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익, 삐익―.
겨울새 한 마리가 섧게 우는 밤이었다. 여인은 짚신을 꿰어 신고 마당으로 나왔다. 두터운 솜이불을 덮은 양, 하늘은 온통 먹빛이었다. 달빛조차 새들지 않는 그 어둠 속에서 여인은 뽀오얀 숨을 내뱉었다. 하아……. 흩어지는 입김이 구름과도 같았다. 늘어뜨린 속눈썹에 영근 눈물이 차올라 떨어질 듯하였다.
사박, 침묵 새로 번지는 그 간지럽고 살가운 소리에 여인은 고개를 들었다. 아지랑이처럼 흔들대며, 꽃잎처럼 사뿐히 내려앉는 그것은.
삐이익―.
겨울새가 울었다.
조운凋雲 : 시드는 구름
나그네는 싸리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야트막한 초가집은 허름하고 조용하였으나 분명하게 사람 내음이 풍겨왔다. 나그네는 비뚤어진 갓을 고쳐잡으며 모가지를 주욱 빼어 울타리 안을 기웃대었다.
“뉘십니까?”
나그네의 등 뒤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바람에 나그네는 호들갑스럽게 놀라며 몸을 홱 돌리다 언 땅에 발을 헛딛고야 말았다. 콰당! 제법 묵직한 소리와 함께 나그네는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어머나. 여인의 작은 목소리에 나그네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나그네는 말간 얼굴이 앳된 여인을 보았다. 그이는 무명저고리를 입고 명주실마냥 고운 머릿단을 쪽진 채로 대소쿠리에 하얗게 얼어버린 감자 두서너 알을 담아들곤 서 있었다. 장옷도 채 걸치지 않았으나 곧게 펴고 선 태는 양반네 규수마냥 품위가 흘렀고 데굴데굴 사위를 살피는 눈동자에는 그 차림새에 어울리지 않게 총기가 넘쳤다. 나그네는 영 어설픈 모양으로 눈을 반쯤 접으며 웃어보였다.
“하…하하. 지나가는 과객이올시다.”
나그네가 엉덩이를 털며 일어나자 낡은 도포자락이 가볍게 펄럭였다. 그 하는 양을 보던 여인은 피어나는 능소화마냥 수줍게 웃어뵈었다.
“어디 다치신 곳은 없으십니까.”
“하하, 물론이오. 초면에 이리 추태를 보였구려.”
넉살 좋게 웃는 낯에 여인은 제 입가를 가리며 소녀처럼 키들댔다. 그러더니 곧 두 눈을 댕그랗게 뜨고는 나그네에게 물었다.
“헌데 어찌 이 앞에서…….”
그러자 나그네는 아, 하고 놀란 소리를 하더니 다시금 헤프게 웃어보였다. 하하, 사실은 그것이 말입니다.
이제 갓 대한을 넘긴 날씨는 여즉 살을 에는 듯이 차기만 하였다. 나그네도 여인도 걸친 것이라고는 도포와 무명저고리가 전부였으니 어찌 그 추위를 감히 견뎌낼 수 있을까. 여인은 벌겋게 달아오른 나그네의 콧잔등을 보곤 낮게 웃었다. 그러더니 싸리문을 활짝 열어젖히며 말하는 것이었다.
“바람이 찹니다. 혹여 가시는 길이 급하지 않으시다면 우선은 안으로 드시지요.”
나그네는 염치라곤 없는 사람인 양 호방하게 웃으며 사양 않고 마당으로 들어섰다. 여인은 그 뒤를 종종걸음으로 따라 들어서더니 대소쿠리를 아궁이 곁에 내려놓고는 또 종종걸음을 걸어 사랑채를 환히 열어젖혔다. 나그네는 마지 저가 이 댁 바깥양반이라도 된 양 뒤뚱뒤뚱 거스름 떠는 모양으로 툇마루에 걸터앉았다. 휘 둘러본 마당은 몇 사람의 가족이 살기에는 좁은 감이 있었으며 활짝이 열린 문 너머의 사랑채는 온기가 없이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그것이 도통 평범한 경우가 아니라는 것을 그는 익히 알고 있었다.
“무례한 질문일지 모르오만, 혹 바깥양반은?”
여인은 살풋 웃었다. 순간 나그네는 자신의 감이 제대로 들어맞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인의 목소리는 나붓이 내려앉는 나비 걸음마냥 고아했다.
“짚신을 기워 장에 내다파는 봇짐장수였습니다.”
