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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일반/역사
죽이고 싶은 자들
작가 : hisei
작품등록일 : 2022.1.21

VIP연쇄살인이 벌어진다. 그러나 왜 VIP가 죽어 나가는지 방향을 잡지 못하던 중 과거 일본에서도 VIP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진 걸 알고 조사차 일본으로 향하게 된다. 그리고 조직을 배신한 야마모토라는 자가 그들 앞에 나타나게 되는 데...

 
19. 타로(太郞)와 유리코(百合子)
작성일 : 22-01-21 19:02     조회 : 165     추천 : 0     분량 : 7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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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

 굳게 문이 닫힌 현양장(玄釀場)에 나란히 앉아있는 조음과 호림에게 현양장 매니저 타로(太郞)가 차를 가져다줬다. 호림은 그가 다가오길 기다렸다는 듯 계속 참고 있던 질문을 그에게 던졌다.

 “언제부터 알았어요?”

 “재성씨가 사라진 걸 말입니까, 당신들이 여기에 온 걸 말입니까?”

 “둘 다요.”

 “재성씨가 언젠가 사고를 칠 거라는 건 짐작했습니다. 그게 오늘 일 줄 몰랐던 거죠. 당신들이 여기에 올 줄 알았던 건 재성이 수상하다고 마마에게서 연락이 왔을 때입니다.”

 “사고 칠 줄 알았다는 건 혹시 재성이 처음 일본에 온 그날부터인가요?”

 “네. 이미 한 번 사고를 쳤잖습니까. 여자한테 빠져 경로 이탈을 했었죠. 나루미씨가 일본에서 처음 전시회를 열었을 때가 일본에서 마지막 처단자를 처리하고 한국으로 이동하려는 날이었습니다. 솔직히 그때 사라질 줄 알았는데 용케 큰 문제 없이 한국으로 가서 더 수상하게 생각했습니다.”

 “수상할 게 뭐가 있어요. 우리를 가족이라 생각하니까 간 거죠.”

 “가족.... 당신들도 가족이라 생각합니까?”

 “그게 무슨 말이에요?”

 “전 가족이라 생각한 적이 없어서 여쭈어보는 겁니다. 저는 사쿠라(櫻)를 지키기 위해 여기에 있는 거지, 사쿠라가 위험에 처한다면 과감하게 그녀를 데리고 떠날 겁니다.”

 조음은 두 사람의 대화를 나누는 동안 타로를 바라보며 그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그의 나이 9살 무렵이었다. 말을 하지 못한다고 길에 버려져 떠돌던 그는 날이 갈수록 조절이 안 되는 힘의 세기에 걸인들 사이에서도 괴물 취급을 받아 모든 것을 숨기고 살아갔다. 하지만 생존을 위해 괴롭힘을 받는 것도 지쳐 세상을 떠나려 하던 날, 마마가 강물로 뛰어내리던 그를 구해 호적을 만들어주었다. 가짜 호적이었지만 그는 처음 가져보는 그의 이름과 호적이라는 종이 한 장이 너무 기뻤다. 그 종이로 지옥 같던 중국 땅을 벗어나 일본이라는 새로운 땅에 도착한 것도 좋았다. 그렇게 좋은 날 유리코와 타로를 만났다. 둘은 감정도 없는 사람처럼 매우 차가웠다. 일을 할 때 유리코가 환하게 웃는 것을 보고 <아, 웃을 줄 아는 사람이구나> 생각했었다. 하지만 타로는 웃는 걸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를 만났을 당시 자위대 특수작전군 자위관이어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하지만, 타로가 조음의 훈련을 맡겼던 타로의 후배는 같은 부대원이었음에도 조음을 가르칠 때를 제외하고는 사적인 자리에서 잘 웃었다. 그땐 자주 못봐서 웃는 걸 볼 수 없다 생각했었다. 그가 제대한 후에 타로는 매일 조음을 훈련 시켰다. 그의 괴물 같은 힘을 이전의 스승은 못 이길 때가 많았지만, 타로는 어떻게 해도 이기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조음은 악착같이 연습했다. 그가 그를 이기는 순간 그가 어떤 방식으로라도 미소를 짓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를 처음 이긴 날에도 그는 웃지 않았다. 그때 조음은 깨달았다. 그에게 말이 없듯 타로에겐 미소가 없다고 확신했다.

