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 아카데미의 회귀제자 -10회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방금 봤어?”
“움직임 놓쳤어, 뭐지?”
경기장과 관중석의 거리가 있다고 하지만, 많은 이들이 각성자였고, 그들의 동체시력은 운동선수보다 뛰어났다. 그런 이들이 도하의 움직임을 한순간 놓쳤다. 가속능력인지 아니면 육체능력인지 추측이 오가는 가운데 새로운 라이징 스타가 떠올랐다는 평가도 이어졌다.
“이거 누가 우승할지 모르겠는데?”
누군가의 중얼거림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떡였다.
* * *
대단하다!
리크 암스트롱이 혼절한 채 나자빠지자 유나는 입을 쩍 벌리면서 생각했다.
리크 암스트롱.
학생들 사이에서도 수재로 소문난 인물이었다.
1만 명이나 되는 학생 중에서 소문이 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48강전에서 직접 겪어봤기에 유나는 리크 암스트롱이 얼마나 대단한지 몸소 느꼈다. 그런 리크 암스트롱이 무언가를 제대로 하기 전에 도하에게 패배했다.
절대 이길 수 없을 것 같던 벽이 산산조각 난 느낌이었다. 유나는 눈을 반짝였고, 그렇게 반짝일수록 박탈감도 함께했다.
대기실 한편에서 씁쓸함과 대견함이 공존가는 가운데, 그녀를 지켜보는 시선이 있었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던 학생 한명이 바깥으로 나갔다. 나가던 도중의 그의 체형이 변하기 시작하며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그리고 핸드폰을 꺼내더니 전화를 걸었다.
“목표물은 크게 변화가 없습니다. 다음 페이즈로 넘어가겠습니다.”
그는 그 말을 끝으로 대기실을 슬쩍 쳐다보곤 몸을 돌려 출구 쪽으로 향했다.
지나가는 길에 자판기와 쓰레기통이 있었고, 그는 자판기에서 음료를 하나 뽑았다. 그리고 얼굴을 쓰다듬어서 인공피부를 벗겨내 쓰레기통에 집어넣었다. 캔뚜껑을 열고 음료를 마시면서 유유히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 * *
16강전이 끝나면서 토요일 경기는 모두 마무리 되었다.
좋은 경기를 보여준 선수들에게 관객들은 박수를 쳐주었다. 도하는 경기를 끝내고 부모님을 만나고 있었다.
“우리 아들이 최고던데?”
“하하하, 나는 우리 도하가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지!”
도하의 어머니 김서연과 아버지 윤정현은 자랑스럽다는 눈빛으로 도하를 보았다.
오랜만에 얼굴을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 정도로 방문했던 키퍼시티에서 아들은 주인공이었다. 본선에 진출한 것뿐만 아니라 상대를 압도적으로 이겨내는 모습을 보였다. 부모로서 자랑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이야, 우리 아들이 이렇게 강할 줄이야.”
윤정원은 상상치도 못한 아들의 정체를 알아버린 것처럼 과장되게 말했다.
“우리 아들, 장하네! 우후후!”
어머니 김서연은 도하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살갑게 대했다. 도하는 그게 싫지 않아 머쓱하게 웃었다.
“엄마, 아빠! 근처 식당으로 가죠?”
“오냐! 이 아빠가 전부 시켜주마!”
“이 사람도 참.”
세 사람은 곧장 번화가로 움직였다. 경기가 끝나고 가족단위로 사람들이 움직여서 학교 근처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윤도하 학생! 경기 잘 봤습니다!”
몇몇 사람들이 도하를 알아보고 외쳤다. 대부분 길드 에이전트였다. 도하에게 다가오려던 이들도 가족간 있는 것에 한발 물러섰다. 그것에 도하는 고개를 숙여보였다. 아직 졸업까지 2년은 더 남았으니 눈도장 정도로 그들도 만족하는 것 같았다.
꽤 많은 주목을 받으면서 세 사람은 식당으로 들어갔다.