은쟁반에 옥구슬이 구른다면 이리도 고운 소리를 낼까. 청아한 음성에 나그네는 고개를 주억였다. 여인은 조곤조곤 마치 싯귀를 읊는 양 그리 자박하게도 설운 이야기를 하드랬다.
입동을 갓 넘긴 무렵, 그는 꼬박 밤을 새워 기워놓은 짚신을 둘러메고 집을 떠났다. 이번에는 두 손 가득 떡과 고기를 들고 오겠다며 여인과 단단히 약조를 한 뒤였다. 나날이 길어만 지는 겨울밤도 능히 넘어 오리라, 그 고운 얼굴에 노을 드리우기 전에 반드시 돌아오리라. 그런 약조 또한 굳게 매어놓은 다음이었다. 여인은 그 멀어지는 등이 점이 되어 사라질 적까지 그에게 손을 흔들고 또 흔들었다. 연모하는 서방님 무탈히 다녀오시라며 찬 바람에도 몸을 내어놓고 그를 배웅했다.
그러나 보름이 지나고 달포가 지나도록 그이는 돌아올 줄을 몰랐다. 건넛집 아낙은 그이가 다른 여인과 눈이 맞아 현모양처를 내버리고 오질 않는 것이라는 모진 소리를 하였고 뒷집 새댁은 그이가 밤길을 걷다 범에게 화를 당했다는 흉흉한 소리를 하였다. 여인은 그 모든 뜬소문에도 귀를 막았다. 싸늘하게 얼어붙은 날씨에 짚신이 잘 팔리지를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더 멀리멀리 다녀오느라 돌아오는 여정이 길 뿐인 것이었다. 여인은 그리 믿었다.
여인이 수태한 것은 머지않은 일이었다. 여인도, 건넛집 아낙과 뒷집 새댁도, 마을의 그 누구도 여인이 어떻게 아이를 배게 되었는지 아는 이가 없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아비를 잃은 여인이 뱃속에 생명을 품었다는 것이었다. 여인은 입덧으로 한참을 앓았다. 그러나 누구도 여인에게 온정을 베풀지 않았다. 지아비를 잃은 여인이 수태를 하였으니 감히 하늘같은 아비를 저버린 천하고 부정한 계집이라, 주변에서는 그이에게 손가락질했다. 여인은 그 억울하고 원통한 사연을 하소연하였으나 지아비 없이 아이를 밴 여인의 이야기를 믿으려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멸시와 박해로도 모자라 어느 사내들은 여인을 희롱하였다. 그 칼바람보다 차가운 인심에 떠밀려 여인은 결국 마을 바깥으로 밀려나 인적 드문 산길 어귀에 혼자 거처를 꾸리게 되었다. 언제 누가 살았는지도 알 수 없는 낡은 초가집에서, 그렇게 홀로.
“그리하여 이런 곳에서 홀로.”
“예, 그리 되었습니다.”
여인은 그저 가만히 미소를 머금었다. 그저 그 뿐이었다. 처연한 사연을 입 밖에 내면서도 서럽지 않은 양 그저 평이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도리어 그런 탓에 더욱 안타까웠다. 돌아오지 않는 지아비를 정승마냥 박혀 기다리는 모양이 그러했고, 아이를 밴 중에 마을 밖으로 쫓겨나야만 했던 사연이 그러했으며 그런 중에도 그저 곱게 미소짓는 얼굴이 그러했다.
“허면 아이는…….”
“이제 한 달에서 두 달 남짓일까요.”
나그네는 밭은 숨을 뱉었다. 무어라 이를 말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것이 문득, 나그네의 의중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여인의 눈동자가 나그네를 향했다. 나그네는 잠시 말을 멈추고 그 영롱한 눈동자를 보았다. 그러더니 제 봇짐을 풀기 시작했다. 여인은 나그네의 곁에 앉으며 봇짐 안에서 나올 그 무언가를 기대하는 양 눈을 빛냈다. 나그네는 봇짐 안에서 끝이 닳아버린 서책을 꺼내었다. 여인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서책과 나그네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조운, 이라 사료되오.”
여인의 눈동자에 의문의 빛이 스쳤다. 조운, 이요. 나직한 목소리에 나그네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펼쳐내는 서책 안에는 빼곡하게 들어찬 글자와 온갖 기기묘묘한 형상의 그림이 자리하고 있었다. 나그네는 서책을 몇 장인가 펄럭이다 멈추었다.
“혹 나으리께서는, 추이꾼이십니까.”
나그네가 번뜩 고개를 들었다. 여인은 제법 진중한 얼굴을 하고선 나그네와 눈을 맞추었다. 허, 하고 나그네가 숨을 뱉었다. 이 당돌한 여인을 어찌 해야 좋을까. 그리 말하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어린 아해들의 잠자리 이야기에나 나올 법한 것을 믿으시오?”
