며 한 켠에 찌그려 눈을 붙인다네. 어찌, 정 갈 곳이 없거든 한 켠을 내어줄 수도 있네. 자네라면 내 기꺼이 죽부인을 대신하여 꼬옥 끌어안아주지.”

 “염병.”

 나그네가 혀를 낮게 차자 화공은 낄낄대고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농일세, 이 친구. 여즉 변하지를 않았어. 장난스러운 목소리에 나그네는 고개를 들어 화방 안을 휘 둘러보았다. 종이는 가지런히 접혀, 혹은 발에 걸려, 여기저기 줄을 맞춰 늘어져 있었다. 붓은 한 켠에 줄지어 누워있었고, 먹과 염료는 선반 위에 보기 좋게 정돈되어 있었다.

 “새로 기록할 일들은 있었어?”

 “선음귀에 대한 것 말일세, 혹 그 뒤에 들은 이야기가 있나?”

 아무래도 그 일이 영 켕긴단 말일세. 해결이 되었으니 잘 된 일이기야 하다만, 연유도 알 수 없이 선음귀가 목구멍 밖으로 툭 튀어나갔다는 것이 말이 되는 소리냐는 말이야. 투덜대듯 묵혀두었던 말을 끄집어내는 나그네에 화공은 또 샐샐 눈꼬리를 접어 웃었다.

 “선음이 변덕이라도 들었던 모양이지. 아주 자네 정성이 갸륵하기 짝이 없어 옛다, 그만하면 내 나가주마, 하고 나가버린 것인지도.”

 “자네는 또 그런 헛소리를.”

 “헛소리라니, 듣는 자네 서운하게.”

 그러고는 온 몸을 배배 꼬며 화방 안의 종이를 이리저리 손끝으로 훑어내는 모양이, 나그네에게는 영 약오른 모양새였다. 몇 번을 보아도 도저히 저 능구렁이같은 인사를 이길 도리가 없다. 그것을 알고 있기에 더는 말을 붙이려는 시도조차 않았다.

 “글쎄에, 내가 듣기로는 그 선음귀라는 녀석이 물을 퍽 무서워한다지?”

 “하여?”

 “순인지 분인지 하는 계집애를 물에 풍덩, 빠트렸다니까 놀라선 튀어나온 것이 아니겠어? 저기 시퍼런 옷만 입고 다니는 무서운 추이꾼 나리께서는 함빡 비를 맞고 선음귀를 쫓아냈다고 들었으니깐.”

 “알고 있었으면서도 모르는 체 하기는.”

 자네는 어찌 한 마디도 그냥 져주는 법이 없어. 툴툴대던 화공은 곧 언제 그리 시무룩한 목소리로 말했냐는 듯 휘적휘적 다가가 나그네의 어깨 위에 팔을 둘렀다. 흑립의 양태가 서로 부딪혀 불편할만도 하건만, 그이는 나그네를 보면 꼭 그런 자세를 하곤 하였다.

 “그리고 자네가 흥미로워할 만한 일이 있네.”

 사근사근 속삭이는 목소리는 흡사 정인에게 속삭이는 밀어와도 같았다. 나그네의 눈이 동그랗게 커지고 그 입술로 전해들은 ‘흥미로운 일’에 대한 기대감이 벌써 목 끝까지 차오르는 것만 같았다. 가만 보면 참으로 영락없이 추이꾼에 어울리는 양반인지라 화공은 괜시리 나그네의 허리께를 손으로 툭툭 치고는 어깨 위에 걸었던 팔을 풀었다.

 “저 언덕 위에, 어미와 아들 단 둘이 있는 집이 있네. 어미는 옷에 색을 먹이고 장을 돌고, 아들은 집안일을 하지. 아비를 잃은지 얼마 되지 않은 모양이야.”

 “그런 집이 어디 한둘인가. 흔해빠진 이야기를 하려는 심산이걸랑 그만두시게. 나는 이물을 찾고싶은 것이야. 내가 기록할 것을 말일세.”

