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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악녀가 흑막이 되어야 했던 사정
작가 : 이디별
작품등록일 : 2022.1.13

전생에 내가 죽여 버린 하녀로 환생해버렸다.
그래서 또다시 마주하게 된 내가 아닌 나.

이번 생에선 너도 나도 그렇게 살아선 안 돼. 내가 바로 잡겠어.

나의 고달픈 마음을 위로해 줄 화가에게 기대고 싶어도
은백색 빛의 유혹이 너무 강렬하다
전생의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소공작이 나를 구원하여주어도
나도 알 수 없는 나 자신이 그 남주들에게 흑막을 드리운다.


뺏지 않으면 빼앗기리라.

 
16화 안개
작성일 : 22-02-08 00:08     조회 : 288     추천 : 0     분량 : 4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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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갑작스런 공격에 너무 놀란 디아나가 뿌리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네 년이 나를 버리고 도망을 가? 빌어먹을 여편네 같으니라고!”

 

 

 목이 졸려 괴로웠던 것도 잠깐 순식간에 나타난 지안이 그 남성의 팔을 후려쳤다.

 

 아픈 목을 감싸며 휘청리는 디아나를 그가 붙들었다.

 

 모든 얼굴 근육을 일그러트린 기괴한 표정의 남성은 인간의 모습이라기 보단 적을 향해 으르렁거리는 한 마리의 야수 같았다.

 

 

 “네년 때문에 우리집이 망했어! 죽어! 죽여 버릴 거야!”

 

 

 괴한이 소리 지르며 그녀에게 달려드는 괴한의 명치를 기다란 다리로 퍽 걷어찬 지안은 그녀를 번쩍 안아 올리며 작게 속삭였다.

 

 

 “한번 더 파렴치한이 되어야겠군.”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디론가 빠르게 달려가는 그의 품에서 아기처럼 안겨있던 디아나의 귓가에 괴기한 울음소리들이 들려왔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눈알을 뽑아버릴라! 이리와!”

 “빌어먹을 내 돈 내놔!”

 “엄마! 엄마! 어딨어? 으앙”

 

 지안이 그녀가 그것들을 보지 못하도록 얼굴을 제 품 안에 감싸고 달렸기에 디아나는 괴음 만이 들려왔고 그렇기에 더더욱 자신이 지옥에 떨어진 것만 같았다.

 

 순식간에 한적한 골목으로 이동한 지안이 조심스레 그녀를 내려주었다.

 

 

 “어디 봐봐. 괜찮나?”

 

 

 지안은 그녀의 헝클어진 황갈색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주며 그녀를 살폈다.

 

 괴한에게 붙들린 그녀의 가느다란 목이 벌겋게 부어있었고 손톱으로 인한 흉터로 피가 고여 있었다.

 

 

 “그 사람 뭐예요? 저한테 왜 저러는 거예요?”

 “너한테 그런 게 아냐.”

 “네?”

 “주변을 봐봐.”

 

 

 지안의 말에 디아나가 사방을 살펴보니 하얀 안개가 짙게 깔려있었다.

 

 가시거리가 1m도 되지 않을 만큼 뿌옇게 깔려있었다.

 

 

 “물안개야.”

 “물안개요?”

 

 

 지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을 정리하는 듯 골목 밖을 나와 큰 거리에서 서로 싸우는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그들도 보이지 않는 시야로 누가 누군지도 모른 채 서로를 공격하고 있었다.

 

 

 “이상하네. 보통 안개가 가장 짙어지는 시간은 새벽녘인데 대낮에 이렇게 깔린다고?”

 

 

 이건 디아나에게 하는 말이 아닌 혼잣말인 듯 그 이후로 계속 그의 시선은 먼 허공을 향하였다.

 

 디아나는 아까 달려들던 괴한의 눈빛이 생각나 오싹함이 느껴져 지안의 등 뒤에 서서 옷자락을 움켜 잡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사람들이 가게의 물건을 훔치고 때리고 달아났고 마을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대장!”

 

 

 누군가 지붕에서부터 벽을 타고 점프하여 내려와 지안에게 다가왔다.

 

 “용케 잘 찾았군.”

 “이 안개 설마...”

 “그래. 저택으로 돌아가지. 도르키안느는?”

 “그렇지 않아도 같이 왔었어.

 그렇지 않았으면 구시가지까지 번졌을 거야.