“예전 감성인데?”
“별난 별의 노래? 가게 이름이 신기하구나?”
도하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가게 이름을 보고 흥미로워했다. 레트로감성이라고 해야하나, 구식 인테리어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식당이었고, 맛도 무척이나 좋았다.
“윤도하, 이름으로 세 사람 예약되어있을 거예요.”
종업원이 고개를 숙였다.
인테리어만 낡아 보일 뿐이지, 모든 요리가 코스요리로 이뤄져 있었다.
은은한 노래가 흘러나왔고, 시끌벅적한 분위기는 퍽 사람을 안심시켰다. 편안하고 안정적인 분위기였다. 요리가 나오기도 전에 오랜간만의 만남이라 세 사람은 이야기꽃을 피웠다. 천천히 그에 따라 코스요리가 나왔다.
코스 요리가 중반을 넘어갈 때, 밖에서 소란스러워졌다.
“무슨 일이 일어났나?”
“싸움이라도 벌어진 거 아닐까?”
“아냐, 연락 왔는데, 밖에 마탑주가 있대!”
“마탑주면 사우러스 드레이즈?”
“응응!”
주변 테이블의 이야기를 들은 도하는 소란스러운 이유를 깨닫고 그러려니 신경을 껐다. 하지만 소란스러움은 그치지 않았다.
“와아!”
누군가 환호성을 질렀고, 그와 함께 다섯 명의 일행이 가게 입구로 들어왔다.
세 명은 마탑의 문양이 그러진 로브를 입었고, 두 명은 교복을 입은 학생이었다.
“그레이스의 이름으로 다섯 명, 예약되어있을 것입니다.”
“예예, 모시겠습니다. 그레이스님.”
학생 한 명이 지배인에게 말했고, 지배인은 긴장한 표정으로 다섯 명을 안내했다.
다섯 명은 도하네 가족의 옆 테이블에 착석했다. 네 명이 앉고, 마지막 학생이 자리에 앉으려다가 옆테이블의 도하를 보고 흠칫 멈췄다.
“윤도하!”
“……?”
도하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자신을 향해 검지를 향한 학생을 보았다. 오늘 16강에서 만났던 리크 암스트롱이 그곳에 있었다.
리크 암스트롱은 자신도 모르게 큰소리를 낸 것에 시선이 모이고, 그로인해 주목받았다는 사실이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히면서 얌전히 자리에 착석했다.
“아! 아까 도하랑 대결했던 친구구나?”
“어머, 그러네요.”
윤정원은 도하를 알아보는 것에 친구라고 생각했는지 반갑게 리크 암스트롱을 보면서 말했고, 그에 반응한 것은 옆자리에 앉은 중년의 남자였다.
“이거, 저희 리크가 실례했군요. 영국마탑소속 페렌트입니다.”
“아, 여기 도하의 아버지인 윤정원입니다.”
테이블에 앉은 채 약식으로 인사를 주고받았다. 페렌트는 후드를 벗고 얼굴을 드러냈는데, 꽤 호탕해 보이는 중년 남성이었다. 윤정원도 일어서서 꾸벅 인사를 건넸다. 남자들만의 눈인사가 이어진 가운데 페렌트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설마 리크가 질 줄 몰랐는데, 또 설마 바로 옆자리에서 식사를 같이할 줄 몰랐습니다. 이것 또한 신비로운 인연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안 그렇습니까? 마탑주?”
“페렌트, 네 제자가 쓰러트린 아이가 궁금한 것이 아닌고?”
“하하하, 마탑주도 얄궂으십니다.
로브의 후드를 벗은 중년의 마법사가 은은하게 웃었다. 페렌트가 호탕한 중년미를 지닌 신사라면, 마탑주는 차분한 인상의 중년미를 가진 신사였다.
“이것도 인연이긴 하군.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그쪽 테이블의 식사를 마탑에서 사겠소. 괜찮겠습니까?”
“아, 감사합니다. 이거 유명한 분께 식사대접을 받는 느낌이라 영광입니다.”
