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희가 세상을 떠났다. 그토록 바라던 딸의 생생한 눈빛과 목소리를 끝내 보지도, 듣지도 못한 채, 쓸쓸하고 허무하게 떠나갔다. 정작 몸에 깊은 병을 지니고 있었던 상현은 딸이 깨어나는 것을 보기 전에는 절대로 쓰러지지 않겠다며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었는데도, 먼저 떠난 숙희 앞에서 망연자실하며 삶에 대한 희망을 모두 내려놓고 말았다. 연정은 식음을 전폐하다시피 하며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연호는 슬퍼할 겨를도 없이 집안을 수습해야만 했다. 경제적인 문제는 더 심각했다. 상현은 이제껏 자신이 보유한 출판사의 지분을 모두 넘겨 병원비로 충당한 사실을 자식들에게 말하지 않고 있었다. 이제는 사는 집 외에는 남은 게 없었고, 앞으로 어떻게 병원비를 마련해야할 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정도였다.
숙희는 평소에도 혈압이 높아 늘 조심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그렇다고 심각한 것은 아니었고, 그 나이가 되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법한 질환 정도였다. 문제는 과도하게 누적된 스트레스와 점점 약해지는 정신력으로 인한 신경쇠약이었다. 그녀는 딸이 누워있는 병실에서 최후를 맞았다. 밤늦게까지 딸의 옆을 지키고 있다가 잠이 들었고, 다시는 깨어나질 못했다. 병원에서 밝힌 사인은 과로사였다. 꿈에도 생각지 못한 숙희의 죽음에 가족들은 가늘고 힘겹게 이어져있던 희망의 끈을 더 이상 붙잡고 있을 수가 없었다. 아직 연민도 깨어나지 않았는데 숙희까지, 상현은 남아 있는 모든 희망을 접고 집에서 은둔하며 세월을 보냈다. 그의 눈빛은 연민처럼 생기가 없었고, 하루라도 빨리 숨이 끊어지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넋이 나가있었다. 연정과 연호는 남은 상현을 지켜야 했지만, 그는 하루가 멀다 하고 고집을 피우며 말을 듣지 않았다.
“아버지. 오늘은 꼭 가야 해. 이러다가 진짜 큰일 나!”
“괜찮다고 하잖니. 내 몸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이제 그만 좀 해라.”
“아버지는 아버지만 생각해? 우리는 안중에도 없어?”
연정과 진오는 대전에서의 생활을 접고 서울로 올라왔다. 상현과 연호만이 남은 집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진오는 학교에서 교수들에게 임대하는 숙소에서 지냈고, 강의가 없는 날이면 서울로 올라왔다. 연정은 연구원에 전근을 신청해 서울에 있는 전파천문대로 자리를 옮겼다. 그녀는 곧 있을 인사에서 센터장으로의 승진을 앞두고 있었지만,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앞뒤 볼 것도 없이 그런 결정을 내렸다. 올해 초등학생이 된 윤지도 서울로 학교를 옮겼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다니게 된 학교를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아 옮겨야 하는 상황에서 나름 스트레스가 많았다. 그나마 할아버지, 삼촌과 같이 지낼 수 있다는 말을 믿고 올라왔지만, 막상 집안의 분위기는 예전과 같지 않았다. 물론 상현은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오직 윤지 앞에서만 웃으며 기운을 차리곤 했다.
연호는 숙희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한동안 세상의 모든 것을 증오하며 시체처럼 지냈다. 심지어는 제 엄마가 죽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누워있기만 한 동생을 원망하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연민을 돌보기 위해 병원을 드나드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가끔씩 선화가 찾아와 그를 만나려고 했지만, 연호는 그녀를 피하기만 했다. 마지막까지 연호와 선화를 연결시켜 주려고 애를 썼던 숙희의 마음을 알고 있던 연정은 어떻게든 동생의 마음을 돌려놓기 위해 애를 썼다. 연정은 그것을 숙희의 유언이라고 생각했고, 그녀와의 마지막 약속을 꼭 지키고 싶었다. 연호에게도 그렇게 말했고, 설득시켰다.
