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화 -
“이별의 향기를 피우시겠습니까?”
“.. 네”
망설이다가 대답하는 남자.
“네. 그럼 알겠습니다. 지금부터 이별의 향기를 피우겠습니다. 이 향초를 잘 쳐다봐 주세요.
그리고 천천히 심호흡하시면서 향기를 맡으면 되겠습니다.”
여자가 천천히 향초에 불을 붙였다. 투명한 유리 안에 바다로 꾸며진 푸른색 향초.
불이 붙은 향초 위로 천천히 연기가 여자와 남자 사이로 펴져 나간다. 천천히 향을 맡는 남자. 서서히 눈이 감긴다.
감긴 남자 위로 남자와 여자와의 추억들이 스쳐서 지나간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마지막 이별의 순간까지의 기억. 그리고 놀라서 남자가 눈을 뜬다. 남자의 눈에는 남자도 모르게 눈물 한 방울이 뺨 위로 흐른다.
“어떻게 된 건가요?”
“수고하셨어요. 모든 감정이 삭제되었습니다. 이별의 향기가 잘 피워졌네요. 기분이 어떠신가요?”
“뭔가 가슴이 슬픈 거 같긴 한데 괜찮아요. 기분이 좋네요.”
말하는 남자의 목에 마치 푸른빛의 바다를 연상시키는 작고 아름다운 목걸이가 걸려있다.
“아시죠? 저희 가게 이별 규칙?”
“네 잘 알고 있습니다. 첫째, 후회해도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감정이다. 둘째, 이별의 향기를 피운 사람은 기억만 있을 뿐 연애 당시의 감정을 느낄 수 없다. 즉, 추억이 사라진다. 슬픔뿐만 아니라 기뻤던 감정마저도... 셋째, 한 달간은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없다. 가끔 가슴에 통증을 느낄 수는 있으나 이는 한 달 후면 사라진다. 넷째, 이 목걸이는 한 달 동안 목에 꼭 걸고 다녀야 한다. 다섯째, 사람에 따라서 이별의 향기가 안 피워지는 사람도 있다. 이런 경우 오십프로만 환불이 가능하다.”
“잘 알고 계시네요. 그럼 가슴 아픈 일들은 다 잊고 좋은 기억만이 함께하길 바라며 나가시는 문은 저쪽입니다.”
“감사합니다.”
남자가 꾸벅 인사를 하고는 천천히 걸어 나간다. 아직 잠이 덜 깬 기분이다. 마치 수면마취를 하고 일어났을 때 처럼의 느낌이랄까?
남자가 나가고 머리가 긴 여자가 웃으며 들어 온다.
“오늘도 성공?”
안에 있던 앉아 단발머리의 여자가 꼬고 있던 다리를 다른쪽으로 바꾸며 들어오는 여자를 향해 씽끗 웃어 보인다.
“당연하지! 역시 나야!”
여자의 자신감이 하늘을 찌른다.
나는 이별의 향기를 피운다. 직접 이 향초로 이별의 향기를 피우면 향을 맡은 사람들은 천천히 자신의 사랑했던 감정을 지운다.
여기에 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에 상처받은 사람들이 주를 이룬다. 이별이 너무 아파 살아갈 힘을 잃는 이들을 위해 나는 존재 한다.
내가 피우는 이별의 향초는 최면술도 마술도 초능력도 아니다. 단지 요정들의 나라에서 가져온 선물이랄까?
고로 나는 초능력자가 아니다. 그렇다고 외계인도 아니다. 나는 그저 평범한 인간 안다솜이다.. 아니다 어쩌면 외계인인가?
그러니까 내가 이 요정들에 대해서 알게 된 건 그저 아주 평범한 삶에서 흔한, 사람과 이별을 겪었을 때의 일이다.
아니 그보다 먼저 나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아주 어릴 적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쯤 되었을 때, 그때 다들 첫사랑이란 걸 시작할 때의 일이다. 나는 사물함에서 한 남자아이를 마주했는데...
얼굴이 하얗고 또래보다 키가 컸던 같은 반 평범한 남자애. 왜였는지 모르지만, 갑자기 그 애의 하얗고 가는 손가락이 내 눈에 들어왔다.
“야! 너는 무슨 남자가 손가락이 이렇게 이뻐?”
손가락을 한번 만져 보는 다솜.
그리고 서서히 얼굴이 붉어지는 남자아이.