“허나 이리 제 앞에 계시지를 않습니까. 눈 앞에 두고도 믿지 않을 정도로 어리석은 여인은 아닙니다.”
그러자 나그네는 곧 파안대소 하는 것이었다. 여인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보았고 나그네는 한참을 호탕하게 웃더니 여즉 갈무리하지 못한 함박웃음을 잔뜩 베어 물고는 말을 이었다.
“그리 여겨주니 감읍할 따름이오.”
“나으리께선 웃지 않으셨습니까.”
“그 또한 감사한 탓이라오.”
그러더니 나그네는 허허실실 웃으며 즐거운 양 지껄여댔다. 그래, 그 추이꾼이라는 것이 어린애 잠자리에서나 들려줄 법한 케케묵은 이야기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것은 조선 팔도를 달랑 등짐만 메고 떠도는 이들의 이야기인데, 더러는 약을 지어다 팔고 더러는 공예품을 만들어다 파는 봇짐장수나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추이꾼이라는 양반들이 재미있는 것은, 도저히 그 어느 의원도 고쳐내지 못한 병을 단박에 뚝딱 고쳐내기도 하고 아무도 해결하지 못한 기묘한 일들을 아주 대수롭지 않게 해결하기도 하는 것이었다. 무당이냐 하면 그것은 아니었고 의원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저 그들은 그네들끼리 이따금 마주치면 닳을 대로 닳아서 헤진 서책을 넘기며 그간 제가 겪었던 기기묘묘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하였다. 이를테면 일종의 학술 집단이었다. 그러나 그들 또한 조선 팔도에 추이꾼이 전부 하여 몇이나 되는지는 알지 못하고 그저 알음알음 건너건너 몇몇을 아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추이꾼이 대체 무엇에 대한 학문을 연구하느냐 하면,
“그야말로 이물異物에 대한 것이오.”
나그네는 그리 말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여인은 눈동자를 데룩데룩 굴리다 ‘이물이요.’하고는 말았다. 나그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허면 무엇입니까. 그 조운, 이라는 것은요.”
여인은 물었다. 나그네는 헛기침을 하며 목을 다듬었다.
“구름 또한 살아있다는 것을 알고 계시오?”
여인은 가만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구름이 살아있다니, 마치 우짖는 산새나 뛰노는 아이처럼 구름에도 그러한 생명이 있다니. 나그네는 그윽하게 미소를 머금었다. 그가 오른손을 들어 휘 하늘을 젓는 모양에 소맷부리가 구름마냥 펄럭이며 선을 그었다.
“구름은 저들끼리 떼를 지어 흘러간다오. 마치 기러기 떼처럼 말이오. 그렇게 흐르고 흘러 팔도를 휘돌아온 나이 많은 구름들은 겨울이 되면 시들어 땅으로 돌아온다오. 사람이 숨을 거두면 흙이 되는 것처럼 이 세상을 뒤덮은 그 모든 생生은 마지막 순간에는 모두가 그렇게 땅으로 돌아오는 법이오. 시든 구름 조각은 내리는 눈송이에 섞여 그렇게 땅으로 돌아온다오. 그것이 조운이오. 그리고 아마도 그대는, 그 조운의 한 조각을 삼킨 것으로 사료되는 바요.”
“조운을 삼키면 처녀가 수태한다는 것입니까.”
물어오는 목소리는 전에 없이 다급한 데가 있었다. 그 마음을 영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 나그네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아니라 짐승에게 그런 일이 있는 것은 보았소. 그러나 사람에게도 같은 일이 있을 줄은…….”
그러더니 나그네는 펼쳐진 서책의 한 귀퉁이를 짚었다. 손가락 끝으로 글자를 훑던 그이는 곧 서책을 덮어 제 봇짐에 다시 넣어두더니 주섬주섬 일어설 채비를 하는 것이었다. 여인은 그의 옷자락을 붙들었다. 나그네가 여인을 바라보았다.
“허면 저는 어찌해야 하는 것입니까. 어찌 아무런 말씀도 놓질 않고 떠나려 하십니까. 조운을 삼키면요, 그러면 어찌 되는 것입니까.”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소. 아이를 낳을 즈음이 되거든 다시 오겠소.”
아이는 아주 빨리 자랄 것이오. 나그네는 그렇게 말을 남기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돌아보지도 않고 그대로 싸리문 밖으로 그리 멀어졌다. 여인은 멀어지는 나그네의 등을 한참이나 얼어붙은 채로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