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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판타지/SF
추이기담집
작가 : 이은성
작품등록일 : 2022.2.3

추이꾼에 대해 알고 계시오?
조선팔도 방방곡곡을 떠돌며 기이한 것들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이들을 이르지.
세상에는 사람 이외에도 많은 삶이 사는 법이고, 우리 눈에는 뵈지 않는 삶이 역동하며 제 이야기를 하는 법이라오.

조선 중기를 배경으로 한 옴니버스 형식의 기담 모음집입니다.

rio_siena@naver.com

 
교인 : 바다의 아이
작성일 : 22-02-04 14:20     조회 : 225     추천 : 0     분량 : 8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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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어들은 전부 용왕님의 딸이고, 아들들이어요.”

 

  호롱불이 은은하게 방 안을 가득 채운 그 작은 공간에서 둘은 마주앉아있었다. 계집아이는 늘어뜨린 댕기머리 끝을 꼼질거리는 손가락 끝으로 어루만지며 잠시 추이록의 펼쳐진 면을 내려다보았다. 나그네는 소매를 걷고 먹을 갈았다. 붓 끝이 촉촉하게 먹을 머금자, 이제 비로소 아이는 입을 열고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이었다.

 

  “바다 위로 배를 띄우는 사람은 참으로 많지요.”

 

  허나 모든 이들이 안전하게 뭍으로 돌아오지만은 않는답니다. 나으리께서도 잘 아시겠지요.

  바다는 때때로 배를 집어삼키고 뱃사람들을 집어삼킵니다. 어디 그뿐이겠어요? 이따금은 바닷가에서 거닐던 사람도, 바닷가 마을까지도 통째로 집어삼킬 수가 있는 것을요. 그렇게 바다에 빠진 사람들이 전부 어떻게 되는지, 나으리께서는 생각해보신 일이 있으십니까? 더러는 파도에 밀려 뭍으로 돌아오지만 더러는 영영 마주할 수가 없지요.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사람인 양, 그렇게 파도에 쓸려 다시는 돌아오지를 않지요.

  바다에 빠진 사람을 건져내지 못하면 시신은 흘러흘러 용왕님께 닿아요. 그러면 용왕님은 이제 가족조차 만나지 못하게 된 가여운 이에게 다시 한 번의 삶을 선물하게 되지요. 저는 그렇게 인어가 되었어요. 많은 인어들이, 그렇게 새로운 삶을 얻게 되었어요.

  인어가 되었지만 저는 아직도 뭍에 있을 저의 가족들이 궁금해요. 바다에 빠져 인어가 된 자들은 뭍에서의 삶을 온전히 잊게 되거든요. 나으리, 소녀는 소녀의 나이도 이름도 알지 못합니다. 용왕님의 딸이 되었을 때, 저는 뭍의 삶을 모두 잊었답니다. 저는 이제 제 가족의 이름도 나이도 알지 못하지만 그들은 저를 알아볼테죠. 그래서 우리 인어들은 자꾸만 자꾸만 교초를 엮어 뭍으로 나온답니다. 이름도 나이도 알지 못하는 가족들이 보고싶어요. 단지 그것 뿐이에요. 제가 바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답니다.

  부서지는 파도처럼 새하얀 머리칼에 깊은 바닷물처럼 푸른 얼굴을 한 교인이 되었지만, 소녀도 한때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소녀에게도 가족이 있었겠지요. 그들은 저를 아직도 기억해주고 있을까요?

  나그네의 손이 유려하게 움직이며 종이 위를 먹으로 가득 채웠다. 그러다가 나그네는 붓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아이는 입꼬리를 반듯하게 말아올려 웃었으나, 나그네에게는 그 계집아이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처럼 보였다.

 

  “가족들을 만나면 어찌할 셈이냐.”

 

  아이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나붓나붓 사뿐사뿐한 음성으로,

 

  “저는 이제 바다의 품에 안긴 용왕님의 딸이 되었다 말할 참이어요. 그러니 이제는 눈물도 거두시고, 염려도 거두시고, 그네들의 삶을 아름답게 살다 가시라 말하고 싶어요. 뭍의 사람은 뭍에서 살아야지요. 저는 물의 사람이니 물 속에서 사는 것이 마땅하구요.”

 

  말하는 목소리가 처연하기 짝이 없었다. 이 얼마나 안쓰러운 것인지. 갑자기 이전의 삶과 기억을 송두리째 빼앗겨놓고도 그리 살아가겠다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오랜 아픔이 있었을지.

