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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연재 > 현대물
별이 지다
작가 : 올서리
작품등록일 : 2021.12.13

언제부턴가 세상에 닥친 기후의 변화, 환경파괴, 그리고 인간성의 상실 등의 현상이 우리와 가까운 어느 별의 움직임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연호는 그 별의 흔적을 쫓아 어떻게든 세상에 알리려고 노력한다. 초신성과 고래, 오로라, 그리고 가족에 관한 이야기.

 
#11. 실종 (4)
작성일 : 22-01-11 22:45     조회 : 431     추천 : 3     분량 : 5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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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안은 마치 꽃집처럼 향긋한 냄새로 가득했다. 연민이 언니에게 주려고 준비한 화분들에서 나는 향기였다. 연호에게는 익숙한 냄새였다.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환기도 쉽지 않아 코를 자극하긴 했지만, 괜히 냄새 어쩌고 했다가는 또 잔소리에 뭐에 분위기가 나빠질 것이 뻔했기 때문에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오빠, 일어나. 다 왔어.”

 

 연호는 죽은 듯 잠에 빠져 교대도 없이 대전까지 내려왔다.

 

  “야! 왜 안 깨웠어?”

 

  “코까지 골면서 얼마나 깊게 자던지, 도저히 깨울 수가 없었어.”

 

 휴일이었지만 일찍 출발해서 그런지 도로는 막히지 않았다. 연민에게 교대도 해주지 않고 운전을 맡긴 것이 마음에 걸린 연호는 도착할 때까지 내내 투덜대며 잔소리를 했다.

 

  “왜 이렇게 말이 많아, 오빠? 그냥 수고했다고, 미안하면 그냥 미안하다고 하면 되잖아.”

 

  “몰라. 올라갈 땐 무조건 내가 할 테니까, 넌 운전석 근처에도 오지 마라.”

 

  “하여간. 언제 철들래?”

 

  “어쭈? 너 진짜 혼나.”

 

 진오는 학회일 때문에 유럽으로 출장을 가 있었고, 집에는 연정과 윤지만 있었다. 연정은 일과 연구로 바빠 휴일에도 거의 쉬지 못하는 날이 많았고, 주말이면 강의가 없는 진오에게 윤지를 맡기고 일을 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만사 다 제쳐두고 동생들을 기다렸고, 윤지도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삼촌과 이모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연정도 동생들이 대전에 함께 온지가 얼마만인지, 괜히 들뜨고 설렜다. 때마다, 철마다 자주 보는 동생들인데도 그랬다. 하루밖에 시간이 없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어서들 와. 아침부터 고생했다.”

 

  “고생은 무슨. 연민이, 얘가 집부터 여기까지 운전하고 왔어.”

 

  “너는 뭐하고?”

 

  “응, 오빠는 밤새 지구를 지키느라 피곤하셔서.”

 

  “야! 헛소리 할래?”

 

  “연호, 너 진짜!”

 

 연민은 오빠의 눈치를 보면서 가져온 꽃을 연정에게 내밀었다.

 

  “야, 향기 정말 좋다! 이거, 모두 나 주는 거야?”

 

  “그럼.”

 

  “너무 너무 예쁘다. 정말 고마워.”

 

 아름답고 화사한 꽃들, 그리고 반가운 인사는 여기까지였다.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마치 패키지여행을 하듯 돌아다녔다. 가이드는 당연히 연정의 몫이었다. 윤지는 껌딱지처럼 연호에게 딱 붙어 종일 떨어지지 않았다. 정신없이 돌아다니며 먹고 구경하고 수다를 떨다보니 주변은 어느새 어둑해지고 있었다.

 

  “벌써 어두워졌네.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

 

  “윤지야. 삼촌 힘들어. 이제 엄마한테 와, 얼른.”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로 시간은 빨리 지나갔다. 연호와 연민은 아예 늦게 올라가려고 작정을 했기 때문에 급할 것이 없었다. 괜히 어설프게 출발하면 도로에서 시간을 다 허비할 것이고, 그것처럼 아까운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좀 늦게 도착해도 내일 하루만 참으면 되지 뭐.”

 

  “아무리 가족이더라도 나이가 먹어갈수록 이렇게 함께 모이는 게 힘들다는 거, 너희들도 알지? 우리는 그러지 말자.”

 

  “그럼, 그럼. 오빠랑 나랑은 어차피 혼자 살 텐데 뭘. 각자 가족이 생기고 그러니까 만나기 힘든 거지, 우리는 그런 일 없을 거야. 그치 오빠?”

 

  “야!”

 

 연정과 연호는 한목소리로 소리를 높였다.

