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다만 바라옵기를, 용왕님, 용왕님. 소녀를 뭍으로 보내주시어요. 소녀를 뭍으로 보내주시어요. 소녀는 이제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지만, 누군가는 소녀를 기억하고 있을 터이니.
그러니 용왕님, 소녀를 뭍으로 보내주시어요. 소녀는 이제 용왕님의 딸이니 더는 그리지 않아도 좋다, 더는 애태우지 않아도 좋다, 그 말만이라도 전할 수 있도록 해주시어요.
파도 소리는 밀려들었다 멀어지고, 그 파도를 거슬러 거슬러 인어는 헤엄쳐 뭍으로 향했다.
용왕님, 용왕님. 소녀에게 한나절만 두 다리를 허락해주시어요.
교인鮫人
: 바다의 아이
바닷가 마을은 언제나 활기가 넘친다. 갓 잡아온 펄떡대는 생선들을 옮기는 어부들의 힘찬 목소리하며, 여기저기서 상인들의 옷깃을 붙들고 발길을 사로잡으려 애쓰는 호객꾼들의 목소리가 뒤엉켜 마치 파도처럼 넘실넘실 소리가 물결치는 곳이었다.
나그네는 터벅터벅 흙길을 걸으며 왁자한 저잣거리를 휘 돌아보았다. 짭짤한 바다내음이 코 끝에 스쳤다. 이야, 정말로 어촌은 다르군. 나그네는 입가에 미소를 걸었다. 저마다 제 갈 길을 재촉하는 바쁜 걸음 사이를 헤치고 하룻밤 머물 곳을 찾던 나그네는 유난히 소리와 걸음이 모이는 곳을 보았다. 소리가 모이는 곳에는 언제나 이야기가 따르는 법이라. 나그네는 천천히 사람이 모이는 그곳으로 걸음을 옮기었다. 하늘이 도운 것일까, 걸음의 끝에는 아담한 여관 한 채가 놓여 있었다. 본디 여관이란 오가는 여행자만이 근근히 머무는 곳으로, 그리 많은 인파가 모일만한 장소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리도 많은 인파가 모인 것은 기실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운 일이었다. 사내는 여관 앞에 장사진을 이룬 사람 사이를 파헤치고 들어가 소란의 원인을 눈으로 쫓았다.
그다지 반가운 풍경은 아니었다. 어린 계집아이 하나가 흙투성이가 된 채로 여관 주인의 다리에 매달려 싹싹 빌고 있는 모양에 나그네는 인상을 찌푸렸다. 처음에는 그저 매정한 여관 주인이 계집아이에게 모진 짓을 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계집아이의 입에서 나온 대사는 또 어찌나 어처구니가 없는 것인지, 나그네는 그 자리에서 그만 웃음을 터뜨릴 뻔 하였다.
“어르신, 제발요! 제발 한 번만 더 소녀를 때려주시어요!”
이것이 대체 무슨 소리인가. 계속해서 그 경황을 살펴보자니 계집아이는 계속해서 자신을 때려달라 바득바득 매달려 소리를 지르고 있었고, 여관 주인은 곤란한 표정으로 그 아이를 제 다리에서 떼어내려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거 무슨 일이시오.”
결국 나그네는 제 오지랖 넓은 성정을 견디지를 못하였다. 말을 붙이며 다가서자 수십 개의 눈동자가 제게 꽂히는 것을 느꼈다. 나그네는 어색하게 웃으며 삐뚜름한 흑립의 양태를 끌어당기며 모양을 고쳤다.
“무슨 일인지는 잘 알지 못하지만 무어가 문제인지, 이대로라면 포졸들이 몰려와 일이 더 커질 것 같아서 말이오.”
그러자 여관 주인은 잠시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다가 멋쩍은 양 제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실은 저 아이가 방삯을 내지 못하여서 말입니다.”
“그 삯이 얼마요? 내 이 아이를 대신하여 값을 치르겠소.”
