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鬼村
: 도깨비마을
“그간 잘 지내셨나?”
“아무렴. 자네 소식이 통 닿지를 않아 그 어느 때보다도 자알 지냈지.”
“예끼, 이 양반이.”
낄낄대는 음성이 이리저리 뒤엉켰다. 몇 해 만이던가. 까마득히 멀게만 느껴지는 이전의 모임 이후 간신히 재회한 추이꾼들 사이로는 정겨운 인삿말이 오고갔다. 나그네는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다가 눈이 마주친 다른 추이꾼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어보였다.
볕 좋은 춘삼월, 추이꾼들은 그간 모아놓은 빼곡한 이야기들을 끌어다 내려놓으며 자리에 모였다. 봄바람이 살랑대며 기분 좋은 꽃내음을 흘려냈고, 나그네도 그 자리에 있었다.
“오늘은 내가 먼저 시작하겠소.”
나그네는 서책을 펼치며 입을 열었다.
이 이야기는 내 아는 이에게 전해들은 것이라오. 공교롭게도 오늘 이 자리에는 없지만, 그이 또한 추이꾼이지. 그래, 이제 마악 기나긴 여전에 첫 발을 내려놓은 추이꾼이라오. 그리고 이 이야기는 그이가 겪은 이야기인데……도깨비에 대해, 흥미들 있으신가?
그이가 갓 추이꾼이 되어 길을 떠났을 적의 일일세. 이리저리 발길 닿는대로 정처없이 헤매는 것 또한 추이꾼의 일이라 그저 발이 이끄는대로 걷다보니 어느 야트막한 마을 하나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겠어? 하여 그 마을에 들어섰지. 마을은 퍽 조용하였고, 어느 한쪽에 시커멓게 불에 탄 기와집 한 채가 있었다오. 그이는 그 기와집이 꽤나 흥미로웠던 모양인지 그리로 다가갔고 그제야 그 마을이 제법 기묘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지. 오가는 사람의 그림자는 뵈지를 않고 그저 단순히 조용할 뿐 만이 아니라 마치 쥐새끼 한 마리도 전부 죽어버린 것처럼 그리도 적막했다네. 하여 주위를 둘러보니 집집마다 대문부터 창까지 빼어놓지를 않고 꽁꽁 닫혀있는 것이 아니겠소. 아무도 아니 계시냐 물어보아도 답하는 이가 없으니 그이는 터덜터덜 마을을 나오게 되었다오.
그리고 마을을 나오자 산길로 이어지는 고즈넉한 언덕 위에 외따로 떨어져있는 한 채의 집을 보게 되었어. 그이는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그 집을 찾아 계십니까, 하였더니 안에서 어느 청년 하나가 고개를 빼꼼 내미는 것이 아니오.
“무슨 일이십니까.”
상투도 틀지 않은, 아직 앳된 얼굴의 청년이었소.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저 마을에서는 도통 사람을 마주칠 수가 없어서요.”
그러자 청년은 아, 하고 짧은 탄식을 뱉었소. 그리고 설핏 웃었지.
“도깨비 때문입니다.”
그리 말했다오. 도깨비 때문이라고. 당연히 그이는 그 말만으로는 정황을 알 길이 없지. 하여 그것이 도대체 무슨 일이냐 물었소. 그러자 청년은 또 그저 웃기만 하였소. 그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지. 아아, 그 도깨비라는 것이 이 청년과 연관된 것이로구나. 어쩌면 눈 앞의 청년이 바로 그 도깨비일지도 모르는 일이고. 추이꾼이라는 것이 무엇이오. 그런 기기묘묘한 존재를 탐구하는 이들이 아니오. 그러니 그이가 그 이야기를 더 묻지 않을 이유가 없었지.
“그것이 무슨 말씀이십니까. 도깨비라니요?”
그러자 청년은 그이에게 손짓을 하며 이리 오라 말했소. 그이는 청년에게 다가갔고 청년은 웃으며 몸을 일으켰지.
