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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문 너머 시계탑
작가 : 설은아
작품등록일 : 2022.1.3

대학졸업 후 2년동안 집에만 있는 여주. 부모님의 격려와 응원은 부담감으로 다가오는데 어느 날 창고 문이 열리고 또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시간을 돌릴 수 있어." 한 남자아이가 한 말, 이건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1화 초대받다
작성일 : 22-01-03 17:28     조회 : 514     추천 : 0     분량 : 8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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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사람이있다.

 뭐든지 가지고 있는 사람.

 그 사람은 하고 싶은건 다하는 부러운 사람.

 부유한 집안해서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다 해보고 예쁜 옷 멋진 옷 입으며 좋은 학교, 대학교 다니며 직장을 다닌다. 모두 그렇게 되고 싶지만 그건 어려운 일이다.

 그 사람은 그에 맞는 어울리는 사람들이 있겠지...

 하지만 많은 사람들 중에서 그 사람은 나에게 먼저 다가와 인사를 한다.

 “오랜만이야 여주야”

 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사이처럼 말이다.

 어딘가에서 만났던 그 사람

 나는 그 사람에 비하면 그 어떤 것도 제대로 바줄 것도 없다. 얼굴도 키도 공부실력도 거기다 아직 직장도 없는 취업준비생인데도, 그 사람은 나에게 말을 걸어준다.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관심을 보여도 그 사람은 “우리 저녁 먹으러 갈래?” 라고 말을 걸어준다.

 그런 일이 그런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건 꿈일 뿐이다.

 

 

 

 깜깜한 방 밖으로 빛이 새어 들어온다.

 컴퓨터는 끄지 않은 건지 화면이 환하게 켜저 있어 침대 쪽으로 빛이 간다. 그런게 불편했는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있다. 방 밖에서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게 누구한테 대드는 거야! 이제는 시어머니한테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네, 넌 그냥 시키는 데로 하면 된다고!)

 (전 맞는 말을 했을 뿐이 예요.)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여주의 어머니는 아침에 드라마를 보는 것이 취미이다. 아침드라마는 대부분이 막장이라 보는 네네 몰입도가 올라가는 것을 느낀다.

 그것은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알 수 있다.

 같이 욕을 할 때도 있고 쿠션을 손으로 치는 듯한 소리, 채널을 돌리기도 한다. 대학생 때는 한 번씩 같이 본 적이 있지만 괜히 짜증만 나서 이제는 보지 않는다. 어머니에게는 티비를 보는 것이 유일한 취미일 수도 있지만 지금은 방 밖에서 소리가 들리면 자연스럽게 일어날 때가 많다.

 오전은 조용하다.

 집 밖에서는 히미하게 들려오는 차 소리와 사람들 목소리를 빼고는 시끄럽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애초에 집들 간에 거리도 있고 낡은 주택에 살아서 주변에 별로 볼 것도 없다. 말하자면 시골이라고 한다.

 작년까지는 괜찮았다.

 어머니와 산책 겸 장을 보러 가기도 하고 주변 이웃들에게 인사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여주는 방에서 조용히 컴퓨터를 켜고, 화면만 바라볼 뿐이다. 창 밖을 보면 ‘바람이라도 쐴까‘ 라는 생각도 들지만 금방 사리지고 만다. 그리고 다시 컴퓨터 화면으로 고개를 돌린다. 화면을 매일 봐도 여전히 방에 앉아만 있었다.

 한숨이 나온다.

 침대에 누워 있으면 몸은 편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혼내는 것도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방 안에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계속 이렇게 있으면 안된다.'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운다. 대학을 졸업하고 자격증까지 취득했지만 아직 취업은 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일은 천천히 해도 돼.” 라고 말한다.

 하지만 여주의 몸과 마음은 다르다.

 드라마가 끝나고 광고 소리가 들리자 여주는 방을 나와 부엌으로 나왔다.

 “배고프다.”

 어머니는 어제 끓여 놓은 국을 데우고 있었다. 맛있는 된장찌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여주를 보며 앉으라는 듯 손짓하고는 그릇과 주걱을 쥐었다.

 “양치랑 세수만 하고 올게!”

 여주는 빠르게 화장실로 갔다.

 잠시 후 물소리와 함께 씻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는 그 사이 그릇과 주걱으로 밥을 준비했다. 갓지은 밥인지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반찬과 함께 식탁에 날으자 언제 왔는지 수저를 챙기는 여주이다. 먼저 앉으라는 듯 의자를 당겨주며 어머니를 바라보고는 컵에 물을 담았다.