그러자 아이의 눈동자와 주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모여든 인파는 웅성대는 소리를 내었고 나그네는 제 품에서 노자를 떼어 주인의 손에 쥐어주었다.
“아무래도 이 어린 아이를 때리는 것은 자네 또한 썩 탐탁치 않은 일이 아니겠소.”
여관 주인은 멍청한 표정으로 나그네를 바라보더니 곧 고개를 푹 수구리고 수 차례를 꾸벅대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으리!’하고 외치는 것이었다. 나그네는 해가 질 무렵 다시 돌아올 터이니 방을 하나 비워두라는 말을 일러두고는 계집아이의 팔을 붙잡아 일으켰다. 아이는 황망한 표정으로 그의 팔에 딸려 몸을 일으키고는 나그네를 따라 저잣거리로 몰려든 그 인파 사이로 흩어져 사라졌다.
“아무리 그래도 그런 정신나간 소리를.”
바닷가가 내려다보이는 야트막한 언덕 위, 나그네는 계집아이와 나란히 앉아있었다. 아이는 당과를 양 볼에 가득 문 채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허나 달리 방도가 없었는 걸요.”
“허면 매를 맞는다고 방도가 생길까. 어찌 그리 우매한 짓을 해.”
“나으리, 지금 소녀를 걱정하여 주시는 것입니까?”
요 잔망스러운 것을 보아라. 나그네는 허, 하고 헛웃음을 뱉었다. 계집아이의 사정이라는 것은 알고보니 꽤나 단순한 것이었다.
계집아이는 장이 열릴 적에 비단을 팔기 위해 예까지 걸음하였다 그리 말했다. 그런 연유로 이 마을에 도착하여 하룻밤을 묵기 위해 그 여관에 머물렀는데, 방삯을 내려 보니 가진 노잣돈이 한 푼도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예까지 들고 온 비단을 내어놓자니 그것은 방삯으로 하기에는 너무 값진 물건이었고 하여 여관 주인의 다리에 매달려 차라리 소녀를 한 대 때리셨으면 한다 그리 애걸복걸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그네는 아직도 그 말을 반신반의 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이 아주 멍청한 짓이라고 생각했다. 설령 여관 주인이 그 소녀를 때린다 한들 답이 나올까. 그저 폭력이 모든 일을 해결하는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아무리 삯이 없다 하여도 요 작달만한 꼬맹이를 때리는 것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닐 터였다.
계집아이는 이제 나그네가 물려준 당과를 다 먹고도 제 열 손가락을 쪽쪽 빨고 있었다. 나그네는 그 어린 것을 내려다보다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허면 이제 어찌할 셈이야.”
“어찌하기는요. 예까지 올라왔으니 엮어온 비단을 전부 팔아치운 뒤에 돌아가야지요.”
그래, 그 비단을 직접 엮은 것이라 이것이지. 나그네는 흥이 동한 얼굴로 둥글게 말았던 허리를 곧게 폈다. 그리고 아이에게 말했다.
“허면 그 비단을 내가 좀 볼 수 있겠나?”
그러자 아이는 고 앙증맞은 입술을 삐죽거리며 제법 귀엽고도 퉁명스레 나그네를 흘겨보는 것이었다.
“나으리가 보신다고 알기는 아십니까.”
“어허, 사람을 무시해도 정도가 있지.”
그러나 아이가 나그네를 그리 보는 것도 이유는 있었다. 나그네는 꽤 양반 흉내를 내는 태를 하고 앉아있었으나 하얀 도포는 낡았으며 말총으로 만든 전립 또한 헤지고 모양이 삐뚤어진 채였다. 햇볕에 그을린 피부는 말끔하질 못하였고 말하는 투에서는 묘하게 가벼운 분위기가 있어 그 똑바른 태만 아니었더라면 영락없이 그저 양반 옷을 걸친 거렁뱅이로 생각해도 좋을 정도였다. 나그네는 그저 오랜 여로에 지친 탓에 몸을 돌볼 여력이 없었다 그리 말하였다. 그러나 아이는 그조차 영 미덥지 못하였다.
