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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추이기담집
작가 : 이은성
작품등록일 : 2022.2.3

추이꾼에 대해 알고 계시오?
조선팔도 방방곡곡을 떠돌며 기이한 것들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이들을 이르지.
세상에는 사람 이외에도 많은 삶이 사는 법이고, 우리 눈에는 뵈지 않는 삶이 역동하며 제 이야기를 하는 법이라오.

조선 중기를 배경으로 한 옴니버스 형식의 기담 모음집입니다.

rio_siena@naver.com

 
선음 : 매미울음
작성일 : 22-02-05 18:43     조회 : 230     추천 : 0     분량 : 1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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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을 열어주시오!”

 

  소리친다한들 닫힌 문이 쉬이 열릴 리가 없었다. 그러나 사내는 계속해서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여시오. 어서 이 문을 좀 열어보시오. 목소리는 닿지 않는 듯 했다. 사내는 다시금 소리쳤다.

 

  “이대로 두었다간 그 아이가 죽는단 말이오!”

 

  그러자 곧 문이 열렸다.

 

  “또 당신이오?”

 

  돌쇠가 서 있었다. 나그네는 가쁘게 차오른 숨을 뱉으며 돌쇠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주억거리곤 그의 어깨를 붙들었다. 내 말, 내 말을 좀 들어보시오.

 

  “선음귀라는 것이 있소. 매미의 혼을 그리 일컫는데, 저 이는 선음귀에 씌인 것이오.”

  “헛소리를 하는군. 마님이 성을 내시기에 대체 어떤 치가 그런 헛소리를 했나 했더니.”

  “정말이오! 오늘, 그래, 오늘로 나흘째라 하지 않았소? 선음귀에 씐 이는 이레를 저리 울다가 숨이 멎는단 말이오! 매미가 그러하듯이, 그렇게 딱 이레만을 울다가 간단 말이오!”

 

  돌쇠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러나 그 표정에 의심의 빛은 남아있지 않았다. 돌쇠는 소리를 낮추었다. 때문에 하마터면 시끄러운 울음소리에 그의 목소리가 묻혀 들리지 않을 뻔 했다.

 

  “정말이쇼? 그……순이가 선음귀가 씌었다는 말이.”

 

  사내는 고개를 끄덕여 긍정을 표했다. 그러고는 제 품에서 들고 온 서책을 꺼내었다. 빠르게 책장을 넘겨 선음귀가 적힌 부분을 펼치고는 돌쇠에게 내밀었으나 돌쇠는 글을 읽을 수 없었다. 사내는 선명하게 새겨진 선음귀, 세 글자를 하나하나 짚으며 돌쇠에게 읽어주었다.

 

  “이 서책에는 온갖 기기묘묘한 것들이 실려 있다오. 그리고 여기, 선음귀에 대해서도 쓰여 있소. 구천으로 짧은 산책을 떠나려던 선음귀 중 하나가 그이의 눈에 빠져들게 된 것 같소. 그리고 여기, 바로 여기에 써있소. 선음귀가 씌게 되면 이레간 소리 내어 울다가 결국에는 진이 빠져 죽게 된다고.”

 

  돌쇠가 미간을 좁혔다. 그러니까, 이 서책에 적힌 대로라면 순이가 사흘 뒤에 죽을 거라……그거요? 사내는 다시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이 서책이 믿을만한 물건이긴 한 거요? 선음귀며 구천이며, 무지렁이 같은 나는 영 신뢰가 안 가는데.”

  “허나 밑져야 본전이라고, 아무 일도 없다면야 다행이지만 정말로 사흘 뒤에 저 아이가 그리 되면 그때는 어찌할 셈이오.”

  “……그래, 그래서 그 잘난 서책에 또 무어라 써있소? 그 선음귀인지 뭐시깽이인지를 쫓아낼 방도는 적혀 있소?”

 

  그것이 문제라오. 사내의 말에 돌쇠의 표정이 노골적으로 일그러졌다. 나그네는 손가락으로 책장의 아랫부분을 짚었다. 하얗게 빈종이 위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원래라면 여기, 적혀있어야 하는 것이 맞소. 보시오, 다른 귀들은 이렇게……허나 선음귀는 본디 사람에게 위해를 가하는 이들이 아니기 때문인지, 적혀있지를 않소.”

