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재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조사장의 아들 조준. 그는 열심히 무언가를 작성하고 있다.
잠시 후, 노크소리가 들리고 조준이 들어오라는 소리에 기면과 곽과장이 들어섰다.
“죄송합니다. 아까도 진술하셨겠지만 직접 듣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곽과장은 매우 예의 바른 태도와 달리 조준은 턱짓으로 방 안에 있는 회의 테이블을 가리켰다. 곽과장은 조준의 매우 버릇없는 행동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감사하다며 기면을 데리고 자리에 앉았다. 이런 일은 매 VIP와 만날 때마다 벌어진 일이었지만 매번 기분은 상했다. 하지만 기면과 곽과장은 그들의 기분 나쁨을 그들에게 표할 수 없었다. 그저 당연히 흘러가야 하는 파도라 생각하며 최대한 두 형사는 포커페이스(POKER FACE)를 유지했다.
그들이 자리에 앉았음에도 조준은 10여분이 지나서야 그들에게 시간을 내주었다.
“아까 진술 받은 그 놈은 어디 가고?”
기면보다 1-2살 많은 남자가 곽과장을 하대하며 말하는 폼이 영 성가신 기면은 곽과장이 말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입을 열었다. 곽과장이 대답하면 진짜 저 싸가지한테 곽과장이 납작 엎드린 느낌이 들어 그게 더 싫었다.
“죄송합니다. 증거물이 나와서 조사차 보냈습니다. VIP시라 저희도 최대한 최소 인원으로 움직여야 해서 이런 번거로운 일이 생겼습니다. 죄송합니다. 지금 진술 녹화 진행하면 향후 경찰서에 오시는 번거로움까지는 없을 겁니다. 함께 진행해도 되겠습니까.”
“귀찮게 하네.”
조준은 회의 테이블 위에 있던 나무 상자를 열어 그 안에 있던 파이프 담배를 꺼내 담뱃잎을 채워 넣고 불을 붙였다. 기면은 카메라를 설치하며 그 모습을 유심히 봤다.
“파이프 담배는 언제부터 피셨습니까?”
“증거물로 그게 나왔나 보지? 아까부터 담배에 대해 묻는 거 보니.”
“담뱃재 같은 게 나왔는데 혹시나 해서 여쭈어보는 겁니다. 뭐든 증거가 될만한 증언을 수집하고 있으니 답변 부탁드립니다.”
조준은 파이프 담배를 들이마시며 생각에 빠졌다.
“아는 분이 연죽(煙竹)으로 담배를 피는데 일반 담배보다 맛있다고 해 추천 받았어. 재를 처리하는 것도 깔끔하고. 회장님 방에서 담뱃재가 나왔다면 시가일거야. 시가는 재가 날리거든.”
“담뱃잎은 다 똑같나요? 저도 최근 롤링 담배를 펴볼까 생각 중이라서요.”
곽과장이 피지도 않는 담배 이야기를 하며 어벌쩡 물었다.
“커피 원두랑 같다고 생각하면 돼. 나한테 소개해 주신 분은 여성분이라 부드럽고 단 맛이 나는 잎을 쓰셨는데, 난 탄 맛과 쓴맛이 강한 잎이 좋아 그걸 쓰지. 내가 쓰는 건 너는 비싸서 쓰지도 못해. 그냥 국내산 써.”
조준의 무시하는 말투에도 곽과장은 미소를 지으며 감사합니다 라고 머리 숙여 인사했다.
기면이 동영상 촬영을 하겠다며 버튼을 누르자 조준은 파이프 담배를 내려놓고 아까와는 180도 다른 자세로 앉아 매우 협조적인 기업인의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우선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건 당일 일정이 조회장님의 일정을 알고 계십니까?”
“회장님의 일정은 저보단 비서가 더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날이 밝으면 담당 비서에게 사장님 일정과 관련해 경찰에 협조 드리라고 전달하겠습니다.”
변한 겉모습만큼이나 말투도 매우 존경어였다. 매 VIP때마다 겪는 일이지만 정말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뼛속까지 기업인인 그가 사건이 터지고 경찰보다 자신의 회사에 먼저 사건을 알린 것처럼 지금 벌어지는 이 일도 기사로 먼저 내보낼 걸 예상할 수 있었다. 그래서 곽과장은 더 예의를 갖췄다.