조촐한 다과상을 놓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소. 청년은 그이에게 차를 내어놓았고, 그이는 이 이야기가 퍽 오래 걸리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 청년은 그저 한결같이 미소를 머금은 채였소. 그리고 나붓이 앉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오.
“저 불에 탄 집은 바로 제 집입니다.”
그이는 잠시 놀란 얼굴을 하고 청년을 보았다오. 그러나 청년은 여전히 웃는 낯이었고 그이는 나지막히 고개를 주억거렸소.
“그리고 저 집에 불을 붙인 것도 바로 저였습니다.”
얼마나 기구한 사연인지 알 수 없으나 단지 그 머리만 꺼내놓은 이야기로도 그다지 가벼운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소. 그이는 아무런 말도 꺼내지를 못하고 청년을 보았소. 청년은 옛날 그 언젠가를 떠올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고개를 돌려 마을을 보았소. 얼마나 먼 옛날인지, 청년은 그보다 더 얼마나 어릴 적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 가만히 다문 입매만으로도 꺼내기 쉬운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는, 충분했소.
그리고 마침내 청년이 입술을 떼었지.
“도깨비 친우를 가진 적이 있었습니다.”
하하, 그래. 나도 처음에는 그이가 농을 하는 줄로만 알았지. 도깨비 친우라니. 우리 추이꾼들도 눈에 쌍심지를 켜고 찾지만 마주칠 일이 도통 없는, 그 도깨비가 친우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터무니 없는 말을. 그러나 청년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고, 그 이야기를 내게 전하던 그이의 표정 또한 장난기 없이 진중하기 짝이 없었다오. 그러니 어쩌겠나. 믿을 수밖에. 생각해보면 우리가 하는 이야기들은 범인凡人에게는 그저 말도 안 되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들일 뿐이니 우리끼리라도 우리 이야기를 믿는 수밖엔 없지 않겠어. 아무렴, 믿을 수 없대도 이것은 전부 우리가 보고 듣고 겪은 이야기들이니 말일세.
청년의 이야기는 정말로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소. 몇 해 전에 청년은 그 마을에 살았지. 그때에는 그 마을도 평범한 다른 마을과 다를 바가 없었다고 말했소. 인심도 좋고 살기도 좋고, 그런 조용하고 평범한 시골이었다고. 허나 겉보기에 평화롭다고 언제나 태평성대가 이어지는 것은 아닌 법이지. 사람들은 눈에 보는 것만 믿고, 자신이 생각할 수 있는 그 범주 안에서만 생각하는 법이 아니겠어. 실상이란 당사자가 아닌 이상은 모르는 법일세. 모든 일이 그러하지.
청년은 그 기와집의 서자였다고 들었네. 대감인지 뭔지, 감투를 쓴 아비와 몇 명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종놈들을 데리고 산다고 했소. 왜 그만치 권력 있는 자가 그런 시골에 살고 있었는지는 부러 묻질 않았다고 했네. 아무튼간에 그 청년은 어렸고, 잔병치례도 퍽 잦았던 모양일세. 그러다가 문득, 어느 날인가에 제 집의 으리으리한 현관을 두드리는 이가 있었으니 흔한 이야기들이 으레 그렇게 시작하듯이, 청년과 도깨비는 그렇게 만났네.
그 도깨비라는 자가 얼마나 어리석은 자였던지, 청년은 도깨비라 하면 구전에나 나오는 것처럼 인상이 아주 험상궂고 심술보가 덕지덕지 붙은, 큼지막한 도깨비 방망이를 휘두르는 거인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리 말하였건만, 실상 마주친 도깨비는 사람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고 말했네. 상투를 틀지 않은 머리를 아무렇게나 풀어헤치고, 다 헤진 옷을 걸친 채로 얼빠진 표정을 짓고 서있는 것이 그 청년이 기억하는 도깨비였지. 그리고 무슨 생각이었던지, 청년은 그를 집에 들였네.
“이름이 문영이라 하였지요.”