 

  돌쇠가 짜증스레 사내를 흘겨보았다. 그럼에도 사내는 아랑곳 않고 꽤나 진중한 얼굴로 서책을 이리저리 팔락였다. 눈물을 흘리면 그 눈물에 흘러 씻겨 나온다는 잠귀, 빈 제비집을 방치하면 깃든다는 연가귀, 그 온갖 낯설고도 기묘한 귀신들의 설명을 훑으며 선음귀와 비슷한 다른 무언가가 없는지를 살폈다. 감초와 작약, 진피와 쑥, 마즙, 당귀, 온갖 약초며 약재의 이름이 시선에 걸렸다.

 

  “허나 무어라도 해보아야 하지 않겠소.”

  “……마음에 들진 않는군.”

  “아이를 만나게 해주시오.”

 

  직접 그이를 이 눈으로 보아야겠소. 그러면 무어라도 해결이 되리라, 나그네는 생각했다. 돌쇠는 깊은 한숨을 뱉었다. 그러더니 제 허리에 손을 올리고 사내를 위아래로 훑었다.

 

  “그렇다면 솔직히 말해보쇼.”

  “무엇을 말이오.”

  “한양이니 과거니 하는 터무니없는 거짓 말고, 그쪽이 대체 뭐 하는 양반인지를 확실하게 알아야겠단 얘기올시다.”

 

  돌쇠의 말에 사내가 잠시 입술을 다물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곧 하하, 소리 내어 웃었다. 그저 양반 댁 노비라고 우습게 본 내가 잘못이군. 사내는 생각했다. 혀끝이 뻣뻣하게 굳는 듯 했다. 무어라고 설명을 해야 좋을까. 혹 자신을 정신 나간 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사내에게는 이미 익숙한 일이었지만 익숙하다고 하여 아무렇지도 않은 것은 아니었다. 사내는 느른하게 미소 지었다.

 

  “나는 귀를 쫓는 이라오. 우리네 간에는 ‘추이꾼’이라고 하지.”

 

  추이꾼. 생경한듯 하면서도 익숙한 세 음절에 돌쇠는 입 안에서 세 음절을 따라 굴려보았다. 추이꾼. 그러더니 고개를 바짝 들어선 사내를 올곧게 응시했다.

 

  “추이꾼이라니, 그런 건 어린애들 우화에나 나오는 게 아니란 말이오?”

  “세간에선 그리들 알고 있소. 허나 추이꾼은 이리 존재한다오. 이 서책이 바로, 추이꾼들이 모아온 이물異物들을 기록해놓은 추이록이고.”

 

  추이꾼에 추이록이라. 돌쇠는 이마를 짚었다. 한양엘 간다느니 과거를 봐야한다느니 하는 거짓보다야 차라리 그 편이 믿음직하기는 하였으나 추이꾼이라니, 잠투정하는 아이를 달래기 위한 베갯머리 이야기에서나 나오는 이름을 이런데서 듣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질 못했다. 정말로 믿어야 옳은 것일까. 허나 이제 와서는 달리 방도가 없었다. 제 입으로 추이꾼이라 말하니 그렇다고 믿을 밖에는. 게다가 그 추이록이라는 것은 또 꽤나 그럴싸하게 만들어져있어 믿지 않는 것이 되려 더 어려울 정도였다.

  돌쇠는 하릴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만 예서 기다리쇼. 자못 퉁명스레 툭 뱉어놓고는 대문 안으로 사라졌다. 사내는 대문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깊은 한숨을 뱉었다. 그것은 그렇다 치고, 이제 정말로 저 아이를 어찌 달래놓을지가 문제였다. 선음귀에 대해서 적혀진 것은 길지 않았다. 수십이나 되는 추이꾼들 가운데서 그 누구도 선음귀를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사내는 이마를 짚었다. 단정한 미간이 이지러졌다. 대문이 열렸다. 사내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표정을 폈다. 시원스레 뻗은 입매가 둥글게 말려 올라갔다.

 

  “또 당신입니까.”

 

  대문을 열고 나온 것은 안주인이었다. 사내는 정중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안주인의 표정은 매섭고도 강건했다.

 

  “듣자하니 추이꾼이라 하더군요.”

  “예, 그렇습니다. 추이꾼으로서의 경험에 미루어보아, 저이는 의술로는 고칠 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 선음귀 얘기를 하시려는 겁니까.”

 

  안주인의 음성은 어쩌면 다소 신경질적으로 들렸다. 허나 사내는 개의치 않고 고개를 주억거리며 긍정을 표했다.