 

  “……교인은, 인어들은, 전부 그렇게 가족을 찾는 것이냐.”

 

  나그네는 물었다. 그러자 아이는 고개를 들어 나그네와 눈을 맞추었다. 그리고 고개를 한 쪽으로 어여쁘게 기울이고는 눈꼬리를 접으며 해사하게 웃어보였다.

 

  “나으리께선 호기심도 참 많으십니다. 잊지 마시어요. 지나친 호기심은 나으리를 집어삼킬 것입니다. 마치 파도가 마을을 삼키듯이 말이지요.”

 

  그러나 나그네는 재차 물었다. 그러는 수밖엔 없었다.

 

  “가족을 찾은 뒤에는, 하고픈 말도 모두 전한 뒤에는, 그 뒤에는 어찌 할 셈이냐.”

 

  아이는 여전히 웃기만 하였다.

 

  “호기심은 나으리를 집어삼킬 것입니다.”

 

  침묵이 돌았다. 불빛이 일렁이며 방 안의 그림자를 일그러트렸다. 나그네는 붓을 내려놓고 자신이 적어내린 계집아이의 이야기를 내려다보았다. 두루뭉술하게만 적혀있던 교인의 이야기에는 이제 아이가 늘어놓은 사연이 수를 놓고 아무도 몰랐던 진짜 이야기를 알려주었다.

  도깨비와도, 같은 것이구나. 나그네는 중얼거렸다. 그러나 목소리는 아이에게까지 채 닿지를 않았고 기실 그렇대도 아무런 상관은 없었다. 나그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정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나그네는 아주 오랫동안, 긴 생각을 해야만 했다.

 

  “가족을 찾는 걸 도와주마.”

  “나으리.”

  “그래야 내가 이 이야기를 끝맺을 것이 아니냐.”

 

  아이는 놀라 자리에서 반쯤 몸을 일으키다 다시 앉았다. 나그네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어설프게 웃어보였다. 계집아이는 나그네를 가만히 바라보다 흐, 하고 바람 빠지는 웃음소리를 내었다.

 

  “나으리도 퍽 손해보기 쉬운 성정이십니다?”

  “그럴 리가. 내가 얼마나 약아빠졌는데.”

  “아무렴요. 그러시겠지요.”

 

  아이는 웃었다.

 

 

 

 

 

  아이의 가족을 찾는 것은 정말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이는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 어쩌다 바다에 가게 되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나그네는 아이와 끝이 나지 않을 기다긴 대화를 나누었으나 낮에는 대개 아이는 장에 나가 제가 짠 교초를 팔기 위해 분주하였으며 나그네는 사람이 모이는 저잣거리를 서성이며 사람들 사이에 말을 묻기에 바빴다. 얻을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바닷가 마을에서 용왕에게 가족을 빼앗긴 사람은 한둘이 아니었다. 그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붙잡고 물어보자니 아픈 상처를 후벼파는 것만 같아 마음이 영 불편하였다.

  아이는 이미 몇 차례나 뭍에 올랐다. 그러는 동안 한 번도 제 가족의 이야기를 들은 일이 없었다. 나그네는 그제야 이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래, 쉬울 리가 없는 일이다. 이름도 나이도 알지 못하는 아이의 이름도 나이도 알지 못하는 가족을 찾는다니. 그러나 이대로 일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기실 나그네에게는 아주 많은 시간이 있었다. 그저 발길 닿는 대로 떠돌아다니는 그에게는.

  그것은 일종의 행운이었다. 나그네에게는 아주 많은 시간이 있었고 그는 꽤나 끈질긴 사내였다. 어디 그뿐이랴. 능청맞은데다가 집요한 구석도 있었고, 한번 마음 먹은 일은 도통 포기할 줄을 모르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사실 꽤 운이 좋은 사내이기도 하였다.

 

  “초아야.”

 

  어느 저녁이었다. 나그네는 아이를 그리 불렀다. 아이는 수저를 들다 말고 나그네를 보았다.

 

  “왜요, 아재?”

 

  그 며칠새 두 사람은 부쩍 사이가 가까워졌다. 나그네는 아이를 계속해서 아해라 부를 수 없다는 이유로 별칭을 붙여주었고, 아이는 질 수 없다는 듯 나그네를 아재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나그네는 그때의 당돌한 아이 얼굴이 새삼 떠오른 듯 짧게 웃으며 말했다.

 

  “네 가족을 찾았다.”

 

  그러자 아이는 들었던 숟가락을 그만 떨어트리고야 말았다.

 

  “참말이에요?”

  “아무렴 내가 이런 일로 거짓을 말할까.”