이리저리 뒤엉킨 그림자. 그 도깨비는 제 이름을 문영이라 하였소. 그리고 청년, 청하라 하던 그 청년은 그제야 도깨비를 제 눈으로 똑바로 본 것이오. 옷이 좀 남루하였으나 허리를 곧게 펴고 선 도깨비는 키가 크고 풍채가 좋았지. 머리를 산발하였으나 그 머리카락 아래로 언뜻 보이는 얼굴은 멀끔하게 잘 생겼고 말이오. 행색은 거지와 같았으나 제대로 씻기고 입혀놓는다면야 어디 크게 벼슬하는 양반으로 보기도 아깝지 않을 정도였네.
청하는 문영을 집에 들이고 제 옷을 내어주었소. 그의 부친은 서자인 그에게 놀랍도록 자상한 이였기에 청하는 그리 어렵지 않게 문영을 거기 머물게 할 수 있었다오. 허나 문영은 알지 못했던 게지. 어째서 청하의 아비가 청하에게 그리 다정하고 살가웠던지를. 아니, 사실은 그 이야기를 오롯이 전해들은 그이도 알지 못한다오. 청하는 그 이야기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고 하였으니 말이오. 허나 아마도 무언가 사정이 있었던 모양이지. 어느 집에나 사정이란 것은 있는 법이 아니겠소. 어느 집이나, 어떤 이에게나 말이오. 그러니 말 하고싶지 않은 사정에 대해서는 캐묻지 않는 편이 좋지.
청하는 문영을 집에 들이기 이전부터 남모를 계략을 가지고 있었소. 그 집의 일가를 오롯이 한 줌의 재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 그의 계략이었지. 그것은 문영과 만났다는 작은 사건 하나로는 묻어둘 수 없을 만치 오래된 계획이었소. 허나 문영이 그것을 알 턱이 있나. 그 어리고 아둔한 도깨비는 그것도 모르고 청하에게 제 마음을 다 주었지. 처음으로 나서보는 세상이었소. 처음으로 마주한 사람이었고. 그러니 순진하게도, 제게 웃어주고 살갑게 대해주는 그 양반을 다 믿어버린 게야.
그 도깨비는 어찌나 세상에 서툴던지 도통 제 정체를 감추는 법이 없었소. 마을 사람들도 처음에는 그 갓난쟁이 도깨비가 그저 신기하고 어여쁘니 곧잘 그이에게 다정스레 굴었지. 문영은 그렇게 그 마을의 일부가 되었소. 허나 청하에게는 계략이 있었지. 문영이 없었더라도 응당 그리 되었을 계략이. 문영이 있대도 상관없을 그런 계략이.
그렇게 그 으리으리한 기와집은 한 줌의 재가 되었소. 살아남은 사람이라고는 거기에 불을 낸 청하와 그의 손에 이끌려나온 문영, 그리고 도망쳐버린 몇 놈의 종들이 전부였지. 마을 사람들이 그 불을 낸 범인을 누구라 생각하였겠소?
“제가 아둔하고 눈이 멀어 그에게 그런 모진 시련을 주고 만 것입니다. 그저 마냥 순하고 딱한 이였는데 말이지요. 그런데 또 그이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다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제가 그랬던 것을, 그리고 제가 끝내 자백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하여 문영은 오롯이 누명을 쓰고야 말았소. 청하로서도 어찌 마음이 그저 마냥 편하기만 하였겠소. 허나 문영은 아무 말 않았소. 그저 낯선 도깨비가 마을에 들어와 사람들을 해하려 한다는 손가락질에도 입을 꾹 다물고 그곳을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이 전부였지.
청하는 제 두 눈으로 문영이 빼죽한 도깨비 귀를 자르는 모양을 보았소. 그래, 도깨비들은 사람보다 뾰족하게 선 귀에다 정수리에 뿔이 자라있다더군. 문영이 제 귀를 자르는 꼴을 보면서도 청하는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소. 거기에 대체 무어라 말을 할 수 있었겠소. 미안하다며 용서를 구할 수조차 없었으니 말이오.
“그렇게 문영은 영영 떠나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사과하고 싶었으나 여즉 그가 어디 있는지, 어디로 향한 것인지 알 길이 없다고도 말했소.
