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되면서 비는 완전히 그쳤고, 하늘은 점차 맑아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지금보다 훨씬 많은 비가 내리길 바랐지만, 야속하게도 비는 조금밖에 오지 않았다.
‘당분간 하늘을 관측하지 못해도 좋으니까 제발 비 좀 많이 내려라!’
연호는 무거운 마음으로 다시 옥상의 작업실로 올라갔다. 관측을 준비하면서 이렇게까지 기분이 가라앉은 적은 드물었다. 예전부터 자신을 괴롭히던 고민들은 그것이 실제로 벌어지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행해진 배부른 걱정이었다.
‘석유가 고갈되면 어쩌지?, 먹을 것이 부족하면, 물이 부족하면?, 쓰레기가 넘쳐나 더 이상 처리할 수가 없다면 어떡하나?’
연호는 언젠가부터 어릴 적 고민이 점차 현실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끼기 시작했고, 두려움은 조금씩 커져가고 있었다.
‘어쩌면 지금 세상에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사라진 별과 관계가 있을지도 몰라.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일종의 경고일 수도 있어.’
연호는 망원경을 보다말고 잠시 생각에 잠겨있었다. 더 이상 관측을 할 수가 없었다. 별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오늘만큼은 다시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아무 생각도 하지 말자. 하지 말자. 하지 말자!’
연호는 심호흡을 하면서 머리를 흔들었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스팸이었다. 시간을 보니 9시였다. 식사 때가 지나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이었다. 아무래도 더 늦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라 모르겠다. 라면이나 끓여먹어야지. 근데 얘는 진짜 안 올라올 건가?”
연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정리했다. 그때 연민이 계단으로 올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발걸음 소리만 들어도 아직 화가 덜 풀렸음을 알 수 있었다.
“일찍도 온다!”
연호는 잽싸게 망원경 앞에 다시 앉아 뭔가를 기록하는 척했다. 그때 연민이 작업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야! 배고픈데 이렇게 늦게 오면 어떡해?”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내가 오빠 밥 차려 주는 사람이야?”
“근데 여기까지 왜 올라왔어?”
그녀가 다시 뒤돌아서면서 말했다.
“괜히 오빠 때문에 나도 저녁을 못 먹었잖아. 난 지금 먹을 거니까, 내려와서 먹든지 말든지, 맘대로 해!”
연호는 주인을 따라 산책을 나서는 강아지처럼 동생을 쫓아내려갔다. 주방에는 이미 2명이 먹을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야! 역시 날 챙겨 주는 사람은 너밖에 없다.”
연호는 허기가 졌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 많이 먹지는 않았다. 연민도 마찬가지였다.
“잘 먹었어. 설거지는 내가 할게.”
“.....”
“아까는 미안해.”
“그때 나도 일부러 엿들은 게 아니라고. 윤지 재우고 잠이 오지 않아서 뒤척이고 있는데, 언니하고 오빠가 너무 심각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어서, 나도 모르게 듣게 된 거야.”
“알았어. 별 것도 없는데 괜히 그런 거야.”
연민은 여전히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
“앞으로 나만 빼고 둘이 잘 해봐.”
“으이그, 아니라니까. 다음부터는 안 그럴게. 미안해. 네가 간만에 직장 열심히 잘 다니고 있는데 괜히 신경쓸까봐 그랬어. 그리고 아직 확실한 게 아무것도 없어서 그런 것도 있고.”
두 사람은 연호의 작업실로 자리를 옮겼다. 작업실에 놓여있는 화분들이 모두 시들어 있었다. 연민은 오빠를 노려보며 소리를 질렀다.
“이게 뭐야? 여기는 알아서 잘 관리하겠다고 큰소리치더니, 다 말라죽게 생겼잖아!”
“어? 얘들이 왜 이러지? 어제까지 괜찮았는데?”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 말도 안 되는 소리 하고 있어. 방해된다면서 잘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더니 아주 잘한다.”
연호는 동생의 눈치를 살피면서 잠자코 있었다.
“이제 다시는 여기에다가 화분 안 놓을 거야. 그렇게 알아.”