비록 뾰로퉁한 얼굴을 하고는 있었으나 아이는 주섬주섬 짐을 풀어내었다. 나그네는 눈 앞에 드러난 휘황찬란한 비단에 넋을 놓고 감탄했다. 손 끝으로 그 결을 조심히 쓸어내니 비단은 매끄럽고도 빛이 나는 것이었다. 색은 바닷물을 고스란히 머금은 양 짙푸르며 깊었고 감촉은 부서지는 파도처럼 보드라웠다. 게다가 얇고도 가벼우며 얽힌 올은 튼튼하여 빠진 데도 없으니 말로만 듣던 교초가 과연 이것인가 하였다.
“거 참 질이 좋은 비단을 가지고 있구나.”
“의외로 보는 눈은 있으십니다.”
계집아이는 앙큼하게도 그리 말하였다. 제법 뽐내는 듯 말하는 태는 칭찬을 들어 뿌듯하기도 한 모양이었다.
“교초가 있다면 이런 것일까 싶구나. 교인들이 짠다고 전설로만 알려진 것인데…….”
“아무렴은요.”
고개까지 끄덕이며 당차게 말하던 아이는 곧 제 입을 틀어막고는 놀란 토끼눈으로 나그네를 보았다. 나그네는 아이의 그러한 표정을 알지 못하는 양, 그렇게 시치미를 뚝 떼고 아이를 보았다. 아이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데룩데룩 굴리더니 곧 히, 하고는 제 말간 이를 드러내보이며 웃었다.
“실은 이것은 나으리께만 알려드리는 비밀인데요.”
그러더니 어깨를 으쓱 들어보이곤 제 몸을 나그네에게 기울이며 퍽 앙증맞게도 소곤소곤 속삭이는 것이었다. 나그네는 그래그래, 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계집아이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한참이나 입술을 달싹이며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모양이었다. 그 모양에 나그네가 싫거든 관두어라, 하려던 찰나였다.
“제가 바로 그 교인입니다.”
나그네는 잠시 계집아이를 보았다. 아이는 키들키들 장난스레 웃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선 팔랑팔랑 바닷가로 향하는 것이었다. 그 모양에 나그네는 사람을 놀리는 것이냐 차마 성을 내지도 못하고 아이의 뒤를 쫓았다. 아이는 다 헤진 짚신으로도 나비처럼 나풀거리며 검은 바위 위를 뛰었다. 나그네는 아이가 혹여라도 발을 헛딛고 넘어져 크게 다칠까 염려스러웠다. 그러나 아이는 울퉁불퉁한 바위 위를 지나 하얀 모래 위로 발을 딛고는 곧 제 짚신도 벗은 채 참방대며 부서지는 백파 위로 깡충깡충 뛰어들었다.
“아해야!”
계집아이는 제 정강이 즈음 바닷물이 찰박이는 바다 위에 서서 나그네를 보며 해사하게 웃었다. 걷어올린 치마 아래로 드러난 맨다리는 그저 희고 뽀얗기만 하였다.
“나으리께선 거짓이라 생각하시겠지요. 어린 계집아이가 당돌하게도 농을 한다고 생각하시겠지요. 허나 사실입니다. 제가 바로 그 교인입니다. 인어입니다.”
나그네는 놀란 얼굴로 아이를 보았다. 그러자 아이는 또 까르르 웃으며 참방대고 더욱 깊은 바다로 향하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그 계집아이가 물 안으로 훅 꺼지듯 사라진 것은 순간이었다. 나그네는 황망한 얼굴로 아이가 사라진 물가에서 넘실대는 바다를 바라볼 뿐이었다.
“나으리!”