 “거 사람 성질도 급하기는. 그런데 그 집 애가 이상하다 이거지. 마당을 쓸다가도 갑자기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걸레를 훔치다가도 얼어붙은 것처럼 땅바닥을 한참 들여다보는 것이야. 어때, 어때. 이만하면 자네 흥미가 좀 동하지를 않나? 그렇게 아이가 멈추는 순간마다 그 애의 표정이 제법 볼만한데, 세상에 그 어린게 어찌 그럴 수 있는지를 도통 알 수가 없을 정도로 기묘해. 톡 건드리면 금방이라도 닭똥같은 눈물을 줄줄 흘릴 것만 같단 말이야. 게다가 마침, 그 집은 방이 하나 비었네?”

 이쯤 되면 화공이 하고자 하는 말은 너무도 명확했다. 저기 자네 먹이가 있으니 썩 물어오시게. 나그네는 잠시 화공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웃는 낯에는 침도 못 뱉는다는 말이 있지만 저 샐샐 웃는 양을 보자면 침이라도 뱉어주고 싶은 기분이 든다고, 나그네는 생각했다.

 “그리 궁금하시거든 자네가 찾아가보지 그러나.”

 “일개 화공이 이물에 대해 알기를 뭘 안다구? 그리 기묘한 일이 있거들랑 추이꾼이 찾아와 자초지종을 듣고 사건을 해결해주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겠어?”

 “추이꾼은 그저 이물을 연구하는 이들일세. 도사도 무엇도 아니고, 다만 이 기록, 기록 하나로 자네와 내가 달라지는 걸세.”

 나그네는 제 짐을 툭툭 치며 말했다. 화공은 아무렴,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두 사람은 상당히 막역한 사이인 것처럼 보였다. 전부 자네 위해서 하는 소릴세. 마음에도 없는 말을 뻔뻔하게 입술 밖으로 뱉어내는 화공을 보며 나그네는 헛웃음을 흘렸다.

 “그거 참, 감읍할 따름이군 그래.”

 

 

 

 

 

 하여 도착한 것은 마을 어귀에 놓인 야트막한 초가집이었다. 나그네는 마당 앞에서 비질을 하고 있는 소년을 보았다. 그리고 나그네는 그 소년이 마을로 들어오던 길에 보였던 그림자라는 것을 알았다. 거기에 그리 넋을 놓고 있던 것이 너였단 말이냐. 마음 속으로는 올커니, 하면서도 나그네는 한껏 긴장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말씀 좀 묻겠네. 혹시 이 댁에 어른은 안 계신가?”

 아이는 그제야 비질을 멈추고 허리를 들어 나그네를 보았다. 마주하는 새까맣고 영롱한 눈동자는 마치 이형의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아름다웠다. 나그네는 아이의 벌개진 눈가를 보았다.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처럼 붉게 달아오른 코끝을 보았다. 아이는 몇 초의 순간 멍한 얼굴로 나그네를 보았다. 그러다가 번뜩 정신을 차렸던지 빗자루를 내던지고는 ‘잠시만요!’하고 달려나가는 것이었다. 나그네는 그 모양을 가만히 보다가 팔짱을 끼었다. 붉은 눈가, 물기 어린 목소리.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지기에 마땅한 얼굴이었으나 연유를 알 수가 없었다.

 뒷마당에서 걸어나오는 것은 아직 앳된 얼굴이 남은 아이의 어미였다. 나그네는 괜히 사람좋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가벼운 목례를 했다.

 “갑작스레 실례가 많습니다. 길을 지나는 나그네인데 해가 지기 시작하니 도통 갈 곳이 없어 괜찮으시다면 하룻밤을 묵어가도 좋을런지요.”

 아이는 겉보기에는 평범하기 짝이 없었다. 제 어미 곁에서는 또 언제 울었냐는 듯이 번듯한 자세를 한 채로 서 있는 모양이 아무리 보아도 일찍 철이 든 기특한 장남의 모양새였다.

 “불편하시진 않을까 저어되는 바입니다. 길손님께서만 괜찮으시다면 얼마든 머물다 가시지요.”