‘으이그, 잘됐다!’
“어? 지금 그 표정 뭐야? 잘됐다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고. 야!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냐.”
“그럼 뭐가 중요한데?”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 잘 들어봐.”
연호의 얼굴은 입을 열기 전인데도 벌써 흥분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누나가 얼마 전에 자료 하나를 주면서.....”
이야기는 멈춤 없이 이어졌다. 세상 진지한 얼굴, 온몸을 이용한 적극적인 몸짓,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도 반짝이는 눈빛. 진짜 오빠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긴 이야기의 핵심은 인류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존재하던 별 하나가, 항상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별 하나가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연호는 일단 중요한 얘기는 모두 던져놓고 잠시 입을 닫고 있었다. 연민의 반응이 몹시 궁금했다.
“이거였어? 언니랑 쑥덕거리던 얘기가?”
“이거라니? 너는 별로...”
연민은 연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불쑥 끼어들었다. 눈빛은 연호와 다를 게 없이 반짝였다.
“이런 얘기를 자기네들끼리만 알고 있었다, 이거지?”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연호는 마음을 놓고 계속 얘기를 이어나갔다.
“시끄럽고, 얘길 계속 들어봐.”
단순히 오차나 실수로 별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면 다행이지만, 그런 게 아닌 것 같다고 얘기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그럼, 진짜 사라졌단 말이야?”
“응. 골백번을 더 봤는데, 없어. 누나도 천문연구원에서 계속 보고 있는데, 역시 안 보인데. 그래서 혹시 이 별이 우리 태양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닌지 누나가 살펴보는 중이야.”
“헐~”
“우리한테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단정을 짓기에는 그 별과 지구가 너무 가깝단 말이지.”
연민은 연호가 가졌던 똑같은 의문이 들어 물었다.
“이런 사실을 우리만 알고 있는 건 아닐 거 아냐?”
연호는 자신의 생각을 보태 조심스럽게 말했다.
“다들 알고는 있는데, 좀 더 확실한 데이터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 같다고 누나가 그러더라고. 안 그러면 국제적인 망신이니까. 근데 이건 내 생각인데 말이야...”
“오빠 생각 말고 객관적인 사실만 얘기해 주면 안 될까?”
“야!”
“아냐, 아냐. 장난이야. 그래서 오빠 생각은 뭔데?”
이것이 연구하는 사람들의 개인적인 업적으로 남을 만한 일이라면 벌써 학계에 보고되어 세상에 발표가 되고도 남을 일이지만, 지금까지 그 어떤 국가나 단체도 서로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쉬쉬하는 것을 보면 생각보다 심상치 않은 일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무섭게 왜 그래? 그래서, 언니나 오빠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방금 얘기했잖아. 자세한 건 몰라. 나야 뭐, 그냥 누나가 하는 거 조금 도와주는 입장이니까, 잘 모르지.”
연민은 의심 가득한 눈으로 연호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 말을 지금 나보고 믿으라고?”
“너는 왜 이렇게 날 못 믿냐?’
그녀는 오빠를 잘 알고 있었다. 사실이건 아니건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연민은 오빠의 머릿속에 있는 그림을 보고 싶었다. 그것이 뭐든, 어디까지 펼쳐져 있든, 오빠의 얘기를 들어주고 싶었다.
“얼른 얘기해봐, 말 돌리지 말고. 오빠 생각이 어떤지.”
“얘가 또 나를 테스트하네. 왠지 면접 보는 느낌인데? 뭔가 조금 별로야.”
“뭔 소리야? 다른 집 가봐. 나처럼 오빠 얘기 잘 들어주는 동생이 어디 있는 줄 알아?”
“뭐, 그렇긴 한데...”
‘그래! 동생인데 뭐 어떠냐? 이게 무슨 큰 비밀이라고. 어차피 전문가도 아니고 그냥 나만의 상상인데 창피할 게 뭐 있겠어?’