그리고 그이는 청하에게 도깨비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물었지. 도깨비가 무엇인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얼마나 많은 도깨비들이 사람들의 사이에 숨어서 지내는지.
“귀촌. 귀촌에서 왔다고 했습니다.”
청하는 그리 대답했네. 귀촌鬼村, 도깨비의 마을. 문영이 거기서 왔다고 말이지. 그것이 정말로 존재하는 것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그이가 달리 또 무엇을 믿을 수 있겠어. 실낱같은 단서라도 있다면 그것을 따라가는 것이 응당 옳은 일인 것을. 하여 그이는 그 귀촌을 찾아나섰소. 어디로 가야할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저 무작정 길을 떠난게지. 본디 우리 추이꾼들이 전부 그런 것이 아니겠소.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대도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튼튼한 두 다리와 시간 뿐이니 무언가를 발견할 것 같으면 그것이 풍문이래도 걸음하는 수밖에는.
그이는 길을 떠났네. 정처없이 걷는 길이었으나 목적지는 분명해졌지. 귀촌. 그에 대해 누군가가 또 알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그리 걸었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강을 건너고 산을 넘어서 그렇게 귀촌을 찾아서 말일세.
나그네는 거기서 잠시 말을 멈추었다.
“이 양반, 감칠맛나게 따악 거기서 끊기야?”
“아니, 그럼 당장 목이 타서 죽겠는데 침만 꼴깍꼴깍 삼키며 이야기를 끝마쳐야 한다는 말이오?”
“그래서, 그이는 그걸 찾은거요? 귀촌을?”
“아, 거 양반들 성질들도 급하기는.”
나그네는 킬킬대며 웃고는 대접에 담긴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웅성이며 각자 제 말을 보태는 추이꾼들 사이에서도 단연 화두로 오르는 것은 그래서 그 귀촌이 정말로 존재하는 것인지, 아닌 것인지에 대해서였다. 그리고 귀촌을 찾아 헤매는 그 추이꾼은 어떤 자인지, 저들이 알고있는 가운데에 있는 자인지에 대해서도 또한 그러했다.
나그네는 물기만 남은 대접을 아무렇게나 바닥에 내팽개쳤다. 데구르르, 대접이 굴렀다. 추이꾼들은 호기심이 잔뜩 어린 눈으로 나그네를 보았고 그는 괜한 거드름을 피우며 이리저리 눈치를 보았다. 어디 말을 꺼낼까, 말까, 하고 약을 올리는 듯 눈동자를 굴리는 모양에 결국은 추이꾼 하나가 예끼, 하고는 그의 등짝을 찰싹 내리쳤다.
“아이고, 이 양반이 사람 잡네!”
“장난 그만 치시게나.”
“누가 보면 내가 정말로 여기서 그만둘 줄 알겠네.”
“자네라면 그러고도 남지.”
쯧, 자네는 나를 너무 잘 알아. 나그네는 한껏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리고는 한 팔을 휘 들어 다른 팔로 소맷부리를 붙잡으며 매무새를 다듬고는 큼큼, 헛기침을 했다. 추이꾼들의 엉덩이가 바닥에서 들썩대는 모양을 가만 보던 그는 마침내 이야기를 이었다.
그래,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이는 귀촌을 찾았네. 허나 어찌 찾게 되었는지는 묻지 마시게. 그이도 어찌 그곳에 도달하게 되었는지 여즉 알지 못한다고 했으니 말이오. 다만 그이는 어느 숲길을 걷고 있었고, 그때는 뙤약볕이 내리는 한여름이었는데 어느 순간 오한이 일더라는 이야기를 전해들었소. 하여 주위를 둘러보니 어느새 눈이 새하얗게 내려앉은 한겨울이었고, 그이는 그것이 조운인 줄로만 알았다고 하더이다.
그래, 그이는 일전에 조운을 겪은 일이 있었소. 그이가 조운을 삼키고 수태한 일이 있었는데……아아, 이것은 도깨비와는 아무래도 상관 없는 이야기이니 나중에 꺼내놓는 것으로 하지.