  아까보단 안개가 옅어지고 있으니 정화작업하면 더는 심해지지 않겠지. 하지만 이렇게 순식간에 사람...”

 

 그는 지안 등에 꼭 붙어있는 디아나를 발견해 말을 끊었다.

 

 두 사람은 커질 대로 커진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소공작!”

 

 너무 놀라 저도 모르게 소리 지른 디아나가 급하게 제 입을 두 손으로 가렸고 진도 놀랐는지 얼굴을 일그러진 채 물었다.

 

 

 “산하타 백작 하녀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헤이든이 데리고 왔어.”

 

 

 진은 그제야 이해하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백작 앞에서 보였던 그 무서운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개구진 청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진이 낯설어 디아나는 지안의 등에 더 바싹 붙었다.

 

 

 “휴가를 나온다는 곳이 이곳이었군요.... 다치신 겁니까?”

 

 

 그가 손으로 그녀의 목을 가리키자 뒤돌아본 지안이 “아!” 탄식하며 그녀의 목 언저리에 손을 올려 은백색 빛을 내뿜었다.

 

 또다시 보게 된 빛에 깜짝 놀란 디아나가 뒷걸음질 치자 그 빛은 금세 사라졌다.

 

 그러다 통증이 사라진 걸 느낀 그녀는 자신의 목을 만져보니 어떤 흉터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녀의 눈동자가 또르르 굴러 지안을 바라보자 그는 검지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며 살짝 미소 지어 보였다.

 

 비밀로 해달라는 듯.

 

 디아나는 자신이 마법으로 치료받았다는 것보다 지안이 그녀를 향해 미소 짓고 있다는 사실에 더 놀라고 있음을 깨달았다.

 

 진은 아까부터 붙어있는 두 사람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찌푸리고 있던 미간을 손으로 문지르고는 이내 말을 걸었다.

 

 

 “어찌 되었든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산맥에 가는 일정을 더 앞당겨야겠다.

 엑소더스에게 말해서 사람들을 기절이라도 시켜야겠군. 이렇게 놔 두었다가는 살인도 나겠어.”

 “그래. 먼저가 있어.”

 “서두르시길. 그럼 디아나, 저는 이만.”

 

 그는 기습적으로 그녀의 손을 잡아 손등에 입을 맞추고는 다시 뛰어올라 벽을 타고 지붕 위로 올라갔다.

 

 디아나가 아까부터 다물어지지 않은 입을 벌린 채 그가 사라진 지붕 위를 빤히 보고 있으니 지안이 그녀의 턱을 툭 쳤다.

 

 뚝 입을 다문 디아나가 민망해져서 고개를 내리자 그가 말했다.

 

 

 “가자. 소보에로 데려다 줄게.”

 

 

 디아나는 지금 자신이 꿈속에 있는 건지 뭔 일 인건지 혼란스러웠지만 그의 미소 한방에 다시금 머릿속이 새하얘져 쭈뼛쭈뼛 그의 뒤를 쫓았는데 지안이 우뚝 멈추더니 물었다.

 

 

 “그러고보니... 너는 환각에 사로잡히지 않았군.”

 

 

 디아나는 그의 의문에 어리둥절해졌다.

 

 ‘그러네? 나는 왜 멀쩡한 거지?’

 

 그러다 다시 지안을 쓱 바라보며 이런 표정을 하는 얼굴을 했다.

 

 ‘그러는 너는 왜 멀쩡하니?’

 

 지안은 그녀의 속마음을 읽었는지 피식 웃고는 다시 길을 나섰다.

 

 

 ***

 

 

  그 날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은 안개는 레이크쉐이든 전체로 퍼지지 않고 숲 근처 일부 지역에서만 머물다 금방 사라졌다.

 

 매우 단시간에 벌어진 일이라 피해 규모는 크진 않았지만 마을 전체에 두려움이 깔리기에는 충분했으므로 해가 진 다음 날에도 여전히 어수선한 분위기는 계속되었다.

 

 바깥세상이 시끄럽든 말든 디아나는 1층에서 느긋하게 앉아 약초 정리를 하는 마릴라 옆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넌... 하녀 치고는 참 대단하구나.”

 “네?”

 “보통 옆에서 누가 이런 일을 하고 있으면 돕지 않니?”