  “어찌……아재, 어찌 찾으셨어요? 어떻게 찾으신 거예요? 저는 벌써 몇 해나 뭍에 올라왔는데…….”

 

  나그네는 의기양양하게 웃어보였다. 너는 모르는 일이다. 다른 이라면 몰라도 너에게는 비밀로 해야지. 그렇게 시치미를 떼는 모양에 아이는 입술을 삐죽이며 제법 새침한 얼굴을 하였다.

 

  “식겠다. 어서 들어라.”

  “언젠가는 아재에게 꼭 복수할 거예요.”

  “그거 참 무서워서 오줌을 다 지리겠구나.”

  “아이, 밥상머리에서 더럽게!”

 

  그러니까 어서 들래도. 능청을 떠는 모양에 아이는 궁시렁대며 숟가락을 들었다. 암, 네게는 평생 모른 체 할 것이다. 나그네는 그리 생각했다. 토라진 계집아이가 꿍얼대며 투정을 늘어놓는 것도 나그네는 그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바로 다음 날, 두 사람은 아이의 집을 찾았다. 바닷가에서는 조금 거리가 있는, 산으로 이어지는 골목 중턱에 놓인 작달만한 초가집이었다. 나그네가 마당으로 들어서자 마루에 홀로 앉아있던 사내애가 나그네를 보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누구냐!”

 

  호기롭게 외치던 사내애는 나그네 뒤에서 빠끔 고개를 내민 계집아이를 보고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순덕이……?”

 

  아마도 그것이 계집아이가 본디 가진 이름인 모양이었다. 나그네는 몸을 틀어 계집아이의 등을 가볍게 툭툭 두드렸고, 아이는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그 앞에 나섰다.

 

  “……꺼져!”

 

  마당 뒷켠에서 나타난 다른 사내애가 돌을 집어던진 것은 그 순간이었다.

 

  “악!”

 

  계집아이는 등짝에 돌을 맞고는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고, 나그네는 영문을 알 수 없이 놀라 황급히 아이를 일으켜 세웠다.

 

  “썩 꺼지지 못해, 이 요물! 어디서 누구를 홀리려 들어!”

  “형님, 순덕이가…….”

  “저것은 요물이야. 아버지와 어머니를 물 속으로 끌어들이고도 부족하여 이제 우리를 홀려내려고!”

 

  큰 사내애는 재차 돌을 던졌다. 꺼져, 요물, 귀신, 하고는 폭언을 쏟아부었다. 마루에 앉았던 작은 사내애는 그 모양을 어쩔 줄을 모르고 바라보기만 하였다. 나그네는 그 상황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으나 아이를 데리고 마당 밖으로 도망치듯 나왔다. 아이는 아파서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탓인지 엉엉 소리를 내어 울었다. 나그네는 아이가 그토록 서럽게 우는 모양을 처음 보았다. 아프기도 아플 터였다. 사내애가 집어던진 돌에 대신 맞은 나그네의 가슴께도 화끈하게 쑤셔왔다.

  아이는 울었다.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소리내어 울었다. 그토록 서러운 울음소리는 처음 들었다. 나그네는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여관으로 돌아갔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나그네가 그 집을 다시 찾은 것은 여관방에 계집아이를 눕혀두고 어르고 달래어 아이가 잠이 든 뒤였다. 큰 사내애는 마당을 쓸고 있었고, 작은 사내애는 어디에 간 것인지 보이지를 않았다.

 

  “아해야.”

 

  나직한 목소리로 사내애를 부르자 아이는 잔뜩 날이 선 표정으로 나그네를 보았다.

 

  “그 요물과 함께 오신 분이 아닙니까.”

  “하하, 요물이라……. 그래, 그 요물 이야기를 여쭈려 왔네. 얘기를 좀 나눌 수 있겠나?”

 

  사내애는 비질을 멈추고 나그네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노골적인 시선에도 나그네는 그저 웃었다. 그러자 아이는 인상을 찡그리고는 고갯짓을 하는 것이었다. 이리 오십시오. 드릴 수 있는 것은 숭늉 뿐입니다. 그 말에 나그네는 손을 내저으며 그럴 필요는 없다, 하였다.

 

  “그애의 이름이 순덕이라 하였지.”

  “……예.”

 

  둘은 나란히 마주앉았다. 사내애의 표정은 한껏 누그러졌으나 여전히 무언가 켕기는 데가 있는 듯 했고 또한 아이는 그러한 감정을 감추려는 시도도 노력도 하지 않는 채였다. 아무래도 상관은 없었다. 나그네는 더 말을 돌릴 필요도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애가 이 집의 잃어버린 막둥이인 줄로만 알았는데.”