아무튼 그이는 그것이 조운의 일인줄로만 알았다고 했소.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이상한 것이지. 조운은 한겨울 내리는 눈에 섞여 떨어지기는 하여도 겨울을 불러오는 것들은 아니니 말이오. 천지가 하얗게 눈에 뒤덮인 설산을 그이는 하염없이 걸었소. 그러다가 문득 보니 저 끝에 큼직한 장승 두 개가 나란히 서 있는 것이 아니겠소. 아무리 보아도 마을이었소. 두 눈을 의심했지만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아도 마을이었지. 그때까지도 그이는 그것이 귀촌이라고는 상상도 하지를 못했소. 허나 그이에게 다른 선택을 할 여력이 있었겠소? 사방이 새하얗게 눈 내린 길이고, 얇은 홑겹 저고리 사이로는 냉기가 스미는데, 어찌 마을로 향하지 않을 수가 있겠소. 그러니 그길로 향할 수밖에.
마치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고, 그이는 그렇게 말했소. 순식간에 계절이 바뀐 것으로도 모자라 여지껏 아무것도 보이질 않던 산 한가운데에 마을이 떡하니 나타나지를 않나, 마을로 들어섰더니 하얗게 눈 내린 과수원과 밭이 보이는 것이 딱 사람 사는 모양새를 그대로 갖추질 않았나.
“길을 잃었어?”
누군가 그리 말을 걸었다고 하였소.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마을 안쪽에서 붉은 저고리를 입은 맨발의 아해가 총총 달려나오는 것이 아니겠소. 새하얗게 눈 내린 그 마을에서 말이오.
“사람이구나. 원래 여기 들어오면 안 되는데.”
하며 아해는 해사하게 웃었소. 퍽이나 이상한 아해였지. 춥지도 않은 것처럼 맨발에 바지도 무릎까지 겅중 올라올 정도로 짧았다고 하였소. 게다가 댕기를 땋지 않고 짧게 자른 머리는 본디 고수머리인 모양인지 사방팔방 새집을 지어놓은 양 뻗친 채였고 말이오. 그이는 잠시 아해를 보았소. 그리고 곧 그 아해가 도깨비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 그 짧은 머리칼 아래로 빼죽 솟은 도깨비 귀를 어찌 모르는 체 할 수가 있었겠어.
“여기가 귀촌입니까.”
그리 물었더니 아해는 그 큰 눈을 더욱 크게 뜨는 것이 아니겠소.
“어떻게 알았어?”
그러더니 흥미진진한 얼굴로 그이를 이리저리 훑어보는 것이었소. 본디 사람이 들어오는 일이 없었던 모양이지. 그이는 다만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랐고 아해는 그이의 찬 손을 덥썩 잡아 끌어당겼소.
“이리 와. 대장에게 얘기하기 전에 뭐라두 입지 않으면 얼어죽겠어.”
도통 영문을 알 수 없는 소리만 늘어놓기는 하였으나 그 작은 도깨비가 사람을 해하려면 또 얼마나 해하겠소. 그러니 그이는 그저 그 뒤를 쫓았지. 그러자 아해는 어느 초가집으로 그이를 안내했소. 그러고는 성큼성큼 마당으로 들어서더니,
“김서방아!”
우렁차게 외치는 것이 아니겠소. 닫힌 문 너머에서 무언가가 넘어지고 엎어지는 모양인지 우당탕 하는 소리가 들리고, 곧 멀끔한 얼굴을 한 도깨비가 문을 열었소. 조금 놀라고 당황했던 게지. 얼빠진 표정을 하고 뛰쳐나온 김서방은 그 어린 도깨비와 그이를 번갈아 보더니 깊은 한숨을 뱉었소.
“이제는 하다하다 사람까지 주워오셨소?”
그리 묻는 모양을 보니 어린 도깨비가 무언가를 주워다 김서방을 찾는 것은 아마도 예삿일인 모양이지. 어린 도깨비는 그저 잔망스레 웃으며 그이를 앞으로 살짝 밀쳐보였소.