 

 

  주변은 빠르게 어두워지고 있었다. 종일 외삼촌과 이모를 따라다니느라 피곤에 지친 윤지는 연민을 자신의 방으로 데려가면서 재워달라고 보챘다. 연민도 피곤한지 하품을 하며 윤지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연정이 윤지를 살짝 흘기면서 말했다.

 

  “윤지야. 네가 아가야? 다 큰 애가 이제는 혼자 자야지, 이모를 왜 방으로 데리고 갈까?”

 

  “언니. 오늘 윤지는 내가 재울게. 종일 너무 놀았나봐. 나도 피곤하네.”

 

  “아니야. 윤지 혼자 자도 돼.”

 

  “괜찮아, 언니. 핑계 낌에 나도 좀 쉴래. 이따 운전하려면 눈 좀 붙여야겠어.”

 

  “야. 운전은 무조건 내가 한다고 했다!”

 

 거실에 남은 두 사람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편히 대화를 나누라고 연민과 윤지가 만들어준 기회였다. 연정은 목소리를 낮춰 연호에게 물었다.

 

  “연민이, 쟤도 내가 말한 거에 대해서 알고 있니?”

 

  “당연히 모르지. 요즘 연민이 쟤, 잘 해보려고 얼마나 노력하는데. 그런 걸로 신경 쓰게 하고 싶진 않아. 옆에서 보기 안쓰러울 정도야.”

 

  “그래, 잘했다. 알아서 잘하겠지만 네가 여러 가지로 신경 좀 써줘.”

 

 연정은 늘 미안했다. 윤지를 키우면서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언니로서 소홀했던 것은 아닌지, 공부한다는 핑계로 잘 돌보지 못한 것은 아닌지, 후회스럽기만 했다. 어쩔 때면 열 살이나 어린 연민이 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것은 자신에게도, 연민에게 있어서도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그렇지 않아도 신경 쓸 게 한두 가지가 아닌데, 누나가 이상한 메일을 보내는 바람에 요즘 완전히 그거에 정신이 팔려서 학원에서도 쫓겨나게 생겼다니까.”

 

  “뭐?”

 

  “목소리 낮춰. 농담이야.”

 

  “뭘! 안 봐도 뻔하지. 좀 적당히 해, 넌 항상 그게 문제야.”

 

  “그게 적당히 할 일이야?”

 

 그것은 적당히 넘길만한 일이 아니었다. 연정은 말을 그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같은 유전자를 나눠 가진 동생이 이토록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연호를 서재로 데려갔다. 한눈에 보기에도 엄청난 양의 자료들이 책상위에 놓여있었다. 연정의 잔소리는 이어졌다.

 

  “야! 너, 어디까지나 누나가 연구하는 거, 도와준다는 생각으로 해. 알았어? 괜히 너 수업하는데 지장을 주고 그러면 안 된다?”

 

 연호는 이미 책상위에 놓인 자료들을 살피고 있었다. 대답은 건성이었다.

 

  “알았어. 근데 이렇게 양이 많다고?”

 

 연호는 방대한 양의 자료에 놀라며 물었다.

 

  “몰라.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연구 중이기 때문에 이것저것 찾다보니까 자료가 많아졌어.”

 

 연호는 고개를 흔들며 물었다.

 

  “매형은 뭐래? 누나가 얘기했을 거 아냐?”

 

  “네 매형은 별 관심이 없어. 어떻게 이 거대한 우주의 일을 한낮 인간이 다 알 수 있겠냐며, 별 일 아니라는 거야. 다시 잘 조사해 보라는 말만 하는 거 있지? 진짜 천문학자가 맞는지 의심스러워. 요즘 학회에서 직책을 하나 맡았는데, 거기에 정신이 팔려서 몸이 몇 개라도 모자랄 판이야. 이번 출장도 그래서 간 거야.”

 

 연호는 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자기처럼 관심을 가질 거라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매형은 학자였다. 의외였다.

 

  “그러면, 거기 천문연구원에서는 뭐래?”

 

  “아직 위에는 보고하지 않았어. 제일 먼저 발견한 건 나고, 우리 팀에서는 나와 내 후배인 직원 한명만 알고 있어. 현재까지 그 후배랑 여러 방면으로 조사하면서 확인 중에 있어. 근데 곧 위에 보고해야 해.”

 

  “왜 아직 보고하지 않았어?”

 

 연호는 연정의 의도가 궁금했다.

 

  “일단은 네 매형 말대로, 실수일 수도 있으니까. 암튼 계속 관찰하면서 검토를 좀 더 해보려고. 아직 확신이 서질 않아.”

 

  “다른 나라나 연구단체에서도 이미 다 감지하고 있지 않을까?”