  예, 선음귀가 맞습니다. 그러고는 좀 전에 돌쇠에게 보여준 것과 마찬가지로 추이록을 펼쳐 내밀었다. 남루하게 해진 책장 위에는 유려하게 그려낸 매미의 모양새와 함께 그 곁에 선명하게도 ‘선음귀’ 세 자가 새겨진 듯이 박혀 있었다.

  안주인은 가만히 책장을 눈으로 훑었다. 선음귀에 대해 적힌 몇 줄의 문장을 읽고, 또 반복해서 읽었다. 믿기지 않는 듯이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던 안주인이 고개를 들어 사내를 보았다.

 

  “들어오시지요.”

 

  그러고는 홀연히 대문 안으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돌쇠가 대문 안에서 고개를 빠끔히 내밀고는 사내에게 손짓했다. 사내는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고작 문 하나를 지났을 뿐인데, 울음소리는 더욱 크게 들리는 듯 했다. 온 매미소리가 전부 그 어린것의 입 하나에서 흘러나오는 듯이 아주 거세고, 서럽고, 힘겨운 울음소리였다.

  안주인의 흩어지는 치맛자락을 따라 사내는 걸음을 옮겼다. 그 걸음을 떼면 뗄수록, 선음귀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울음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렸다. 그리고 마침내 안주인이 걸음을 멈추었을 때, 얇은 창호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는 거의 진이 다 빠진 듯이 지쳐있었다.

  매미소리가 따가웠다. 울음소리는 섧게도 들렸다. 창호문이 열렸다. 소복을 입은 아이는 진이 빠진 듯 벽에 기대어 축 늘어진 채였다. 그럼에도 벌어진 입술 새에서 흘러나오는 엉엉, 애달프기만 하였다.

  아이는, 순이는 그럼에도 고왔다. 비쩍 말라 움푹 패인 양 뺨이며 가느란 팔다리를 축 늘어뜨려 놓고도 순이는 고운 얼굴이었다. 눈물로 얼룩져 퉁퉁 불어버린 얼굴을 하고도 고운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사내는 그제야 처음으로 알았다. 그리고 이 어린 것이 본디는 얼마나 더 고운 얼굴을 하고 해사하게 웃었을지 또한 쉬이 떠올릴 수 있었다.

  사내는 발을 떼어 방으로 들었다. 그리고 허리를 낮추어 축 늘어진 아이의 여린 몸뚱이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낯선 이가 이리 갑자기 찾아와 놀랐을 것이라 생각하오. 허나 염려는 마시오. 나는 추이꾼이오.”

 

  추이꾼이오. 그 목소리에 늘어졌던 아이의 고개가 들렸다. 지친 채로 몽롱한 눈동자에 일순 생기가 돌았다. 사내는 느른하게 웃어보였다. 가엽기도 하지. 고운 얼굴이 엉망이 되었소. 나직하게 속삭이는 목소리의 끝에 아이가 울음을 그쳤다. 매미소리가 멎었다.

 

  “……저를 도우러 오신 건가요.”

 

  쉬어버린 목소리로 아이가 물었다. 맥이 빠진 목소리였으나 끈질기게도 귓전에 엉겨 붙어 애원하는 듯한 음성이었다. 사내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저를 도우러 왔소. 그 울음을 멎게 하고, 고운 낯 위로 다시 미소가 피어나게 하기 위해서.”

 

  순이는 지친 얼굴로 입꼬리를 살그마니 끌어올렸다. 그렇군요. 드디어 제가 이 울음을 멎을 수 있게 되었군요. 사근대는 목소리는 혼이 다 빠진 듯 했으나 눈빛에는 희망이 스쳤다. 사내는 비쩍 마른 순이의 어깨를 토닥였다. 곧 괜찮아질 테니 염려 마시오. 미약하게 웃어 뵈는 순이의 얼굴이 너무나 처연하여, 사내는 그저 웃을 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반드시 이 아이를 살려야 하겠구나, 다만 그렇게 다짐할 뿐이었다.

  순이의 얼굴은 희게 질려있었다. 사내는 그 핏기 없는 뺨을 어루만졌다. 아이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걱정 마시오. 날 믿으시오. 사내가 말했다. 순이는 느릿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잠귀의 일이 떠올랐다. 눈에 깃들어 끊임없이 까무룩 눈꺼풀을 끌어내리던 그 고약한 것은 아이가 엉엉 울음을 터뜨린 뒤에야 그 눈물에 씻겨 흘러내렸었다. 그렇다면 그 반대로 엉엉 울기만 하는 아이는 어찌 해야 할까. 혹 깊은 잠에 빠지게 하면 소용이 있을까. 그러나 언제 또 울음을 터뜨릴지 모르는 아이가 잠에 들 리가 만무했다. 잠이 오는 약을 지어주면 조금 나을까. 사내는 가만히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무엇보다도 이 아이는 줄곧 제대로 잠을 청하지 못한 듯이 보였다. 생각해보자면 잠이 지금 이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리라. 사내는 생각했다.