아이가 다시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나그네는 마치 한나절은 그대로 못박힌 채 기다린 양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이는 함빡 젖은 얼굴을 하고는 여전히 해사하게 웃고 있었다. 총총 땋아내린 댕기머리는 부서지는 백파처럼 하얗게 빛나고 있었고, 아이의 얼굴은 바다색을 머금은 양 푸르렀다. 계집아이는 천천히 바닷가로 향해왔다. 나그네는 물 안에서 일렁이는 물고기의 꼬리를 보았다. 아이는 실로 교인이었다. 말로만 들었던, 인어였다.
아이는 다시금 뭍으로 걸어나왔다. 함빡 젖은 옷을 두 손으로 꾹꾹 쥐어짜며 걸어나왔다. 하얗게 부서지던 머리칼은 탐스러운 검은 빛이 되었고 파랗게 빛나던 얼굴은 다시금 생기가 도는 하얗고 말간 피부가 되었다. 물고기의 꼬리는 두 갈래로 갈라지더니 곧 희멀건 두 다리가 되었다. 나그네는 그 모든 것을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제 눈을 마주하고 웃어뵈는 이 어린 계집아이는 실로 놀라운 존재였다.
“어찌 그리 놀란 표정을 하십니까?”
아이는 천연덕스레 웃고는 나그네의 곁을 스쳐지났다. 아까까지 앉아있던 바로 그 자리로 돌아가 오도카니 앉아선 방긋방긋 입꼬리를 끌어올리곤 예쁘게 웃으며 나그네를 바라보는 그 얼굴을 보자니 나그네는 웃음조차 채 나오지를 않았다.
“그래, 아해야. 내가 네 비밀을 하나 알았으니 나도 네게 내 비밀을 알려주는 것이 도리에 맞겠지.”
나그네는 그리 말하며 아이의 곁에 가 앉았다. 두 사람은 다시금 나란히 언덕 위에 앉아 바다를 보고 있었다. 계집아이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말똥말똥 나그네를 보았다. 호기심 어린 눈동자가 영롱하게도 빛나는 모양에 나그네는 제 봇짐을 풀어 그 안을 훤히 내보였다.
봇짐 안이래도 특별히 대단할 것은 없었다. 여분의 신 한 켤레와 문방사우, 용도를 알 수 없는 잡동사니들과 몇 첩의 약, 약재, 그리고 낡은 서책 한 권이 전부였다.
“나으리께선 도대체 무얼 하는 분이십니까?”
나그네는 그저 그윽하게 웃으며 그 봇짐 가운데서 서책을 꺼내었다. 아이는 의아한 얼굴로 서책과 나그네의 얼굴을 번갈아보았고, 나그네는 씩 웃으며 아이의 앞에서 서책을 펼쳐보였다.
“추이꾼이지.”
나그네의 말에 아이가 펄쩍 뛰었다.
“나으리께선 제가 영 바보 천치인줄 아십니다!”
그러더니 재잘재잘 바쁜 목소리로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내는 것이었다.
“추이꾼이라니요, 천부당만부당한 말씀이셔요! 소녀가 나이도 어리고 뭍의 일에도 어리숙한 것처럼 보이니 나으리께서도 저를 속이시려는 것입니까? 허나 절대로 뜻대로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소녀도 추이꾼이 전부 베갯머리 이야기인 것을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러자 나그네는 아이의 얼굴을 지긋이 바라보며 한쪽 눈썹을 삐뚜름하게 치켜올렸다.
“호오.”
동그랗게 입술을 만 사이로 나그네가 흥미로운 듯이 목소리를 흘렸다.
“그것이 교인에게 들을 말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아이는 그대로 입을 꾹 다물었다. 그것은 분명히 옳은 말이었다. 계집아이는 교인이었다. 게다가 방금 제가 직접 나그네에게 그것을 증명하기까지 하였다. 나그네는 아이가 속임수를 썼다고 생각하지 않고 저가 보인 그대로 아이의 말을 오롯이 다 믿어주었다. 아이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설령 직접 보았대도 속임수를 쓰는 것이 아니냐, 어른을 놀리는 것이냐, 그리 윽박지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이는 한층 누그러진 눈으로 나그네를 보았다.
