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 아카데미의 회귀제자 -05회
***
“와하하!”
남자의 이름은 쿠렐이었다. 지켜보고 있던 도하는 유나를 보면서 고래를 절레절레 저었다. 주변의 남자들은 뭐가 웃긴지 웃음꽃이 펼쳐졌다. 다만 취한 꽃이라는게 문제다.
“건배!”
“자자, 먹으라고!”
“오우, 후배님들 차린 건 별로 없지만 어서어서 먹으라고!”
“우리 후배님 건들지 마라!”
“네놈이야말로 건들면 안 되지 돼지새끼야!”
“뭐, 임마?”
콰당―!
순식간에 싸움이 일어났다. 근육질과 근육질이 주먹이 오가는 모습은 꽤나 흥미로운 볼거리였다.
도하는 얼음이 동동 떠있는 오렌지 주스를 시원하게 마시면서 그걸 구경했다. 가까이 있던 쿠렐이 박장대소를 터트리면서 맥주를 들이켰다.
“카하하, 미쳐 돌아가는구만!”
이 미쳐 돌아가는 클랜의 수장이 다름 아닌 쿠렐이었다. 새로운 클랜 디스 방법에 도하는 멋쩍게 웃으며 쿠렐에게 물었다.
“안 말려도 되나요?”
“날붙이 쓰면 말리긴 하는데, 주먹다짐이야 친목 도모 정도지."
이것이 프로 각성자의 마인드!
어처구니없을 지경이었다. 도하는 클랜 수장이 그렇다는데 반론하지 않고 고개를 끄떡였다. 유나는 호기롭게 싸우는 두 사람을 보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구경했다.
방금 전, 길을 걷다가 쿠렐 클랜에 붙잡혀 클랜 하우스까지 도달한지 한 시간이 지나갔다.
축제 기간에 맞춰서 클랜 하우스는 단체로 파티를 하고 있었다. 술이며 음료며 각종 음식들이 있었고, 후배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은 기껍게 두 사람은 반겨주었다.
제32구는 중심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서 학생들 얼굴 보기가 힘들다고 한다. 거기에 겸사겸사 선배로서 이름도 알리고 후임으로 받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쿠렐은 진솔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각성자 업계도 레드 오션이란 말이지? 또다시 더블 임펙트가 또 터지면 모를까, 아직까지 각성자들 인력이 넘치는 시대지. 괜히 인간의 시대, 평화의 시대라고 부르면서 아프리카까지 원정을 나가는 게 아니야.”
“그렇군요.”
“그래도 키퍼시티에 자리하나 깔고 영업을 사람이 모여야 말이지. 우리 위치가 워낙 후진 곳에 있지 않냐?”
“완전 끝의 끝이던데요?”
“그렇게 직설적으로 말하면 할 말이 없는데.”
강유민을 피해 도망친 곳은 도시의 외곽이었다. 조금 만 더 걸으면 키퍼시티 바깥 상공이 보일 정도였다. 서울로 치자면 두 사람은 경기도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먼 곳까지 두 사람은 도착했다. 바람을 타고 정말 먼 곳까지 오고 말았다. 당연히 중심지에 있는 학교의 학생들이 이곳까지 올 리가 없었다.
도하의 말에 쿠렐이 킬킬 웃으면서 맥주잔을 들어보였다. 도하는 음료잔이지만 가볍게 부딪히면서 이야기를 이어서 들었다.
“아직 아카데미 학생은 실력적으로는 어중간하더라도 꽤 체계적으로 돌아가. 생각보다 많은 각성자들이 너희 학년을 주목하고 있는 거 아냐?”
“그런가요?”
“더군다나 초기 졸업생은 희귀하지. 맨땅에 헤딩으로 시작한 각성자들이랑 다르게 체계적이란 게 강점이라고? 또 빠르게 졸업한 만큼 업계 선점효과도 있고, 모르긴 몰라도 한명이라도 더 데려가려고 할거 다. 정 안되면 사무직으로 돌려도 충분하다는 거지.”
“꽝이 없는 뽑기다 이런 거네요?”
“그렇지!”
도하의 비유에 쿠렐은 만족스러운지 고개를 끄떡였다. 말하자면 수많은 운동선수들이 이적시장에 풀리는 것과 다름없었다. 이 값싼 햇병아리 선수는 언제든 종목을 바꾸는 것도 가능했다.
거기에 유능한 꿈나무를 선점하는 것, 그것이 구단주, 말하자면 클랜마스터와 길드마스터들의 주된 관심이었다.