 

  “우선은 잠이 오는 약을 좀 지어드리겠소.”

 

  순이가 고개를 들었다. 사내의 두 보 뒤에서 사내가 하는 모양을 지켜보던 돌쇠도 의문스러운 듯이 고개를 들었다. 잠? 그러나 선뜻 사내를 뜯어말리거나 그 이유를 따져 물을 엄두는 내지 못하고, 둘은 사내가 하는 모양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사내는 약을 만들었다. 그 자리에서 보따리를 풀어내더니 이것저것 갖은 약재를 섞고 으깨고 갈아가며 고운 가루를 내어 분첩하는 일을 반복하더니 고개를 들었을 적에는 돌쇠에게 손짓을 했다.

 

  “미지근한 물을 준비해주시오.”

 

  울음이 다시 터지고 나서는 전부가 헛일이니 서두르시오. 단호하게 덧붙이는 음성에 돌쇠는 조금 부아가 치밀었으나 순이의 희멀건 얼굴을 보고는 서둘러 자리에서 엉덩이를 떼었다. 흥, 마치 제가 양반이라도 되는 양 구는군. 일개 추이꾼 주제에. 돌쇠는 혀를 찼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에서 믿을만한 이는 그 수상하기 짝이 없는 추이꾼 사내 말고는 아무도 없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돌쇠가 방을 나서자 작은 방 안에는 허옇게 말라버린 순이와 그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추이꾼, 단 둘 뿐이었다.

 

  “재미있는 것을 깨달았소.”

 

  아니, 지금 이 상황에선 그 무어라도 재미있을 리가 만무하지만. 사내는 설핏 웃었다. 흐리멍덩한 눈동자가 사내를 바라보고 있었다.

 

  “소저가 울음을 울적에는 매미가 같이 울고 있소. 또한 소저의 울음이 멎음과 동시에 매미 울음도 멎지.”

 

  소저에게는 선음귀가 씌어 있다오. 사내의 음성에 순이는 느릿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 선음귀라는 것이, 무엇인가요. 나직하게 건네 오는 쉰 목소리에 사내가 순이의 여린 어깨를 토닥였다. 푸석하게 말라버린 머리칼을 쓸었다. 선음귀라는 것은 말이오, 말 그대로 매미 귀신인게요. 도담도담, 그 음성도 다정하게 사내는 말했다. 선음귀라는 것이 무엇인지, 어이하여 그 가여운 선음귀가 마찬가지로 가여운 어린 것의 몸에서 길을 헤매게 되었는지. 순이는 가만가만 이따금 느릿하게 눈꺼풀을 끔벅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여 사내의 말에 경청했다.

  기실은 악한 귀가 아니었다. 그저 우연찮게 때가 맞아 선음귀 또한 길을 잘못 든 것뿐이었다. 아이는 그것을 충분히 이해했다. 제 마른 몸뚱이에 기운이 돌지 않을 정도로 울음을 터뜨리게 된 것 또한 못된 귀이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나자 되려 한숨을 포옥 내쉬며 안타까워했다. 칠 년을 캄캄한 땅 속에서 웅크리며 지냈다가 간신히 바깥 빛을 보게 되었는데 우연찮게 길을 잘못 들어 또 어두컴컴한 사람의 몸속에 갇히게 되었으니 딱한 일이 아니겠냐며 설피 웃었다.

  그렇게 미련하도록 착한 아이였다. 때문에 사내의 마음은 더욱 불편했다. 사실은 추이록에조차 그 선음귀라는 것을 떼어낼 방도가 적혀있지 않다는 이야기를 전했을 적에도 순이는 그저 웃었다. 괜찮습니다. 그렇게 말했다. 괜찮을 턱이 없었다. 이대로 방도를 찾지 못하면 앞으로 남은 목숨은 고작 사흘이었다. 순이는 아직 열여섯의 어린 소녀였고 마악 만개하기 시작한 고운 미모를 가진 아이였다. 그 어린 것이 삶에 대한 미련이 없을 리가 없었다.

 

  “물을 가져왔수다.”