“내가 주워온 거 아니야. 얘가 멋대로 들어온 거지. 대장한테 데려가려고 했는데 이대로는 얼어죽을 것 같아서. 옷 하나만 지어줄 수 있어?”
“무엇하러 물으시오. 이미 예까지 데려왔으면 답은 정해진 것 아니었소?”
“우리 김서방은 똑똑하기두 하지이.”
그러자 김서방은 한숨을 포옥 내쉬고는 손짓하였소. 이리 들어오시오. 하여 그이는 김서방에게 두루마기 한 벌을 선물받았지. 내 그것을 실제로 본 일이 있는데 제법 오묘한 푸른 빛이 감도는 모양이 여태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빛깔이요, 바느질 솜씨는 사람의 것이 아닌 양 탄탄하며 섬세하고, 옷감의 질이며 옷의 모양새까지 솜씨가 아주 기가 막히니 정말로 도깨비가 만든 것이라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더군.
아무튼 김서방이 두루마기를 지어주자 어린 도깨비는 그이를 저들의 수장에게 안내하였소. 허나 그이는 수장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지. 수장은 주영으로 장식된 장막 건너편에 앉아 있었는데, 비추는 그림자로 거기 누가 있는가보다 하는 것이 전부였다고 하더이다. 음성은 사내 같으면서도 여인 같았고, 아이 같으면서도 노인 같아 당췌 정체를 알 수가 없으니 정말로 도깨비에 홀린 것처럼 느껴졌소. 수장은 그저 그이에게 물었지.
“본디 이곳은 사람이 들어와선 아니되는 곳. 예까지 들어올 수 있었다면 필시 그대에게 무언가 사연이 있었을 터. 그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겠소이까.”
그이가 무어라 대답할 수 있었을까. 사연이라기엔 그다지 거창한 것이 없고 그저 발길 따라 걷던 추이꾼에 불과한 것을. 그러니 그이는 거기서 잠시 말을 멈춘 것이오. 무어라 대답해야할까 알 수가 없어 뜸을 들였지. 그러자 장막 너머 앉은 이는 낮게 웃었소.
“그대는 추이꾼이지. 어찌 그리 된 것인지 그 연유부터 알려주시게.”
그제야 그이는 천천히 기억을 짚어나갔소. 그러다가 꺼낸 이야기가…….
아아, 미안하오. 이것은 아무래도 조운 이야기를 하며 함께 해야할 이야기였는데, 아무튼 그이는 제 이야기를 꺼내놓았소. 돌아오지 않는 지아비를 기다리다가 하나 뿐이던 아들마저 하늘로 보낸 이야기를 끝도 없이 늘어놓았지. 왜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하였소. 다만 그 이야기를 해야만 할 것 같다고 그리 말했어. 그러자 수장은 그 이야기를 가만 듣고있다가 고개를 주억거리는 것이었소. 그이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지. 그리하여 추이꾼이 되었고, 이리저리 이물을 찾아 헤매다가 어느 마을에 도달하였고, 거기서 도깨비의 사연을 전해듣고 귀촌에 대한 것을 듣게 되었다고 말이오. 그러자 그이를 거기까지 안내한 어린 도깨비가 대뜸 성을 내더군.
“이 바보가 아무 얘기나 하고 다니고!”
그래, 그리 말했다고. 아무래도 문영이 귀촌 이야기를 한 것이 탐탁지 않은 것처럼. 그리고 그 연유는 쉬이 알 수가 있었지. 수장이 그리 말하였으니까. 사람이 들어와서는 아니되는 곳이라고.
수장은 다시금 낮게 웃었소. 그래, 그 사연이 참으로 기구하고도 구구절절한 터이지. 누구라도 그 사정을 헤아릴 수 있을 거요. 어디 이 세상이 여인네 혼자 살아가기가 쉬운 세상인가. 그것도 지아비를 잃은 여인이 말이오. 추이꾼이 되었대도 어디 그것이 그저 마냥 조선팔도를 쏘다니며 흥청망청 노니는 것으로 되는 일이냔 말이야. 설령 그렇대도 여인의 몸으로 끝없는 여로를 헤매는 것이 영 쉬운 일이 아니지.