“감사합니다. 제 명함입니다. 이쪽으로 연락 달라고 해주십시오.”
곽과장은 경찰수첩 안에 꽂혀 있던 명함 한 장을 꺼내 조준에게 건넸다. 조준은 매우 예의바르게 명함을 받아 곽과장의 이름과 직함을 말하며 기억하겠다 말하고 스마트폰 뒤에 있는 포켓 안에 넣었다. 몸에 밴 그의 비즈니스 예절은 아까의 모습이 거짓이었다고 느낄 정도였다.
“부회장님의 일정을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저는 저희 가족과 괌으로 골프 여행을 떠나 오늘 저녁에 비즈니스가 있어 먼저 한국에 들어와 그곳에서 계속 있다가 새벽녘에 일 마무리하고 집에 도착했습니다. 피 냄새가 진동해 바로 경찰에 신고했으니, 신고 시간이 제가 집에 도착한 시간입니다.”
곽과장이 경찰수첩을 뒤적이며, 4시에 신고가 왔다고 하자 조준은 그렇다고 답했다.
“새벽녘까지 머물렀던 장소가 어딘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죄송합니다. 사적인 장소라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매우 정중한 태도였지만 그의 거절은 더 이상 묻지 말라는 거였다. 말은 비즈니스라고 말했지만 매우 사적인 관계의 사람과 만난 게 분명했다.
“도착했을 때 침입한 흔적은 없었습니까?”
“없었습니다. 차고도 닫혀 있었고, 현관문도 전부 잠겨져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기면은 카메라를 정리하며 말을 이어갔다.
“한동안 사건 현장을 보존을 해야 하는 데 괜찮으십니까?”
“집은 많으니 신경 안 써도 돼.”
카메라가 꺼진 걸 확인하고 그의 태도는 다시 바뀌었다. 아주 놀라울 정도였다.
“이제 나가주지. 나도 이 집을 비우려면 챙겨야 할 게 많으니까.”
“협조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나가며 기면은 조준의 얼굴을 살폈다. 그의 얼굴엔 아비를 잃은 슬픔따위는 없었다. 생각해보면 그의 어미가 죽어 수사를 나왔을 때도 당연히 없어져야 할 게 없어진 것처럼 태연한 태도를 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어미와 아비가 죽어 아프다는 느낌보다는 귀찮은 일이 생겨 짜증난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상중이 자살로 종결난 사건을 아직까지도 조준이 죽였다고 이야기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방을 빠져 나온 기면은 곽과장의 뒤를 따르다 갑자기 벽을 붙잡고 그대로 멈춰섰다. 곽과장은 그에게서 풍기는 불길한 기운에 그의 어깨를 꽈악 붙잡았다.
“여기선 안 돼.”
“죄송합니다.”
“긴 얘기는 서에 가서 하지.”
“네.”
기면의 대답을 듣고 곽과장은 박형사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핸드폰을 들여다봤다. 그 순간 쾅 하는 울림소리가 집 안에 퍼졌다. 방안에 있던 조준이 놀라 방 밖으로 나왔고, 기면은 그대로 쓰러져 그대로 깊은 잠에 빠졌다. 곽과장은 죄송하다고 연신 말하며 자신보다 큰 기면을 업고 급하게 자리를 피해 달아났다. 그 모습을 피식 웃으며 바라보던 조준은 복도에 설치된 CCTV 카메라를 보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
생수로 입을 헹구느라 정신없는 상중. 박형사도 물티슈로 자신의 옷을 벅벅 닦으며 상중을 구박하고 있다.
“남자 새끼가 그렇게 비위가 약해서 어디에 쓰냐? 그리고 내가 하수구로 가라고 했지?”
“누가 상상만으로 우웩”
상중이 엄청난 양을 게워내고도 모자라 말을 하면서도 헛구역질을 하자 박형사는 그를 하수구 방향으로 걷어찼다.
“새끼야 저리 가!”
“아, 다 토했어요. 뭐랄까 입을 헹궈도 헹궈도 냄새가 우웩”
“아 진짜! 꺼져!”
