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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악녀가 흑막이 되어야 했던 사정
작가 : 이디별
작품등록일 : 2022.1.13

전생에 내가 죽여 버린 하녀로 환생해버렸다.
그래서 또다시 마주하게 된 내가 아닌 나.

이번 생에선 너도 나도 그렇게 살아선 안 돼. 내가 바로 잡겠어.

나의 고달픈 마음을 위로해 줄 화가에게 기대고 싶어도
은백색 빛의 유혹이 너무 강렬하다
전생의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소공작이 나를 구원하여주어도
나도 알 수 없는 나 자신이 그 남주들에게 흑막을 드리운다.


뺏지 않으면 빼앗기리라.

 
14화 아름드리나무
작성일 : 22-02-07 13:48     조회 : 285     추천 : 0     분량 : 4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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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어?”

 

 내가 왜 울지?

 디아나의 눈에서 또다시 눈물이 똑똑 떨어졌다.

 

 매일 그녀의 방에 찾아와 함께 차를 마시던 백작.

 늘 그녀의 건강을 챙기며 약을 건네던 백작 부인.

 갑자기 세 사람의 다정한 모습이 떠오른 건 입안에서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스프 때문일까.

 

 정말 사랑을 많이 받은 유스티나.

 그만큼 낙천적이었고 자신감이 넘쳤다.

 센스도 좋고 유머러스해 사교계에서도 인기가 많았다.

 소공작에 대한 집착이 심해지고 라리갈리마와 테스의 성추행으로 인해 악독해졌지만 그래도 문제될 건 없었다.

 백작부부가 그녀를 지켜주었으니.

 그들의 날개 아래에선 그 어떠한 잘못도, 아픈 마음도 위로 받았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젠 나에게는 그런 사람이 없는 거지.’

 

 17살이나 되었으니 부모의 사랑은 이제 필요 없다 생각하며 서운함을 달래었는데 그게 아닌가 보다.

 

 '아빠... 엄마... 당신들은 나에게 간절한 사람들이랍니다.'

 

 이젠 전하지 못할 이 마음이 미어져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디아나.”

 

 당황한 헤이든이 그녀에게 후다닥 다가와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왜 그래? 어? 어디가 아픈 거야?”

 

 스푼을 쥐고 있던 손으로 입을 가리며 복 받치는 설움을 틀어 막았다.

 디아나는 소리 하나 내지 못하고 조용히 흐느꼈다.

 헤이든이 일어나 근처 손수건을 챙겨 그녀에게 건네었고 한참을 눈물 흘리던 디아나가 눈물을 닦으며 억지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정말... 맛있네...”

 

 헤이든이 몸을 낮춰 그녀와 눈높이를 맞추고는 조심히 손을 올려 그녀의 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었다.

 그 손길이 귓불을 닿고 눈물로 얼룩진 그녀의 볼을 향했다.

 

 “괜찮아?”

 

 순간 모든 신경세포가 그가 만진 귓불을 향했고 타버릴 것 같은 이 아찔함에 디아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이런 게 사랑인 건가?’

 

 소공작을 쫓아다닐 때의 집착을 사랑으로 알고 있는 디아나는 지금의 이런 소소한 감정의 정의를 내리기가 어려웠다.

 방금 전까지 아빠 엄마가 그립다고 울고 있던 주제에 남자의 손길 한번으로 눈물이 쏙 들어간 스스로가 기가 막혀 헛웃음이 나온다.

 헤이든은 몸을 일으켜 자리에 앉았고 둘은 말없이 식사를 하였다.

 디아나는 제게 주어진 음식을 천천히 그리고 야무지게 싹 다 비우고는 수저를 내려놓았다.

 

 “헤이든.”

 “응?”

 “진.짜. 맛있어. 내가 먹어본 그 어떤 요리 들 중에서 단연 최고야.”

 

 헤이든의 음식은 정말 훌륭했다.

 전생 때 사교 활동으로 여러 귀족가의 음식들을 접했었고 황궁 무도회에도 참석한 경험이 있는 그녀는 이렇게 포만감 있고 담백한 맛을 접해본 적이 없었다.

 

 ‘물론 그땐 코르셋 때문에 제대로 먹지 못하긴 했지.’