연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사라진 별은 아마도 수명이 다했을지도 몰라. 초신성 폭발로 블랙홀이 되어 우리에게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어. 그런데 그렇다고 하기에는 우리와 너무 가까워서 그럴 가능성은 또 없다고 봐야지. 아니면 초신성 폭발 바로 직전, 별이 급격히 수축하는 단계라 우리들의 눈에 사라진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어. 그냥 다 추측일 뿐이야. 이렇게 저렇게 끼워 맞추다 보니까 앞뒤가 맞지 않아서 나도 헛갈려.”
연민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 침묵이 연호에게는 민망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오빠? 오빠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좀 더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잖아. 언니나 형부 같은 전문가들은 오히려 아는 게 너무 많아서 여러 가지로 조심할 게 많을 거 아냐.”
“아무래도 그럴 수 있지. 근데?”
“아니, 오빠가 또 무슨 다른 생각이 있나 해서.”
“아직은...”
“근데, 블랙홀이든 초신성이든 모두 다 우주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 아니야? 이번 거는 왜 이렇게 심각하게 생각하는 거야?”
“질량이 작긴 한데, 우리랑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연호는 한숨을 내쉬며 말끝을 흐렸다. 연호는 약간의 지식이 필요한 얘기들을 계속 늘어놓았다. 그렇다고 연민이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초신성 폭발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려면 적어도 10광년 정도 거리 내에서 태양보다 5배에서 10배에 가까운 질량을 가진 별이 존재해야 하는데, 지금까지 인류가 그런 별을 발견한 적은 없어. 그동안은 600광년이상 떨어진 오리온자리 중에서도 가장 밝은 별인 베텔기우스와 그보다 더 가까이에 있는, 260광년 정도 거리에 있는 처녀자리의 스피카 정도가 불안정한 상태라고 알려져 있었지. 우리 태양계에서는 그나마 스피카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데, 그 별이 수명을 다해 폭발한다고 해도 크게 영향은 없을 거라고 알려져 있어.”
연민은 자신도 관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오빠가 계속 말을 잇기 전에 얼른 한마디 거들었다.
“용골자리의 에타카리나도 있잖아? 태양보다 100배가 넘는 질량을 가진 그 별도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고 했지, 아마? 그런 별은 초신성과는 또 다른 표현을 쓰지 않았나? 비슷한 용언데, 뭐였더라.”
“응. 그건 극초신성이라고 해. 그 별도 7에서 8000광년 정도 떨어져 있는데, 만일 폭발하다면 지구에서 관측은 가능하지만, 역시 우리에게 큰 영향은 없을 거라고 알려져 있어.”
“그러면 도대체 어떤 별이야? 그렇게 가까이 있는 별이라면 사람들이 그동안 연구도 많이 하고 그랬을 텐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
“그 별은 고래자리의 루이텐 726-8이라고 불리는 적색왜성이야.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게 알려져 있었지. 이게 쌍성인데, 그 중에서 주성인 726-8A보다 동반성인 726-8B가 밝기의 변화가 더 심한 변광성이래. 이게 갑자기 사라진 거야. 게다가 거리도 여기서 8광년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니까 더 신경이 쓰이는 거고.”
사라진 별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바로 거리 때문이었다. 연민의 말대로 별의 나고 죽음은 인간과 마찬가지로 우주에서는 일상적인 일이었다. 그런데 이 별은 우리와 너무 가까운 곳에 있었다. 지금까지 인류가 연구한 자료와 이론만으로 본다면 연호의 추측은 이래저래 불가능한 것이기는 했지만, 만일 이런 곳에서 초신성의 폭발이 일어난다면, 세상의 모든 것, 아니 태양계 자체가 이 우주에서 사라져 버리게 될 것이 분명했다.
‘죽기 전에 최소한 섬광은 볼 수 있을까?’
일생을 다한 별의 마지막 불꽃, 초신성. 만일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면 우리는 지구가 멸망한다고 머리를 싸맬 필요도 없고, 죽음의 고통을 걱정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초신성은 순식간에 우리를 이 차갑고 어두운 우주의 암흑과 함께 절대고독의 일부분이 되도록 이끌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