 

 “우리한테 이야기를 해줬어야 해요!”

 타로와 이야기를 하던 중 호림이 버럭 화를 냈다. 그 순간 닫혀 있던 현양장의 문이 열리며 게이코로 치장한 유리코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들어오자마자 호림과 조음이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게이코일 때는 상당히 밝은 미소를 띄고 있는 그녀지만 호림과 조음을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은 상당히 화가 나 있었다.

 “쉽게 화를 내지 말라고 가르쳤거늘 일을 그르칠 참이야?”

 유리코의 다그침에도 호림은 지지 않고 그녀를 노려봤다. 호림은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아버지라는 작자가 어머니를 매춘하는 것도 모자라 그녀를 매춘했을 때도 그랬고, 엄마가 죽고 난 후 더 이상의 매춘을 거부해 두들겨 맞을 때도 그랬고, 유월이 그녀를 구하기 위해 그의 아버지를 죽이는 그 순간에도 그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자신의 분노를 표출했다. 일본으로 와 게이샤 교육을 받을 때도 유리코에게 많이 혼났지만 절대 꺾이는 일이 없었다. 결국 유리코가 그녀를 게이샤가 아닌 오이란으로 키운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상대를 가리지 않고 머리 위로 오르려는 근성이 딱 오이란이라고 했다. 정말 유리코는 보는 눈이 있었다. 호림의 그 눈빛과 태도는 VIP들을 매료시켰다. 타깃에게 접근이 쉬웠던 것도 모두 호림의 그 눈빛 때문이었다.

 “안거라. 타로, 물.”

 타로는 자리를 피해 바(bar)로 향했고, 호림은 그제야 자리에 앉았다.

 “말해주셨어야 해요.”

 “말해주지 않더라도 같이 산다면 알았어야지. 수상한 행동을 하고 있는데 그걸 몰랐다는 건 너희 문제 아닌가? 그래서 감정이 앞서면 안 된다는 거야. 넌 눈빛은 좋은 데 감정이 앞서서 늘 일을 망치지.”

 “그런 적 없어요!”

 “그런 적 없는 데 한국 형사가 일본에까지 들어왔을까?”

 유리코의 말에 조음과 호림이 놀라 그녀를 봤다.

 “재성이 그들과 있는 거 확인했다. 분명 우리 계획을 누설하겠지. 그럼 내가 잡혀들어가는 건가? 처음 계획대로라면 조준과 네가 함께 동행 해서 우리가 함께 일을 처리해야 하는데, 너가 일을 망치는 바람에 조준이 이곳에 오질 않았고, 이 계획은 나와 타로 둘이서 진행 해야 하는 데 결국 우린 너희 때문에 모든 일을 망치게 되겠네??”

 “재성이 우리를 배신할 리 없어요!”

 “너희의 문제가 뭔지 아니? 믿는다는 거야, 사람을. 지 아비한테 그런 일을 당하고도 사람을 믿니? 자기 부모한테 버림을 받고도 사람을 믿어? 하물며 너희를 구조한 마마가 너희에게 이런 일을 시키는 데 마마도 믿는 거니?”

 “언니는 마마를 믿지 못한다는 건가요?”

 “믿은 적이 없는데? 난 마마와 비즈니스 관계지 단 한 번도 가족인 적이 없어. 날 팔아넘긴 아비를 죽여줬기에 그 빚을 갚으려고 함께 한 것뿐이야. 살다 보니 죽이고 싶은 자들도 많아져서 지금까지 온 것도 있지. 기브 엔 테이크라고나 할까?”