“참말이십니까?”
“아무렴.”
그리 말하며 나그네는 낡은 서책을 펼쳐보였다. 계집아이는 그 안에서 이리저리 뒤엉킨 붓선이 그려내는 기이한 형상들을 보았다. 때로는 꽃잎이었고, 때로는 짐승이었다. 때로는 듣도 보도 못한 기묘한 모양을 하고 있는 그림이기도 하였고, 그 어느 것이든 그림의 곁에는 빼곡하게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나그네는 입꼬리를 당겨 웃었다. 추이록. 그리 대꾸하자 아이의 눈동자에 호기심이 서렸다. 추이록. 입술 안에서 그 단어를 곱씹었다. 낯설지만 어쩐지 귀에 익은 것만 같은 단어였다.
“추이록이 무엇입니까?”
그리 물었더니 나그네는 팔락팔락 책장을 넘기던 손을 멈추고 아이를 보았다. 아이는 나그네와 눈을 맞추었고 나그네가 고갯짓을 하였다. 그 고갯짓에 따라 다시 서책으로 손을 내리자 나그네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그 끝에 그려진 그림이 보였다.
교인이었다. 물고기의 꼬리와 사람의 상반신을 가진 이물의 그림이 거기에 그려져있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 옆에는 무어라 글자가 적혀 있었으나 아이는 글을 읽을 줄 몰랐다.
“추이록이란 추이꾼들의 학술서와 같은 것이지. 여기에 서술된 모든 이물은 추이꾼들이 보고, 듣고, 겪은 것들이야. 추이꾼들은 때때로 모여 서로가 그간 겪은 이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연구서를 공유하곤 하는데, 그것들이 모인 기록이 바로 이 추이록이다.”
아이는 그것이 퍽이나 신기하고, 또한 즐거운 듯 하였다.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렇습니까, 하고 대답하는 입술이, 눈빛이 딱 그 나잇대의 어린애와 같이 총명하고도 반짝이는 것이었다. 나그네는 그 얼굴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그래, 여기 교인에 대해서도 적혀있구나. 나그네는 손끝으로 글자를 하나하나 쓸어내리며 아이에게 교인에 대한 기록을 읽어주었다.
교인. 바다 깊은 곳에 살고 있는 상반신은 사람의 모양을, 하반신은 물고기의 모양을 한 생물. 인어라 부르기도 한다. 교인이 울면 그 눈물이 진주가 된다고 알려져 있으며 스스로 짠 직물, 교초를 뭍에 올라와 팔기도 한다. 그러나 흔히 알려진 이름에 비해 마주치기는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고 그들이 사람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서도 알려진 바가 없다.
“시시합니다. 대단하게 적혀있는 것은 하나도 없잖아요?”
“그렇지. 우리는 각자 서로가 보고 겪은 것을 적고, 그 내용을 서로 주고받는 것이니 마주치지 못한 존재에 대해서는 이리도 두루뭉술하게 적혀있을 수밖에.”
“허면 나으리, 여기에 제 이야기도 적을 것입니까?”
나그네는 계집아이를 보았다. 동그란 눈동자가 즐거운 듯이 웃음을 머금었다. 잔뜩 기대하고 있는 표정을 보자니 도통 외면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고, 나그네에게는 이 또한 좋은 경험이기도 하였다. 아니라 답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나그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야기를 더 들려줄테냐?”
“물론이어요!”
아이는 자신의 이야기가 마치 어린애들 구전동화라도 되는 것처럼 즐거워했다. 박수까지 쳐가며 까르르 웃는 모양에 나그네는 아이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허면 자리를 옮겨야겠구나. 여기서 붓을 들기에는 바람이 세차고 공기가 짜기만 하니 말이다. 그러고는 두 사람은 짐을 챙겨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걸음이 향하는 곳은 두 사람이 처음 만났던 바로 그 여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