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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로맨스판타지
악녀가 흑막이 되어야 했던 사정
작가 : 이디별
작품등록일 : 2022.1.13

전생에 내가 죽여 버린 하녀로 환생해버렸다.
그래서 또다시 마주하게 된 내가 아닌 나.

이번 생에선 너도 나도 그렇게 살아선 안 돼. 내가 바로 잡겠어.

나의 고달픈 마음을 위로해 줄 화가에게 기대고 싶어도
은백색 빛의 유혹이 너무 강렬하다
전생의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소공작이 나를 구원하여주어도
나도 알 수 없는 나 자신이 그 남주들에게 흑막을 드리운다.


뺏지 않으면 빼앗기리라.

 
13화 잠자는 여인의 방에 함부로 들어가는 거 아냐
작성일 : 22-02-05 18:08     조회 : 280     추천 : 0     분량 : 4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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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5 17 19 21

 

 “우선 짐 풀고 쉬어. 하던 일 끝내고 서랍 하나 비워줄게. 거기에 네 짐 넣고 생활해. 맞은편이 헤이든 방이니까 필요한 거 있음 거기로 가고.”

 

 그녀는 손뼉을 한번 짝 치고는 쿨 하게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나간 것을 확인한 디아나는 방안을 빙 둘러보다가 저도 모르게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 좁다....’

 

 전생에서 현생까지 늘 귀족들이 쓰는 방을 지내왔기에 이렇게 허름하고 좁은 방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책상 위나 이불 상태가 매우 청결하고 깔끔하였기에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며칠이니까 참자. 하지만 루바나 저택은 반드시 갖고야 말겠어.’

 

 디아나가 침대에 앉아 몇 번 들썩이며 침대 상태를 확인하더니 이내 몸을 천천히 눕혀 기대었다.

 더 이상 그녀의 머리 위로 나타나지 않는 숫자를 찾으려 눈동자를 굴리던 그녀가 허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백작가로 돌아가면... 유스티나가 나를 가만둘까? 이젠 죽이지는 않으려나? 전혀 모르는 시나리오로 접어들어 당황스럽네...’

 

 아무리 해독제를 가지고 있어도 다르게 죽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에 이대로 도망갈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 이 와중에 뭐 이리 졸립나?

 추격군에게 쫓기다 잠시 쉴 때에도 라폴르의 디저트를 먹고 싶다 생각한 저의 철없음이 떠올랐다.

 쓴 미소를 짓던 그녀는 하품을 하며 손으로 입으로 가렸다.

 

 ‘하! 일단 좀 자자. 너무 피곤해.’

 

 아무리 승차감이 좋은 마차였지만 몇 시간 동안 타고 왔다.

 지친 것이 당연하리라.

 

 디아나가 무거운 눈꺼풀을 지그시 감자 순식간에 잠들어 버렸다.

 

 

 ***

 

 

 똑똑똑

 

 그녀의 방에 노크 소리가 들려온 것은 해가 진 늦은 저녁 시간이었다.

 

 “나 잠시 들어간다.”

 

 계속 노크를 해도 반응이 없자 살짝 걱정이 된 헤이든은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그녀는 다리는 바닥에 내린 채 침대에 기대어 잠이 들어있었다.

 마릴라가 짐을 챙겨 퇴근하면서 디아나가 담요를 요청했다고 갖다 주라 해서 왔는데 그새 잠이 들었나 보다.

 그는 문을 닫고 불편한 자세로 잠든 그녀에게 다가가 자세를 고쳐주고 베개를 대주었다.

 그리곤 무릎을 꿇고 그녀의 얼굴을 잠시 감상하였다.

 

 황갈색 긴 속눈썹 아래 볼이 약간 상기되어 있다.

 새근새근 소리가 나는 콧날 아래 도톰한 붉은 입술이 그의 시선을 이끈다.

 

 하. 잠자는 여인의 방에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된다더니...