박형사가 아까보다 거세게 밀어내자 상중은 어쩔 수 없이 전봇대 옆 하수구 위에 쪼그려 앉았다.
“아니 말만 듣고 그렇게 토하면 어쩌자는 거냐? 이따 사진도 보고 해야 할텐데”
“으~ 最悪(さいあく: 최악이야)!”
“내가 최악이다.”
평소 일본말은 한마디도 못 알아듣는 박형사가 상중의 말을 알아듣고 답하자 상중이 놀라서 박형사를 봤다.
“왜?”
“일본어 공부하셨습니까? 저 때문에?”
“찾아봤다. 현장만 가면 사이아쿠 사이아쿠 해대서. 최악이면 그만두면 될 거 아니야?”
“최악이긴 한데 저하고 잘 맞아요. 한 때 하드락커가 꿈이어서 그런가?”
“하드락이랑 형사일이 무슨 상관이야.”
“내적인 공통점이 있어요. 선배는 몰라요.”
“미친 새끼.”
박형사에게 욕을 먹으면서도 상중은 능글능글 웃으며 다시 자리로 돌아와 이온음료를 마셨다.
“웃지마 새꺄, 정들어.”
“이미 정든 거 압니다. 근데 사체는 자세히 보셨습니까?”
“당연하지. 내가 넌 줄 아냐?”
솔직히 박형사도 현장에서 사체를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문 앞에 들어서자마자 코를 찌르는 녹슨 철 냄새로 힘든 상황이었는데, 피로 완전히 적셔진 침대 옆으로 척수와 연결되어 대롱대롱 매달린 머리를 보는 순간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구역질로 자리를 피했다. 평소의 곽과장이라면 불호령을 했을 텐데 최초 목격자 인터뷰나 하라고 그의 회피를 허용해 주었다.
“근데 말이야. 부회장. 이상한 거 같아.”
박형사는 인터뷰를 하기 위해 조준을 찾다 그가 집 앞마당에서 누군가와 길게 통화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는 아비를 잃은 자식의 모습 같지 않게 히죽거리며 웃고 있었다. 박형사는 그 통화상대가 궁금해 몰래 그의 뒤로 다가갔으나, 그는 눈치 빠르게 목소리를 바꾸어 전화를 급하게 끊었다. 전화를 끊고 누구랑 통화했냐고 묻자 비즈니스라고만 했다. 비즈니스가 성공해서 웃었다기에는 묘한 미소였다.
“그 자식이 범인일지 몰라요.”
박형사의 말에 대뜸 확신에 찬 말투로 상중이 말했다. 보통은 화를 내야 하는 데 박형사는 그러지 않았다. 그 또한 범인이거나 공범이라 생각해 뭐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선배로서 느낌만으로 확신하는 태도는 잘못되었다고 짚어줘야 할 의무가 있었다.
“보지도 않고 그런 의심 하는 거 아니야.”
“선배가 이상하다 했잖아요. 나도 이상해요. 선방일보 사모가 죽은 그 사건 때부터.”
박형사도 찜찜한 사건이긴 했으나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로 내사종결되었다. 그 뒤의 상황이 의심스러웠지만,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종결한 수사를 증거도 없이 재수사할 수 없었다.
“이미 끝난 사건이야. 의심만으로 범인이라 지목하면 안 돼.”
“자살도 살인이에요. 폭행 협박 감금에 대한 증거는 수두룩한데 왜 그거에 대한 처벌은 안 해요? 윗선이 다 돈 받고 입을 틀어막은 거죠.”
상중의 말에 박형사는 문뜩 조준이 방금 통화한 사람이 경찰 윗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윗선에서 잘 처리해주겠다 했으면 그런 미소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박형사는 이 이야기를 기면에게 전해야 겠다 생각이 들어 주머니 안에 있던 핸드폰을 꺼냈다. 그 순간 곽과장에게서 먼저 전화가 왔다.
“어디야?! 당장 안 와?”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터져 나온 곽과장의 고함에 놀란 박형사는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네. 당장 가겠습니다.”
박형사는 전화를 끊자마자 상중을 재촉하며 현장으로 출발했다. 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