  “맞습니다.”

  “하하, 허면 이야기가 간단하군. 어찌 그애에게 돌을 던졌어?”

 

  사내애의 입술이 달싹였다. 무언가 말을 뱉을까, 말까, 그리 고민하는 모양새였다. 나그네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그애에게는 말하지 않을테니 마음 편히 털어놓게. 나는 본디 사람의 일에 관여해서는 아니되는 사람이야. 그러니 그저 털어놓으시게.

  그제야 사내애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순덕이는……저희 막냇동생입니다. 원체 말괄량이이고, 도통 다른 집 계집애들처럼 집에 얌전히 붙어선 삯바느질이나 하는 그런 시시한 아이는 아니었지요.”

 

  순덕이는 어여쁜 아이였습니다. 저도, 덕구도 그 아이를 아꼈습니다. 함께 바닷가에 나가 뛰거나 조개껍데기를 주우며 놀곤 했어요. 순덕이는 바다를 아주 좋아했습니다. 아버지는 어부셨고, 아버지가 배를 타지 않는 날이면 저와 덕구와 순덕이 셋이 붙어서 어망을 고치거나 새로 엮으며 아버지를 도와드리기도 했습니다. 저희는 그냥 다른 집처럼 평범한 어촌집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내애는 거기서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리고 나그네의 얼굴을 올려다보다가 한숨을 포옥 뱉는 것이었다.

 

  “순덕이가 혼자 바닷가로 나설 줄은 몰랐습니다. 비가 세차게 내리고 파도가 아주 거센 날이었거든요.”

 

  날씨가 아주 갑작스레 변해버린 탓에 저희 모두 아버지의 배를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순덕이가 보이지를 않는 거예요. 장 구경을 나간다고 나갔던 아이라 비가 내리면 돌아올 줄 알았는데 한참이 지나도 돌아오지를 않았어요. 달리 무슨 방도가 있었겠어요. 그애를 찾아서 나설 밖에. 덕구와 제가 길을 나누어 그애를 찾으러 나섰습니다. 그리고 그애는……바닷가에서 발견되었지요. 허나 찾아낸 뒤에는 이미 늦었습니다. 파도는 날이 선 채로 그 시퍼런 혀를 날름거렸고, 제가 그애의 이름을 부를 적에 그애는 파도에게 완전히 집어삼켜진 뒤였습니다.

  어찌해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눈 앞에서 누이를 잃은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눈물을 흘리며 그애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는 것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떠난 아이는 돌아오는 법이 없었고…….

 

  "아직도, 그 애를 만나면 묻고싶었습니다. 왜 하필 그날, 바다로 나섰느냐고. 왜 하필 그날, 내 눈 앞에서 그리 매정하게 떠나버렸느냐고. 하지만 어르신, 제가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그애는 제 눈 앞에서 그렇게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렸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은 것을요. 제가 어찌 그애를 요물이라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 파도 속에서 살아올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귀신이나 요물이라도 되지 않는 한은 말입니다.“

  "……하여 그 아이에게 돌을 던졌느냐.“

  "그애는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애를 찾아나선 아버지와 어머니도 영영 돌아오지를 않으셨습니다. 제가 어찌 그애를 원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제 이 차가운 이승에 오롯이 남은 것은 저와 덕구, 단 둘 뿐입니다. 헌데 제가 어찌 그애를 따스히 안아주며 돌아왔느냐 물을 수 있겠습니까.“

 

  사내애는 입을 꾹 다물며 고개를 숙였다.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그네는 그 표정과 몸짓만으로도 어린 사내애가 홀로 감당해냈을 아픔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다만 그뿐이었다. 나그네는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그애를 앞에 두고 어찌 순덕이가 교인이 되어 돌아왔노라 할 수 있었을까. 바닷속에 가라앉은 제 누이가 어찌 삶을 다시 얻어 가족을 찾고자 하였다 말할 수 있을까. 나그네는 말을 삼켰다. 턱 끝까지 치밀어오르는 수많은 문장과 단어를 집어삼키고 그저 사내애의 고단한 얼굴을 보았다. 그래, 그것이면 되었다. 때로는 진실이 더욱 잔혹하고 아픈 법이리라. 나그네는 그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다만 그저 추이꾼일 뿐이었다. 나그네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무것도 아니었다. 감히 사내애에게 제 누이의 이야기를 늘어놓을 정도로 계집아이와 도타운 사이도 아니었으며, 교인에 대한 기록을 모두 마친 뒤에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모든 것을 훌훌 털고 이곳을 떠날 작정이었다. 본디 추이꾼은 그러한 것이었다. 사람의 일에, 사람의 인과에, 사람의 연에 얽혀서는 아니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만, 이미 벌어진 일을 갈무리할 필요는 있겠지.