“허면 이제 그대는 도깨비 마을을 찾아내었지. 앞으로는 어찌 할 셈이신가?”
수장은 그리 물었소. 그러자 그이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숙였지.
“추이꾼은 이물을 기록하며 학술을 나누는 자들입니다. 그러니 이곳에 남아 귀촌에 대한 것을 기록하고자 합니다.”
사실은 그것이 얼마나 입술 밖으로 튀어나오질 않는 말이었느냐 하면, 그이는 분명히 그 청이 거절당한대도 할 말이 없다고 여겼다오. 그러니 더욱 입 밖을 내는 것을 망설일 밖에. 그러나 참으로 놀랍게도,
“그러시게.”
수장은 그리 대답하였소. 추이꾼의 기록은 다만 기록일 뿐으로, 저들의 삶에 누를 끼치지 않으리라 그리 판단한 덕이지. 수장은 참으로 고맙게도 그이에게 귀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네. 자아, 여기 내가 그이의 추이록을 그대로 필사하여 온 것이 있으니 자네들도 후에 적어가시게.
재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아주 많이 있지만 지금 그런 것들은 하등 쓸모가 없는 것들이지. 그러니 추이록은 나중에 살피는 것으로 하고 지금은 내 이야기를 들으시게나. 추이록에 기록된 것의 반절 정도는 이미 요 주둥이에서 술술 흘러나올테니 말이오.
도깨비라는 고 신묘한 것들이 당췌 어디서 발생하는고, 하니 수장의 말을 따르자면 그들은 모두 숨을 거둔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겠소. 그것이 무슨 소리인가 하니 사람이 죽고 난 뒤에 저승차사가 미처 혼을 온전히 거두지 못한 것들이 이승을 빙글빙글 맴돌다가 사람 손때가 묻은 물건에 깃들어 도깨비가 된다 하였소. 생전의 기억일랑 모두 지우고, 남는 것은 그저 사람일 적 가졌던 모양 뿐으로 그렇게 귀촌에 덱데글덱데글 모여 살게 된다고.
그이는 수장과 아주 오랜 이야기를 나누었소. 곁에 앉은 어린 도깨비가 지루한 양 하품을 하기도 하고, 방바닥에 엎드려 데굴데굴 구르다가도, 어느샌가 끼어들어 이야기를 더하기도 하면서 말이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알 수가 없게 오랜 이야기를 나누었지. 그런 다음에 그이가 한 일은 밖으로 나와 그 고즈넉한 마을을 휘 한 바퀴 돌아보며 풍경이며 모습들을 기록하는 일이었소.
그리고, 천지신명께서도 잔인하시지. 그이는 보아서는 아니될 것을 보고 말았다오. 이쯤 하였으면 눈치가 빠른 이는 알아챘을런지도 모르지. 운명이라는 것은 어찌 그리 사람의 뜻대로 되는 법이 없는지, 그이가 마을을 샅샅이 훑으며 풍경과 도깨비들을 하나하나 기록하고 새겨둘 적이었소. 그이의 눈에 들어온 것이 무엇이었는지 아시오?
“서방님.”
……하늘이 어찌 이리 잔인할 수가 있겠소.
나그네는 거기서 입을 꾸욱 다물었다. 추이꾼들의 눈동자가 허공에서 마주쳤다. 무어라 묻고 싶었으나 더는 물을 수가 없었다. 이미 들었던 이야기들을 머릿속에서 맞추어 보는 것만으로도 답은 너무나 명확했다.
“허면…….”
“그래, 돌아오지 않는 지아비는 도깨비가 되어 거기 있었던 거요.”
추이꾼들 사이에서 탄식어린 신음이 흘렀다.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고, 누구 하나 섵불리 입술을 떼어낼 수 있는 이가 없었다. 펼쳐진 추이록 안에 빼곡하게 기록된 것은 사람의 것이 아닌 귀의 기록이요, 추이꾼들은 줄곧 그런 이야기들을 쫓는 존재였다. 때문에 사람의 일에는 깊게 관여하지 않는 것이 그들 사이에서 불문율처럼 정해진 규칙이었고, 많은 추이꾼들은 갈대처럼 바람에 나풀나풀 흩날리며 그저 걸음 닿는 길을 걸을 뿐이었다. 보이는 것을 기록하고, 들리는 것을 새겨놓고, 그렇게 그저 스쳐 지나되 아무것에도 연관되지 않도록.