“아무리 엄마의 마지막 부탁이라고 해도 내가 마음이 안 가는 걸 어떡하라고?”
“진짜, 너 솔직히 얘기해 봐. 선화가 마음에 없어? 그냥 싫어?”
“그런 건 아닌데, 내가 지금 누구 만나고 그럴 정신이 어딨어? 누나도 다 때려치우고 올라왔잖아? 내 마음도 마찬가지야. 아무것도 하기 싫어. 누굴 만나는 건 더더욱 그래.”
“둘이 지금 사귀라는 거 아니잖아. 그냥 친구처럼 만나라는 거야. 네가 남자든 여자든 친구 하나 없이 그러고 있으니까, 오죽하면 엄마가 그랬겠니?”
연정은 또 눈시울을 붉혔다. 시도 때도 없이 엄마 얘기만 나오면 그랬다.
“알았어, 알았어. 그만 좀 울어.”
연호는 경제적인 문제 때문이라도 더 이상 집에만 있을 수가 없었다. 운 좋게도 같은 업계에서 일하는 상현의 오랜 친구가 한 출판사를 소개해 주었고, 그곳은 여행에 관한 잡지나 서적, 그리고 환경을 주제로 하는 책들을 주로 다루는 곳이었다. 연호가 맡은 일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여행지를 취재하는 일이었다. 밖으로 돌아다니는 일이 처음인 연호는 업무가 생소해 처음엔 어려움을 겪었다. 밖에 나가는 것을 싫어하고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 그와 맞지 않는 일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버텨야만 했다. 다시 학원으로 돌아갈까도 생각했지만,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악물었다. 남들에겐 별것도 아닌 일이 자신에게는 이렇게 버텨내야만 할 정도로 힘든 일인지, 대체 언제 나이 값을 하려는지 한숨만 나왔다. 그래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업무와 잦은 외근으로 인해 쓸데없는 잡념에 묻힐 시간이 적어졌다는 것 하나는 좋은 점이었다.
숙희의 죽음 이후로, 꼭두는 완전히 잊은 지 오래였고, 연정과 진오와도 일체 그런 얘기를 나누지는 않았다. 좋은 점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사진을 찍는 일이었다. 그동안 주로 정지되어 있거나 머물러 있는 것을 찍어왔던 그에게 사람들이 살아가는 역동적인 모습이나 변화무쌍한 환경의 변화 등을 찍는 작업은 그야말로 신세계를 접하는 느낌이었다.
‘좀 더 일찍 이런 일을 했으면 지금보다는 좀 나아졌을까? 왜 나는 남보다 항상 늦게 깨닫는 거지? 왜 다 지나고 나서야 후회하며 안타까워할까?’
그 어느 때보다도 서늘했던 여름이 지났다. 피서라는 단어 자체를 쓸 필요가 없던 여름이었다. 건조한 기후, 혹독하게 추운 겨울, 덥지 않은 여름, 없어진 봄과 가을, 뒤바뀌고 있는 극지방과 적도의 날씨, 그리고 더 이상 들리지 않는 대기의 속삭임까지. 인간에게 겨우 수만, 수천 년 동안 이곳이 낙원임을 인식하게 해주던 은하계의 변방 지구는 이제 제 할 일을 다 한 듯, 우리들을 외면하며 빠르게 변해가고 있었다. 변화는 끊임없이 순환하는 자연의 숙명일지도 모르지만, 그 변화의 속도가 너무나도 빨랐기 때문에 이곳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생명체들이 적응하기엔 너무나도 가혹한 날들이 이어졌다. 어떤 날에는 암흑 현상에 의해 온종일 해가 뜨지 않는 날(해가 뜨지 않는 것이 아니라 두껍게 드리운 먹구름에 의해 해가 가려진 날)도 있었다. 아침이 사라진 날, 마치 내일이 없는 인류의 미래와도 같은 암흑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고해성사를 토해내며 두려움에 떨었다. 그나마 지난 몇 년간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운석의 충돌 등의 이변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불행 중 다행한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지구촌 곳곳에서 발생했던 대형화재도 줄어들었고, 지진이나 해일도 그 발생 빈도가 현저하게 감소하고 있었다.