무엇보다 이능학전문학교를 나온 학생들은 이능학의 복합적인 수업을 듣는다. 그 말은 현장이든 사무직이든 다양한 인재풀로 가동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꽝 없는 뽑기라는 말이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길드 승급을 바라는 쿠렐 클랜 같은 3성 클랜이나 길드의 명성을 유지하고 도약하려는 길드 입장에서는 첫 졸업생에 대한 관심이 남다른 것 같았다.
“그래도 그렇지. 다 같이 모여서 납치하는 것처럼 데려오는 것도 이상해요, 쿠렐.”
“와하하, 하지만 그렇게 안하면 다 도망가니까 그렇지!”
“이미 퇴짜 맞았구만, 대장!”
유나가 뾰로통한 얼굴로 말하자 쿠렐이 호탕하게 웃으면서 말하자 도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긴, 야성미 넘치는 쿠렐 클랜원들을 보고 좋다고 따라오는 학생이 몇이나 있을지 모르겠다. 나름 반강제지만 쿠렐은 유쾌한 남자였다.
“축제 기간이라 우리 클랜도 홍보하고 그래야 나중에 길드승급까지 이어지는 거거든. 겸사겸사 관광인들에게 산적흉내도 하면서 도시에서 맛볼 수 없는 쾌감을 주는 거지.”
“누가 좋다고 산적한테 찾아가요?”
어처구니없는 말에 쿠렐은 어처구니없게 대답했다.
“관광 팜플렛에 등록해놨더니 생각보다 많이 오던데? 오지체험 많이 하잖아.”
“아…….”
도하는 이해하기를 그만두었다. 구멍송송 뚫린 흔들다리를 건너려는 사람도 있는 마당에 안전 보장된 산적 체험이라고 사람들이 안할 이유가 없다 이거였다.
이후 야성적인 복장을 입은 것도 축제 한정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생각보다 클랜이 잘 돌아간다는 것도 알았다. 짐승남의 가이드… 이런 식으로 홍보겸 부가수입을 번다는데 도하는 더 이상 듣고 결국 이해하기를 포기했다.
쾅! 콰다당!
“와아!”
식탁이 엎어지고 근육질들의 싸움에 결판이 나자 유나는 해맑게 웃으면서 박수를 쳤다.
***
시간이 생각보다 지체되었다. 도하와 유나는 배부르게 얻어먹고 클랜 사무소에서 나갈 채비를 끝냈다.
“어이, 후배님! 또 보자고!”
“유나! 우리 클랜으로 오면 여왕으로 즉위시켜 줄게!”
“에헤헤, 괜찮아요!”
“뭔 여왕이야, 말단 짜식아!”
퍽! 소리가 들렸고 도하는 피식 웃었다.
쿠렐은 부하의 뒷통수를 때리고 앞으로 나섰다. 잠깐 방문하고 나갈 생각으로 들렸던 쿠렐 클랜에 세 시간이나 넘게 있게 될 줄 몰랐다.
업계 이야기를 듣는 건 생각보다 재미있었고, 클랜 상식이나 길드 상식 같은 건 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 현장 사람들에게 듣는 게 훨씬 와 닿았던 것이다. 유나도 싫어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재밌었다, 그치 도하야?”
“응, 좋은 사람들이네.”
도하는 슬쩍 돌아보았다, 두 사람을 배웅해주는 쿠렐 클랜원들이 보였다.
그중에서는 손을 흔드는 사람도 있었다. 도하는 슬쩍 웃었고,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서 게이트로 향했다. 쿠렐 클랜원들은 두 사람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주었다.
야성 넘치는 이들이지만 정많고 살뜰한 사람들이구나 싶었다. 좋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며 도화는 몸을 돌렸다.
***
“흔적이 여기로 이어졌군.”
누군가 중얼거렸다.
도하와 유나를 보내주고 오늘 축제도 끝이 났다. 내부 정리에 들어선 쿠렐 클랜원들은 문득 입구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행동을 멈췄다. 입구가 열리면서 두 명의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오고 있었다.
유나에게 여왕으로 즉위시켜주겠다던 말단 클랜원이 험상궃은 표정을 지어보이며 나섰다.
“어이어이, 오늘 업무 끝났다고?”
“아 그런가?”
학생이라해도 믿을 정도로 젊어 보이는 남자가 씨익 웃으면서 말했고 손가락을 튕겼다.
우우웅―!!
순식간이었다.
이능이 순식간에 클랜하우스를 집어삼켰고, 쿠렐은 심상치 않음을 느끼면서 본능적으로 몸을 날렸다.
콰가강!
“젠장!”
