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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소에서 살아나왔을 때만 해도 행복 시작이라 생각했다. 어느 러시아 매춘부의 도움을 받아 한국으로 향하는 배에 올라탔을 때만 해도 고향에 가면 모든 게 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조선땅에 발을 디디는 순간 모든 건 지옥이었다. 군인이 준 빨간 돈은 휴짓조각이었고, 사람들은 그녀의 모습에 괴물이라며 돌팔매질을 했다. 그들에게 이유 없이 맞을 때면 지옥 같던 다다미방이 살기 좋았다고 생각이 들었고, 그녀는 그런 자신에게 매일 화가 났다. 하지만 살고 싶었다. 죽고 싶지 않아 그 불구덩이에서 살아나왔는데, 이렇게 죽을 수 없었다. 그래서 모든 게 사라졌으면 했다. 모든 사람이 죽어버렸으면 했다.
그녀의 기도가 통하기라도 한 것인지 빨갱이가 나타났다며 사람들이 남으로 남으로 내려갔고, 그녀는 그들을 피해 북으로 북으로 올라갔다. 북으로 향할수록 빈집이 늘어났고, 마을엔 사람이 없었다. 그녀는 그녀의 소원이 이루어진 것 같아 너무 좋았다. 발 뻗고 잘 수 있는 집이라 좋았고, 그녀에게 돌팔매질하지 않는 사람이 없어서 좋았다. 그녀는 처음으로 편히 잠이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많은 사람의 발소리에 놀라 유월은 몸을 일으켰다. 숨을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사이 문이 열리며 군인이 그녀에게 총을 들이밀었다. 러시아사람처럼 코가 큰 서양인 같은 사람이었다. 유월은 재빨리 납작 엎드려 얼굴을 가리고 늘 외쳐야 했던 말을 습관처럼 외쳤다.
“징그럽게 생겨서 죄송합니다. 살려주세요. 징그럽게 생겨서 죄송합니다. 살려주세요.”
유월은 눈앞에 그가 떠나갈 때까지 쉬지 않고 외쳤다. 근데 그자는 가지 않고 오히려 그녀 앞에 앉아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곤 주머니에 있던 손전등을 꺼내 그녀의 온 몸을 살피며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말을 했다. 유월은 그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을 안쓰러워하며 걱정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펑펑 흘러나와 멈출 수 없었다. 복받친 설움이 눈물로 모두 흘러나오고 있는데도 그녀의 몸에 남은 상처들이 아프지 않았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