자연재해가 잠잠해진 지구에는 인간들이 자초한 파국의 전조가 곳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영원히 평행선을 달리는 강대국들 간의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전쟁은 점차 현실이 되어가고 있었다. 지난 몇 년간 이어져온 자연재해를 겪으며 인류는 전쟁 따위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지만, 다시 잠잠해진 이 순간 인간들은 또다시 분열하며 서로를 향해 분노와 파멸의 저주를 퍼붓고 있었다. 뼛속 깊숙이 멸망의 DNA를 가진 인간들은 스스로를 저 깊은 지옥의 불구덩이로 몰아넣고 있었다.
연정의 인내심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평소 논리적이면서도 잘 흥분하지 않는 그녀는 숙희가 죽은 이후로 변하기 시작했고, 주변의 사람들이 느낄 수 있을 만큼 늘 불안정했다. 가족을 이끌고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으로 스스로를 옭아매면서 매사에 더 예민하게 반응했다. 진오와 연호는 그녀를 좀 더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노력했지만,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녀는 아버지 때문에 더 힘들어했다. 병원에는 절대 가지 않겠다며 고집을 피우는 아버지, 자신의 병은 자신이 가장 잘 안다며 집에서 편하게 죽을 권리를 빼앗지 말아 달라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선뜻 받아들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숙희의 죽음 이후로 무기력하게 세월을 허비하던 상현은 어느 날부터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 예전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평생을 이어온 새벽의 산책, 책읽기, 그리고 몇 해 전부터 써오던 자서전 집필 등으로 시간을 보내며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고 있었다.
연정은 지금까지 무언가를 성취하는 곳에 더 익숙한 삶을 살아왔다. 어떤 경쟁에서도, 누구와의 논쟁에서도 져본 기억이 별로 없는 그녀였다. 가정은 물론 언제 어디서든 자신이 속한 단체나 조직을 이끌었고,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귀 기울이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그런데 막무가내로 고집을 피우는 아버지 앞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병들어가는 아버지를 눈앞에 두고서도 그 잘난 머리와 언변 따위를 써먹지도 못하는 자신이 한심스러웠고, 이제껏 뭘 위해 이렇게 살아왔는지 허무하기만 했다. 하루하루가 힘들고 괴로워 매사에 의욕이 없었다.
연호는 고민 끝에 연정과 담판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연정은 퇴근 후 병원에 들러 연민을 돌보다가 집으로 돌아왔고, 곧이어 연호가 지방의 취재를 마치고 돌아왔다.
“그래! 오늘은 꼭 얘기해야겠다.”
연정은 2층에 있는 연호의 작업실에서 학술지에 발표를 앞둔 논문을 검토하고 있었다. 집으로 이사를 온 후, 연호의 양해를 구해 지금은 그녀가 서재로 쓰고 있는 중이었다. 마음을 잡지 못하는 그녀를 위해 진오가 부탁한 일이었고, 그 논문은 학술대회에서 발표될 예정이었다. 진오는 지난번 미국에서의 사고로 중단된 국제 학술대회를 다시 개최하는 문제로 매우 바쁘게 지내고 있었다. 이번에는 천문학계에 쏟아지는 전 세계적 관심 속에 개최될 예정이었고, 개최국은 중국으로 결정되었기 때문에 그곳으로 자주 출장을 다녔다.
밖은 9월임에도 불구하고 서리가 내릴 정도로 추웠다. 상현은 글을 쓰다가 잠들었고, 진오는 대전에 있었다. 연호는 먼저 연민의 방으로 갔다. 그곳에는 윤지가 잠을 자고 있었다.