 아침식사는 조용했다.

 "어제 늦게 자는 것 같던데 일찍 자,몸에 안 좋아. 너무 급하게 할려고 하지 말고 천천히 알아봐."

 김치를 밥에 올려주며 말씀하는데 '빨리 일해야지' 라는 생각이들었다.

 누가 뭐라고 하는것도 아니다. 강요하지도 않는다. 집에서 뒹굴거리며 놀고 먹으면 편하다.

 하지만 마음 속에서 '이건 아니야'. 라며 수 없이 말하고 있다.

 "괜찮아요"

 작은소리로 대답했다

 "너무 무리하지 말고, 쉬면서 해."

 "네"

 짧은 대답 후 물을 마셨다. 나름 이름 있는 대학을 졸업하고 2년동안 제대로 일도 못하고 있는데 너무 한심하고 아무 말 없이 계시는 부모님께 죄송하다.

 벨소리가 울렸다.

 어머니의 전화소리였다. 어머니는 부엌구석에 서서 전화통화를 했다. 직장동료인 듯 반말을 하며 일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불평을 내는 듯 했지만 짜증은 내지 않는 듯 했다.

 "뭐? 갑자기 그러면 어떻게 해."

 어머니가 일하는 곳은 근처 마트이다. 걸어서 20분정도 걸리는데 작은 주차장도 있는 여기서는 제일 큰 마트이다. 최근에는 바닥도 새로 깔았다고 들었다. 어릴 때부터 같은 곳에 살아서 그런지 조금만 뭔가 바뀌면 눈이 간다.

 "설거지는 제가 할게요."

 한 손에 폰을 쥐고 한 손으로 접시를 잡으려하자 여주가 말했다.

 설거지까지 하고 출근하려는 것이 왠지 죄송했다.

 여주는 싱크대에 그릇들을 나르고 행주를 빨았다.

 "오늘은 언제쯤 오세요?"

 항상 오는 시간이 있었지만 전화통화를 한게 있어 한번 물었다. 어머니는 음...하고 잠깐 생각하는 것 같더니 입을 열었다.

 "한 한시간 정도..? 괜찮아 빨리 올게, 아빠는 조금 늦는다고 했으니까 알고있어."

 가방을 가지고 현관으로 갔다.

 "다녀오세요."

 졸업 후 실습한 곳에 취업을 하기는 했지만 두달도 안되서 그만두고 다시 구하려하니 대부분 경력직을 요구한다. 그리고 나와 맞지 않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학교다닐 때의 여주는 차분하고 조용했다. 그렇다고 친구가 없었던 것도 아니었고 공부를 못하지도 않았다. 학교에서와 졸업 후의 생활은 생각보다 달랐다.

 

 

 과거

 

 출근 첫째 날

 선생님들도 같이 들어온 입사한 사람도 좋은 사람이었다. 처음으로 정식 선생님이 됬다는 생각에 들뜨기도 했다. 어린아이들이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한 반의 부담임을 맏게 되었을 때는 많이 떨리는지 아이들도 알아차릴 정도였다. "선생님 교실은 저쪽이예요." 라던가 "그림은 안 그려요?" 라던가 "다은이는 왜 안 데려가요?" 라는 말을 하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그럴수록 담임 선생님의 신경이 곤두서고 인상을 찌푸렸다.

 "여주 선생님 오늘 차량 좀 대신 나가주실래요?"

 옆반 선생님이 여주에게 다가 와 부탁아닌 부탁을 했다. 옆반 선생님은 경력5년차 선생님이다.

 "차량이요?"

 "응, 갑자기 어머님 한 분이 오신다고 하셔서... 아니면 담임 선생님이랑 바꿔도 되고."

 원래 아이들 차량안내는 시간표처럼 정해져 있지만 서로 합의하에 바꾸기도 한다. 물론 자주 일어나는 일은 아닌 것 같지만...

 "아니예요, 제가 갈게요. 아이들은 누구누구 데려가야 되나요?"

 교실정리를 하고 있는 여주에게 마침 일을 주는 선생님이다. 남은 아이들과 동화책을 읽고 읽는 담임 선생님께 다녀오세요 라고 할 순 없으니 일을 주시니 감사하다면 감사하지만 아니라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여기 애들 이름, 순서랑 메모 적어 놓았으니까 참고하고 부탁할게."

 선생님은 생긋 웃으면 종이를 건네고 자신의 교실로 가버렸다.

