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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끝내고 유월을 공항까지 데려다 준 후였지만, 재성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예정에 없던 비가 내려 일 처리가 늦어지긴 하겠지만 이 정도로 늦은 적이 없었다. 조음은 거실에 앉아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 재성의 방에 들어갔다. 일본여권이 있었던 서랍을 열었다. 하지만 사라져 있을 거란 예상과 달리 여권은 그대로였다. 조음은 더 불안했다. 정리 정돈이 잘 되어 있는 방안을 이 잡듯 뒤지기 시작했다. 그가 가장 먼저 발급받았던 미국 여권을 찾기 위해서였다. 미국 시민권과 여권은 재성의 열지도 않은 트렁크 가방 안 주머니에 고이 담겨 있었다. 위험을 감수해 여권을 위조해 출국하지만 대체 언제 어느 나라 여권으로 위조했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는 할 줄 아는 게 싸우고 힘쓰고 밖에 없었다. 타고 나길 괴물로 태어나 그는 그렇게 키워졌고 그렇게 단련되었다. 재성처럼 무엇을 알아보고 조작하고 정리하는 일은 무지했다. 조음은 이른 새벽이지만 호림을 깨웠다.
“왜..에?”
호림은 나오지도 않는 목소리로 물었다.
<재성이 사라졌어.>
호림은 게슴츠레하게 뜬 눈으로 조음의 수화에 놀라 눈을 번쩍 떴다. 조음이 허투로 이야기할 사람이 아니었다.
“어디 갔는지 알아?”
조음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컴퓨터 확인해 봐>
재성 같은 실력은 아니지만 그래도 호림은 어느 정도 컴퓨터를 다룰 줄 알았다. 그녀는 즉시 재성의 방으로 뛰어가 컴퓨터 앞에 앉아 엔터(enter)를 쳤다. 당연히 꺼지지 않았어야 할 컴퓨터가 엔터나 클릭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호림은 그제야 본체를 살펴봤다. 불이 꺼져 있었다. 안 좋은 신호다. 호림은 재빨리 컴퓨터를 켰다. 컴퓨터는 조음은 알 수도 없는 영어로 된 수신호를 여러 차례 내보내더니 다시 꺼졌다. 조음은 호림에게 왜 그러냐고 물었다. 호림은 재성이 컴퓨터에 조작을 해놓은 거 같다며 켤 수 없을 거라고 했다. 호림은 자리에 앉아 잠시 고민하다가 자신의 테블릿을 켰다. 그리고 GPS추적프로그램을 켰다. 조음은 그녀에게 다시 왜 그걸 확인하냐고 물었다.
“그 녀석 도망갈 거 같아서 신발 안에 넣어놨어.”
조음은 자신만 눈치챈 줄 알고 있었는 데 그녀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말에 매우 놀랐다.
<알고 있었어?>
“당연하지 그런 표정으로 있는 데 모를 수 없잖아.”
호림이 프로그램으로 재성의 위치를 파악하는 동안 조음은 생각에 빠졌다. 이미 마음이 떠난 아이를 데리고 온다고 달라질까 싶었다. 돌아오지 않을 확률이 높았고, 돌아온다 하더라도 남아 있을 이유도 없었다.
“도쿄에 있는 거 같아. 상세한 위치는 일본으로 가야 알 거 같아. 오빠도 빨리 옷이랑 여권 챙겨, 당장 가자.”
호림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조음은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그냥 놓아주자.>
호림은 그가 무슨 의미로 그런 소리를 하는 지 알았다. 그녀도 처음 재성의 표정이 안 좋다고 느꼈을 때부터 그가 언젠가 도망갈 거라 생각한 그때부터 그 녀석을 놓아주어야 하는 지 보내야 하는 지 오랜 시간 고민했었다. 하지만 그녀의 결정은 놓아주지 않겠다 였다. 재성이 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도망을 치더라도 적당한 때에 셋이 함께 도망갔으면 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갑자기는 아니었다.
“데리고 올 거야. 그리고 떠날 때를 같이 정해서 우리 셋이 같이 마마를 떠날 거야. 이런 식으로 혼자 도망치게는 못 해.”
조음은 말없이 그녀를 봤다. 그녀도 그도 그리고 이미 도망친 재성도 마마 곁을 떠날 생각을 했던 건 똑같았던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그들은 서로 통했음에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에 조음은 후회가 들었다. 그에게 같았다고 말이라도 전해줘야 겠다 생각이 들어 조음은 자신의 방으로 가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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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면과 곽과장은 사건현장에 도착했다. 그들이 맡은 사건은 아니었지만 동일 인물이 벌인 사건이라면 그들에게 사건을 이관할 필요가 있었다.
“곽과장님 직접 오셨네요?”
영등포경찰서 생활범죄수사팀 팀장 구형사가 곽과장과 기면을 발견하고 뛰어왔다.
“선배님도 오랜만입니다.”
기면의 직속 후배였던 구형사와 몇 년만에 마주하였으나 두 사람은 길게 인사하지 못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한과장님께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이관하시려고 오신겁니까?”