 

  돌쇠가 돌아왔다. 그는 잠시 문간에 멈춰선 방 안을 가만 들여다보고 섰다. 사내가 몸을 돌려 바로 앉으며 돌쇠에게 느리게 고갯짓을 하자 그제야 물병과 잔을 든 채로 방 한가운데로 들어섰다.

  사내는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분첩해두었던 분약을 추려 순이에게 내밀었다. 받으시오. 사내는 말했다. 가여운 것은 소저요. 몇날 며칠을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잖소. 눈을 제대로 붙이지도 못했을 터인데 이대로라면 몸이 축나질 않겠소. 순이의 마른 손이 약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그 흰 가루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단정한 미간이 찌푸려졌다. 물을 삼킨 순이는 고개를 들어 사내를 마주보았다.

 

  “휴식이 가장 중요한 법이오.”

 

  부드러운 음성에 아이는 옅게 웃었다. 사내는 잠귀의 이야기를 꺼내었다. 일전에 지나쳐 온 고을에서는 잠귀에 씌인 아이가 있었더랬다. 잠귀는 눈꺼풀에 들러붙고 속눈썹 사이를 파고들며 진득한 졸음을 가져오곤 하는데 그 잠귀를 눈에서 떼어내게 하는 방도가 바로 울음이라고 하였다. 나직하게 뱉어내는 그 글자 하나하나에 귀를 기울이던 순이는 까묵까묵 밀려드는 졸음에 찬찬히 눈을 감았다. 실로 며칠 만에 맛보는 꿀맛과도 같은 단잠이었다. 아이의 고개가 푹 거꾸러지는 것을 본 뒤에 사내는 그 어린 것을 곱게 뉘였다.

 

  “그것이 정말 방도가 되는 거요?”

 

  등 뒤에서 들려오는 돌쇠의 목소리에 사내가 몸을 돌려 그를 마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저었다.

 

  “확신할 수 없소.”

 

  돌쇠의 표정이 자못 사나워졌으나 사내는 한껏 여유로운 몸짓으로 잠든 순이의 가슴께를 토닥였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리 잠든 얼굴을 보니 마음이 좀 낫지 않소.”

 

  그제야 돌쇠는 표정을 누그러뜨렸다. 그 말이 옳았다. 몇날 며칠을 울다가 지쳐 쓰러지기를 반복하던 아이였다. 비로소 온전하고 평안하게 잠이 든 모양을 보자니 그간 불안했던 마음이 단번에 사르르 풀어지는 듯 했다. 그래, 저 아이가 그 누구보다도 가장 힘들 터였다.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을 지켜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돌쇠의 마음 또한 편치는 않았다.

 

  “아마 다시 울게 될 것이오. 매미가 울기 시작함과 동시인지, 아니면 소저가 잠에서 깬 뒤인지는 장담할 수가 없소.”

 

  허나 우선은 이것을 받아두시오. 사내는 돌쇠에게 약첩을 내밀었다. 돌쇠가 사내를 바라보았다.

 

  “같은 약이오. 저녁에는 이것을 먹이는 편이 나을 것이오.”

 

  아이에게도, 다른 이들에게도.

  돌쇠는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약을 쓸 일이 없게 되는 것이 가장 좋을 터였으나 바라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다는 것을 이제 돌쇠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사내의 눈에는 일말의 거짓이 비치지 않았고 여태껏 하는 모양을 미루어보았을 때, 돌쇠는 좀 더 이 사람을 신뢰해도 좋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내는 순이를 도우려 하고 있었다. 그 기저에 깔린 목적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 이유가 무엇이래도 이제는 상관이 없었다.

  순이가 잠이 들었다. 나흘만에 처음으로 울지 않고 잠이 들었다. 돌쇠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모처럼 매미도 조용했다.

 

 

 

  와아앙, 터지는 울음소리와 동시에 매미가 울기 시작했다. 순이가 잠든 지 딱 반 시진 만이었다. 돌쇠는 놀라 득달같이 방에 뛰어들었고 거기서 순이를 일으켜세우는 사내를 볼 수 있었다.

 

  “무얼 하는 거요?”

 

  돌쇠의 목소리는 분명 이전보다 자못 조심스러웠다. 사내는 어설프게 웃으며 다시금 귀청이 떨어져라 우는 순이의 한 팔을 제 어깨에 둘렀다.

 

  “와서 좀 도와주시오. 이 이를 부축해야겠소.”