‘윤지에게 기를 받아서 누나를 공격하러 가야지.’
연민의 방을 나와 2층의 작업실로 올라간 연호는 문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가 입을 열였다.
“누나, 들어가도 돼?”
“어, 들어와.”
“괜히 방해하는 거 아냐?”
“아니야. 거의 다 했어. 좀 있다가 잘 거야.”
막상 담판을 지으러 온 연호는 수심이 가득한 그녀의 얼굴을 보고서는 선뜻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동생이 머뭇거리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그녀가 아니었다. 연정은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아버지 얘기라면 꺼내지도 마라. 조만간 119에 신고를 하고서라도 병원에 꼭 데려갈 거니까!”
누나의 단호한 말투에 연호는 더욱 기가 죽었다.
“야! 망설이지 말고, 얼른 얘기해. 아버지 얘기만 빼고.”
“누나. 우리, 이제 연민이.....”
“연민이, 왜?”
연호는 말을 잇기가 무척 조심스러웠다.
“연민이, 이제 그만 퇴원 시킬까?”
“뭐?”
연정은 기가 막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 순간, 집에 오기 전에 병원에서 보았던 연민의 앙상한 몰골이 떠올랐다. 제 어미의 죽음도 모른 채 누워있는 가엾은 영혼. 푸석하고 메마른 육신만이 남은 그녀는 생물학적으로만 살아있을 뿐, 짧은 생의 끝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고 있었다. 그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어떻게 네가 그런 말을 해?”
연정은 심호흡을 하면서 일단은 연호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려고 했다. 연호는 땅이 꺼질 듯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이젠 경제적으로도 너무 힘들고, 다들 지칠 대로 지쳤잖아. 오죽하면 내가 이러겠어. 의사들도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하니까, 남은 사람들이라도 살아야지. 도대체 우리에게 남은 희망이.....”
“그만! 그만해.”
연호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글쎄 들어봐 누나. 내 말은, 아버지나 연민이를 위해서라도.....”
“그만하라니까!”
연정은 다시 한번 크게 소리를 질렀다. 2층 전체가 다 떠나갈 정도였다. 연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진심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웠지만, 지금은 가만히 있어야만 했다. 이렇게 흥분하는 누나의 모습이 매우 낯설었다. 후회스러웠다.
‘왜 이렇게 말주변이 없냐!’
그저 경제적인 이유라든지 아니면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동생을 퇴원시키고 싶다는 말만 했으면 그뿐인 것을. 끝이라는 둥, 희망이 없다는 둥, 전혀 할 필요가 없는 얘기들을 늘어놓은 자신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미안해, 누나. 그런 의도가 아니었어. 알잖아, 나 말주변 없는 거.”
연정도 흥분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동생에게 조금 미안한 듯 나지막하게 말했다.
“아주 잘 알지.”
9월의 서리는 매서웠다. 집은 난방 중이었지만, 점점 더해만 가는 냉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침묵은 오래 이어졌다. 연정은 말없이 일어나 방을 나갔다. 연호는 어쩔 줄을 모른 채 앉아만 있었다. 시간이 꽤 흘러 한기가 느껴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자신이 작업실로 사용할 때보다는 정리가 꽤 잘 되어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얼마 후에 연정이 따뜻한 커피를 가지고 방으로 돌아왔다.
“자, 마셔. 너 커피 좋아하잖아. 우리 둘 다 진정 좀 하자.”
“시간이 늦었는데, 마셔도 괜찮아?”
“요즘은 그런 차이를 잘 모르겠어. 그냥 잠이 안 와.”
“나는 평생 그랬는데.”
“잘났다.”
세찬 바람이 마치 한 겨울인 것처럼 창문을 때렸다.
“지금 이 바람이 가을에 부는 바람이라는 게 말이 되냐?”
“어디 이거뿐이야? 요즘은 온통 말이 안 되는 일만 일어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