“서로 협조가 필요한지 이관이 필요한지 확인하려고 하는 데 구형사 총괄인 건가?”
곽과장의 질문에 구형사는 현재까지는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뭘 도와드리면 됩니까?”
“한과장한테 듣자 하니 여자 사체 말고 갈가리 찢어진 사체 조각들도 발견됐다는 데 신원은 파악이 됐나?”
“네, 아까 머리통을 발견했습니다. 다행히 얼굴은 그대로 날아가서 신원파악하는 데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하부대 옥순의 수행비서인 이정훈입니다.”
사체의 머리가 날아갔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구형사의 표정 변화는 없었다. 기면은 그런 구형사를 오래 봐 왔지만 매번 놀라웠다. 초임때 연례 행사처럼 사체를 보면 1-2번 토하기 마련인데 유일하게 토를 안하고 사체를 자세히 살펴본 역사의 남은 인물이었다. 기면과 짝이었을 때 그 부분을 물었더니 그는 <사체를 보면 범인한테 화가 치밀지 토는 안 나온다>고 답을 했던 기억이 났다.
“그 자는 수류탄으로 죽인 건가?”
곽과장과 구형사가 살해장소를 살펴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속을 뒤져야 나올 거 같은 데 아직 그런 흔적은 없고, 수류탄과 같은 거로 했을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범인한테는 아주 절묘하게 비가 내려줘서 피가 비에 쓸려 전체적으로 루미놀 반응이 나와 어느 위치에서 살해하고 어디서 사라졌는지 확인이 어렵습니다.”
“족적은?”
“천 같은 거로 쓸었는지 족적이 지워져 있어요.”
“계획적이군.”
“마지막 루미놀반응이 나오는 곳은 없어?”
“사람이 날아간 것처럼 루미놀반응이 끝나는 위치에서 천에 쓸린 흔적도 사라져요.”
“차량은?”
“여기가 CCTV가 잘 안 잡히는 위치라 카섹스하는 놈들이 밀집해 있다고 합니다. 그날도 3대는 기본으로 있었고요.”
“대체 뭐 하는 놈들이 길바닥에서 그 지랄이야?”
구형사말을 들을수록 짜증이 났는지 곽과장이 화를 냈다.
“그래도 주차장에서 나가는 차는 찍혔을 거 아니야?”
“그래서 막내 보내서 인근 주차장 CCTV 확인하고 오라고 했습니다.”
기면의 물음에 구형사가 대답하는 사이, 멀리서 구형사를 부르며 김형사가 뛰어왔다.
“안녕하십니까, 곽과장님, 김팀장님.”
김형사는 깍듯이 인사하고 CCTV 확인한 걸 보고하기 위해 수첩을 열었다. 그러나 곽과장과 김팀장이 상사라도 같은 팀원이 아니라 그런지 두 사람의 눈치를 살폈다.
“괜찮아, 아셔야 하는 분들이야. 보고 해.”
“우선 이 근방 CCTV 중에 현장을 그나마 비추는 게 500미터 전방에 있는 주차장 출입구 CCTV입니다. 근데 루미놀반응이 끝난 그 라인 이 전까지만 보입니다..”
“그래도 수상한 그림자 같은 게 보이지 않았어? 현장은 안 보이더라도 뭔가 움직였으면 검은 형체가 지나가는 게 보였을 거 아니야.”
“형체는 안 보였고, 갑자기 주차장 바닥이 짙어졌습니다.”
김형사의 알 수 없는 말에 3명의 상사가 그를 빤히 봤다.
“아니, 그러니까 1초 사이에 마른 땅이 푹 젖었더라고요. 그래도 후두두둑 하면서 젖어가잖아요. 근데 그거 없이 다 젖었어요. 다른 CCTV는 5분 동안 서서히 젖어가거든요.”
“어제 빗줄기도 굵고 많이 오긴 했지만, 첫 시작은 똑똑 후두두둑이지. 모든 비가 다 그러잖아.”
구형사가 흥분해서 김형사에게 말하자 김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5분 이후가 진짜고, 이전은 가짜인거군.”
“아, 그리고 하나 더요. 5분 후에 차량이 총 6대가 빠져나갔습니다. 500미터 전방에만 3대가 거의 동시에 나갔고요.”
“차량조회는?”
“한 대가 위조번호판입니다. 검은색 세단.”
곽과장을 포함안 기면과 구형사는 모두 그게 범인이라고 확신했다.
“차량 빠져나간 시간이랑 번호넘버 적어왔지?”
김형사는 수첩에 적혀 있던 번호를 기면에게 넘겨주었다.
“CCTV는 내가 확인해 볼게. 과장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저희 피해자 최측근 인터뷰 잡아 놨는 데 같이 가시죠?”
기면의 물음에 구형사가 대답하 듯 곽과장에게 물었다. 곽과장은 알겠다며 구형사를 따랐고, 기면은 곧장 박형사에게 전화를 걸며 자리를 이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