 함아, 인사 드리려무나. 그 말에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아이는, 정말로 어찌 보아도 평범하기 짝이 없는 아이였다. 나그네는 더욱 알 수가 없었다. ‘전부 자네 위해 하는 소릴세’하던 화공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았다. 고 얄미운 것이 이번에는 무슨 골탕을 부리려고 작당을 하였나, 이제는 괜한 걱정마저 슬금슬금 가슴 한 켠에서 피어오르는 것이었다.

 

 

 

 

 

 하룻밤만 머물다 가겠다던 나그네는 사흘째 함과 같은 방을 썼다. 그 부지런한 사내애는 아이답지 않게도 철이 일찍 들어 제 어미를 돕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도 너끈히 해내려 굴었다. 그럼에도 아이는 아이인지라, 나그네가 자신을 추이꾼이라 소개하기가 무섭게 아이는 틈만 나면 나그네가 겪은 이야기를 들려달라 성화였다.

 “아재, 오늘은 꼭 얘기를 해주시는 거예요!”

 마당을 쓸고 빨래를 널고, 아침부터 종일 분주하던 아이가 겨우 숨을 돌릴 무렵이나 되어서야 달려와서 한다는 말이 그런 말이었다. 나그네는 들여다보던 서책을 한 켠에 밀쳐두고는 허리를 곧게 세웠다.

 “자, 그래. 무슨 이야기를 해줄까. 매암매암 매미소리를 따라 우는 사람의 이야기를 해주랴, 아니면 철썩이며 부서지는 백파 사이로 헤엄치는 교인의 이야기를 해주랴. 말해보려무나, 함아. 어떤 이야기가 듣고싶으냐.”

 “아재, 바다에도 다녀오신 적이 있으세요?”

 땡그란 눈동자가 호기심에 빛이 났다. 그 모양을 보자면 역시 다른 그 또래애들과 다를 것이 없는 아이인지라, 나그네는 아무리 서책을 들여다보고 다른 추이꾼들의 기록을 훑어도 정녕 짐작가는 것이 하나도 떠오르지를 않는 것이었다. 혹 이것이 아무도 겪어본 일이 없는 종류의 이물이라면 그것은 그것대로 기쁘지만 골치 아픈 일이라, 나그네는 도통 아이에게서 시선을 떼기가 어려웠다. 어쨌거나 이번에는 화공이 참으로 어려운 일을 떠맡겼다. 절대로 가만 두지 않으리라, 나그네는 그리 다짐하며 눈을 휘어 웃었다.

 “아무렴은. 산도 들도 바다도 다 다녀보았지.”

 “바다는 굉장히 넓고, 끝도 없이 물이 펼쳐져있다고 들었어요. 그게 사실인가요?”

 “시퍼런 물이 깊이도 보이지를 않고 끝도 보이지를 않게, 해가 떨어지는 저 지평선까지 뻗어있단다. 그 풍경은 산이나 들과는 또 다른 것이지. 아주 아름답고, 아주 넓고, 아주 깊어서 그 경이로움을 문자로 다 설명할 도리가 없을 정도이니.”

 아이의 눈빛이 빛났다. 벌써부터 바닥에 들러붙은 엉덩이가 달싹이는 모양을 보니 당장에라도 바다를 볼 수 있다면 가겠다 달려나갈 것만 같은 모양새였다. 나그네는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그 와중이었다.

 

 쏴아아――

 

 갑작스럽게 쏟아지기 시작한 비가 두 사람의 대화를 갈랐다. 함은 놀라 고개를 밖으로 돌렸다. 깨끗하게 비질을 하고 곱게 널어놓은 빨래 위로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저런.”

 나그네조차 엉덩이를 들고 일어섰다. 아이는 빨래를 걷기 위해 마당으로 달려나갔고, 나그네도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나그네가 아이의 기묘한 모습을 분명하게 본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아이는 하얀 저고리를 두 손에 쥐고 얼어붙은 채로 서 있는 것이었다.

 “함아, 다 젖는다.”