 “당신은 마마의 아픔을 몰라요.”

 유리코는 웃었다. 가소롭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마마의 얼굴을 봤니?”

 그녀의 질문에 호림은 할 말이 없었다. 얼굴을 본 일은 없었다. 그녀의 뼈가 드러난 손은 본 적이 있으나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여기에 얼굴을 본 자가 있나? 우리의 마마라면서 그 여자는 대체 왜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거지?”

 “언니도 마마 몸을 봤으면 알 거 아니에요! 그 자식들 무슨 짓을 했는지! 마마가 얼마나 고통스럽게 사는 지! 왜 지금까지 아픈지! 굳이 얼굴을 봐야 해요? 얼굴을 봐야 우리 마마인 거에요?”

 유리코는 호림을 빤히 봤다. 게이코 분장을 한 상태라 더 표정을 알 수 없었다. 타로가 가져다 준 물을 마시는 유리코는 화를 참지 못하고 부들부들 떠는 호림과 비교가 될 정도로 평온했다.

 “그렇게 애정 하는 사람인데 마마를 떠날 생각을 했나?”

 호림은 그녀의 마음을 읽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유리코는 그녀의 반응을 보고 피식 웃었다.

 “넘겨짚었는데 제대로 맞았군. 그러니까 넌 안 된다는 거야. 이래서 어린애들한테 큰 일을 맡기면 안 된다니까.”

 유리코는 호림의 상태를 살피며 그녀를 자극했다. 그녀만이 호림을 다루는 방법을 잘 알고 있기에 그녀는 그 방법을 쓰고 있었다.

 “내가 처리할 거예요.”

 “뭘? 설마 내일 라스트 파티를 네가 하겠다는 건 아니지? 아서라, 망치지 말고 그냥 돌아가. 너를 애첩으로 삼은 조준이란 놈이랑 떡을 치든 도망을 치든 죽이든 네가 알아서 하고. 내 일까지 망치지 마.”

 “언니보다 잘하는 거 보여줄 거예요.”

 유리코는 크게 웃었다. 그게 호림을 더 자극했다.

 “가소롭긴. 그래. 보여줘 봐. 네가 내 머리 위를 올라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유리코는 자리에서 일어나 타로에게 갔다.

 “타로, 호스트한테 전해 일본 최고 게이샤를 뛰어넘는 오이란이 간다고!”

 그러고는 현양장 뒤에 마련된 분장실로 가면서 유리코는 큰 소리로 깔깔 웃었다. 호림은 그 때문에 더 화가 나는지 현양장을 박차고 나갔다. 조음도 타로에게 인사를 하고 그녀의 뒤를 따랐다. 창가에 서서 그들의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타로는 처음 유리코를 만났던 때를 회상했다.

 

 그날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아침이었다. 시코미들이 일찍 일어나 집안을 청소하는 소리에 깬 타로는 다다미방에서 밍기적거리며 바깥소리에 집중했다. 시코미들이 재잘거리며 떠드는 소리가 새소리 같아서 타로는 그 소리를 들으며 밍기적거리는 아침시간을 참 좋아했다. 그런데 평소와 다르게 바깥이 소란스러웠다. 타로는 다다미방과 하나가 된 몸을 일으켜 방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 타로의 방 앞 마루를 닦고 있던 시코미가 잽싸게 일어나 그에게 허리굽혀 인사했다. 타로와 나이차가 크게 나지 않는 아이였지만, 하나구치(春口) 오키야 오카상의 아들이자 오키야 후계자로 지정된 그에게 매우 깍듯했다.

 - 아토토리상(跡取りさん) 일어나셨어요.

 - 왜 이렇게 소란이냐?

 - 오키야(置屋)에 새로 견습생이 들어올 모양이에요.

 - 그런 얘기 못 들었는데?