그때 나는 몰랐다. 지금이야 나도 많은 세월을 살고, 경험을 통해서 저런 행동이 여우들이 쓰는 기술이라는 걸 알게 됐지만(사실 그것을 알게 된 것도 최근의 일이다.) 저 때 내 나이는 겨우 13살이었다. 그냥 다정도 병이라 그렇게 말한 건데, 그 날 이후 저 남자 아이의 태도가 달라졌다. 그렇다. 나를 좋아하게 된 것이다. 그것도 너무 티 나게 그 바람에 온 교실에 소문이 다 났고, 나는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그 아이를 거절했다. 나는 그 아이를 좋아한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데 그날 이후 나는 알 수 없지만(지금은 알겠지만) 말 그대로 여우가 되어 버렸다. 그냥 그 다정했던 성격 덕분에...
그 후에도 가끔 이런 일들이 있긴 했지만 나는 흘리고 다닌 것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지.. 내가 매력이 넘쳐서라고 생각해 두자. 이렇듯 내가 긍정적이다. 그러나 세상은 나를 절대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다. 나의 작은 호의조차도 여우짓으로 둔갑시켜 버리는 세상 덕분에 나는 여자인 사람 친구가 한 명도 없다. 물론 남자인 사람 친구도 없지만 말이다.
아무튼 후에 20대 중반 쯤 되어서 한 남자를 사랑했고 처절하게 버림받았다. 그 남자는 부잣집 여자와 사랑에 빠져 이민까지 가버렸다. 버려진 나는 그 자리에서 주저 앉아 울었다. 무려 10년이었다. 내가 이 남자와 사랑한 시간은.. 그 10년이라는 시간이 한순간에 무너져 버렸다.
“미안해. 10년 동안 고마웠어. 근데, 나는 행복해지고 싶어.”
나는 세상이 없어졌는데 그 남자는 너무도 평온해 보였다. 나의 이별 이야기는 앞으로 뒤에서도 많이 나올 테니 이쯤 접어 두는 게 좋겠다.
자 이제 다시 요정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죽으려던 건 아니었다. 단지 그냥 너무 답답해 아래를 내려다보고자 했건만 욕심이 과하면 화를 부른다던가 그대로 떨어졌다. 그리고 일어나 보니 나는 요정의 나라에 있었다.
말이 요정이지 이 요정들은 사람의 모습과 똑같았다. 그래서 처음엔 그곳에 대해 파악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그들은 알았다. 내가 그들과 다르다는 걸. 이곳은 지구 반대편에 우리가 그렇게 찾는 외계인(나는 그들을 요정이라 부른다)이 사는 곳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나는 외계인이다.
나는 다른 부류의 것이었으니 우리가 다른 별에서 온 그들을 외계인이라 부르니 나도 그렇게 되는 건 당연한 거겠지.
어쨌든 이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때 그들을 보고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 것은 그들이 아니라 주변 환경을 보고서다. 경이롭다는 표현이 여기에 쓰이는 걸까? 태어나서 그런 광경은 처음이었다. 하늘색이 저렇게나 파랄 수가 있을까? 그 위에 구름은 또 어떻고 이건 미세먼지가 없는 하늘의 수준이 아니었다. 주변은 웅장한 산들로 뒤덮여 있었고, 큰 폭포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행복해 보이는 그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따로 집을 짓지 않았다. 동굴이나 광할한 벌판 위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집이란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마음만 먹으면 자신들이 원하는 형태의 집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밤이 되면 누군가는 대 저궐을 만들고, 아파트를 만들었으며, 누군가는 감성 텐트를 만들어냈다. 눈앞에서 보고도 믿기 힘든 광경이었다.
그들의 세계로 들어갔을 때 처음 만난 요정이 바로 이 여자다.
요정들 그러니까 외계인들은 정말이지 너무도 아름답고 멋있었다. 여자의 모습을 한 요정들은 머리가 길고, 머리에 꽃장식을 가득 메우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팅커벨을 연상시켰다. 물론 날개는 없다. 뽀얀 얼굴에, 피부, 커다란 눈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 요정의 모습이 맞다. 남자의 모습을 한 요정들은 어디 드라마에나 나올듯한 비주얼을 자랑했다. 정말 황홀한 모습에 여기에 살게 된다면 세상 무엇도 부럽지 않겠다는 생각도 잠깐 했다.