 나그네가 다가가며 제 낡은 답호를 아이의 머리 위로 씌워주었으나 아이는 미동이 없었다. 다만 넋이 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그 자리에 그렇게 서있는 것이었다. 나그네는 이것이 도대체 어떤 이물의 농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대로 두어서는 아니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함아.”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손에 쥔 저고리를 빼앗아 들자니, 그제야 아이는 고개를 들어 나그네와 눈을 맞추는 것이었다. 붉어진 눈시울. 그 붉어진 눈시울을 보고 나그네는 입술을 뗄 수 없었다. 이미 살이 따갑도록 쏟아지는 우중인데도 아이의 얼굴은 흐르는 눈물과 빗물이 뒤섞여 어떤 것이 어떤 것인지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 함아, 왜 그러냐. 무슨 일이냐. 나그네는 물었으나 아이는 답하는 법이 없었다. 그저 헤 벌어진 입술 사이로 차마 소리가 되지 못한 숨만을 색색 토해내며, 나그네의 헤진 품에 기대는 것이었다.

 쏟아지는 우중, 아이는 그리도 무언가가 벅차 견디지를 못하였다.

 

 

 

 

 

 “정말로 모르는 일이라고?”

 “아무렴은. 일개 화공이 이물에 대해 무엇을 알겠나.”

 “자네 능청에 홀랑 속아 넘어가는 것이 내 하루이틀인가. 정말로 들은 일이 없다고?”

 “그맘때 어린애들이야 다 그런 법이 아니겠어. 툭 건드리기만 해도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고. 자네도 딱 고맘때…….”

 나그네는 자리를 홱 박차고 일어나며 손바닥으로 화공의 주둥이를 찰싹 소리가 나도록 때렸다. 아야, 하고 외마디 소리가 튀어나갔으나 나그네는 사과를 하는 법이 없었고 화공도 그저 샐샐 웃을 뿐이었다.

 “단순히 감정의 기복이 심한 문제가 아니란 말일세.”

 “이 친구야, 답지 않게 왜 사람의 일에 신경을 쓰고 그러나.”

 “이게 어찌 사람의 일이야.”

 화공은 중치막 긴 소매를 허공에 휘 젓고는 팔짱을 끼었다. 그 웃는 양이 아무래도 영 배알이 꼴리는 모양이라 나그네는 그 얼굴을 마주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탐탁찮았으나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던데, 이런 시골 촌구석에서 마주한 이가 화공이라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인 일이었다.

 “이물의 일이라면 이물의 일이지. 허나 자네가 언제는 사람의 감정 문제에 이리도 휘둘렸느냔 말이야. 내가 못 본 새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쓸 데 없는 오지랖이거든 그만치 해 두게. 다른 추이꾼들에게도 들은 이야기가 없나?”

 “내게 말을 그리 꼬박 전해주는 추이꾼이 자네 말고 더 있는 줄이나 알고?”

 나그네는 잠시 한숨을 뱉었다. 그 말에는 또 달리 부정을 하기가 어려웠다. 본디 화공은 추이꾼과는 무관한 이였으나 제 지기가 추이꾼이 되겠노라 나선 이후로 그리도 이물이며 추이꾼이며 추이록이며 하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지금이야 추이꾼들 사이에도 말이 돌아 추이꾼의 모임이 있기 이전에는 화공을 통하여 이물에 대한 전서를 얻는 이들도 많아졌다지만, 화공은 어디까지나 추이꾼들의 전서구이기 이전에 나그네의 지기였다. 그러니 기실 화공이 여태껏 배우고 익힌 이물에 대한 이야기들은 그저 동향지기에게 전해들은 이야기의 모음이 태반이었다.

 “그래도 혹, 떠오르는 것이 있거든 얘기해주게.”

 그러자 먹으로 얼룩진 화공의 손이 허공을 휘저었다. 마치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중에 붓질이라도 하는 양.

 “울음뱉기라는 것이 있지.”

 “뭐?”

 “지금 막 붙인 이름일세. 고 녀석이 어떤 녀석인지는, 자네가 알아내야 할 일이 아니겠어?”

 하여튼 순순히 말을 꺼내는 법이 없지. 나그네는 알았네, 하고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뱉고는 그대로 화방을 나가버렸다.