 

  "아해야.“

 

  나그네는 나직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사내애는 고개를 들어 나그네의 얼굴을 바로보았다. 많이 아프고, 많이 잃고, 많이 지친 얼굴이었다. 그것은 결코 어린 아이의 얼굴에서 볼 수 있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런 얼굴을 한 어린 것을 보고싶지는 않았다.

 

  "내 아는 벗들 사이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전해지곤 하지.“

 

  세상에는 서로 똑닮은 이가 셋이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말이다. 그들은 서로 다른 날, 다른 시에 태어났대도 생김새가 한 사람인 양 판에 박은 듯 하고, 살아온 삶도, 겪어온 이야기도 모두가 비슷한 형태와 비슷한 모양으로 흘러간다는 이야기가 말이다.

 

  "그러니 아무래도 내가 사람을 잘못 찾은 모양이구나.“

 

  네가 말하는 순덕이는 내가 데리고 온 그 아이가 아닌 모양이다. 나그네는 그리 말했다. 허, 바람빠지는 듯한 소리를 내며 사내애가 허탈하게 웃었다.

 

  "그렇습니까. 그래요, 그렇지요. 그럴 리가 없지요.“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리가 없지요. 순덕이는 이미 죽은 것을요. 사내애는 그리 말했다. 나그네의 말을 철썩같이 믿고는, 그리 말했다.

 

 

 

 

 

  파도가 매서운 날이었다. 바람이 칼날처럼 날카롭게 으르렁대는 날이었다. 나그네는 교인에 대한 기록을 거기서 끝내고야 말았다. 이 마을을 떠야겠다. 순덕이라 불리던 그 어린 인어에게 더 아무런 말도 않고, 이제는 그만 두어야겠다. 나그네는 짐을 꾸렸다. 답지 않게 사람의 일에 깊이 발을 담그려 하였다. 정말로 불필요한 일을 할 뻔 하였어. 허탈한 웃음만이 입술 사이로 새어나왔다.

 

  "나으리, 이제 가십니까.“

 

  얇은 창호지를 바른 문 밖에서 계집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그네는 그래, 하고 대답하였다.

 

  "앞으로 사흘은 더 날씨가 거셀 것입니다. 허니 사흘, 딱 사흘만 더 머물었다 가셔요.“

  "어찌 내게 그런 말을 하느냐.“

  "교인들은 바닷가의 날씨를 훤히 알 수 있습니다. 나으리께서 제게 도움을 주셨으니 저는 나으리를 도우려 하는 것입니다. 내일은 파도가 더욱 거셀 것입니다. 바깥으로 나갔다간 비바람에 쓸리고 파도에 휩쓸려 나으리의 긴 여행길에 차질이 생길 것입니다. 어쩌면, 나으리께서 바다에 삼켜지실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호기심은 나으리를 집어삼킬 것이라, 제가 그리 말씀드렸지요. 차분하고도 진중한 목소리였다. 나그네는 싸놓았던 봇짐을 방 한 켠에 밀치며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너는 이제 어찌 할 셈이냐.“

  "용궁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저는 용왕님의 딸이니 아버지를 만나러 돌아가는 것이 응당 당연한 것을요.“

  "언제 떠날 셈이냐.“

  "지금 떠날 것이어요. 제게 비바람과 거센 파도는 두려운 것이 아니니까요.“

 

  그래, 허면…….

 

  "잘 가거라.“

 

  닫힌 문 밖에서는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사흘이 지나자 아이가 말했던대로 비는 말끔하게 멎었다. 언제 그리 성난 폭풍우가 몰아쳤냐는 듯이 하늘은 청명하였고 파도는 잠잠했다.

  그리고 나그네는 바닷가에 놓인 두 명의 사내애를 보았다. 파도에 휩쓸려 저고리가 엉망으로 풀어헤쳐진, 이미 싸늘하게 식어버린 두 아이를 보았다. 나그네는 그 사내애들을 알고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눈앞이 캄캄해지고 머리가 어질하는 듯 하였다.

  나그네는 죽은 듯이 가라앉은 바다를 보았다.

 

  "초아야.“

 

  결국은 네가 그리 데려가고 마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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