눈을 떴을 때, 다들 아름다웠지만, 그 중에서 독보적으로 아름다운 여자 요정. 갈색 긴 머리에 예쁜 꽃장식을 쓰고, 깊은 눈동자를 가진 여자. 여자가 봐도 아름답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이 여자가 눈앞에 있었다. 이 여자는 내가 깨자마자 나에게 다가와 자신의 입에 손을 가져다 대고는 쉿! 이라고 말했다. 이 여자의 집은 꽤나 아기자기하고 감성적으로 꾸며져 있었다. 영문을 모르는 나는 소리를 지를 뻔했으나 이내 이 여자가 입을 막아 버리는 바람에 소리를 지를 수 없었다.
“쉿! 이곳은 당신이 있을 곳이 아니에요. 곧 사품들이 몰려올게요. 당신을 보기 위해서.”
“나를?”
“그러니까 일단은 자는 척을 합시다. 우리.”
씽긋 윙크하고는 웃어 보이는 여자.
하는 수없이 다시 자는 척을 했다. 그리고 들려 오는 말들
“인간 여자가 왔다고?”
“네. 여기 있습니다. 아직 잠이 든 모양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또?”
‘또?’
속으로 생각하는 다솜.
“글쎄요. 무슨 일 일까요?”
“일단 저 인간을 없애야 합니다. 또 그런 일이 생기면 우리는 살아갈 힘을 잃을지도 몰라요.”
“맞아요. 화근이 되는 건 없애야 해요.”
“저도 그 말에 동의 합니다. 일어나기 전에 해치우는 것도 방법이겠네요.”
“아뇨.”
다솜을 다시 잠들게 했던 요정이 막아섰다.
“꼭 처리해야만 할까요?”
“오 이런 비꽃! 나서지 말거라. 이건 네가 나설 일이 아니다. 어른들의 결정에 따르거라!”
“아니요. 저는 그럴 수 없어요.”
그러나 비꽃이 상대하기에는 사품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럼 일단 죽일 때 죽이더라도 일어나서 들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어떻게 이곳으로 오게 됐는지.”
사품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아니 이런 일이 또 없으리라는 보장이 없잖아요. 30년 전에도 그렇고!”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하는 사품들.
“그래 그럼 며칠만 두고 보지 뭐.”
지금 생각해보면 처음에 내가 비꽃을 만난 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비꽃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나는 지금 살아있지 않을 수도 있다.
처음엔 당연히 꿈을 꾸는 줄 알았다. 그러나 꿈이 아니다. 지금 이 요정이 내 옆에 있지 않은가?
나와 함께 나의 나라로 날아온 이 요정은 다른 요정들과는 다르게 사람의 삶이 궁금했다고 한다. 그래서 야반도주(?)아닌 야반도주를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나와 함께 하는 내 사업의 파트너이다.
자 이쯤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요정 나라 이야기는 차차 하기로 하고, 왜냐하면 꿈이 아니라 팩트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모르는 나만 아는 팩트.
어쩌다 보니 모든 일들을 뒤로 미뤄놓는 듯한데, 그렇다 할 말이 너무나 많다. 차차 천천히 가는 법을 배우자. 우리.
그리고 모든 사건의 시작은 나로부터 시작된다. 나 안다솜! 그러니 나의 이야기를 따라오다 보면 한편의 아름다운 동화를 본듯한 착각에 빠질 수도 있다.
이 이야기는 남자주인공이 없다. 그렇다. 이 이야기는 내가 주인공인 이야기다. 고로 나만 등장한다. 주요 조연이라고는 저 요정 정도? 그렇다고 남자가 아예 등장하지 않는 건 아니다. 등장은 한다. 그러나 여타의 다른 이야기의 남자들처럼 잘생기지 않았다. 지극히 평범하거나 혹은... 나머진 상상에 맡긴다.
어쨌든 그 흔한 연애 물이 아니라는 거다. 왜냐하면 나는 연애 생각이 전혀 없으니 달달 고소 안 나온다. 단호하다.
그런 흔한 깨소금 맛나는 달달한 로맨스를 기대한다면 조용히 뒤로가기 버튼을 눌러도 좋다. 그러나 아마 나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은 쉽사리 못 나갈 것이다. 그 흔한 로맨스 없이도 충분히 들을만한 가치가 있으니 지금부터 나의 마음으로 들어와 집구경을 해보자. 내가 당신을 나의집으로 초대 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