 나그네는 걸음을 떼며 아이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비에 함빡 젖어 아이가 제 어미라도 잃은 양 서럽게 울었던 그 날, 나그네는 연신 아이의 뺨을 닦아주며 괜찮다, 괜찮다, 다정한 말을 해 주었다.

 자꾸만 눈이 시려와요. 아재, 자꾸만 목구멍에 해가 차오르는 듯 해요. 아이는 그렇게 말했다. 지는 해, 뜨는 별, 고운 달무리, 일렁이는 보리밭, 쏟아지는 빗줄기, 그런 것을 볼 때마다 이유도 없이 목구멍 안에 해가 차오르는 기분이라고. 나그네는 그것이 도통 어떤 감각인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허나 숨이 턱 막히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는 말에는 다만 머리를 쓸어주며 다 잠깐이다, 괜찮을 것이다, 말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에 속이 탔다.

 “함아.”

 “아재, 오셨어요?”

 아이는 여느 때와 같았다. 그런 일이 없고서는 다른 아이들과 다른 것은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는 아이였다. 나그네는 텃밭에서 잡초를 뽑던 아이의 손목을 붙들었다. 아재, 무슨 일이세요? 물어오는 음성에도 무어라 대답해야할지 알 수가 없어 다만 그 팔을 잡아다 끌 뿐이었다.

 “함아, 울음뱉기라는 것이 있다.”

 대뜸 튀어나가는 말은 화공과 다를 것이 없는 말이었다. 허나 아이는 의문을 표하는 법도 없이 그저 느리게 고개를 주억거릴 뿐이었다.

 “그러면 그것은 어떤 이물이어요?”

 “사람의 목구멍 안에 숨어 사는 놈이지. 어찌 그 놈이 목구멍 안에 숨어들게 되었는지는 아직 아는 이가 없단다. 허나 함아, 녀석은 목구멍 안에 몸을 웅크리고 숨어있다가 이따금 아주 인상적인 풍경을 보면 세상을 더욱 보고싶어 웅크렸던 몸을 쭉 펴고 목구멍 밖으로, 눈 밖으로 튀어나가려 발버둥을 친단다.”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고 늘어놓는 거짓말은 이제는 너무나 몸에 밴 행동이라 양심이 아플 틈조차도 없었다. 아이는 그조차도 그저 신기한 이야기라도 되는 양 입을 헤 벌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허면 제가 노을이나 밤하늘을 볼 적마다 그렇게 울컥 치미는 것은 울음뱉기가 세상을 보기 위해 고개를 내미는 탓이로군요. 하는 말조차도 어찌 그리 살갑고 예쁜지. 나그네는 아이의 머리를 쓸어주며 그렇단다, 하고 입에 발린 거짓을 말했다.

 본디 추이꾼이라는 것이 그렇다. 남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보니 어느 것이 진실이고 어느 것이 거짓인지, 그들 사이에서도 명확하게 알려지는 것이 없다. 다만 입을 타고 떠돌면서 점차 그 모습을 선명히 만드는 이물은, 결국에는 본디 그렇게 기이했던 것으로 정의 내려지게 된다. 추이꾼이 달리 추이꾼이랴. 나그네는 입 안이 썼다. 알지 못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 아는 것처럼 말했다. 그것만으로도 속이 쓰려왔다. 허나 입에 발린 거짓이라도 나그네가 입 밖에 내어놓는 순간 진실이 된다. 추이꾼은 그런 이들이었다. 흔한 거짓말을 사실로 만드는 이들.

 “조금 측은하네요.”

 아이의 말에 나그네는 제 발이 저려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그 표정을 아이가 읽었을런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바깥 세상이 보고 싶어서 그러는 것 같아서요. 울음뱉기는 어쩌다가 제 목구멍 안에 깃들게 되었을까요.”

 “……그것을 알아내야지. 그래, 그것을 알아내는 것이 내 일이지.”

 무엇이 펼쳐질런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다만, 무어라도 좋으니 아이에게 해가 가지 않았으면 했다. 지어낸 거짓이 사실이 되었으면 했다.