 

 서민들이 즐겨 먹는 이런 단조로운 메뉴에 단맛과 쓴맛, 짠맛과 단맛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고 크림스프의 농도도 딱 알맞아 입안에서 솜사탕마냥 사르르 사라졌다.

 

 “오늘은 뭐할 거야?”

 

 후식으로 마실 차를 내리던 헤이든이 물어보자 별 계획 없던 그녀가 어깨를 으쓱였다.

 

 “나 숲에 가야 하는데 같이 갈래?”

 “숲?”

 “응. 우리 마을이랑 그리 멀지 않은 곳인데 용의 산맥이랑 붙어있어.”

 “용의 산맥...? 거기 위험하지 않아?”

 “난 거기서 살다시피 했는 걸.”

 “하지만 그곳에 가면... 사람들이 저주에 걸린다고 하던데. 그곳을 방문한 기사들이 환각 증세에 괴로워했다 들었어. 라리갈리마도 용의 산맥에서 기원했고...”

 

 디아나는 전생 때 주워들은 이야기를 막 풀어헤쳤다.

 

 “잘 모르는 사람들이나 하는 말이야. 산맥 자체는 문제없어. 거기에 있었던 일들이 문제지.”

 “무슨 일?”

 “... 아무튼 디아나. 같이 가자. 내가 좋은 곳 구경 시켜줄게. 응?”

 “그래, 뭐... 딱히 할 일도 없었는데 잘됐다. 가자. 그럼.”

 .

 .

 .

 

 이라고 말하는 순간을 엄청나게 후회하고 있는 디아나이다.

 

 그를 따라 나선 현재 디아나는 지나친 체력 소모로 호흡이 가빠왔고 삭신이 쑤셨으며 걸을 때마다 발에 휘감기는 드레스가 무척 짜증스러웠다.

 구두를 신은 그녀가 걷기엔 너무 험한 산맥에 불만이 머리 끝까지 솟은 디아나가 씩씩거리며 말을 건넸다.

 

 “헉헉. 너 알고 가는 거지? 여기에 뭐가 있다고?”

 

 그녀의 눈에는 그 길이 그 길이었다. 가끔 들려오는 야생 동물의 울음소리와 도망가는 새소리가 꽤 을씨년스러워 디아나는 등골이 오싹했다.

 용의 산맥 끝자락과 이어진 그곳은 하늘을 뒤덮을 만큼 높다란 나무들이 빽빽하게 서있다. 잘못 길을 들어섰다가는 짐승들에게 잡아먹히기 딱 좋을 만큼 험하고 음산했다.

 

 “걱정 마. 내가 널 위험한데 데려가겠냐? 이게 거의 다 왔어.”

 

 ‘어. 요즘 나한테는 네가 제일 위험해.’라고 말하고 싶은걸 잘 참아낸 디아나는 가쁜 숨을 내쉬며 힘겹게 쫓아가다 헤이든의 등에 머리를 찧었다.

 멈춰선 그녀가 제일 먼저 보게 된 건 거대한 아름드리나무였다.

 커다란 나무를 주변으로 돌들을 낮게 쌓아 올려 경계를 만든 연무장이 있었고 갖가지 훈련 기구들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아름드리나무보단 작지만 제법 줄기가 두꺼운 나무 위에는 오두막이 지어져 있었는데 모양 자체는 엉성했지만 제법 튼튼해 보여 이곳의 풍경을 한층 더 신비롭게 만들었다.

 

 “우와...”

 

 그동안 걸어온 길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에 놀란 디아나가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던졌다.

 

 “어때? 오길 잘했지? 여기는 15년 동안 갈고 닦인 곳이야. 내가 꼬꼬마일 때부터 있던 곳이라고.”

 “정말 근사해! 누가 이렇게 멋진 곳을 발견한 거야?”

 “원래는 공터였는데 엑소더스가 조금씩 가꿔서 이렇게 만든 거야. 저 나무 집은 내가 6살 때 형들이 만들었어.”

 “엑소더스?”

 

 헤이든은 조금 멋쩍은지 한 손으로 이마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동네 꼬마일 때 형들이 만든 돌격대 이름이야. 왜, 어린 시절에 우리끼리 대장 세워 놓고 전쟁 놀이하면서 놀잖아. 마을에서 나름 유명한 기사단이라고. 나를 따르라! 이런 거 말이야.”