 

  “우리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벌써 했겠지. 근데 이런 일은 과학적인 근거가 확실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괜히 망신만 당하니까 다들 조심스러운 거야.”

 

  “뭐야. 다들 왜 그러는 거야.”

 

 연호는 이런 일에도 서로 자존심을 내세워가며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얼마간의 침묵이 흘렀다. 연정은 모든 신경을 자료에만 집중하고 있는 동생을 보면서 생각했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것들을 이 녀석이 짚어줄 수 있을지도 몰라.’

 

 연호는 분명 그만한 능력이 있었다. 어릴 적부터 함께 별을 보며 자란 것은 물론, 연정이 본격적으로 천문학을 전공하면서부터 지금까지 지식을 전수해주고 프로젝트가 있을 때마다 함께 해왔기 때문에 연호는 전공자 못지않은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연정과 연호의 토론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어졌다. 연호는 펼쳐진 자료들을 좀 더 꼼꼼히 살펴보고 있었다. 잘 모르는 부분은 누나에게 물어가면서 읽었다. 특히 자신이 가진 것보다 해상도가 더 좋은 장비로 찍은 사진들과 도면들을 유심히 살폈다. 어느덧 밤 11시를 넘어서고 있었다. 더 늦기 전에 출발해야 했지만, 연호에게 시간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계를 쳐다보면서 초조해 하는 것은 연정이었다.

 

  “연호야, 안되겠다. 이 자료들 가지고 얼른 올라가라. 너 주려고 뽑아 놓은 거니까 가져가서 찬찬히 봐도 돼. 오늘은 너무 늦었어. 연민이 깨워서 얼른 가. 너는 늦게 출근해서 괜찮지만, 쟤는 일찍 나가잖아.”

 

 연호는 자료를 더 보고 싶었지만 연민이 생각에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었다. 누나의 말대로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정도 동생과 더 의견을 나누고 싶었지만 지금은 어쩔 수가 없었다. 두 사람은 조만간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

 

  “나도 올라가서 나름대로 데이터를 수집해 볼게.”

 

 연호는 곤히 잠든 연민을 깨웠다.

 

  “야, 야. 얼른 올라가자. 내일 출근해야지. 차에서 자.”

 

 연민은 잠이 덜 깬 채로 차에 올라탔다.

 

  “조심해서 가. 도착해서 문자하고.”

 

  “윤지가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서운해 하겠다. 언니가 잘 달래줘. 조만간 또 봐. 오늘 너무너무 잘 먹고, 잘 쉬었다 가!”

 

  “야. 너는 눈이나 뜨고 얘기해.”

 

  “잠이 안 깨져서 그래. 눈도 부시고.”

 

  “시끄럽고, 얼른 출발해.”

 

  “올라가서 연락할게. 누나도 잘 있어.”

 

 

  자정이 넘어선 고속도로는 막힘이 없었다. 연민은 연호가 졸릴까봐 억지로 잠을 쫓아가면서 이런저런 말을 걸었지만 그것도 잠시 뿐, 곧 잠이 들었다.

 

  ‘많이 피곤했나보네. 금방 또 잠이 드는걸 보니.....’

 

 연호도 피곤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지금은 전혀 잠이 오질 않았다. 마치 휘몰아치는 역사의 한 가운데에 서있는 느낌이었다. 알 수 없는 사명감이 솟구쳤고, 운명에 맞서는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비장함마저 느껴졌다.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연호는 이상하리만큼 이 문제에 빠져들고 있었다. 온갖 사건과 사고로 멍들어가는 세상, 악몽에 시달리는 하루하루, 언제나 우울한 새벽과 재미없는 일상, 그리고 동생의 지울 수 없는 아픔까지. 그에게는 몰두할 것이 필요했다. 온 힘을 다해 열정을 바칠 그 무언가가 필요했다.

  이정표에는 어느새 서울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밤인데도 도로의 열기는 여전히 뜨거웠다. 잠시라도 에어컨을 끌 수가 없었다. 행여 자고 있는 동생이 감기라도 걸릴까봐 무릎담요로 그녀를 덮어주었다. 에어컨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는 연호의 얼굴과 등에서 흐르는 땀을 다 식혀주지 못하고 있었다. 꼭 더위 때문만은 아니었다. 대지의 열기와 함께 전에 없던 호기심과 열정이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마구 솟구치고 있었다. 지금 이대로 쭉, 저 우주의 한복판까지 곧장 달려가 사라진 별을 직접 확인하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이 생겨났다. 가슴은 한동안 요동쳤고, 이내 서서히 가라앉았다. 마치 물속에 흩어져있던 부유물들이 바닥에 가라앉듯, 머릿속이 맑고 차분해 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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