 타로는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그의 어머니는 그가 말을 떼기 이전부터 오키야의 대를 이어야 한다며 오키야의 모든 업무를 그에게 알려주고 가르쳐 주었다. 그가 모르고 있었다는 건 갑작스러운 방문이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타로는 곧장 오카상의 방으로 향했다. 일찍 일어난 게이코를 포함한 마이코, 시코미들이 옹기종기 오카상 방문 앞에 모여 있었다. 그가 방에 가까워지자 게이샤들이 홍해가 갈라지 듯 뒤로 물러났다. 타로가 문을 벌컥 열려고 하자 한 여인이 그를 막았다. 하나구치(春口) 오키야의 상급 게이코인 사츠키(五月)였다. 그녀는 이른 아침인데도 매우 단정하게 가꾼 상태였다.

 - 알고 있었어요?

 - 아니. 갑자기 새벽부터 찾아왔다고 들었어.

 - 들어갈 거에요?

 - 들어가려 했는데 기다리라 하셔서 대기 중이야.

 그때 방안에서 오카상이 사츠키와 타로를 찾았다. 시코미들이 문을 열어주자 오카미상의 다다미방이 한눈에 보였다. 가장 상석에 앉아 있는 오카상과 그녀 앞에 마주 앉아 있는 검은 천을 뒤집어쓴 사람이 눈에 띄었고, 그 옆에 어린 여자아이가 보였다. 방문이 열리면 보통 어린아이들은 문이 열리는 쪽을 돌아보기 마련이었지만, 검은 천을 뒤집어 쓴 사람은 물론 어린 여자아이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들이 방으로 들어서자 검은 천을 뒤집어쓴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 굽혀 인사를 하고 방 밖으로 향했다. 그녀가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타로는 방문이 닫히고 나서야 오카상 곁으로 가 앉았다. 아이는 고개를 숙인 상태라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 여기는 아토토리인 타로(太郞)고, 우리 오키야의 최고 상급 게이코 사츠키다. 인사 드려라.

 - 나나오 유리코(七尾 百合子)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어린 나이임에도 격식을 갖추어 인사를 한 여자아이는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타로와 사츠키를 봤다. 그 모습에 타로는 눈이 부셔 그녀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정원 쪽 문이 열려 그 틈으로 들어오는 떠오르는 태양의 햇살 때문인지, 아니면 그녀에게서 나오는 후광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타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타로, 인사 안 하느냐?

 오카상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인사를 하려 했지만, 타로는 아이에게 인사를 하면서도 정신이 여전히 혼미했다. 그의 마음을 눈치챈 듯 사츠키가 입을 가리며 짧은 웃음소리를 내고는 유리코에게 인사를 했다.

 - 오네상(御姉さん)이라 부르면 돼. 앞으로 잘 부탁한다.

 사츠키와 오카상이 아이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타로는 아이에게 눈을 뗄 수 없었다. 첫사랑이었다. 그의 마음을 송두리째 빼앗아간 유일한 여자였다.

 

 타로는 가게 문을 완전히 걸어 잠그고 분장실로 향했다. 화장을 지운 그녀의 모습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모든 걸 버리고 그녀를 선택한 것을 그는 후회하지 않았다.

 “오늘도 반한 건가?”

 손님에게는 농담도 잘하는 유리코였지만, 타로에게 농담을 한 적은 없었다. 그런 그녀가 처음 그에게 던진 농담이었지만, 타로는 그녀의 불안함이 느껴져 더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의 미소는 그를 더 멋지게 만들었다.

 “안 반할 수가 있나?”

 유리코는 그의 미소가 참 좋았다. 그의 미소만 보면 심장이 쿵하고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녀는 그때마다 가슴을 차갑게 만들려 애썼다. 그녀의 삶을 이렇게 만든 모든 자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서였다.