 여주는 아이들을 데리러 반을 돌아다녔다. 총 8명. 5살~7살이 대부분이었다. 신발장 앞에서 신발을 신는데 차량기사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은 팔을 붙잡고 차를 향해 손짓했다. 서둘러 차량에 올라탄 아이들을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선생님 시간 늦었어, 빨리빨리 다녀."

 기사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죄송합니다."

 "다 탄거 맞지, 출발해도 되지?"

 "네, 가셔도 됩니다."

 차는 아파트단지 여기저기를 돌며 아이들을 내려주었다. 마지막 두 명이 남고 단지 앞에 멈추자 어머님 한분이 서 계셨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여주는 차에서 내려 인사를 하고 아이들을 차에서 내려주었다.

 "엄마가 없어."

 내린 아이가 주변을 보면서 말했다.

 순간 당황한 여주는 '아직 안 나오셨나?' 라고 생각했다. 일단 어머님과 인사를 하고 나머지 한 분을 기다렸다. 차에선 기사님의 혼잣말이 들렸다. 살짝 짜증 아닌 짜증이 나신 것 같았다.

 벨소리가 울렸다.

 여주의 벨소리였다.

 "여보세요?"

 ["선생님 민준이 데리고 가셨어요?"]

 순간 여주의 머리속에 무름표가 떠올랐다. 차에 해맑게 앉아있는 아이를 보았다. 명찰에는 이민준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었다.

 ["선생님?"]

 "아,..네!"

 여주는 짧고 빠르게 대답했다.

 ["빨리 데리고 오세요, 제가 준 메모지 못 보셨어요? 써 놓았는데 오늘 어머님이 데리러 오신다고요."]

 주머니에서 메모지를 꺼내보니 확실히 적혀 있었다. 프린트 종이라 여러명의 이름이 있었지만 빨간색으로 체크표시와 동그라미 태우지 말라는 글이 써져 있었다. 순간 '아! 어떡해.' 하는 생각이 스치는 순간 기사님이 말했다.

 "어떻게 할거에요? 나 퇴근해야 돼!"

 여주는 통화를 끝내고 차량에 올라탔다. 유치원에 다시 가야된다는 말에 기사님은 화가 난 듯 보였지만 별 수 없었다. 옆에서는 어디가냐는 민준이의 말에 다시 유치원이라고 말하곤 한숨을 내쉬었다. 왠지 민준이의 어머니가 이미 와 계실 것 같았다. 머릿 솟에는 '어떻하지,어떻하지.'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잠시 후 민준이를 무사히 귀가시켰다.

 언짢은 목소리를 내며 인상을 찌푸리는 원장선생님은 아무말도 없었다.

 "죄송합니다."

 원장선생님은 여주의 눈을 보았다.

 "선생님 선생님이 좋은 분인건 알아, 아이들도 선생님 좋아하고 어머님들도 특별히 싫어하시는 분들도 없어. 근데 이렇게 실수를 반복하면 안 되지."

 "네..."

 "어머님들한테 컴플레인 전화오면 감싸주는 우리 입장도 생각해야지."

 그 뒤로 매일 집에 있는 일이 반복되었다.

 

 

 현재

 

 "점심은 꼭 챙겨서 먹어. 데워서 먹기만 하면 되니까 빼먹지 말고 알았지."

 현관문 닫이는 소리와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계속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서 그런가 눈도 아프고 허리도 뻐근했다. 잠깐 침대에 누워 눈을 감으니 편안했다.

 띠링!

 문자알람이 울렸다. 아무렇지 않게 문자를 보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내일 면접을 보러오라는 문자였다. 입에서 미소가 번졌다.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할 곳을 찾아 이력서를 보냈지만 답은 오지않았다.

 "면접이라도 어디야."

 컴퓨터 전원을 끄고 거실로 나왔다. 시계를 한번 보니 점심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부엌으로 가 아침에 먹었던 찌개 뚜껑을 열었다. 원래는 '직장에서 밥 먹고 일할텐데...' 하고 생각했다. 그러니 빨리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밥을 먹는데 식탁에 앉아서 어머니가 해주신 밥을 먹는 26살 백수라고 생각하니 너무 한심했다. 취업했을 때는 좋았지만 막상 일하니 적응하지 못하고 금방 구할 수 있다 생각했던 아르바이트도 떨어지고 이젠 면접 보는 것도 어렵다.

 너무 힘들다.