평범한 직장인인 윤정원은 기지를 살려 부담이 느껴지지 않게 호의를 받아들였다. 마탑주는 고개를 끄떡이고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이능의 향기가 퍼지면서 두 테이블이 움직였다. 마법 같은 일. 아니, 실제로 마법이 일어나며 기적 같은 일이 벌여졌다.
공간이 변화하고, 원형의 테이블이 직사각형으로 변했으며 두 테이블이 합쳐진 것이다. 식사 도중이던 도하네 식구의 의자가 움직였고, 식기들도 저절로 둥둥 떠다니며 제자리를 찾았다.
“본인은 식사할 때 많은 이들이 있는 걸 좋아하네. 다양한 식견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지.”
순식간에 마법이 일어났고, 윤정원과 김서연은 벌어진 마법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직사각형의 일자형 테이블에서 마탑주는 싱그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소개하겠소. 본인은 영국마탑의 수장인 사우러스 드레이즈라고 하네.”
“아… 윤정원입니다. 여긴 제 아내인 김서연이고 여기는 제 아들인 윤도하라고 합니다.”
옆 동네 아저씨정도로 생각했던 윤정원은 영화 같은 마법이 실제로 일어나자 다소 긴장한 목소리로 가족을 소개했다. 다행이도 마탑주 드레이즈는 입담이 좋았다. 성격도 꽤 털털해 보였다.
“한국은 꽤 유명하지. 너희도 출장을 몇 번 가보지 않았느냐?”
“맞습니다. 강한 각성자가 많다는 건 축복이지요. 더군다나 지켜야할 영토도 상대적으로 작으면서 많은 숫자의 각성자가 나옵니다. 단순히 많은 것도 아니고 유니크를 시작으로 수준급 각성자도 꽤나 많아요. 영토문제로 매번 문제가 일어나는 중국과 확연하게 대조되는 국가이지요.”
페렌트의 대답에 마탑주는 고개를 끄떡이다가 무엇이 떠올랐는지 입을 열었다.
“하나 무엇을 물어봐도 되겠소?”
“무엇입니까?”
“윤정원 씨가 생각하기에 한국의 맛집이 무엇이 있소?”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었다. 맛집이라니? 윤정원은 순간 마탑주가 굉장한 미식가라는 뉴스기사가 떠올라서 생각나는 것을 말했다.
“맛집이라면 역시 서울의 ‘샛별’이 아닐까 싶네요. 저도 일 때문에 두세 번 방문한 게 다지만 그곳의 한정식은 미슐랭이 틀리지 않다는 걸 증명하니까요.”
“호오? 본인은 미식을 아주아주 좋아하네. 그대의 말은 심히 흥미가 가. 이곳에 온 것도 그레이스의 추천이었지.”
“그거 다행이군요. 반대로 서민들의 식당 중 최고는 서울의 서초동의 종막골을 추천드리지요. 그곳의 마늘족발과 냉채족발은 세계에서 꼽을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족발. 독일에도 비슷한 음식이 있었지? 슈바인학센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네.”
“그렇다면 분명 마음에 들어하실 겁니다. 음, 거기에 추가로 뽑자면 여행자들의 식당 중 최고는 제주 방터 돈카츠를 추천드리지요.”
“돈카츠라면 일본 음식 아니오?”
“맞습니다. 다만 한국식의 퓨전이 가미된 식당이라고 볼 수 있지요. 제주도 흑돼지로 만든 돈카츠부터 사이드음식인 흑돼지삼겹살김밥까지, 버릴 구석이 없어요!”
아버지의 열혈에 도하는 의아하다고 생각했고, 어머니 김서연이 슬쩍 귓속말을 해주었다.
“네 아빠, 맛집 블로그하거든.”
“아….”
아버지가 블로그를 하면서 네버 사이트의 이모티콘이 따봉을 그리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도하는 어색하게 웃었고, 그즈음 마탑주가 호탕하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