그러나 이 일은 당췌 어찌 하여야 좋을까. 사람의 일이라기에는 추이꾼의 일이었다. 그러나 추이꾼의 일이라기에는 너무나 인정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 누구도 이 신파극에 말을 더할 수가 없었다. 눈동자만 데룩데룩 굴러다녔다. 서로의 눈치를 보는 양 그리도 어색한 공기가 흘렀더랬다. 그러자 나그네는 픽 웃으며 몸을 뒤로 반쯤 기대어 두 손으로 제 체중을 지탱하곤 자세를 편히 고쳐앉았다.
“자네들도 다아 짐작하고 있으리라 믿소. 당연히, 잃어버린 지아비는 그이를 기억하지 못했지. 도깨비가 되면 생전의 기억은 모두 잃게된다 하지 않았소. 제 이름이 무엇인지, 제 나이가 몇인지, 어디서 무얼 하던 사람인지도 오롯이 잊고야 말았지. 그리고 그것은 그이 또한 명확하게 알고 있는 사실이었소. 아니, 그이야말로 도깨비 수장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이니 나나 자네들보다도 더욱 살에 에도록 아프게도 알았겠지.”
서방님, 하고 부르자 두 눈동자가 여인을 향하였다. 허공에서 부딪히는 시선은 이전과 같지 않았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설당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았던 달디 단 눈길은 이제 더는 거기에 존재하지 않았고, 저를 바라보며 노상 따숩게 웃어주던 얼굴도 이제는 그저 의문스러운 모양으로 거기에 놓여 있었다. 여인은 그 얼굴만 보더라도 거기 선 이가 제 서방이지만 서방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모양을 하고 그의 삶을 살았던 이였으나 그 속은 이제 온전히 다른 사람이 되고 만 것이다.
“그이는 영민한 여인이었소.”
가슴이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지는 것만 같았으나 차라리 잘 되었다, 하였다. 여인은 저를 바라보는 지아비를 비로소 보낼 때가 되었음을 알았다. 영영 소식을 알지 못한 채로 가슴앓이 하는 것보다야, 차라리 잘 되었다. 사람으로서의 삶은 이제 모두 놓아버렸으나 귀의 삶을 얻어 오랜 시간선에 그렇게 머물게 되었으니 어쩌면 이것이 나은 일인지도 몰랐다. 여인은 제 쪽진 머리를 틀어올린 비녀를 풀었다. 그것은 몇 해 전인가 변변찮은 혼수조차 마련하지 못한 새신부에게 지아비가 직접 손으로 깎아 선물한 것이었다.
“그이는 그 비녀를, 지아비의 손에 쥐어주었소.”
지아비는 여즉 영문을 알지 못하여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어째서일까. 여인의 따뜻한 두 손이 지아비의 손에 나무비녀를 쥐어주는 순간, 황망한 두 눈동자에서 타는 듯이 뜨거운 두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대도 혼은 그 온기를 익히 알고있었던 탓인지도 모른다. 여인이 지아비를 잊지 못했던 것처럼, 지아비도 제 반쪽을 잊지 못하고 그리 떠돌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연이라는 것이 어찌 쉬이 잘라내고 베어낼 수 있는 것일까. 머리는 잊었대도 혼은 잊지 못한 부부의 연이 가슴을 파고들어, 둘은 그렇게 비녀를 붙든 채로 한참을 울었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지도, 이전처럼 애틋하며 달디 단 서방님, 마누라 하는 소리를 하지도, 그러기는커녕 온전한 글자 하나조차도 뱉지 못하였으나 둘은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눈물을 뚝뚝 떨구며, 고개를 가만 숙이고 한참을, 울었다.
“그러니 이것이 또…….”
어찌 신묘하지 않을 수 있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