 

 

 

 

 

 햇발이 지평선 끝에 닿을 무렵이면 해가 식는 소리가 들려온다. 치익―. 금빛으로 농익어 넘실대며 추수를 기다리는 보리밭의 파도 위로 잔잔한 바람이 스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장을 돌던 제 어미가 돌아오는 무렵이 되면 함은 언제고 제 어미가 돌아오는 언덕빼기 위에 올라가 멀리서 다가오는 그림자를 하염없이 기다리곤 하였다. 가을은 무르익었고 함은 저의 가련한 어미와 나란히 언덕 위에 선 채로 노을을 보는 시간을 그다지도 좋아했다.

 “이리 주세요.”

 장을 돌고도 옷은 남았다. 팔다 남은 짐을 양 손에 무겁게 진 어미에게서 그 짐을 받아드는 것은 함이 하는 일이었다. 그럴 적이면 어미는 한사코 웃으며 괜찮다, 이쯤은 거뜬하다 말하였으나 함은 기어코 고집을 부려 그 두 손 가득 든 짐을 빼앗아 들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아재가 그러는데요.”

 제 목구멍 안에 무언가가 산대요. 차마 입술 밖으로 꺼낼 수 없는 말이 목구멍 안에서 꿈틀거렸다. 어미에게 그것을 말하면 무어라 들으실까. 마음 아파 괴로워하실까, 아니면 저를 염려하실까. 아이에게 두려운 것은 오직 그것 뿐이었다. 설령 제 목구멍 안으로 길을 잘못 들어온 울음뱉기라는 녀석이 제 소리를 씹어삼켜 말을 할 수 없게 된대도 함은 그다지 곤란할 것이 없었다. 아이가 두려운 것은 다만 제 어미가 마음 쓸 것이었다.

 “말해보렴, 아가.”

 다정한 목소리에 다시금 눈시울이 뜨끈해졌다. 아이는 데룩데룩 눈동자를 굴리다가 헤 웃어보였다.

 “바다는 끝도 없이 넓고 끝도 없이 깊은 물이래요. 새파랗고 반짝거리고, 아주아주 아름답댔어요.”

 나중에 어머니, 저와 함께 바다에 가요. 그런 시답잖은 말로 화두를 돌렸다. 그러나 어미는 분명히 알아챘을 것이다. 본디 어머니라는 존재는 자식들이 감춘 속내를 귀신처럼 훤히 들여다보지를 않던가. 그러나 함은 그것을 빤히 알면서도 괜히 모르는 체 하였다.

 “하늘이 곱구나.”

 그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다홍빛으로 주황빛으로 이지러진 색채의 무리가 하늘 위로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우람한 산등성이 사이로 넘어가는 햇발은 산산히 쪼개져 하늘 위로 길게 빛줄기를 늘어놓은 채였다. 함은 그 풍경이 눈에 시려 시선을 떨구었다. 그랬더니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제 어미의 고운 얼굴이었다.

 속눈썹 끝에 주렁주렁 매달린 노을의 편린, 뺨 위로 드리우는 호접의 날개와 같은 그림자, 얼굴 가득 해사하게 영그는 저물어가는 하늘의 빛깔. 그 풍광이 눈꺼풀 안쪽까지 깊이 스미는 듯 하여, 아이는 순간 치미는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함아.”

 그 음성에 마음이 덜컥 내려앉아, 아이는 그대로 입술을 헤 벌린 채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참지를 못하고 넘치는 눈물이 뺨 위를 지나 콧잔등을 타고 제 입술을 적실 때까지도, 아이는 울음을 그칠 수가 없었다.

 너무도 완벽한 풍경이었다. 그 가운데 제 이름을 부르는 어미의 음성이 가슴에 박혀, 아이는 도저히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고보니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네.”

 “무슨.”

 “어느 추이꾼 하나가 어촌 마을에서 울음뱉기와 꼭 같은 증세의 아이를 본 일이 있었는데.”

 “……자네 정말.”

 “소금물을 먹였더니 입 밖으로 시커먼 울음뱉기가 튀어나왔다더군.”

 나그네는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로 화공을 보았다. 그러나 화공은 그저 먼 하늘을 내다보며 씩 웃을 뿐이었다.

 “하늘이 참 곱기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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