 

 

 그 말에 머쓱해진 디아나는 슬쩍 눈치를 보다 쓰윽 내려와 그녀 옆에서 약초를 다듬는 척했다.

 

 

 “백작저로 돌아가면 언제 또 이럴 수 있겠나 싶어서요. 이렇게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곳이 전 없거든요.”

 “에이 뭐. 또 여기로 오면 되지. 우리 가족하자.”

 “네?”

 “너 헤이든에게 시집와라.”

 “네? 뭐래요. 저희는 그런 사이 아니라니까요.”

 

 

 그녀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말이 그렇다고. 가족 되는 방법은 많으니까 부담 갖지 말고 오고 싶을 때 언제든 와.

 너 괴롭히는 인간 있으면 꼭 데려오고. 이 언니가 줘 패버릴 테니까. 알았지?”

 

 “하하. 감사해요....

 그나저나 이건 대체 뭐 이리 많아요? 어제도 똑같은 걸 정리하고 계셨던 거 같은데.”

 

 “똑같다니. 어제 정리한 건 암사나무 잎이고 지금 이건 홍자임이야.

 암사나무 잎은 추운지방에서 나는 거라 북부에서 많이 따와서 말려야 해.

 저게 뱃살 빼는데 기가 막히거든. 주변 귀족아낙네들이 허구한 날 사간단다.

 덜 먹을 생각은 못하는 게지. 뭐 덕분에 우리 약초방은 많이 팔아서 좋고.

 

 너도 좀 받아 갈래?”

 

 

 디아나는 백작부인을 잠시 떠올렸지만 이내 머리를 흔들었다.

 ‘이거 먹고 살 빼세요.’ 이럴 순 없지 않은가.

 

 

 “하긴. 너처럼 늘씬한 애에게 뭐가 필요하겠니?

 지금 다듬고 있는 홍자임 잎은 탈모에 효과적이고 피부 재생에도 도움이 돼.

 너네 백작 영애 치료 약에도 이게 들어가.”

 

 

 디아나는 아기 손바닥 모양처럼 생긴 홍자임 잎을 가만히 들어보았다.

 

 요 말라비틀어진 잎이 병을 치료한다는 게 솔직히 믿어지지 않아서리라.

 

 마릴라가 갑자기 디아나의 손을 가져가더니 이래저래 쓰다듬으며 잔소리를 했다.

 

 

 “세상에. 너 17살이라면서! 무슨 아가씨 손이 이렇게 거칠어?”

 

 

 그제야 디아나는 자신의 손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손에 주름이 많이 져있고 거칠고 굳은 살도 많았으며 손가락 끝에 갈라진 흉터도 적지 않았다.

 

 “세탁 하녀여서 그런가 봐요. 유스티나는 솝으로 피부가 고와졌는데 전 그것 땜에 거칠어진 것 같네요. 솝도 귀족 영애를 차별하나.”

 

 디아나는 세상 남 얘기처럼 자신의 손을 평가했다.

 

 “뭔 소리야. 보습제 같은 걸 안 바르니까 그러지.”

 “하녀가 그 비싼 보습제를 어떻게 사요.”

 

 ‘쯧’ 소리를 내던 마릴라는 일어나 뒤쪽에 있는 서랍장에서 약 병을 꺼내오더니 디아나에게 건넨다.

 

 

 “이거 내가 개발한 보습제인데 가져라.”

 

 

 디아나는 그걸 받아서 살펴보니 샤르냐에서 수입해온 보습제는 우유처럼 하얀 색깔인 반면 이건 짙은 노랑색을 띄었다.

 

 “이게 보습제예요?

 “내가 개발했다니까. 헤이든이 예전에 엄청 귀한 약초를 발견해서 남은 찌끄러기로 만든 거야. 발라봐.”

 

 디아나가 조금 덜어내 그녀의 손에 발라보니 흡수력도, 보습감도 유스티나의 값비싼 보습제보다 월등히 뛰어났다.

 

 

 “세상에! 이거 진짜 좋네요!”

 “그치? 내가 좀 쩔어. 나중에 몇 개 더 챙겨줄게. 잊지말고 발라. 알았지?”

 “... 감사합니다.”

 

 

 그녀 손에 쥔 보습제를 빤히 쳐다보았다.

 전생에서 샤르냐의 모든 제품을 다 써본 경험이 있는 디아나는 품질의 차이를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이거 돈 좀 되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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