 오랜만에 친구들에게 연락이 왔다. 어떻게 지내냐? 남자친구는 있냐? 무슨 일 하냐? 알람이 쉬지 않고 울린다. 여주의 손은 빠르게 움직이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어쩌면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는지도 모른다. 마음 속 어딘가에 친구들이 날 뭐라고 하는 건 아니가 친구들은 어디든 취업해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친구들과 연락을 할 때면 외톨이가 된 것 같다. 친구들이 욕하는 것도 놀리는 것도 아니지만 다만 혼자 집에서 놀고 있다는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다는 것이다.

 -여주야 잘 지내?-

 소꿉친구인 해진이에게 알람이 떴다.

 -난 요즘 머리가 복잡해서 잠깐 본가로 내려갈까 하는데 언제 한번 볼래?-

 해진이는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꾸준히 아르바이트했던 돈과 부모님의 도움으로 작은 옷가게를 열었다. 꽤 많은 돈이 들어가 작은 곳에서 시작하긴 했지만 해진이의 싹싹하고 잘 웃는 성격이 때문인지 장사는 잘 되었나보다.

 천천히 답장을 보냈다.

 -나야 똑같이 지내지... 넌 무슨 일 있어?-

 -그냥-

 해진이는 항상 밝은 친구다. 부정적인 말은 잘 사용하는 일이 거의 없어 기분이 안 좋을 때나 목소리가 줄어들 때면 아프거나 안 좋은 일이 있을 때였다. 걱정이 되었다. 막상 내 이야기를 할 줄 알았는데 무슨일이 있는게 아닌가 라고 바뀌게 된다. 다른친구들 말에 해진이의 대답이 올라왔다.

 -동생이 몸이 안 좋아.-

 해진이에게는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남동생 한명이 있다. 몇 번 본적은 없지만 한 눈에 봐도 약해보였다. 그래서 부모님과 병원을 자주 왔다갔다 했다고 한다. 아마 동생 때문에 본가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기분좋게 연락을 끝내지 못 하고 멍하니 소파에 앉아 있었다.

 다음 날 오전 면접준비를 위해 깔끔한 옷차림과 머리를 올려 묶었다.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을 위 아래로 훑어보고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조용히 거실을 빠져나오자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가니?"

 아직 출근하지 않은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다정하고 침착하다. 여주는 당황했지만 조용히 대답했다.

 "네, 다녀오겠습니다."

 아버지는 출근시간이 조금씩 달라서 아침에 잠깐 보거나 밤에 잠깐 보는게 다이다. 어색하고 무서운 아버지.

 하지만 어머니와 다른 또다른 부담감.

 "조심해서 다녀와, 차 조심하고."

 "네, 다녀올게요."

 "아니면 테워다 줄까? 곧 나가는데, 같이 가?"

 "아! 아니요 괜찮아요."

 순간 빠르게 대답했다.

 "그래,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건강이 더 중요하니까."

 여주는 목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리하지마.천천히 해도 돼. 아직 시간은 있어. 옆에서 좋은 말, 격려해주는게 고맙다.

 하지만 뭔가 모를 부담감과 집 안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눈치를 보게 되는 것 같다.

 집을 나와 버스로 2시간 정도 걸리는 유치원은 규모는 크지 않지만 나름 괜찮아 보였다. 면접을 볼 때는 늘 몸이 굳는다. 몇번을 해도 익숙해지기 힘들다. 상담실에 앉아 눈과 귀에 신경을 집중한다. 면접을 기다리는 잠깐의 시간은 정말 입술이 바짝 마른다.

 "많이 기다리셨죠?"

 원장선생님으로 추측되는 분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같이 일어서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했다. 이력서를 본 선생님은 하나씩 질문을 했다. 집에서 얼마나 걸리나, 자차는 있나, 전 직장은 왜 그만두었는가, 쉬는 동안 뭘했는지 등등 면접에서는 비슷한 질문이다. 솔직히 꾸미고 부풀려 말할 수도 없으니 있는 그대로 대답했다.

 "집에서 거리가 좀 되네?"

 "네, 차가 없어서..."

 "일단 여기까지만 하고 내일 안으로 연락줄게요."

 "네, 감사합니다."

 역시 면접은 빠르게 끝난다. 집으로 돌아오늘 버스 안에서 가만히 창문만 바라봤다. 이미 연락이 안 온다는 것을 직감했다. 아마 몇번 면접을 본 적이 있으면 알 것이다.

 "하아..."

 

 누군가 여주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순간 기겁을 하며 뒤돌아보았다. 뒤에는 해진이가 서 있었다. 해진이는 긴 생머리를 언제 잘랐는지 짧은 단발머리가 되어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인사를 했다.

 "여기 어떻게 왔어?"

 "어떻게 오긴 버스타고 왔지."