 “아! 그래서 네가 대장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응. 내가 제일 좋아하는 형이지. 나 어렸을 때는 되게 소심했거든. 자꾸 동네 애들이 괴롭히니까 대장이 기사 노릇 해주겠다고 엑소더스를 만들었는데 그 이후로 규모가 꽤 커져 버렸어. 따라와. 구경하자.”

 디아나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에게 나무 집을 손으로 가리켰고 조심스레 사다리를 타고 그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곳은 생각보다 더 넓고 아늑했다.

 

 잠시 쉴 수 있는 공간에 러그가 깔려있었고 잡다한 물건들도 담을 수 있는 선반들도 있었다. 발을 디딜 때 마다 삐그덕 소리는 났지만 쿵쿵 뛰어도 흔들림이 없어 안정감이 느껴졌다.

 헤이든은 그곳에 자리를 깔더니 오늘 길에 마을에서 사온 점심거리를 꺼내었다.

 

 “점심 먹을까?”

 “여기 너무 좋다. 틈 사이로 새어 들어오는 햇살이 정말 예뻐.”

 “여름 밤엔 잠도 잘 수 있어. 어렸을 때 여기서 형들이랑 자는데 밤새 들려오는 곤충들 소리가 어찌나 아름답던지. 어른이 된 게 아쉬울 정도야.”

 “넌 퍽 감상적이구나.”

 “그런가?”

 

 멋쩍게 웃는 헤이든의 표정이 참 보기 좋았던 디아나도 그를 따라 웃었다.

 헤이든은 식사를 하며 몇 가지 일화를 재미있게 들려주었고 디아나는 까무러치게 웃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후에는 그곳을 내려와 주변을 돌아보던 중 아름드리나무 가까이에 있는 연무장을 보며 디아나가 질문했다.

 

 “그럼 너도 여기서 검술 배웠어?”

 “난 그딴 거 안 해.”

 “왜? 엑소더스는 기사단 아니었어?”

 “뭐.. 형들이 한다고 나까지 해야 하는 법은 없잖아?”

 “그럼 너는 뭘 하는데?”

 “난 그림 그리고, 책 보고, 나무 심고... 뭐 그런 거?”

 “아하. 진짜 천성이다, 정말.”

 “어렸을 때부터 계집애처럼 논다고 놀림 받기는 했어. 그렇다고 인형 놀이하는 여자애들과 어울리기는 부끄럽잖아.그래서 혼자 노는 걸 좋아해. 그런 나를 늘 챙겨주고 돌봐준 사람이 대장이랑 헤레이스야. 아버지는 늘 바쁘셨거든.”

 

 그러다 문득 누군가의 인기척에 뒤돌아보니 대장이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여어. 대장!”

 “내가 불러서 온 줄 알았는데 마음은 콩밭에 있었군.”

 “심부름 해줄 사람한테 할 소리입니까. 디아나, 저번에 본 적 있지?”

 

 쿵

 

 순간 디아나의 심장 어느 한 곳에 큰 충격이 가해졌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숨을 쉬기가 힘들어진 디아나가 ‘헉’하고 크게 숨을 내쉬었다.

 디아나가 이상해진 것을 눈치 챈 헤이든은 다급히 그녀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물었다.

 

 “너 왜 이래?”

 온 몸이 뜨거워지면서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숨이 가빠왔다.

 아까 먹은 도시락을 토해내고 싶을 정도로 울렁거리는 속을 겨우 참은 디아나는 무언가 폭발 시키고 싶은 욕구에 무척 괴로웠다.

  그때였다.

 

 지안이 그녀에게 달려오더니 거칠게 그녀를 끌어안았다.

 품에 안긴 디아나는 지안의 몸에서 전에 본 적 있던 그 은백색 빛이 나는 것을 보았다.

 그러자 언제 심장이 뛰었냐는 듯 거친 압박이 서서히 가라앉았고 나른한 기분에 취한 디아나는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

 그의 품에서 언젠가 맡아본 적 있던 시트러스 향이 난다.

 정말 그립고 안타깝고 서글픈 그런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가운데 디아나는 지안의 품에서 그대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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