 

 왜 어른들이 그런 말을 한지 알 것 같은 헤이든이다.

 무척 사랑스러운 그 얼굴에 저도 모르게 입술이 다가가 그녀의 콧날에 쪽 키스를 남겼다.

 

 디아나.

 

 처음 보자마자 노을 진 햇살에 비춰진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저도 모르게 험하게 말을 내뱉어버렸다.

 그런 자신을 꾸짖으며 살갑게 다가왔던 그녀.

 마차 안에서 그녀의 입술을 매만졌을 때부터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기에 지금도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 시키느라 정신이 아찔하다.

 그는 몸을 일으켜 담요를 덮어주고는 흘러내리는 그녀의 머리카락 몇 올을 뒤로 넘겼다.

 

 ‘위험해.’

 

 자신에게 빨간 신호가 온 것을 감지한 헤이든은 못마땅한 얼굴로 자신의 머리를 쓸어 올리더니 뒤돌아보지 않고 밖을 나섰다.

 ‘한동안 이방은 출입 금지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질질 끌던 헤이든은 힘겹게 방을 나섰다.

 

 ***

 

 용의 산맥 북쪽 끝자락이 속해있는 듀켈 공작령은 리암 제국의 북부 대부분을 책임지고 있다.

 제국의 방패라 불리는 듀켈지역은 북부로 갈수록 인간이 살 수 없을 정도로 춥고 황량하여 마수들이 들끓는다.

 반면 본토와 접해있는 남부는 여러 마을들이 북적북적 모여 있을 정도로 기온이 따뜻했다.

 그 광활한 영지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듀켈 저택에서 율리안 드 듀켈 소공작이 자신의 부관과 은밀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테스가 사라졌다고?”

 “어제 전령이 도착하여 알려왔습니다. 한밤중에 백작가의 귀중품들을 가지고 도망갔다 합니다.”

 “아르디안 짓인가?”

 “그렇다기엔 소공작 측에서 딱히 움직임이 없습니다. 진 소공작이 강제 징발 건으로 폭언을 한 것 치곤 남작들한테는 제법 상냥하다 합니다.”

 “저만 잘난 줄 아는 쥐새끼 녀석이 화내는 게 눈에 선하다, 아주. 아르디안에 뿌려 놓은 애들에게 테스 행방도 같이 찾으라 해.”

 “네. 이미 지시했습니다.”

 

 율리안은 책상에서 몸을 일으켜 소파에 안자 부관에게도 잔을 건넸다.

 

 “독약은?”

 “트루오스 남작이 잘 챙겼습니다.”

 “마법사들은 협조적이던가?”

 “요즘 황제의 눈에 띄려고 발악하는데 물론이죠. 산타하 백작영애에게 보습제를 빌미로 접근해 독약을 팔았다고 합니다.

 요즘 유행 호신용 물품으로 귀족들이 소지한다는 핑계를 대면서요.”

 “그 멍청이는 그걸 믿던가?”

 “최근까지 투병 생활을 하느라 사교계 흐름을 잘 몰라서 그런지 의심하는 것 같진 않았다 합니다.”

 “잘됐군. 에시온 죽이고 나서 누명 씌우기에 딱 좋겠어. 수고했네.”

 

 율리안이 그만 물러나라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침실로 가려하자 부관이 다급히 말을 이었다.

 

 “어제 바룬 공작님께서 황궁에 가셨다가 의식을 잃으셨습니다.”

 “또?”

 “황제께서... 폭력을...”

 

 율리안은 혀를 차더니 다시 자리에 앉아 잔에 남은 음료를 한 번에 들이켰다.

 

 “... 상태는.”

 “의식은 되찾으셨지만 위독하시다 합니다.”

 “매번 죽지 않을 정도로만 패시는군.”

 “지지부진한 산타하 일 때문에 심기가 많이 불편하시다 합니다. 바르온 혈족 일로 조만간 도련님도 소환되실 것 같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황제께선 아버지보다 나에겐 관대하시니까. 테오도르는 아직인가?”