 자연스럽게 걸으며 이야기 하는데 기분이 좋아졌다.

 해진이가 사는 집은 여주네 집에서 걸어서 10분이 안 된다. 부모님들도 아는 사이라 어렸을 때부터 자주 놀곤했다. 해진이 집은 2층주택이라 마당이 있다는 것만 빼면 꽤 차이가 나는 집이다.

 해진이의 어머니께서 찍으신 사진들도 있다. 해진이 어머니는 사진작가라고 했다. 서재에는 다른 사람들을 찍은 앨범, 풍경을 찍은 사진들도 액자로 만들어 놓은 것을 보았다.

 "잘 찍었지?"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 듯 말했다.

 "엄마가 처음 일 할때부터 찍은 사진들 전부 모은거야."

 흑백으로 찍은 사진도 오래된 사진도 책에서 볼 듯한 낡은 집에서 찍은 집과 사람들 비싸보이는 집도 직접가서 찍은 듯 했다.

 사진관은 가봤지만 이런 사진들을 계속 모으고 계실지는 몰랐다. 책상에 있던 카메라를 여주에게 가져다 댔다.

 "뭐,뭐야!"

 여주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재밌다는 듯 웃으며 카메라에 찍힌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는데 눈을 크게 뜨고 손으로 얼굴을 반쯤 가린 모습이었다.

 "장난이야,장난 왜 그렇게 굳어. 부끄럼은 많아서는... 아! 요즘 우리 가족사진 찍은것도 있는데 볼래?"

 자신의 방에 들어가 액자 하나를 들고 오자 집 앞에서 찍은 해진이와 부모님, 남동생이 있었다. 자신있게 들고온 해진이의 얼굴은 미소보다 씁쓸한 표정이 더 번져있었다.

 "너도 가족사진 찍을래? 엄마한테 말해줄게."

 괜히 옆구리를 툭툭 치며 어색해진 분위기를 풀었다.

 "아니야, 괜찮아, 카메라 앞에 서면 표정도 굳어지고..."

 "그런 건 많이 찍어보면 풀려."

 해진이와 말하고 나니 아침부터 긴장했던게 조금 풀리는 기분이다.

 해진이가 다른 지역으로가 일을 하게 된 이후로는 주로 전화나 문자로만 연락해 얼굴은 한번 밖에 보지 못했지만 해진이는 내 소중한 친구이다. 해진이는 나와 연락 하지 않을 때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집으로 돌아온 뒤 휴대폰 알람의 수는 점점 줄어들었다.

 그건 다음 날이 되어도 마찬가지다. 아니 아예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여주네 집안에는 작은 창고가 있다. 현관 옆에 작은 공간을 잡동사니를 넣을 곳으로 만들었다. 문은 평범한 나무 문에 어른 두 명이 들어가면 꽉 차는 공간이다. 한 번씩 창고에 갇친 듯 답답할 때도 있지만 말이다.

 얼굴을 비비고는 천천히 침대에 쓰러진다. 껴저있는 컴퓨터 화면이 거슬린다. 부모님은 자신이 무엇을 하든지 뭐라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용돈까지 주면서 편하게 생활해 왔다. 솔직히 집에서 놀고 먹고 누워 있으면 편하지만 계속해서 부모님 얼굴을 볼 자신이 없다.

 지금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만약 일을 해도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까? 계속 집에만 있으면 어떻게 하지. 다시 머리 속을 채운다.

 끼이이익

 문소리가 들린다.

 '뭐지?'

 순간 몸이 궅어 소리에 집중했다. 분명 문소리였다. 멀리서도 가까이도 아닌 뭔가 열리다 만 문소리. 여주는 심호흡을 하고 방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창고 문이 살짝 열려있었다.

 문고리를 잡았다.

 창고 문을 천천히 열었다. 틈사이로 상자들이 보였다.

 ...?

 안에는 잡동사니들 뿐이였다. 창피해진 여주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안에서 번쩍하며 빛이 새어나오며 여주를 빨아들였다.

 "어어!!!"

 온몸이 창고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몸에 다이는 물건은 없었다. 온몸을 빛을 감싸는 기분이었다. 여주는 주위에 뭐가 있는지 머리 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멍하니 서있는 여주에게 누군가 말했다.

 "정신차려!"

 남자아이의 목소리였다.

 멍하니 서있는 여주의 팔을 흔들며 말하는 남자아이는 유치원생 많게 봐도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아이였다.

 "바보처럼 멍하니 서서 뭐하는거야!"

 처음보는 남자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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