집기들이 폭발하면서 사람들이 중력을 무시하고 위로 떠올랐다. 쿠렐은 검으로 땅을 찍으며 밀려나가는 몸을 억지로 멈췄다. 입술을 질끈 깨물다가 피맛을 느끼고 퉤 뱉었다.
그는 주변을 살폈다. 부하들이 파편들과 함께 지상으로 낙하했고 몇몇은 그대로 절명한 게 느껴졌다. 분노에 휩싸이면서도 머리는 차갑게 식었다.
“어이, 형씨, 갑자기 무슨 행패야?”
후우웅―!
자욱한 연기가 한순간에 걷혔다.
쿠렐이 보기에는 붉은 손톱 같은 게 연기를 몰아낸 것 같았다. 손을 휘두르는 것만으로 풍압을 일으키는 능력이거나, 그만큼 뛰어난 신체능력을 지녔다는 말이다.
3차 각성자로서 각성자 사이에서 그래도 베테랑 취급 받는 쿠렐은 진심으로 위기감을 느꼈다. 이거 잘못하면 여기있는 사람 다 죽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슬람, 결계는 어떻지?”
“주변 방음은 모두 끝냈습니다.”
“그럼 내가 이 쓰레기들을 치우는데 힘을 숨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군.”
연기가 걷히고 두 명의 남자가 드러났다. 한명은 선글라스를 쓴 경호원처럼 보였고, 앞의 남자는 무척이나 젊어보였다.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은 나이처럼…
쿠렐은 익숙한 얼굴이라고 생각하다가 이내 입을 벌렸다.
“강유민?”
“이런 내 얼굴을 아는 건가?”
한국이 낳은 신예. 장차 세계 최강 반열로 손꼽힐 거라고 평가받는 젊은 각성자. 각성자업을 하는 쿠렐로서 그 얼굴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당사자가 눈앞에 존재했다.
“4차 각성자가 왜 우리를 핍박하는 것이냐?”
“약자를 괴롭히는 이유가 굳이 필요하겠나?”
강유민은 피식 웃으며 클랜 내부를 보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쿠렐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상대는 철저히 방심한 상태였다. 그래도 쿠렐은 베테랑 3차 각성자.
상대가 4차 각성자라도 경험도 적고 방심한다면 가능성이 있다고 믿었다. 단지 강자라고 쉽게 당할 생각은 없었다. 쿠렐의 뒤쪽에 화염이 피어오르며 신체를 가속했다. 그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 쿠렐은 강유민의 뒤쪽에 나타나 있었다.
강유민의 시선이 뒤쪽으로 따라 넘어갔을 때 그가 볼 수 있는 건 다시 타오르는 화염덩어리였다. 쿠렐이 있던 자리에는 화염이 피어올랐다. 화염이 피어올랐던 자리로 쿠렐이 나타났다.
화염 이동. 화염술사인 쿠렐은 단거리에 한에 불꽃과 스스로의 몸을 교체할 수 있었다.
쿠렐의 대검에 화염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대로 검을 찍어 내렸다. 방심하면 절대 피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거리를 격하는 공격이다. 시선까지 회피한 상황에서 피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쿠렐은 일격에 모든 걸 걸었다.
“지루하네.”
쿠렐은 검이 찍어 내리면서 강유민을 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어느새 쿠렐의 검날을 향해 있었다. 지루하다는 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필사의 기습에도 전혀 당황한 얼굴이 아니었다. 이상함을 느낀 순간 강유민이 쿠렐의 검날을 손가락으로 붙잡았다.
“뜨겁네, 적당히 봐줄만한 불꽃이야.”
콰직―!
화염으로 타오르는 검날을 손가락으로 붙잡은 것에 그치지 않고 약간의 힘을 주었다. 그러자 검날이 그대로 동강났다. 이렇게까지 차이가 난다고? 쿠렐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지근거리에서 강유민을 보았다.
“선물이야, 후후.”
강유민은 부러진 검날을 그대로 쿠렐에게 던졌다.
슈우웅… 콰아앙―!!
“…크헉! 쿨럭!”
강유민의 손을 떠난 검날은 마치 포탄처럼 소닉붐을 일으키며 쿠렐에게 나아갔고, 쿠렐의 몸은 포탄을 맞은 것처럼 고꾸라진채로 날아가더니 건물에 처박혔다.
쿠렐은 피를 토하면서 자신의 명치에 박힌 검날을 붙잡다가 손을 놓았다.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유엔 경비군이 올 거요! 쿨럭, 대체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공격을…… 우욱.”
“별로 잘못한 건 없어.”
강유민은 생긋 웃으면서 손을 털었다. 검게 타올랐던 피부가 금세 회복되었다. 초회복에 가까운 회복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