 “죄송합니다.”

 “그게 네 잘못인가. 은발에 은안이란 단서 하나 뿐인데 찾는 게 더 신기하지. 산타하 먼저 해결하자고.”

 “산타하 백작이 꽤 완강해요. 아직 아르디안에 미련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도련님.”

 

 잔을 채우던 율리안이 시선을 부관에게로 향했다.

 

 “산타하 백작 영애랑 약혼... 하시면 어떨까요?”

 

 그 말에 헛웃음을 짓던 율리안이 테이블에 음료를 흘리자 손수건을 꺼내 깨끗이 닦으며 주변을 정리하였다.

 

 “지금 나보고 촌구석 백작 영애와 결혼을 해라?”

 “산타하를 처리 못하시면 황태자 자리는 커녕 테오도르 일로 불려가 안위를 보장 못받으십니다.

 혹시 공작님께서 쾌차 못하시는 날엔 가주가 되실 텐데 이러다 황태자 자리가 롤란드에게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장난해? 황제께서 내 머저리 동생에게 참으로 황태자 자리를 논하시겠다.”

 “만약 산타하를 바룬 공작님이 아닌 도련님께서 해결하신다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산타하 백작도 자신의 딸을 황태자비 시켜 준다 하면 솔깃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고 내가 지금 그 여자랑 결혼을 하라고?”

 

 율리안은 정말 싫은지 치를 떨며 부관에게 윽박 질렀다.

 

 “공작님께서도 그 약혼에 대해 긍정적이셨습니다. 산타하를 우선 해결하고 영애에게 살해 혐의를 떠넘기면 파혼 할 명분도 생깁니다.”

 

 잔에 든 음료를 살살 돌리던 율리안은 제법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고민하던 것 같은 그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럼 내 예비 약혼녀를 만나러 산타하에 한번 방문해야겠군.”

 

 ***

 

 디아나는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부시시 눈을 떴다.

 너무 피곤해서 씻지도 못하고 잠이 든 것이 생각난 그녀는 서둘러 방문을 나서며 화장실 문을 노크하는데 부엌에서 헤이든이 머리를 쏙 내밀었다.

 

 “어? 일어났네. 잘 잤어?”

 “응. 엄청. 나 어제 그대로 잠들어 버렸나 봐. 마릴라 언니는?”

 “누나가 조용히 짐 정리해서 어제 밤에 자기 집으로 갔어. 아직 출근 전이지. 씻고 아침 먹으러 와.”

 

 그는 부엌으로 급하게 들어갔고 디아나는 욕실로 가서 가볍게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부엌에 가보니 식탁 위에 따뜻한 크림 스프와 베이컨이 뿌려진 부채꼴 모양의 오믈렛, 신선한 야채들이 듬뿍 담긴 한 끼 식사가 정갈하게 차려져 있었다.

 

 “배고프지? 어제 저녁도 못 먹고 자서.”

 “이걸 언제 다 준비한 거야?”

 “너 배고플까 봐 일찍 일어나 만들었지. 여기 앉아.”

 

 헤이든은 그녀에게 손짓하며 의자를 빼주었고 디아나가 앉을 때 의자를 살짝 밀어주며 편하게 앉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는 자신도 맞은편에 앉아 디아나의 컵과 자신의 것에 물을 따랐다.

 

 “너도 피곤했을 텐 데...”

 “충분히 잤어. 어서 먹어.”

 

 디아나는 싱긋 미소 짓더니 수저를 들어 크림 스프를 먹어보았다.

 너무 맛있어서 그녀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났다.

 그녀의 표정에서 답을 들은 헤이든이 그녀에게 세상 다정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디아나는 그의 모습에 잠시 넋을 잃었다 고개를 숙여 한 숟가락 뜨는데 갑자기 그녀의 눈에서 물방울 하나가 똑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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