 

  부축. 돌쇠가 가만히 미간을 좁혔다. 부축이라는 단어가 영 켕기는 탓이었다. 머릿속에 떠올라 정신을 혼란하게 만드는 물음표들이 줄을 지어 밀려들었다. 순이를 부축한다? 왜? 울음에 지쳐 언제 쓰러질지 알 수 없는 아이를 굳이 일으켜 세울 연유가 있던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떠오르는 물음을 묻고자 입술을 벙긋대던 돌쇠는 사내가 어서, 하고 채근하는 소리에 하릴없이 다가가 순이의 반대쪽 팔을 걸쳐 매었다.

  어디를 가는 것이냐, 왜 아이를 데려가는 것이냐, 묻고픈 것은 자꾸만 떠오르는 데도 돌쇠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다만 그저 사내와 둘이 목청이 떨어지도록 소리 내어 우는 가엾은 선음귀를 둘러메고 걸음을 떼는 것뿐이었다. 돌쇠는 그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순이의 울음을 그치게 하는 것도, 그 애를 다시금 해사하게 미소 지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지금은 그저 믿는 수밖에는 없었다. 저 사내가 순이를 낫게 해주리라. 순이를 살려주리라. 모든 것이 순이를 위한 일이리라.

 

  “괜찮아, 순이야. 다 괜찮을 거야.”

 

  그 뿐이었다. 아마 제 울음소리에 묻혀 제대로 전해질 리 없을 목소리임에도 돌쇠는 계속해서 괜찮다 괜찮다 순이를 다독였다.

 

  “헌데, 지금 우리가 대체 어디를 가고 있는 거요!”

 

  돌쇠가 물었다. 사내는 고개를 돌려 돌쇠를 바라보았다. 사내가 무어라 입을 벙긋거렸으나 소리가 들리질 않았다. 왕왕 울어대는 순이와 매미 울음 외에는 들리는 것이 없었다. 뭐요? 돌쇠가 되묻자 사내는 미간을 일그러뜨리며 음성을 키우는 듯 했다. 그러나 여전히 목소리는 들리질 않았고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는 것을 포기했다.

  사내가 이끄는 대로 걸음을 옮기니 닿은 곳은 순이가 빨래를 하던 개울가였다. 사내는 돌쇠에게 턱짓했다. 돌쇠는 가만히 한숨을 뱉었다. 느릿하게 하릴없다는 듯 고개를 주억대자 사내는 걸음을 떼었다. 아마도 순이를 한켠에 앉혀놓자는 듯한 태도였다. 그래, 그럽시다. 무얼 하고 싶은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그때였다. 엉엉 울던 순이의 울음이 뚝 그친 것은. 사내와 돌쇠가 서로를 마주보았다. 불길한 경각의 침묵이 흐르는 동안에도 매미는 소란스레 매암매암 울어댔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순이의 몸이 크게 휘청대었고 사내와 돌쇠가 쓰러지려는 어린 것을 붙잡기 위해 두 팔에 힘을 실어 달겨들었다. 그러나 이미 흐트러진 중심을 도로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풍덩―!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물이 튀었다. 사내는 함빡 젖은 몸을 일으키며 끄응, 낮게 신음했다.

 

  “순이야!”

 

  돌쇠가 놀라 외쳤다. 오도카니 앉은 순이는 두 눈을 땡그랗게 뜬 채로 멀뚱멀뚱 돌쇠의 놀란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곧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무얼 그리 얼빠진 표정으로 보십니까?”

  “……괜찮소?”

 

  사내의 목소리에 아이가 고개를 돌렸다. 젖은 잔머리가 말간 이마 위로 흘러내린 채였다. 끔벅끔벅 사내의 얼굴을 응시하던 그이가 어머나, 하고는 두 손을 제 입가에 가져다대며 꽤나 앙증맞게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매미가 울었다.

  순이의 울음이 그쳤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어.”

  “무엇이오?”

  “왜 순이를 개울로 데려간 거요?”

  “그날의 일을 차근히 되짚어보자면 방도가 나올까 싶어.”

 

  그러더니 나그네는 인사도 않고 돌아섰다. 느릿하게 걸음을 떼어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돌쇠가 입술을 달싹였다.

 

  “선비님! 감사합니다!”

 

  어느새 곁에 선 순이가 외쳤다.

 

  “고맙소! 잘 가쇼!”

 

  돌쇠도 소리쳤다. 나그네는 돌아보지도 않고 한 손을 들어 허공에 휘적일 뿐이었다.

 

 

 매앰― 맴― 매앰―

 

 

 매미가 울었다. 햇살이 따가운 여름은 벌써 복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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