 

 아버지를 죽이고 돌아오는 동안에도 유리코는 가슴 안에 무언가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기차에 올라탈 때까지 아무런 말도 없던 유월은 그녀에게 손을 내밀어 그녀 품 안에 있던 걸 보여달라고 청했다. 유리코는 그제야 품 안에 꽁꽁 숨겨 두었던 것을 꺼내 유월에게 건넸다. 유리코가 아주 어린 시절 그녀의 엄마 품에 안겨 찍은 사진이었다. 유월은 그 사진을 보고 뭔가 놀랐는지 사진을 가까이 들여다보았다.

 - 너희 엄마니?

 유월의 질문에 유리코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상한 듯 그녀를 바라봤다. 유월은 별 말없이 사진을 바라보다 그녀에게 사진을 건네주고는 창밖을 바라봤다. 그런 유월의 행동이 이상했지만 유리코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녀를 바라봤다. 유월이 다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본 건 한참이 지나서였다.

 - 네가 선택해야 될 거 같구나.

 의미심장한 유월의 말에 유리코는 긴장하며 그녀의 말에 집중했다. 끔찍한 이야기였다. 일본 최고 관료의 집에 하녀로 간 그녀의 엄마가 한국에 들어가 일하게 되었는데, 미모의 유리코 엄마를 음흉한 시선으로 늘 바라보던 남자 도련님의 행동에 화가 난 마님이 그녀를 누군가에게 팔아넘겼다고 했다. 불행하게도 팔아 넘겨진 곳이 전쟁에 나간 일본군인들을 위한 위안소라는 곳이라 했다. 성노예가 되어 하루에 서른명이 넘는 남자를 매일 받아야 했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성병이 걸렸다는 이유로 시체 무덤이 있는 곳으로 산 체로 끌려갔다고 했다.

 - 그게 너희 엄마를 본 마지막이란다. 당연히 죽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그때의 너희 엄마와 많이 닮은 것 같구나.

 유리코는 고개를 돌려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봤다. 자신과 비슷한 나이에 지옥 같은 곳에 끌려간 엄마는 얼마나 살고 싶었을까 생각하자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엄마가 그토록 살아남았음에도 살아있는 삶 또한 그녀가 기억하는 한 지옥이었다. 매일 이유 없이 아빠에게 맞았고, 늘 아빠는 엄마와 자신에게 더러운 년이라 소리쳤다. 불쌍한 엄마를 더 지옥 바닥으로 내던졌다 생각하니 직접 찢어 죽이지 못한 게 한이었다.

 - 혹시 그 병 걸리면 오래 못 살아요?

 - 내가 알기론 그렇단다. 하지만 너를 낳고 이렇게 키울 정도였다면 다 나았던 거겠지. 기적이야. 지옥에서 살아남은 것도, 널 가진 것도, 네가 무사히 태어난 것도 모두 기적이야.

 유월의 말에 유리코는 고개를 떨군 채 온몸에 힘을 주었다. 분노를 참느라 온몸이 부들거렸다. 모두 용서할 수 없었다. 엄마의 인생을 짓밟은 것으로 모자라 그녀의 인생까지 망쳐 놓은 모든자들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때의 감정을 유리코는 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끝없이 죽이고 또 죽였지만 이상하게 그녀의 삶이 좀먹히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점차 살아는 있으나 죽은 것과 다름없는 삶에 지쳐갔다.

 “괜찮겠어?”

 멍하니 거울을 바라보고 있는 유리코를 바라보며 타로가 물었다. 그가 내일 처단할 일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게 아니라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밀려오는 복잡한 감정들을 감추긴 쉽지 않았다. 타로는 바로 그녀의 마음을 알아채고 그녀를 안아주었다. 유리코는 자신을 감싸 안은 타로의 팔을 움켜쥐었다. 흔들려선 안 되었다. 그와 그녀를 위해서.

 
작가의 말
 

 본 소설은 픽션이며,

 특정 인물이나 단체, 지명, 종교, 기업, 사건, 조직 및 배경 등은

 실제와 어떠한 관련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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